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활동 소식/논평, 성명문, 입장문

9. 집결지 여성들의 기억을 횡단하고, 연결하고, 구성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옐로하우스 집결지 폐쇄에 부쳐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0. 7. 22. 01:21

집결지 여성들의 기억을 횡단하고, 연결하고, 구성하는 건 우리의 몫이다- 옐로하우스 집결지 폐쇄에 부쳐

 

인천항이 개항된 이후 숭의동 일대의 옐로하우스는 미군들과 외국 선원들이 주된 손님이었다. 미군에게 노란색 페인트를 얻어 건물에 칠했다는 사실에서 이름이 유래한 옐로하우스는 2006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고, 2018년 6월 정비사업을 지역주택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철거에 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2018년부터 지역주택조합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오던 4호 집 옐로 하우스 이주대책위는 2020년 5월, 조합과 합의를 이뤄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시대 때 설치된 성매매 집결지와 공창제도는 국가가 집결지를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지역경제를 벌어들이는 수단으로써 여성들의 몸을 이용했다. 해방 이후엔 국가가 나서서 하나의 '사업'으로 외화벌이를 위한 공간인 기지촌-집결지를 '보호'했고, 집결지 여성들을 통제했다. 현재 국가는 성매매 집결지를 특정 구역으로 지정하고, ‘청소년 출입금지구역’이라는 이름을 붙여 집결지를 일반인이 보거나 드나들 수 없는 구역으로 분리해서 관리하고 있다.

과거부터 성매매 집결지는 국가와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착취하며 이윤을 창출하던 공간이었다. 옐로하우스 지역주택조합의 경우, 옐로하우스에서 성노동자들을 수년간 착취한 업주들은 여성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자신들의 건물을 쌓아 올리고 새 차를 샀으며, 성노동자에겐 빚을 쌓아 올렸다. 성매매 집결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낙후된 지역으로 변모하였고, 업주들은 예전과 같이 이윤을 창출할 수 없게 되자 개발이익을 노리기 시작했다. 업주들은 재개발•뉴타운 열풍에 맞춰 마지막으로 큰 자본을 만질 수 있는 재개발 사업에 뛰어들었고, 재개발 이해당사자로 엮인 지역주택조합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국가와 남성들은 다시 한번 여성들을 강제로 내쫓아 재개발 이익을 챙기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옐로하우스 철거를 진행하며, 불법적으로 시도되는 철거작업, CCTV 불법 촬영, 포크레인과 같은 중장비로 위협하며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는 행위, 사람이 안에 있는데 건물을 훼손하는 행위와 같은 비인권적인 강제철거가 진행됐다.

지역주택조합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을 방치한 채 철거를 강행하다 철거 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으나, 이 과정에서 옐로 하우스 여성들은 여성부, 시청, 구청, 경찰, 국가권익위원회 그 어떤 기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조합은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위해 갑자기 형식적인 절차로 명도소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명도는 법적 소유권이 분명하고 사전에 임대차 관계를 해소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지역주택조합은 옐로하우스 여성들이 계약서 없이 임차한 사실을 악용해 10년 전 세입자에게 임대차가 종료되었다는 서류를 만들어 법원에 제출했고, 위장 불법 명도소송이 진행됐다.

인천지방법원에서는 “이 사건에서의 임대차계약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와 성매매를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로서 그 반사회질서적인 동기가 상대방에게 알려진 경우에 해당해 무효라고 보는 것이 옳다”며 조합의 손을 들어줬다. 이러한 판결을 미루어 볼 때, 성노동자 여성들은 '성매매' 행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주거권을 박탈당하지만, 성매매 알선 행위를 했던 업주 건물주들은 오히려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법에서 보장해주고 있다.

성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전입신고를 해야 하지만, 근로계약서를 쓰기는커녕 업소에서 생활한다 해도 전입신고를 하지 못한다. 전입신고는 임차인으로 있는 업주가 할 것이고, 성노동자는 주민등록상 거주지와 실거주지가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집결지라는 특정 구역에서 생활했던 게 기록으로 남게 되면 사회에서 성노동자는 더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옐로 하우스 여성들이 '성매매'를 했기 때문에 임대차법이 무효라는 판결은, 그동안 8년을 살아온 집과 일터에서 국가와 자본이 결탁해 힘없는 여성들의 공간을 철거하는 행위와 같다. 집결지를 만들고, 여성들을 유입시키고, 여성들을 그동안 착취하며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인 주체들에 대한 처벌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힘없는 성노동자 여성들만을 '성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너무나 명백하게 차별했다.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 여성들은 '성매매특별법'에서 성노동자를 처벌하기 때문에 자신의 주거권에 대해 목소리 낼 수조차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 여성들은 다부지고 강인한 힘으로 권력과 자본의 편을 드는 판결을 문제 삼고, 맞서 싸우며 계속해서 지역주택조합과 합의를 이뤄냈다. 이것은 온전히 옐로하우스 이주대책위 여성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고발하고,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자 뛰어다녔던 노력의 결실이고, 우리는 이에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보낸다.

집결지 폐쇄에 항상 딜레마가 있다. 집결지 여성들은 분명 집결지 너머를 넘어서 생존할 공간이 필요하지만 그런 공간이 부재하다는 사실과 집결지는 언젠가 모두 사라지게 될 예정이라는 현실이다. 국가는 성매매 여성 조례지원이 아니라, 더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집결지 성노동자 재개발 지원 정책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국가는 이제 와서 집결지 재개발 문제는 민간 자본이 개입하는 문제라고 책임지지 않으려 발뺌하는 게 아니라, 성매매 집결지를 공식적으로 승인하고 통제해온 역사를 기억하고, 국가는 남성과 자본의 편만을 드는 것이 아니라 집결지 재개발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여성들을 위한 복지 제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더 이상 남성들이 원하는 것처럼 집결지 여성들이 재개발 논리에 휘감겨 소리 없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집결지 여성들이 증언하고, 고발하는 행위를 통해 남성들의 독선을 막을 것이며, 우리는 듣고, 기억하고, 기록하여 여성들의 곁에 남아 잊지 않을 것이다. 피해 사실을 망각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아닌, 기억을 횡단하고, 연결하고, 구성하여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옐로 하우스 여성들의 승리를 축하하며, 옐로 하우스 집결지 폐쇄에 부쳐, 우리는 옐로 하우스 여성들의 투쟁 역사를 기억할 것이다.

 

주홍빛연대 차차
2020년 6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