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우리가 그리는 미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멜섭왹비 : 낙하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10. 11. 12:49

 

낙하

멜섭왹비

 

망가져 버렸다, 라는 단어를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임신 중절 수술 후 더 아픈 사람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조증과 울증을 넘나들었고,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통증에 시달리게 됐다. 매일 근육통과 관절통에 시달렸고, 어떤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으며, 비가 오는 날엔 통증이 더 심해졌다. 통증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산발적으로 온몸을 돌아다녔다. 어제 가슴이 아팠다면 오늘은 허리가 아팠고 내일은 배가 아팠다. 어떤 때는 누군가 칼로 내 배를 들쑤시는 것 같기도 했다. 배가 칼에 꽂히면 이 정도로 아프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섭식에도 문제를 겪었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토할 것 같았고 하루에도 화장실을 대여섯 번씩 들락거렸다. 한여름에도 밤만 되면 너무 춥고 미열이 나서 전기장판을 끄고 잘 수 없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추위가 가신 뒤에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고, 새벽에는 갑자기 더워서 벌떡 일어나 에어컨을 틀었다. 그렇게 체온이 오르락내리락하니 제대로 잠을 잘 수 있을 리 없었다. 뭔가 나에게 큰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하여 병원으로 향했다. 하여 류마티스 내과에서 피검사를 하게 됐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예전에 내가 병원에서 겪었던 곤욕스러움이 오버랩됐다.

