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코로나 시대의 성노동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익명 : 어쨌든, 존재하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0. 9. 20. 11:15

어쨌든, 존재하기, 익명

 

어쨌든, 존재하기

익명

 

 고를 수 있는 주제는 세 가지가 있었다. 굳이 이 주제를 고른 이유는, 노동 환경 이야기로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밤도 샐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보다 '성노동자로 살아남는 삶'이라는 문구에 더 마음이 끌렸기 때문이다.

 나는 트위터 조건만남을 시작한 지 1년 9개월쯤 된 성노동자고, 일 년 반 전쯤에 조건만남 하는 법에 대한 장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알고 있는 한에서 지식을 다 털어놓은 글이었지만, 나의 기준과 상황에서 적은 글이라고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꽤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되는 글이라고 말해주었다.

 성노동자 속에서 나뉘는 직종은 내가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다양하다. 그 사람들 모두에게 맞는 글을 적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내가 적은 글을 읽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쓸 만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나 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참고로 조건 글은 화류계 카페와 비공개 장미계에만 올려놓았다. 몇몇 사례를 봐서는, 너무 공개된 장소에 올려 놓지 않는게 좋다고 판단했다. 성노동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글을 내리라고 괴롭히거나, 성노동자 중 주의사항을 아무리 강조해놓아도 말을 잘 안듣는 경우를 봐서 그렇다.

 코로나 사태가 아닐 때 성노동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과 코로나 같은 특이한 상황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결국 비슷하긴 하다. 그래도 일단 어떤 게 더 위험해졌는지 짚어 보겠다. 

 첫 번째로는, 아웃팅 확률이 증가했다. 확진자나 격리대상자가 되면 아웃팅이 될 수 있단 예상을 한 많은 성노동자들이 업종을 바꾸거나 아예 노동을 쉬는 경우까지 생겼다. 코로나가 성노동 반대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는 자조적인 농담이 나올 정도다. 

 두 번째는 수입이 급하락하면서 노동량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평소 하던 업종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상황도 좋지 않다. 일자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잘리거나 뒷방 태워지는 걸 두려워하는 반응을 알아챈 구매자들이 수위를 올리기까지 하고 있다. 많은 업종들이 영업 정지를 당하자 성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었다. 그러다보니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업종에 노동자가 몰리고 구매자들은 평소보다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평소와 같은 노동 강도로는 예전과 같은 수입을 벌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과로를 호소하고 있다. 

 세 번째는 단속이 늘어난 것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다양한 업종에서 단속당했다, 단속 떴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범람하고 있다. 일 년에 단속을 몇 번 할까 말까 한 업종도 국가의 감염병 예방 조치 때문에 자주 단속을 당하게 됐다. 

 늘어난 노동량과 스트레스로 수면 부족을 보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이 글을 처음 적으려고 생각했을 때 적어놓은 메모에도 ‘정신 건강!! 수면!!’ 이런 말이 뒤덮여 있었는데, 요 며칠 사이 다시 확진자가 급증하는 것을 보고 다시금 깨달았다. 정신 건강과 수면이 최고다.

 정신 건강이 좋아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증상에 맞는 정신과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것이다. 정신과 약은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있는 마법의 약은 아니다. 과다복용시 부작용도 크다. 남에게 함부로 권하기에는 너무 위험부담이 크다. 약에 익숙해지는 데에만 이삼 주가 걸릴 수 있고, 그동안은 수면도 급증하는 데다가 무엇보다 술을 섭취할 수 없다.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성노동자에게 권하기엔 너무 빡세다. 복용하는 동안 자주 멍해질 수 있으며  기억력이 낮아질 수 있고 살이 찌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제정신으로 견디는 게 너무 힘들다면 안정제 종류로 처방받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과다복용으로 상태가 더 안 좋아지는 일이 흔해서 자제할 자신이 없다면 힘들 것이다. 그래도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우울증 증상이 있다면,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장미계, 화류계 커뮤니티에서 서로 힘든 일을 털어놓고 격려를 주고받는 것도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 익명성이 강하다 보니 분쟁도 많고, 트리거 전시가 흔해서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비공개 장미계의 경우엔 상대 계정의 성향을 훑어보고 자신과 맞는 사람과 교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

 수면 부족은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직방으로 꽂는 무서운 존재다. 안 그래도 수입이 줄어들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발 꼭 한번 청소 서비스를 받아보길 권한다. 거주 환경이 청결해지고, 잡다한 가사노동이 금전으로 해결되면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사적인 시간도 크게 늘어난다. 그리고 제발 잠을 자자.

 적고 나니 너무 짧아진 것 같은데 생활비 줄이기나 술 줄이기 같은 이야기를 해도 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면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단은 쾌적한 환경, 안락한 수면, 현 상황에 대한 속상함 토로 등으로 최선을 다해 정신 건강을 유지, 보수하는 것이 최선이다.

 성노동자가 성노동을 하는 데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결국은 살기 위해서다.

 우리는 어디에나 있을 것이고 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너무 막막한 상황에서는  잊지 말고 꼭 주변 성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누군가는 괜찮은 의견을 내준다. 잊지 말아달라. 특히 법적, 금전적, 건강 문제 등이 겹쳤을 때는 필히.

 


 

작가 소개글 : 성노동을 시작한 지 2년 가까이 된 트위터 갠조녀 입니다. 존재하는 다른 성노동자들과 스스로를 응원합니다.

 

성노동 은어 풀이

더보기

 

1. 장미계 : 트위터에서 익명으로 성노동자 당사자들끼리 교류하는 계정을 뜻하며, 장미 이모티콘은 보통 성노동자 당사자들이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다. 트위터 성노동자 당사자들은 해당 표식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파악하고, 안전한 커뮤니티를 만들어왔다. 2017년도 여름, 트위터 유저 밀사님이 한국 성노동자 상징으로 장미 이모티콘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여, 성노동자 당사자들이 장미 이모티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덧붙이자면 밀사님이 장미를 제안한 이유 중 첫 번째는 세계 성노동자의 자긍심을 상징하는 빨간 우산과 같은 색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로 장미는 여성 노동자 운동의 상징으로, 1908년 3월 8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던 미국 여성 섬유 노동자 1만 5천여 명이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여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라고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지위 향상, 참정권 등을 요구한 데서 유래된 것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성노동자 간 연대와 자긍심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장미와 우산이 함께 쓰이는 경우도 역시 트위터 유저 밀사님의 제안으로, 2020년 6월 5일 성노동자 혐오에 반대하고, 성노동자에게 연대한다는 뜻을 담고있다. 성노동자 혐오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자신의 닉네임 옆에 장미와 우산을 달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 뒷방을 타다, 쓰레기를 타다 : 영업 끝날 시간쯤 겨우 방 한개를 들어가는 경우를 말하는데, 보통 영업이 끝나가는 시간에 손님을 처음 맞이하는 것을 뜻한다.

3. 갠조 : 개인 조건만남의 줄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