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코로나 시대의 성노동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자당 : 우리를 공격하는 당신들은 틀렸습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0. 9. 19. 11:29

우리를 공격하는 당신들은 틀렸습니다, 자당

 

우리를 공격하는 당신들은 틀렸습니다.

 

자당

 

 안녕하세요. 저는 5월 말부터 트위터에 인권 관련 글을 쓰고 있는 닉네임 자당이라고 합니다. 이 글은  트위터를 시작한 이후 작성한 성노동자의 권리와 관련된 글을 기반으로, 제가 보았던 성노동자에 대한 공격과 이에 대한 제 생각을 묶어본 것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보고 작성했으며, 비당사자의 경험과 시선에서 적었기 때문에 성매매에 대한 이해와 글의 내용이 많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저는 사실 트위터에 가입하기 이전까지 성노동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입장은 대중들이 그러했듯이, ‘성매매는 나쁜 것이며 구매도, 판매도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트위터에서 처음 적었던 글 또한, 성매매특별법이 왜 현행 상태로 유지되어야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적었던 글을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내용보다는 논리를 전개한 방식 자체가 상당히 깔끔해서 ‘나도 이렇게 글 잘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인용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용에 대해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은 당시에 이 사고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성노동론에 대한 인지는 전혀 없는 상태였지요.

 가입했을 당시는 이 글을 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시기도 한, 활동가 왹비 님에 대한 KKRIMM 및 남혜리 씨의 2차 가해가 일어나고 2주 정도 지났을 때였을 것입니다. 머지않아 저는 신상 공개를 비롯한 광범위한 2차 가해 사건을 접하게 되었고, 성노동자의 권리 지지를 위해 연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겠지만, 당시에는 성노동에 대한 이해 자체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누구도 죽음으로 몰아져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그러한 폭력에는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 제가 성노동자의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습니다.

 성노동자와 관련된 글을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저 또한 갖은 공격을 받거나 난처한 상황에 이르게 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중 한번은, 성구매자의 입장에 찬성해서 성매매 완전 합법화를 바라는 사람이 종종 제 글을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또한 위와 비슷한 맥락으로, 저를 성구매자 남성들과 같은 소리를 한다며 몰아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밖에는, 공격하는 사람들이 성노동자를 멸시할 때 쓰는 ‘페이강간 옹호충’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외에 주변 성노동자 분들이 공격받는 경우도 숱하게 보았습니다.  익명 계정을 통해 집요하게 성노동자 개인을 공격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고, 영향력 강한 계정들이 직접 시비를 걸거나 성노동자의 발언을 인용하여 조롱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성노동자, 또는 그들과 연대한다는 의미로 다는 장미 이모티콘에 대한 비하 역시 잦았습니다. 저는 이에 반대하는 의미로 트위터상에서의 언쟁에 참여했다가 이런저런 인용으로 조롱을 받고, 새벽 너머까지 논쟁하는 일 등 어려움을 겪은 적도 제법 많았습니다.

 


 

2.

 성노동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성노동자에 대해, “여성 인권을 떨어뜨리는 (깎아내리는)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들이 성노동자를 그렇게 공격하고 혐오하는 이유에, 본인들은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고자 하지만 성노동자들이 그것을 막고 방해한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들이 성노동자를 비난할 때 쓰는 말로는, “강간문화 부역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모든 성매매를 성구매자가 돈을 주고 하는 강간, 즉 “페이강간”으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남성들의 강간 판타지를 비롯해 착취적인 문화가 없어지지 못 하는 이유를, 이런 일그러진 문화를 직접 만들고 따르며 유지하는 남성이 아닌, 성노동자에게 전가합니다.