나는 임신중절을 겪기 전에도 몸이 자주 아팠다. 검색창에 복통, 흉통, 허리통증, 만성 통증 같은 것들을 검색해보다 한 환우 커뮤니티에 가입하게 됐다. 대부분 과거부터 만성 통증을 겪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현재는 섬유근육통 환자들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커뮤니티에는 나와 증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게시물을 보자 놀랍고 반가운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혹시 나도 이 사람들과 같은 병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반가운 마음도 잠시였다. 커뮤니티에 모인 사람들은 너무 아파 보였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많았고, 부작용이 센 진통제를 먹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이들과 유사한 증상이 있을지라도 나는 이 정도로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반가웠던 마음은 외로움으로 바뀌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에 탑승했는데 내 옆자리는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 여행이라는 생각에 들떠 버스에 올라탔지만, 나를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짝을 이루고 있다. 아무도 의도치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날에 아무도 내 옆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사실 난 어디에도 제대로 속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커뮤니티에는 ‘저도 이런 증상이 있는데 섬유근육통일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몇십 개가 있었다. 환우들은 댓글로 여러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그중 눈에 들어온 건 ‘이 증상은 섬유근육통과 거리가 먼 것 같은데요’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댓글을 보고 커뮤니티를 꺼버렸다. 만약 나도 내 증상에 대한 글을 올렸다가 ‘이건 섬유근육통은 아닌 거 같은데’라는 댓글이 달린다면 어떻게 하지. 이유도 모르는 통증에 몇 년을 시달리다 겨우 나를 설명해줄 언어를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도로 빼앗기는 기분일 것 같았다.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를 설명해줄 언어를 찾기 위해 누구를 찾아 나서야 하는가. 얼마나 헤매야 하는가. 가늠조차 안 되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들 사이에 섞일 수 없다는 걸 눈치챘지만, 예전처럼 혼자가 되는 건 두려워 이들 사이에라도 껴있고 싶은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이렇게까지 아픈 건 좀 비정상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 진단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병원에 갔지만 의학은 매번 내 몸에 정상이라는 도장을 쾅 찍어줬다. 의학은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픈 것이 아닙니다.’ 언어를 빌리는 데 실패하는 경험의 반복 속에서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권위가 인정해주지 않는 아픔 속에서 지독히도 외로운 공백에 머무르는 듯했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혼자서 아픔을 겪는 일은 나를 너무나 고통스럽고 외롭게 만들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서 진료실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류마티스 내과인 만큼 자가면역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병원에 오는 것 같았다. 저 사람들이 바로 의학의 이름으로 인정받은 아픈 사람들이구나. 의사가 심각하다 여기고 걱정하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 나 또한 그들의 병이 걱정되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진중하게 고려하고, 까딱하면 병세가 나빠질지도 모르니 세심하게 그들을 돌볼 것이다. 내 상황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진단명이 없는 사람의 삶은 진단명이 있는 사람의 삶만큼 무게감 있게 고려되지 않는다. 의사가 환자를 진중히 생각한다는 의미는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적 없는, 나에게 절실히 필요한 환대였다. 병에 대한 나의 부러움과 질투는 의학적 권위의 부재, 환대의 부재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건 비정상이니 당신은 지금 정말 아픕니다’라는, 의학의 권위로 부여받는 인정은 환자의 삶과 정체성에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검사 결과에서 중대한 질병이 발견되길 바랐다. 누구나 내 병명을 듣자마자 안절부절못하며 걱정하게 되거나, 혹은 너무 중대한 질병이라 반응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병명이 주어지길 고대했다. 심각한 질병을 진단받아야만 내가 경험하는 통증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래야만 모두에게 내 아픔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다르게 피검사 결과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내가 지금까지 어디가 어떻게 얼마나 아팠는지 의사에게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증상만으로는 진단명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환우 커뮤니티에서 접했던 섬유근육통 증상과 유사하게 내 통증을 설명했다. 섬유근육통 증상에 내가 겪었던 통증을 끼워 맞췄고, 실제보다 몇 배 더 아픈 듯이 이야기했다. 아무 이상 없다는 검사 결과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한없이 작아만 져서 꼭 이 세계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아무 이상도 없는, 날 설명할 진단명조차 없는 상태에서 아프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누군가는 내 고통을 무시했고, 의심했으며, 꾀병 취급했다. 진단명이 없어도 내가 말한 아픔이 온전히 아픔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면, 내가 아픔을 증명하지 못해도 수치스럽지 않을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내가 바라는 인정과 환대의 부재가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나는 병을 선망하기 시작했다. 타인의 병을 선망했고, 선망하는 만큼 병을 따라 하고 싶었다. 늘 지금보다 아프고 싶다는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나 아픈 나에게 정성을 쏟고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바빴기에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이들의 잘못은 아닐 테지만 나는 진실로 외로웠다. 너무나 외로워 버틸 수 없어지면 내 몸을 가지고 협상에 들어가야만 했다. ‘네가 계속 날 외롭게 만들면 약을 이만큼 먹어버릴 거야. 네가 내 아픔을 모르는 척하거나 잊은 듯 굴면 오늘은 여기에 상처 낼 거야. 네가 나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면 뛰어내릴 거야.’ 고통을 갈망하는 여자들을 환대할 수 없는 걸까. 하지만 누가 감히 이 욕망을 이해하겠는가. 어떤 사람에게 어떤 부재는 자신을 파괴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역동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지고 잊혀질 바엔 눈앞에서 뛰어내려 이 사람 안에서 트라우마로 남아 영영 살아가고 말겠다는 다짐을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고통을 갈망하는 여자들은 자기파괴의 충동에서 벗어날 수 없단 걸 알게 됐을 때 고통으로 자신의 삶을 재구성한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고통이 자신을 덮쳐버리길 기다린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면 나서서 품으로 끌어당긴다. 고통이 자신을 파괴해버릴지 모르는데도 기어코 고통에 머무르고자 한다. 아무도 자신의 아픔을 인정해주지 않는 상태에 있느니 고통과 함께 파괴되는 편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파괴를 앞둔 자신의 몸을 협상 테이블 위에 올린다. 협상이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라도 지금까지 자신을 아프고 미쳤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한 세계로부터 박탈당한 자원을 되찾으려고 한다. 지금 당장 죽을 것처럼 구는 행동은 정말 죽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앞으로 살아갈 자원을 확보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성매매 현장에서 나는 진실된 마음으로 죽음을 간절히 바랐고, 나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을 피하지 않았다. 내 목을 조르는 손님을 마주했을 때 생각했다. 이건 내가 원하던 죽음과 직결된 위험이었다. 나는 출근할 때마다 오늘이야말로 나를 죽여줄 사람을 찾고 있었고, 죽지 않고 집에 돌아왔을 땐 실망했다. 자의로 죽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부터는 타의로 죽길 바랐다. “손님이 제 목을 졸랐고 숨을 쉴 수 없어 너무 무서웠어요….” 이건 당위로서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정말 내가 무서워했던가? 나는 ‘오빠 하지 마’라는 그 다섯 글자도 뱉지 않았다. 말을 못 한 게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내 위에서 목을 조르는 손님을 빤히 쳐다보며 ‘네가 내 숨통을 끊을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손님을 재봤다. 그러나 대부분의 손님은 실패했고, 나는 이들에게 진저리가 났다. 죽고 싶지만 도저히 죽을 수가 없다. 죽어지지 않는다. 내 손으로도, 타인의 손을 빌려서도.

