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3. 25. 06:05

 

 

 흉폭한채식주의자들

 

 

삶은 그 자체로 존귀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우리는 이 낡디낡은 명제가 여전히 낯선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발붙인 이 기이한 세계에서는 같은 피를 흘려도, 동물보다 사람의 목숨이 귀하며 같은 몸과 시간으로 일해도, 성노동은 착취일 수밖에 없으며 죽음 앞에서마저 비천한 죽음과 존귀한 죽음이 경계 지어지기에 그저 ‘내가 귀한 쪽이길’ 바라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됩니다.
 
정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의 문장을 빌려 묻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삶, 애도할 수 있는 죽음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왜 어떤 형태의 슬픔은 국가적으로 인정받고 확장되는 반면에 다른 상실은 사유 불가능하고 애도 불가능하게 되는가?”
 
신고할 수 없는 폭력, 기록되지 않는 삶, 애도할 수 없는 죽음・・・.
 
저희 흉폭한 채식주의자들은 이 모든 ‘할 수 없음’과 ‘될 수 없음’을 문제 삼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불가능성에 연루된 자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세계가 있습니다.
 
동물의 목숨은 사람의 목숨과 동등하게 귀하다는 것,
 
같은 몸과 시간으로 일하며 삶을 일구어나가는 성노동자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 모든 삶과 죽음에 마땅히 주목하고, 슬퍼할 것을 외치는 세계가 여기 있습니다.
 
성노동자를 동등한 시민으로서 존중하라.
 
성노동자가 죽임 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 흉폭한 채식주의자들은 이 세계의 모든 ‘천한’ 존재자들 곁에 서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