[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로잉 : 여성, 가정, 그리고 성노동론
여성, 가정, 그리고 성노동론
로잉
이 글은 가정폭력에 관한 묘사를 포함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엄마는 어릴 적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교육 시스템이 지금보다 더 일관적이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던 시절에, 읽고, 따라 쓰고, 외우는 게 공부의 전부였던 그 시절에 엄마는 늘 우등생이었습니다. 사실, 세대가 달라졌는데도 일률적인 교육 방식에는 그닥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요. 엄마가 어쩌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더라도 선생님들이 피식 웃으며 "네가 웬일이냐"하고 넘어갈 정도로 엄마는 학교에서 "모범 학생"이었습니다. 엄마는 학창 시절, "한번 들은 내용은 바로 외워버리는" 그런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같은 나이였을 시절의 엄마에 비하면 암기력과 문해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암기가 안 되니 학교에서 시행하는 감점식 시험에서는 낮은 성적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행 지식이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으니 자연스레 다음 교육 과정으로 넘어가는 것 또한 힘들어졌습니다.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없었던 저에게 엄마는 ‘좋은 대학’에 갈 것을 요구했습니다. 여기서 ‘좋은 대학’이란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알 만한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말합니다. 엄마는, 그렇지 못한 대학에 가는 것은 "등록금 낭비"라며 ‘좋은 대학’에 가지 않을 시, 저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할 것이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대학에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부님과 아무리 화목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20살이 되면 어차피 멀어질 사이라는 찜찜함과 혼자 생활을 연명해야 할 거라는 불안감을 안고 있었죠.
이 압박은 본격적으로 입시가 중요해지는 시기인 고등학생이 되며 급격히 심해졌습니다. 작은 시험이라도 본 날이면 혼자 방문을 닫고 미래에 대해 온갖 궁리를 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렇다고 책상 앞에 앉으면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명치부터 팔과 손까지 몸이 불타듯이 화끈거리는 바람에 침착하게 앉아 뭔가를 읽고 쓸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냥 제가 열이 많은 체질이라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힘든 정도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나중에서야 우울장애로 인한 증상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몸 상태인 데다가 엄마처럼 똑똑하지 못한 제가 상위권 대학에 갈 확률은 희박해 보였고, 대학 졸업장 자체가 없으면 독립해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직업을 찾기가 힘듭니다. 그렇다면 돈벌이는 일정하지 않을 테고, 그마저도 여성이라면 결혼이나 출산을 빌미로 면접 단계에서부터 압박받는 현실이 놀라울 만큼 여전하다는 점, 직장 내 성희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 등이 제가 독립할 수 있는 선택지를 더 좁고 보수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럴 때 (지정)여성인 제가 모부의 곁을 떠나 살아가려면 결혼과 같이 전통적인 생존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어집니다. 누군가는 제가 노력도 안 해보고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게 아니냐며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회에서 제가 여성이라는 젠더로 지나온 경험을 한데 모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결혼이 최선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는 공부하지 않는 제가 ‘본분’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불같이 화를 내며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모부로부터 집안일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보통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입시 압박에 시달리는 딸인 저에게는 그 말이, 신부수업이나 익혀서 일찍이 시집이나 가버리라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한편, 독립할 방법이 내가 가진 ‘여성성’을 수행하는 것으로만 좁혀진다고 했을 때 머릿속으로 설계해 본 여러 갈래의 제 모습 중에는 성노동자도 있었습니다. 혼인제도를 통해 타인의 부양가족이 되는 것도, 성구매 남성들의 수요에 일치하는 모습의 성노동자가 되는 것도 모두 사회가 정해 둔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성노동 여성은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성노동자의 삶은 비정상적이라는 낙인이 따라옵니다.
가난한 여성에게 ‘사람들이 인정하는 독립다운 독립’을 이뤄낸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사치가 되어버립니다. 저는 제가 직접 돈을 벌어와서 어디에 얼마나 사용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삶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전업주부 여성은 남편이 벌어온 돈에 의존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 돈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게 눈치가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의 노동은 외부의 노동보다 힘들지 않은 일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노는 것’으로 과소평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가정을 돌보는 여성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사노동은 사람이 성장하고,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데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구체적으로 매기는 연구는 부족해 보입니다. 그런고로 이쯤에서 잠시 가사노동의 종류를 굵직하게 몇 가지 종류로 분류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가족 구성원들을 먹입니다. 영어권의 여성학 자료를 읽다 보면 ‘feeding(피딩)’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아기에게 젖을 주거나,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동사를 사용할 때 쓰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feeding은 바깥에서 활동하고 돌아와 배가 고픈 가족의 영양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설령 가사노동자 자신은 한 끼 쯤 거르는 데 개의치 않더라도, 때가 되면 구성원들을 위해 식탁을 차리고는 합니다.