 이들의 문제점은 성노동자를 단지 성노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부정하고 배제해도 되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무조건 ‘성매매를 안 하면 된다’며 쉽게 말하고, 현재 성판매를  하는 여성들의 인권 향상, 노동 환경 개선에는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성노동자들이 피해를 본 단편적인 사례를 예로 들며 “이러니까 탈성매매를 해야 한다”는 식으로 타자화를 하지만, 실질적으로 탈성매매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환경 변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순히 성매매 행위를 비난하고 성노동자를 공격하는 데 집중합니다. 처음에 얘기했듯이 이들이 공격하는 성노동 여성은 자신들이 평소 여성주의 운동을 하며 지켜오던 여성의 범주에 속하며, 성노동자의 인권을 깎아내리는 존재는 성구매자, 포주뿐만 아니라 성노동자에게 공격을 일삼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성노동자의 존엄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성노동자가 탈성매매를 선언했을 때만 “보호”받을 수 있는 “진짜 여성”으로 인정하며, 자신들의 미움에서 벗어난 것을 축하하고 환영해줍니다. 이런 선택적 연대는 성노동에 현재 종사하고 있는 여성의 인권을 더욱더 위태롭게 합니다.

 이들은 성매매는 곧 인신매매라는 주장을 한결같이 표하여, 완전한 철폐를 주장합니다. 성매매는 인간이 재화가 되어 판매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인신매매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성매매가 근본적으로 인신매매라는 주장은, 동시에 성착취와도 같다는 주장으로 변합니다. 이에 따라, 어떤 종류의 성노동이든 노동으로서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노동의 경우 사람이 직접 재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여 가치를 발생시켜야 하는데, 성판매는 스스로가 재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같은 이유로 사람이 재화가 되는 인신매매라고 간주하겠지요) 근본적으로 노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이 때문에 성노동론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노동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성매매의 합법 여부, 국가적 규제 모델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노동론에서 주장하는 성노동자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포함한 다양한 노동권 보장의 담론과는 멀어진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얼마 전에 드러난  모 정당의 단체 오픈톡방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요. 정당 관련 단체의 일원이 성노동자에게 성폭력 2차 가해를 저지른 사건에 대해, 당대표가 “우리 정당은 반성매매 입장을 견지하며, 노르딕 모델을 지지한다”는 말만으로 묵살하고 당원들이 이를 납득한 것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성노동자가 주장하는 모든 것을 단순히 성매매의 합법화 싸움, 모델 차이로 인한 입장 분열로 간주하며, 내부 당원이 저지른 폭력적인 언행 또한 단순히 이 입장 분열에 의한 일개 의견 따위로 경시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성매매 합법 여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들의 경우, 애초에 성매매는 국내에서 불법이라며 더 이상의 건설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했습니다. 성매매가 반사회적이라고 낙인이 찍히고 범죄가 된 배경에 창녀혐오가 있음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그저 현상 유지와 함께 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것에만 급급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이들은 성노동자가 적법한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간주했습니다. 성노동자에 대한 성폭력 2차 가해가 쏟아지고, 이를 방관한 것 또한 성노동자는 현행법상 신고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약점을 노린 것이었겠지요.

 몇 번 언급한 단어지만, 이들이 성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관심 없다는 것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바로 “페이강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노동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성매매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을 “페이강간”으로 일축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성노동자와 성구매자 사이에서 일정 선을 합의해 이뤄지는 성적 거래와, 그렇지 못하고 성노동자의 의사에 반해 일어난 성착취 또는 성범죄를 구분 짓지 않고 성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다 성범죄로 간주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성노동자가 쟁취하고자 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어를 남발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성노동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성노동자가 어떠한 권리를 얻고자 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처음에 언급했듯이, 본인들의 인권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하는 자를 배제하고 고립시킬 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반성매매를 외치는 사람들의 경우, 본인들이 “성판매자를 구제해준다”는 시혜적인 태도를 가진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즉 본인들을 “성착취 피해자”를 구하는 “영웅”쯤으로 생각한다는 말인데요. 그래서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은 성노동자와 대화할 때 "내가 구해주겠다는데 너희는 왜 반대해? 너희는 왜 화내?" 하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적으로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발상은 상당히 위험한데, 성노동자를 무조건적인 구제가 필요한 열등한 존재로 만들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창녀혐오로 이어지지요. 즉 무조건적인 ”구제”를 외침으로써 역으로 창녀혐오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누구보다도 창녀와 연대하고 창녀혐오에서 자유로워야 할 사람들이 말입니다.

