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세미나, 라운드 테이블/2022 『반란의 매춘부』이후, 오픈 라운드 테이블

[후기] 진송 :『반란의 매춘부』이후, 성노동자 권리운동과 연대의 길 찾기오픈 라운드 테이블 1차 후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7. 23. 19:59

 

페미니즘 붙잡기

 

진송

 

후기를 요청받은 지 며칠이 지났지만 〈반란의 매춘부〉 이후, 성노동자 권리운동과 연대의 길 찾기 1차 오픈 라운드 테이블에 대한 글을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오픈 라운드 테이블에서 오간 논의들이 너무나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 그리고 내 삶 속의 문제들과 맞닿아 있어 거리두기가 불가할 정도로 끈적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유발되었기 때문이다.

발제자이자 『반란의 매춘부』의 역자인 명훈이 발제에서 각각의 모델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덧붙인 바대로, 범죄화 모델과 노르딕 모델, 합법화 모델, 비범죄화 모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예컨대 발제에서 소개되었으며 『반란의 매춘부』에서도 그 내용이 다뤄지는 ‘감금 페미니즘’은 인신매매와 성매매를 단속하기 위해 폭력의 잠재적 피해자나 범죄자로 간주되는 이들(주로 미등록 이주민)을 심사, 추방, 경비 등의 ‘법적’ 방식으로 통제하려 한다. 법적인 방식의 해결이 갖는 한계는 범죄에 대한 통제뿐 아니라 비범죄화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명훈의 말처럼 “어떤 제도든 구조적 맥락에 따라 다른 효과를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1)

한편 올해 3월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가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에 연대단체로 참여하는 것을 거절했다.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에는 노르딕 모델을 지향하는 반성매매 단체만 연대단체로 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는 연대단체들이 “성노동 이론에 반대하며 ‘성노동자’라는 용어에 명백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추가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차차 구성원들이 “노르딕 모델의 필요성을 이해”하며 “성매매 현장의 폭력과 착취를 노동자로서 증언하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성매매의 폭력성을 부정하기는커녕 증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노동 이론’과 ‘성노동자’라는 용어를 피상적으로 문제 삼은 것만큼이나 폭력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개정연대에서 공식적인 답변을 드리기 전에”,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갖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어째서 차차는 공적 기록을 남기는 형태의 논의가 아닌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에만 허락받을 수 있었던 것일까? 연대단체로서는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채로? 2)

이 모든 것이 ‘감금 페미니즘’의 태도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여겨진다. ‘공식적인’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를 나누고 심사, 추방, 경비 등의 방식으로 그 ‘공식적인’ 페미니즘 ‘내부’(의 자격)를 통제하는 것. 그러나, 그렇다면 성노동자는 페미니즘의 ‘내부’가 될 수 없는가?

‘일부 페미니스트’들(아마도 ‘공식적인’ 자리에 있을 어떤 사람들)이 성노동자에게 메론 한 조각도 주지 않으면서 성해방을 이야기한다는 유머스러운 통찰에 뒤이어 질의응답 시간에 ‘성노동자의 역사가 페미니즘의 역사에 기록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성노동자뿐만 아니라 ‘성노동자’라는 용어조차 강렬히 거부하는 ‘일부 페미니스트’ 인식론 속에서,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페미니즘이 어떻게 하면 성노동자를 받아들여 줄 것인가’보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성노동자와 그들의 연대자들이 페미니즘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더 관심이 간다. 이토록 깊은 분노 속에서. 심사, 추방, 경비 등의 ‘법적’이고 ‘공식적’인 방식으로 휘둘러지는 배제 속에서.

 

…….

 

이 사람들의 분노는 대체 어디로 갈 수 있는가?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성노동자 때문에 세상 망한다고 하고 싶은 얘기 다 하는 동안에……. (아마 ‘〈반란의 매춘부〉 이후, 성노동자 권리운동과 연대의 길 찾기’ 오픈 라운드 테이블에서 그 분노를 나눌 수 있을지도…….)

각설하고, 어쨌거나 나는 당분간 페미니즘을 붙잡고 싶다. 이 치사하고 더러운 페미니스트 세계에 좀더 남아있고 싶고, 이 모든 분노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의 언어로 이야기하기를 결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아직 “떠남도 애도일 수 있는가?”라는 친구의 물음에 대한 긍정적인 답의 가능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견디지 못해 떠난 사람에게 허락되는 것이 애써 잊는 일, 애써 무관해지는 일(실제로는 무관하지 않을 때도)뿐이 아닐지를 생각하는 게 두렵다. 나는 떠나고 싶지 않고 사실은 분노와 복잡성과 절망으로 가득한 이곳을 사랑한다. 철거민들의 투쟁이 우리가 소유하지 않은 집과 땅을 떠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보여 주었듯, 나는 내가 머물 자격 없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차차가 주최한 2022 한국 성노동자의 날 집회 ‘성노동자도 사람답게 살고싶다! 성노동자 해방행동에서 여성이 잃을 것은 족쇄뿐이다’에서 받은 스티커에 적혀 있던 문구를 떠올린다. “우리는 자격 없는 여성들과 세상을 바꾼다.” 자격 없는 여성인 나는 감히 이 세상을 걱정하고 이 세상이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자격 없는 여성인 채로 페미니즘에 지저분하게 붙어먹는 이 행위가 내가 가진 최대의 이타성이다. 2, 3차까지 이어질 다음 오픈 라운드 테이블에서도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듣고 생각할 것이다.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와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 그리고 수요평화모임에 감사드린다.


각주

더보기

1) 우주해달, 성노동자 차별, 이제 그만, ‘반란의 매춘부이후, 성노동자 권리운동과 연대의 길 찾기 오픈 라운드 테이블’ 1차 발제문, 11.

2)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가 주고받은 메일의 내용은 모두 1차 라운드테이블에 토론자로 참석하신 차차 활동가 유원 님의 발표 자료에서 발췌하였다. 현재 차차의 블로그에 게시된 [입장문]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 참여 거절에 대한 차차의 입장문이라는 글에도 해당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주홍빛연대 차차, [입장문]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 참여 거절에 대한 차차의 입장문, 블로그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05.12. (https://sexworkproject.tistory.com/138?fbclid=IwAR3mlsRoQassLL0TN7j3G6r6O3YMxET4Euh7EU0PP7GClUxGDh1AHUw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