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우리가 그리는 미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혜곡 : 어떻게 운동까지 사랑하겠어, 차차를 사랑하는 거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10. 15. 14:51

 

어떻게 운동까지 사랑하겠어, 차차를 사랑하는 거지

혜곡

 

 처음 차차에 들어왔을 때 저는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디서든 그랬어요. 한 번은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교육 첫날 매장 사진을 구석구석 찍어서 그날 밤에 집에서 전부 외웠습니다. 빵의 이름이나 제자리, 매장 구조 같은 것들을요. 그렇게 사는 건 저를 능숙하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는 했지만, 언제나 수치심이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방식이기도 했죠. 완벽한 자신에 대한 기준은 한없이 높아서, 아무리 사소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고 아무도 저를 나무라지 않을 때도 제 그림자가 저를 매섭게 질책했어요. 그러나 그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와 말하는 거지만, 그런 제 눈에 차차의 느슨한 업무환경은 솔직히 불만족스러웠습니다. 일정이 미뤄지는 일이 되게 잦았거든요. 지각한 사람에게 너무 관대했고, 결석한 사람에겐 더 관대했어요. 모든 일이 철저히 ‘사람’ 중심이었습니다. 모르면 가르쳐주고, 그래도 못 하면 한 가지 업무를 여럿이서 나누어 했습니다. 아무리 간단한 일도 기한이 넉넉했고, 설령 못 지켜도 누구 하나 나무라는 이 없었어요. 오직 부드러운 채근과 무한한 칭찬만이 존재했어요. 써놓고 보니까 무슨 차차 구인 공고 같은데 오해입니다. 왜냐하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역량이 뛰어난 활동가 한 명이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분은 혼자 일하는 기분을 견디다 못해 종종 폭발하기도 했고요. 저는 늘 그것이 미안했고, 다른 구성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습니다. 대화 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또 대화했습니다. 대화가 매끄럽지 못하면 매끄럽지 못함에 대해서 다시 대화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동화 같은 전개에 회의적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차차가 일터라기에는 너무 편안하다는 데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일터가 일터다워야죠! 안 그렇습니까? 좀 경직되고, 불편하고, 위아래로 책임소재 딱딱 있고! ‘편안한 직장’ 같은 건 ‘따뜻한 얼음’ 아니냐고요. 그러나 제 몸은 정직하게 차차의 편안함에 물들어갔습니다. 조금만 아파도 회의에 불참했고, 심지어 데이트하느라 빠진 적도 있어요. 실수 하나 하면 죽는 줄 알았던 제가 아니었죠. 자각하고 나니 앞으로의 일들이 두려워졌습니다. 이제 저까지 이성을 잃어버렸으니 저와 차차의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막상 걱정할 만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옛날에 동료들이 붙여준 ‘차가운 도시의 활동가’라는 별명을 잃었지만, 대신에 마음껏 아파하고 스스로를 돌볼 권리를 얻었어요. 너그러운 마음가짐은 덤이었죠. 차차 또한 우리의 숱한 대화를 거름 삼아 느리지만 꾸준하게 굴러가고 있었어요. 오로지 정면으로 마주한 수치심만이 저와 똑같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위태로워진 건 단지 그것뿐이었던 거예요.

 수치심의 위기가 곧 나의 위기라고 생각했다니! 전 대체 얼마나 고용인의 미덕을 내면화하고 살아왔던 걸까요? 저는 언제나 제가 잘났다고 생각했었지만, 늘 완벽하고 싶다는 바람은 사실 저에게도 동료들에게도 해로운 것이었습니다. 미숙한 자신을 미워한다는 건 타인의 서툰 부분 역시 용서할 줄 모른다는 거니까요. ‘유능한 사람’에 취해서 살아온 오만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던 거예요. 모두가 같은 속도, 같은 방식으로 일하기를 강제하는 환경을 기대하고, 그 안에서 어김없이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 했던 게 얼마나 폭력적인 욕망이었는지 비로소 알아차렸습니다. 실체도 없는 효율에 집착하는 것보다 옆에 있는 동료를 기다려주는 것이야말로 나와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것도요. 아프다고 하면 그저 푹 쉬라던 차차가 없었다면, ‘활동가도 데이트하면서 살아야지’라고 말해주던 동료가 아니었다면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결국 차차의 방식이 옳았느냐? 그렇게 평가하기엔 이를지도 모르죠. 안에서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데다가, 차차의 시계는 아직까지 차차에서만 정상 작동하는데, 가혹한 표준시의 세계에서 우리가 살아갈 일을 생각하면 막막합니다. 하지만 제 세상에서 차차가 가졌던 의미야말로 제가 생존을 넘어 진심으로 바라는 거예요. 유능을 증명하는 챔피언벨트보다, 나를 존중해주는 공동체의 사랑과 관용이 훨씬 값지다는 걸 이제는 아니까요.

 하나만 더 고백할까요? 저는 ‘이대로 있어선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동시에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좀처럼 바뀔 것 같지 않은 세상과 너무나도 부족한 자원 앞에서 저는 늘 냉소적이었어요. 제가 끌어다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는 부채감과 의무감이 전부였죠. 하지만 그렇게 마지못해서 했던 일들이, 제 안의 선함과 동료들 덕분에 어떤 긍정적인 역동을 만들어냈는지 너무 선명하게 목격해버린 거 있죠. 지금은 ‘그때는 그저 내가,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지 잘 몰랐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지레 겁을 먹고 닫아둔 문을 다시 열 수 있었던 건 차차의 모두들 덕분입니다.

 그나저나 여러분, 식사는 잘하고 있나요? 생존 너머를 바라보려면 우선은 생존입니다. 밥 잘 먹고, 약 잘 먹고, 잠 잘 자고, 내년 봄에는 장미 넝쿨 아래를 함께 걸어요.

 

2021년 8월

진심을 담아, 혜곡.

 


 

작가 소개글 : 주홍빛연대 차차에서 회계와 총수를 맡고 있는 혜곡입니다. 방황하는 사랑과 달아나는 용기를 가까스로 붙잡아 이 글을 썼습니다. 지상의 성치 못한 존재들을 애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