 성노동론을 주장하는 성노동자에 대해, 이들이 갖는 태도는 빗대어 말하자면 ‘말 안 듣는 사람을 따돌리는 가해자’의 태도와 같습니다.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성노동론을 주장하지 않고 반성매매 진영의 “말만 잘 따라주면 별 얘기를 안 할 텐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며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표하는 이들을 가스라이팅하며 욕설을 마구 퍼붓고 비난합니다. 즉 무조건적인 편 가르기에 집착해서, 본인들 말을 듣지 않으면 배제하는 분리주의의 모습을 보입니다. 마치 TERF가 트랜스여성에게 보이는 태도처럼 말입니다. 노골적으로 성노동자를 공격해서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반성매매 운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건 운동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페미사이드(여성혐오 살인)에 불과할 뿐입니다.

 


 

3.

 저는 성노동자가 여성의 인권을 떨어뜨린다는 그들의 기본적인 전제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상호교차성을 감안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페미니즘은 남성의 억압과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행동을 지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성노동자 여성도 마찬가지로 해당합니다. 성노동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남성이 성노동자 여성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감당하며 돈을 버는 이들이 여성 인권을 떨어뜨리는 존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여성 인권을 떨어뜨린다며 책임을 물어야 할 존재는 성노동자 여성이 아닌, 성구매자에 해당하는 남성, 그리고 성노동자를 나쁘게 생각하는 사회의 남성들입니다. 이 남성들과 동일한 창녀혐오의 프레임에 빠져서 성노동자를 혐오하는 것은, 남성주의적 사고의 틀을 깬다는 페미니즘의 가치에 반하는 일입니다. 즉 성노동자에 대한 공격은 페미니즘을 외치는 그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안티페미니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노동은 정해진 시간 동안의 성행위 자체가 재화가 되고, 이를 통해 상대의 성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가치를 발생시킵니다. 이 때 성노동자는 아무런 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재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합의를 할 수 있고 가치 발생을 위해 행동하는 ‘노동자’가 됩니다. 신체를 온전히 판매하거나 넘기는 것이 아닌, 시간과 행위를 판매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성매매는 인신매매와 일대일로 대응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같은 논리로 성매매가 인신매매임이 성립한다면, 어떻게든 사람을 써서 일해야 하는 모든 노동의 고용은 인신매매가 됩니다. 즉 모든 노동이 인신매매를 수반한다는 말입니다. 노동자에게 시키는 일만 다를 뿐이지, 본질적으로 돈을 주면서 사람을 쓰고 가치를 발생시키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성노동이 노동으로 성립하지 않는다면 성행위가  수단이 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요. 저는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행위를 수단으로 쓰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고려해야 할 건 성행위 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했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행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상대의 건강을 해치거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등 반여성주의적인 섹스를 했을 때이지, 이것이 성행위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결국 성노동이 노동으로서 성립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성노동이 노동으로서 성립하기 때문에, 성산업 내 성착취는 노동에서의 착취 문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성산업 내 성착취는 말 그대로, 성노동에서 착취가 발생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즉 정당한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됩니다. 성노동 환경에서 중요한 노동권에는 다른 노동권과  함께,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겠지요.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은 성산업의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고용주가 바뀌어야 하고 노동 환경에 해당하는 업소가 바뀌어야 하는 문제이지,  성노동 자체가 사라져야 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공장에서 노동 착취가 발생하면 착취한 사장을 벌하고 공장 환경을 개선해야지, 공장을 무조건 닫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으니까요. 오히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공장직보다 더 위태로운 수입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겠지요.