죽을 수 없어서 미쳐버렸다. 미쳐버린 것도, 죽고 싶은 것도 나를 구성하는 세계 때문이었다. 1의 세계에서 나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 하루에도 몇 개씩 쏟아지는 여성혐오 범죄 기사를 보고 화를 내며 이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2의 세계에서는 손님들에게 폭언을 듣고 심지어 처맞기까지 하면서 돈을 줬으면 준 만큼 서비스를 제대로 하라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 3의 세계에서는 나 정도면 예쁘고 정상 체중이란 소리를 듣고, 4의 세계에서는 손님을 받으려면 살 좀 빼라는 소리를 듣는다. 5의 세계에선 비건식을 먹지만, 6의 세계에선 손님들과 육식을 한다. 나는 1부터 6의 세계를 넘나들며 이 간극을 버티지 못해 분열되었다. 어디에 내 몸을 안착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누구에게 나를 맞춰야 하는지 몰랐다. 나는 분열을 견디지 못해 내가 몸담고 있는 세상에서 정반대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나 정도면 괜찮다고 말해주는 3의 세계에서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섭식장애를 얻었다. 4의 세계에서 살 좀 빼라는 소리에 코웃음을 치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배달 음식을 5만 원어치 시켜서 폭식했다. 반복적인 분열을 통해 갈피를 잃던 즈음 비비를 만나 사랑하게 됐다.