또, 입힙니다. 밖에서 활동하고 돌아온 사람의 땀이 묻은 옷을 세탁해 줍니다. 그 옷은 출근복일 수도 있고 단순히 외출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여성들은 밖에서 활동할 가족 구성원이 그날 입을 옷을 정해 반듯하게 다려 미리 옷걸이에 걸어 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재웁니다. 활동 후 가정으로 돌아온 사람이 쾌적한 환경에서 재충전을 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집 안을 청소하고, 침구를 세척합니다.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사소하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자면, 아무리 의료 서비스가 훌륭한 사회라도 거리를 청소하는 직군의 사람들이 없다면 악취와 쓰레기로 인한 피부병이나 호흡기 질환 등이 빈번히 발생하여, 암이나 급성 쇼크와 같이 집중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 쏟을 인프라가 분산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집안을 쓸고 닦는 행위도 가족 구성원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가사노동자들은 가계의 재산을 관리하는데 1등 공신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생활 하는 데에 필요한 샴푸, 치약, 휴지, 세제 등 자잘한 물건들이 떨어지면 언제, 얼마나, 어떤 품질을 어느 가격대로 살 것인지 계획하고 구매하는 ‘살림’을 관리합니다. 만약 집 안 어디에, 어느 물품이, 얼마만큼 있는지를 기억하고 있지 않다면 애써 벌어온 돈을 중복소비를 하는 데에 낭비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보니 가정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내재적 가치는 무시할 수 없이 큰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럼에도 전업주부의 노동이 부부의 재산에 50% 가까이 기여했다고 법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는 20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가사노동을 재산으로 산정하기가 추상적인데 어떻게 기여도를 가늠하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만, 어떤 가치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는 역사를 통해, 그만큼 많은 여성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해석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의식주와 같은 기본 권리를 자본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스스로 물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 수 없는 개인은 손쉽게 도태됩니다. 그 개인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타인이나 공공 제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홀로 설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어요. 게다가 그들을 뒷받침할 제도조차 없었으니 누군가는 결혼으로, 그마저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는 누군가는 성노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성들이 독립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요? 우선 여성들의 노동에 대한 가시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제가 앞서 가정에서 이뤄지는 노동을 나열했던 것처럼 여성들이 실행하는 노동을 일일이 늘어놓는 행위는 가시화의 첫걸음이 됩니다. 자료가 충분히 모인다면 중복되는 사례들끼리 분류가 가능해집니다. 예를 들어 제가 앞서 가사노동을 크게 식·의·주와 재정관리로 분류해 본 것처럼요. 이 단계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사회, 경제, 통계 등 분야별 학문의 시각으로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이전에, 가정이 휴식을 제공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가정 단위의 위생관리를 사회 인프라의 가치로, 가계 살림을 경제적 가치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각 관점의 융합과 보완의 과정을 거쳐 수적으로 측정하기에 걸맞는 계량컵을 만드는 일입니다. 비로소 여성들이 독립할 권리를 지켜 줄 제도의 뼈대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죠.
그러고 보면 현재 여성의 노동이 가시화된 수준은 관객의 입장에서 공연장의 무대 뒤 스태프들의 노고를 체감할 수 있는 정도와 흡사한 것 같습니다. 무대 앞에서 벌어지는 쇼는 관객의 마음에 어떤 형태로든 파장을 일으킬 테지만 백스테이지에서 일어나는 준비과정 또한 공연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애써 떠올려 보지 않는다면 잊히고 맙니다.
어린 시절의 제가 생존을 걱정하며 성노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쉬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닙니다. 저는 수 차례의 좌절을 경험했습니다. 학벌에 대한 좌절, 가정폭력으로부터의 좌절, 우울장애로 인한 좌절, 그리고 젠더 역할과 성적 폭력으로 인한 좌절까지. 가정에서 안정을 찾지 못한 여성 청소년이 펼칠 수 있는 상상력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독립적으로 나의 자리를 구축하고, 동시에 안전을 확보하는 게 누군가에게는 사치가 된다는 점에서 다시 좌절이 반복됩니다. 성노동론은 그런 좌절의 연속 속에서 무기력해진 여성들을 애써 머릿속에 떠올리고 기억하게 합니다.
* 서울가정법원 신한미 판사가 지난달 낸 논문에 따르면, 2008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1심 법원에서 종결된 이혼소송 227건 중 분할재산 비율이 40~50%인 사건은 135건으로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10년 전 직장여성의 경우 50%, 전업주부의 경우 30% 수준이었던 것에 비해 크게 상승한 것이다. 이는 가사노동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재인식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법조계는 분석하고 있다. "가사노동 물로 보지마" 전업주부 이혼 재산 50% 분할, 한국일보, 2010.04.19
작가 소개글 : 저에게 당신의 고통을 없애버릴 정도로 커다란 힘은 없지만, 당신을 조금 덜 아프게 하는데에는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