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코로나 시대의 성노동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이오 : 성노동자에겐 없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0. 9. 27. 16:45

성노동자에겐 없다, 이오

 

성노동자에겐 없다

이오

 

 2년 동안 잘 살고 있던 집주인과 올해부터 자꾸 사소한 일로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샀더니 집 앞 어떤 공간에도 남은 공간이 없다고, 왜 자기한테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자전거를 사왔냐는 얘기도 듣고, 세탁기가 고장나서 고칠 때에는 ‘왜 말도 안 하고 혼자서 세탁기를 고치느냐, 미리 말을 해야지 우리도 대비를 할 거 아니냐, 그 집에서 전화 오면 이제는 뭘 고쳐달라고 할까 싶어서 겁부터 난다’는 타박도 들었다. 우리집은 참 말 잘 듣는 세입자였다. 자전거도 그냥 세워 둔 게 아니라 어디에 세워 둘지 집주인과 조율하기 위해 전화를 한 거였고, 쓰레기 한번 무단으로 투기한 적 없고, 내달라는 공과금도 밀리지 않고 잘 내고, 다른 집에서 웃고 떠들고 난리를 쳐도 시끄럽게 한 적 없는 그런 모범 세입자.

 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집에 내 돈 주고 살면서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 이제 애인과 둘이 살게 되었으니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늘 했지만, 언젠가는 가야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이제는 집을 옮길 때가 됐다. 여러모로.

 전세 대출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참 다양한 대출이 있었고, 그중에는 금리가 3%가 안 되는 제법 낮은 이자의 대출도 많았다. 현재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어 나는 ‘중소기업청년 전세자금대출’이라는 상품을 신청할 수 있었다. 이율도 1.2%. 평생에 딱 한번 신청할 수 있고 2년마다 소득기준과 중소기업 재직 증명을 거쳐야 하지만, 1.2%라는 금리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대출을 알아보면서 나에게 번뜩 스쳐지나간 생각은, 이거였다.

 

‘어, 성노동자는 대출 못 받겠네?’

 

 성노동자에겐 복지가 없다. 성노동자는 국가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복지를 받을 수 없다. 우선 앞서 말했던 저금리 대출은 당연히 받을 수 없다. 낮은 이자의 대출을 받기 위해선 재직 증명이 필수인데, 국가가 불법으로 규정하는 성노동자의 일터에서 어떻게 재직 증명을 해줄 것인가. 혹시 급전이 필요하거나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 전세 자금을 마련하고자 해도, 성노동자는 국가가 운영하는 대출이나 제1금융권의 대출은 절대 받을 수 없다. 결국 ‘○○캐피탈’, ‘○○론’ 등의 제3금융권 내지는 사채 시장에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고용노동부 산하의 근로복지넷에서 제공하는 ‘근로자 휴양콘도’ 제도는 사전 신청을 통해 제휴된 콘도를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용대상에 ‘모든 근로자(특수형태근로자 포함)’라고 나와 있지만 성노동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근로자의 복리후생을 위해 개발된 EAP(근로자지원프로그램)의 경우 최근에는 기업에서도 자체적으로 예산을 마련해서 진행하고 있다. 직무 또는 직장 내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번아웃 등의 다양한 이유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심리상담을 지원해주는 서비스인데, 이 또한 성노동자는 받을 수 없다. 앞서 말한 기본적인 복지를 받을 수 없거니와 다양한 고통에 가장 크게 노출된 노동자임에도.

