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10. 16. 18:29

 

무제

이울

 

슬플 때 손톱자국을 낸 적이 있나요?

초승달이 뜬 밤은 어둡다. 자세히 보면 날카롭게 떠 있는 손톱달이 보인다. 가끔 견딜 수 없을 만큼 속이 타들어갈 때 피부에 손톱자국을 내곤 했다. 달이 여러 개 뜬 피부는 점차 통각에 둔해진다. 나도 내 삶에 둔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우울이 강이 된다는 말

우울이 강이 된다는 말은 너무 식상할 정도로 익숙하다. 흘린 눈물과 흘리지 않은 눈물을 모두 모은다면 어느 정도일까. 욕조를 가득 채울까? 방 하나를 가득 채울까? 그렇지만 종종 울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흘러가버린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흘러간 눈물과 슬픔도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뼛속까지 아플 때가 있어요.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가 정말로 나를 위해 곁에 있어준다는 안정감, 그 단단한 믿음이 그리워지는 날이면 뼛속까지 시리더라고요. 왜 인간은 겪지 못한 것에 향수를 느낄까요. 가져보지 못했으면서 빼앗겼다고 슬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할까요?

숨쉬기 힘들어요

정상성을 묻는 질문을 열심히 피해가도 ‘정상’적인 공기는 어쨌든 숨쉬기 힘든 걸요. 빨간 줄을 요리조리 피하려면 몸을 열심히 비틀어야 해요. 어쩌다 한 번 넘어지면 온 세상이 나와 얽힌 그 빨간 줄을 보고 기겁을 해요. 비난을 해요. 나는 빨간 줄보다 나를 비난하는 그 공기가 더 무서워요. 

월세

월세는 왜 자꾸 내야 할까요. 공과금은 왜 자꾸 밀릴까요. 왜 내가 살기 위해서 나는 항상 위태롭게 서 있어야 할까요. 어쩌다 얻은 직업으로 어쩌다 번 돈으로 어쩌다 살아야 하는 집의 월세를 내고 공과금을 내다가 어쩌다 밀려서 어쩔 수 없이 또 일을 해야 하는 삶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궁금했어요. 하지만 그 문제의 뿌리는 없는걸요. 애초에 딛고 서있던 땅도 없었기 때문이죠. 

응시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내려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그들을 올려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오늘

재난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리본의 끝은 없고 한 번씩 꼬임이 있을 뿐. 우리는 꼬인 부근에서 손을 잡으며 리본이 이어지는 대로 걸어가는 중이다. 리본을 단 사람들 모두 함께. 

우리는 분명히 비슷한 점이 있을 거예요.

위 여덟 개의 그림들은 아주 작습니다. A4 용지도 안 되는 크기이죠. 특히 이 여덟 번째 그림은 더 작습니다. 작업할 책상도 없이 살던 때, 처음으로 나를 위해 산 선물인 프리즈마 색연필을 들고 아주 작게 꾹꾹 눌러 그렸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사람과 비슷한 점이 있을 겁니다. 

 


 

작가 소개글 : 장편소설 <정답은 까마귀가 알고 있다>, <레인보우 다이빙>(아미가)의 <P,L,UTO>,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돌베개)의 <스틸 앤드 슛>을 썼습니다. 글과 그림을 좋아해서 창작합니다. 구조한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