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19 성노동 프로젝트 제 1회 성노동 글쓰기

[2019 성노동 프로젝트 제 1회] 다움 : 보다 나은 대화를 위한 제언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19. 9. 11. 17:00

보다 나은 대화를 위한 제언

다움

 

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정확히는 페미니즘의 수혜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에 가까울 것이다. ‘여성주의’를 막 접하게 된 시기의 고민은 아니고, 대답 역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페미니즘에서 직간접적인 이득을 얻는 사람을 굳이 규정할 필요가 없다.

 

나와 너의 경계를 명확히 정해 두고, 저 너머의 사람들의 삶에서는 열심히 고개를 돌리며 ‘나와 다른 너’의 일방적 희생을 바라며, 본인들의 생각에 일방적으로 따르기만을 강요하는 행태를 자주 목격한다. 자발과 비자발을 애써 가르거나(혹자는 전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성노동이 게으름의 산물이라고 가스라이팅 하거나, 성노동자에게 낙인을 씌우며 성노동을 노동이 아닌 착취로 프레이밍 한다. 하지만 이들의 논리는 몇 가지 복잡하지 않은 논증들만으로도 쉽게 반박된다.

 

첫째로, 강제적 매춘과 자발적 매춘의 구분은 단순한 작업일 수 없다. 과연 누가 무엇을 근거로 한 사람의 삶에 낙인을 찍으려 들 수 있는가? 그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그것이 강제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구분하려 들지 않는다. 어떠한 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 자체로 처벌을 받거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인 것처럼 여겨지는 직종은 없다.

 

또한 이는 성노동자의 피해자성만을 강조한다. 직업으로의 성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보편적인, 즉 정상성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은 외부 요인이 없는 한 그 일을 선택할 리 없다거나, 더 나은 조건의 일이 있다면 탈성노동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성노동자를 타자화하며, 외부의 시선으로 성노동자를 ‘구원해야 한다’ 고 생각하게 만든다.

 

둘째로, 성노동 업계에 종사한다는 사실만으로 뭇 여성들의 인권을 동시에 하락시키는 존재인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성노동을 그저 ‘몸 파는 행위’ 로만 인식하는 것은 남성 중심적인 시각에 근거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의 존재에 도움을 얻는 사람들에게 조건을 붙이는 행위이다. 성을 사는 사람인 남성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와 같이 성을 판매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일방적인 비난은 성노동자들에게 낙인처럼 작용해 왔다. 이러한 낙인은 성을 파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이분화하는 시각을 제공하여 성노동자에 대한 또 다른 대상화에 기여해 왔다.

 

이와 같이,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단순한 착취로 규명하는 것은 성노동 현장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기 어렵다. 성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면 보다 세련된 논리를 가져와야 할 것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면, 그들이 원치 않는 행위에 대해 거부권을 실천할 수 없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인 젠더 위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며, 그들의 보편적인 안전에 대해 묻고 싶다면 양질의 정보가 제공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