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우리가 그리는 미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카야 : 그래도, 의지하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10. 7. 15:26

 

그래도, 의지하기

카야

 

나는 화류계 카페에서 단톡 활동을 즐겨하고, 트위터에서 장미계 활동도 꽤 하는 편이다. 처음엔 화류 커뮤니티에서 단톡방 홍보가 있을 적마다 들어가기만 했었는데, 단톡에 원래 있던 방장이 나가버려 방이 없어지는 상황을 몇 번 겪다보니 이젠 그냥 내가 방장도 맡고는 한다. 방 인원은 40명이 넘게 잘 유지되는 중이다. 내가 방장을 담당해서 사람들이 흩어지는 걸 막고, 다른 사람들은 홍보와 당사자 인증 확인을 담당했다. 주로 난 대화량 체크를 하고, 분쟁이 생기면 부방장들과 의논하기도 했다. 방장이니만큼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를 말하고 딱히 반론이 없으면 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단톡 공지에 댓글로 유용한 정보를 적어보자든가, 차차의 무료법률상담을 홍보한다든가 하기가 편하다. 실제로 도움받은 사람도 나와서 기쁘다.

단톡에는 종사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 강남의 편의시설이나 배달 음식 정보부터 콘돔이나 젤 같은 물품에 대한 정보, 화장품이나 성형에 대한 정보에 피임, 성병, 임신중절 등에 대한 정보까지 가리지 않고 오간다. 자랑이든, 질문이든, 정보 공유든 간에 서로 싸울 만한 일만 아니면 뭐든 소통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성형 이야기만 하루종일 하는 날도 있다. ‘이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정보가 아닌가?’ 라는 고민도 들지만, 성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상 이런 정보의 흐름을 막는 쪽이 더 위험하다고 느낀다. 또, 아무래도 이렇게 모아놓고 교류하다 보면 속상하거나 슬프거나 화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걸 위로해 주는 사람도 있고, 같이 화내거나 해결법을 제안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교류가 가능한 장이 있는 걸 몰라서 혼자 앓다가 궁지에 몰리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트위터 장미계도 예전처럼 사람들이 생기가 돌지 않아서 걱정이 된다. 원인은 모르겠지만, 장미계 내의 정보가 다른 곳으로 유출된 적도 몇 번 있어서 사람들이 말수가 준 것 같기도 하다. 부정적이고 우울하고 화나는 이야기만 적는 게 남들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까 걱정하느라 장미계나 단톡에 못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힘들고 속상한 상황을 겪고 있거나 겪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힘든 상황에서 너무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격려나 위로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교류 공간에 들어와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지 못한 돌파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유흥업소 영정으로 인해 일할 길이 막혀 버린 상황에서 당장 해결해야 하는 돈은 많은데 뭘 할 수 있을지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면? 카페나 사이트 형식의 화류계 커뮤니티에서 그런 질문을 하면 괜찮은 답이 잘 돌아오지 않는다. 일반인 유입이 많고, 정보를 적어줘도 인사 없이 글을 지워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경계심이 올라간 탓이겠지. 그러나 세상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많다. 꼭 화류 커뮤니티가 아니더라도 장미계나 화류 단톡방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중 전부가 보답을 바라고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용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이용하고, 지금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도전해 줬으면 한다.

화류계 단톡에서는 자살 이야기가, 화류계 커뮤니티에는 어느 가게의 누가 죽었다더라 같은 글이 흥미 위주로 올라온다. '잠자는 듯 안 아프게 죽을 수 있으면 죽어?'라는 제목으로 커뮤니티에 올라온 투표에 50여명 가운데 63%가 ‘죽을래’를 선택하는 현실에서 성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을 트위터에 처음 생각나는 대로 적었을 때는 '내가 이러는 게 도움이 될까?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내용들이 글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지만, 이게 만약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도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성노동자들이 교류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성노동자들은 매일 밤낮으로 의견과 정보와 일상을 공유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다들 그렇게 의지도 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글 : 여성 성노동자 정병러. 행복하기 위해 노력중. 계속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