언제나 건강한 상태로 비비를 사랑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 나는 자주 아팠다.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병원은 나에게 치료를 받는 곳이라기보다 수치심을 감당해야 하는 곳이었다. 아파도 진단명이 없으니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의사들은 아무 이상도 없는데 여길 왜 오냐고 했다. 비비에게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자 비비는 가만히 듣다 말했다. 네가 그럴싸한 진단명을 받지 못해서 그런 수치심을 느껴야만 한다는 게 너무 분노스럽다고. 누가 너네보고 여름이한테 그런 식으로 느끼게 해도 된댔어? 라고 소리치고 싶은 심정이라며. 날 사랑하기에 나온 선명한 분노였다. 비비는 이 모든 것에 무뎌져서 더 이상 화내지 않던 나 대신 화를 내줬고, 수치심과 자기혐오감에 웃는 나를 나 대신 가엾어해 줬다. 비비의 위로를 듣고 비로소 깨달았다. 내 처지를 충분히 슬퍼하고 연민할 줄 아는 것도 스스로를 위한 환대구나. 의학의 인정과 환대가 부재한 자리에 비비의 사랑과 환대가 자리하게 됐다. 나는 비비의 환대에 응답하기 위해 조금씩 아픈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비비는 내게 성심성의껏 잘해줬다. 할 수 있는 만큼 나를 돌봤고, 해줄 수 없는 것들을 내게 약속하지 않았다. 처음 관계를 시작할 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성실히 지켜나갔다. 그러나 비비가 아무리 내게 잘해줘도, 비비의 답장이 조금만 늦어지거나 나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 비비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비를 믿게 되면 나는 또 사랑을 바랄 것이고, 돌봄을 기대할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네가 뭔데. 네가 할 수 있을 거 같아? 네가 나에 대해서 뭐를 아는데. 난 분명 비비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마음도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의 심연과도 같은 불신은 비비를 매번 시험하게 했다. 나를 사랑하겠다면 이런 건 응당 감당해보란 듯이. 하지만 그럴 때면 비비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위해 무엇을 감당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나는 비비와의 관계에서 하나하나 배워갔다. 비비가 나에게 답장을 늦게 하는 건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님을, 내가 비비를 사랑하는 만큼 비비 또한 날 사랑하고 있음을, 내가 비비를 시험에 들게 해도 비비는 날 미워하지 않음을. 우리는 최초의 갈등 이후에도 몇 번이나 더 서로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휘청였지만, 불안하고 휘청였던 만큼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그러나 사랑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비비의 사랑이 나의 모든 불행을 없애주리라 믿었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우리는 사랑할수록 각자의 한계를 알게 됐다. 비비가 주는 사랑은 강력했지만 나의 병을 호전시킬 수 없었고, 나 또한 비비의 슬픔을 마법처럼 없애줄 수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껏 해봐야 서로의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아픈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이었다. 서로의 곁에 오래 머무르려면 솔직한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 감정과 생각을 비비에게 얼마만큼 전달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 이전에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 포착할 수도 없었다. 감정을 마주하기보다는 회피하는 일에 도가 터 있었고, 특히나 분노와 슬픔 같은 감정은 아예 느끼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일에는 이런저런 조언도 곧잘 해줬지만, 내 일 앞에서는 아무리 화나는 일을 겪어도 화내는 법을 몰랐고, 우는 법도 몰랐다. 비비는 단번에 그런 나를 알아봤다. 내 강인함은 위태로움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어느 날 갑자기 비비는 나를 붙잡고 말했다. “네가 화낼 수 없는 일에는 내가 대신 화내줄게. 내가 너의 감관이 되어줄게!” 나의 감관이 되어준다니 이 얼마나 로맨틱하고 허황된 이야기인가. 그때의 난 비비가 나를 다급히 위로하는 말이라 치부하고 넘겼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비비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어느 여름날 새벽을 꼬박 지새우고 잔뜩 화가 난 채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손님이 자신과 밤새도록 있어 주면 화대를 주겠다고 해놓고서, 돈을 뽑아온다고 하고 그대로 도망쳐버린 뒤였다. 나는 비비에게 연락해서 손님에게 돈을 못 받고 집에 가고 있다고 말했고, 비비는 엄청나게 화를 내며 손님 욕을 했다.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아 나는 습관처럼 자조적인 농담을 했고, 비비는 농담에 웃어주지 않고 나를 위로했다. 비비의 분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임을 깨닫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피곤이 몰려와 잠깐 눈을 붙였다. 내가 자는 동안 비비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널 향한 나의 사랑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지금은 ‘기꺼이 무력감을 감당하는 마음’이라고 할래. (...) 사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까지 해도 되는지도 잘 모르겠어. 네 처지를 자조하는 농담에 웃을 수도 없어. 그리고 이런 상황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거야. 한없이 무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 하지만 네 파트너로 지낸다는 건 종종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 거더라. 원래는 절대 참지 못해. 어떤 식으로든 나 좋을 대로 사태를 종결하거나 상대방 입을 틀어막아 버리기 일쑤지. 하지만 너는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네가 내 마음에 심은 것은 그런 것들이야. 거부할 수 없는 당위. 그것을 감히 관철할 의지. 그래서 난 네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도 스스로가 강하다고 느껴. 사랑하는 여름, 네가 주는 이 느낌이 나로서는 진실로 신비롭고도 영광스럽지만, 이런 것들 평생 몰라도 좋으니 네가 고통받지 않길 바라. 네 삶이 지겨울 만큼 평화롭길 바라.”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걸 볼 때 나도 같이 행복하면 이게 사랑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비비의 기쁨을 보는 건 나의 행복이다. 정말로 행복하다. 비비를 보고 있을 때면 죽을 수 없어 괴로웠던 지난날들이 더는 생각나지 않았다. 비비, 네 덕분에 하루하루가 행복해. 이젠 내가 없으면 안 될 너를 위해 조금은 더 살아가고자 해. 내가 있는 미래에 너도 함께하길 바라. 있지, 난 너로 인해 사랑을 배웠어. 네가 가르쳐준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됐고, 그건 내 삶을 바꿔놨어. 네가 날 사랑하고, 내가 널 사랑할 수 있어 정말 기뻐. 나는 당장 내일 내가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 모르는 미래를 살아있는 방향으로 바꿔보기로 했다. 캘린더에 비비를 만나러 가는 날을 써놨다. 그날까지는 적어도, 아니 그 뒤에도 비비를 만날 수 있는 날이 내 삶에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나는 이제 날 망가뜨려 줄 손님을 찾지 않는다.

 


 

작가 소개글 : 주홍빛연대 차차에서 성노동자들과 함께 사랑이 넘치는 폴리아모리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중. 눈물마저 반짝거리게 만들어주는 사람들과 불안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