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세미나, 라운드 테이블/2022 『반란의 매춘부』이후, 오픈 라운드 테이블

[후기] 길의 사람 :『반란의 매춘부』이후, 성노동자 권리운동과 연대의 길 찾기오픈 라운드 테이블 3차 후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8. 9. 22:19

『반란의 매춘부』이후, 성노동자 권리운동과 연대의 길 찾기

오픈 라운드 테이블 3차 후기

 

길의 사람

 

나는 지난 7월 15일․22일․29일 3회에 걸쳐 ‘OPEN ROUND TABLE - <반란의 매춘부> 이후, 성노동자 권리운동과 연대의 길 찾기’에 참가했다. 매번 굉장히 많은 수의 참가자들이 줌으로 접속해 발제자와 토론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나이가 어린 자녀들의 돌봄을 함께 해야 해 토론 시간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발제자가 매 시간 들려준 고민과 메시지는 이전에 고민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들을 생각하게 만든 자리인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은 오픈 라운드 테이블에 대한 아주 간략한 돌아봄이다.

먼저 설명이 필요한 것은 왜 지금 성노동자 권리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하는 것이다. 나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 리부트’를 통해 비로소 여성 문제와 페미니즘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지역의 페미니즘 단체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책모임 등에 참여해왔다. 일 때문에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지속적인 관심을 이어왔다.

그런데 페미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영역과 이슈 중에서도 ‘성노동’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강연을 듣거나 공부를 하지 못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내 관심이 페미니즘의 문제의식 가운데 어디와 맞닿아 있는지가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내가 속한 지역의 여성운동에서 ‘성노동’보다는 ‘반성매매’ 의 목소리가 월등하게 큰 것과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지역에서 만나는 여성단체와 활동가 대부분 공적 입장이 ‘반성매매’ 진영에 속했는데 그러한 관계 안에서 ‘성노동’에 대한 담론을 접하거나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SNS를 통해 이 라운드 테이블 홍보를 접하자마자 이번 기회에 ‘성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제대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라운드 테이블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된 한 사건이 지난 3월에 공론화되었는데, <성매매처벌법개정연대>에서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의 개정운동 참여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이것은 ‘반성매매’ 진영과 ‘성노동’ 진영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한 기억 또한 라운드 테이블 참여의 동기가 되었다.

1회에서는 우주해달님이 <반란의 매춘부> 저작을 중심으로 반성매매 진영과 성노동 진영 사이의 오랜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요약해서 전달해주었다. ‘성노동’이라는 표현이 왜 여성운동 진영 안에서 불온함과 금기의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 문제는 ‘매춘과 노동의 관계를 어떤 입장에서 볼 것인가?’, ‘섹스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감금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를 통해 성산업을 근절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놓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게 만드는 질문의 힘이 강력했다.

2회에서는 성노동자 권리운동의 당사자로 활동하고 있는 여름님이 한국의 성노동자 권리운동의 전개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이제 막 성노동자의 역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모든 것을 포괄하기에는 부족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당사자가 스스로의 운동을 의미화하고 정리했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굉장히 용기를 필요로 하고, 시작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발표라는 점은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3회에서는 아정님이 곧 번역될 책의 일부분을 통해, 100년 전 일본의 여성운동―일본의 성노동자 투쟁에 대한 고찰을 통해 지금의 여성운동, 페미니즘 운동을 질문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아정님은 발표 시작부터 ‘지금 당장 (누구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성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라운드 테이블에 함께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기도 했다.

이 질문에 대한 쉬운 대답을 찾을 수 없었지만, 100년 전 일본 성노동자의 투쟁 그리고 뉴질랜드 매춘개혁법의 제정은 역사 속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성노동자의 주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로 충분했다.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노르딕 모델’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고민하고, 질문을 해보았는가. 그것은 ‘뉴질랜드 모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지난 주말에 겨우 <반란의 매춘부>를 구입해 이제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운동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분들보다는 한참 늦었는지 모르지만. 이제라도 성노동자의 권리를 알아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