 백 보 양보해서 모든 성매매가 인신매매가 맞다고 가정해도, 반성매매 진영에ㅌ서 성노동자에게 보이는 태도는 잘못되었습니다. 인신매매 피해자를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신매매 피해자가 스스로 인신매매를 당할 법한, 또는 그럴 가능성이 큰 환경을 선택했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고 공격할 권리가 제삼자에게 있지는 않습니다. 그 제삼자가 범죄 피해자와 연대하는 사람일지라도 말입니다(사실 연대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부분에 있어 더욱 주의해야 옳은 것이겠지요). 범죄에 있어 피해자의 탓을 하는 것은 결국 2차 가해이기 때문입니다. 성매매도 마찬가지에 해당합니다. 모든 성매매가 성착취 또는 인신매매라고 해도, “페이강간”이 된다고 해도,  성범죄에 노출된 것에 대해 피해자를 비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하지만 반성매매를 외치는 진영에서는 이를 무시한 채 피해자를 공격하는 경우가 매우많습니다. 단순히  “여성주의자”인 자기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4.

#나는_성노동자를_향한_폭력에_반대합니다

 반성매매 진영이 자신의 태도에 대해 성찰하여 창녀혐오에서 벗어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저는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시혜적으로 굴지 마십시오. 성노동자는 절대로 당신들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닙니다. 누군가를 구제해준다는 생각이 아닌,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람과 함께 환경을 바꾸어 나간다는 생각으로 활동에 임하시길 바랍니다. 연민의 뜻으로 움직이지 말고 연대의 뜻으로 움직이십시오.

 성산업 내 성착취가 발생했을 때 성노동자 탓을 하지 마십시오. 당신들도 잘 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숱한 성범죄 사례에서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이 피해자를 어떻게 죽였는지 당신들도 목격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들이 성노동을 하면서 겪은 피해를 당연히 여기지 마십시오. 성노동자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그런 폭력을 겪은 것이라며 감수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그 모든 행위가 2차 가해입니다. 공격을 멈추고 낙인과 타자화로 성노동자를 내리찍는 당신의 과거 언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십시오. 당신의 언행으로 배제되고, 고립되고, 위협받은 성노동자가 있다면, 이에 대해 어떻게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정의를 실현할지 지금이라도 고민하고, 선언하고, 실천하십시오.

 본인들이 기득권임을 인지하십시오. 현행법상 성노동자는 국가의 적법한 사회 안전망을 보장받기 어려운 약자입니다. 성산업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당신, 빈곤해본 적이 없는 당신은 성노동자보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더 큰 힘을 쥐고 있습니다.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구분짓는 이분법적 여성혐오가 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더욱더 그렇습니다. 당신들이 성노동자에게 저지르는 2차 가해는 다른 권력형 성범죄의 2차 가해, 혹은 위계에 의한 폭력과 다를 바가 없음을 인지하십시오.

 성노동자가 얘기하는 본질에 집중하십시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노동자는 성노동을 하면서 보장되어야 할 노동권에 대해 항상 주장합니다. 권리가 아니라 불법 및 합법 여부, 또는 국가적 규제 모델 등으로 담론을 돌리며 성노동자의 주장을 묵살하지 마십시오. 성노동자의 노동권 보장 보장은 성산업의 철폐와는 별개의 문제이며 병행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회피하지 마십시오. 성매매 시장을 늘리고자 하는 사람이라며 무의미한 비난을 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싸우는 창녀의 인권 역시 보장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싸우는 창녀의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에서는, 당신들의 인권도 보장됩니다. 당신들의 인권을 “챙긴다”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타인을, 그중에서도 성노동자를 절대 공격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유를 든다고 해도 성노동자를 향한 당신들의 혐오와 공격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틀렸기 때문입니다.

 


 

작가 소개글: 안녕하세요. '자당'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트위터 유저입니다. 당사자는 아니지만, 퀴어 인권 및 보편적 인권 관련 트윗을 작성하고 보면서 성노동자들이 수많은 공격을 받는 것을 본 목격자이기도 합니다. 이번 성노동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한 글을 기고해 죄송합니다만, 잘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