 그뿐인가? 노동자는 대부분 의무로 가입하게 돼 있는 4대 보험도 성노동자는 가입할 수 없다. 4대 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것은 유사시에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성노동자는 4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보험도 직장이 아닌 지역가입자 자격으로 가입해야 한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사측과 공동 부담하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보험료를 혼자 부담해야 하므로 보험료가 훨씬 비싸진다. 많은 성노동자가 일을 하면서 사고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사고를 당하더라도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산업재해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만약 사측으로부터 일방적인 해고를 당해도 해고예고수당도 받을 수 없다. 자발적 퇴사가 아니면 다른 노동자들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다음 직장을 구할 시간을 벌 수 있지만, 성노동자는 당장 먹고살 길이 막혀버린다. 이는 성노동에서 탈출하길 원하는 성노동자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결국 성노동자에겐 노동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는 성노동을 노동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노동자는 국가에게 참 껄끄러운 존재다. 함부로 없다고 할 수도 없고 관리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노동을 인정해줄 수도 없는 그런 존재. 없애야 하기에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치워버리고 싶은 존재. 많은 성노동자들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성노동에 유입되지만, 성노동 시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돈을 쉽사리 모으지 못하거나 오히려 빚을 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큰돈을 마련하기 위해 일수나 월변 (월에 한번 변제하는 대출)을 소개받아 대출을 받게 되면, 그때부터 살인적인 고리 때문에 이자만 갚는 데만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게 된다. 그러다 아프거나 개인사정이 있어 일을 며칠만 못하게 돼도 이자가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것이다. 빚이 그렇게 불어나고 불어나 나중에는 그 빚 때문에 성노동을 자발적으로 그만두지 못하게 된다. 

 또한 성노동자는 특정한 겉모습을 갖추도록 꾸밈노동을 강요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헤메렌’이라는 걸 거의 강제받는다. ‘헤메렌’이란 헤어, 메이크업, 렌탈의 줄임말로, 출근할 때마다 돈을 주고 머리 관리와 메이크업을 받아야 하고, 홀복을 빌려주는 곳에서 홀복을 빌려야 한다. ‘헤메렌’을 갖추지 않으면 일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지만, 이 과정에서 돈을 많이 쓰게 된다. 초이스를 받기 위해 동료들보다 더 예뻐져야 한다는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또 ‘하이 업소*(텐프로, 쩜오, 텐카페 등. 비 하이 업소에 비해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음)’ 실장들한테서 ‘너 정도면 조금 더 예뻐지면 들어올 수 있을 거다’라는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될 때, 혹은 그 제의를 받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기도 한다. 결국 돈을 벌기 위해 성산업에 유입된 노동자들이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못 벌거나, 오히려 일을 하면 할수록 빚이 늘어가는 악순환이 여전한 상황이다.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했다. 돈이 없는 사람들,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없어진 사람들, 극빈의 궁지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국가가 안전한 사회구조를 만들고 적절한 복지제도를 만들어 이들이 다양한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지금의 성노동 환경을 만들게 된 데에는 국가의 책임이 매우 크다(물론 이외에도 국가와 권력을 쥔 자들이 지금의 성노동 환경에 기여한 바는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많지만). 국가와 지역사회, 시민단체가 다양하게 성노동자 구제책을 펼치지만, 실상은 허울뿐인 것들이 매우 많다. 실제로 이들의 정책은 성노동자가 현재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아닌, ‘우리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계속 성노동에 빠져 있는 건 성노동자들의 탓이에요’라고 말하고 싶어서 존재하는 생색내기용 정책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국가가 그토록 성노동을 없애고 싶고 성노동자를 성노동으로부터 빼내고 싶다면 제대로 된 지원정책을 펼쳐야 한다. 성노동자가 성노동을 그만두고 싶을 때 국가가 나서서 이들의 생존을 책임지고 안정된 직장을 찾을 수 있게 직업교육도 제공해야 한다. 지금 언급한 것들 외에도 성노동자들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개발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 정책이 있을 것이다.

 성'노동'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모든 성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성노동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적어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두는 알고 있을 것이다(‘자발적’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많은 맥락도 꾸준히 논의가 되고 있긴 하지만). 다만, 힘든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하나밖에 없는 것과 둘 이상이 있는 것은 매우 큰 차이를 지닌다. 성노동자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서 성노동자를 책임지는 사회를 만들어가자. 그 길에 나도 미약하나마 함께 하고 싶다.

 


 

작가 소개글 : 퀴어판에서 5년간 활동 후 현재는 휴식중인 활동가입니다. 퀴어-노동 이슈에 평상시에 관심이 많던 중 차차 활동가님 중 한 분의 제의를 받아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성노동 은어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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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업소 : '하이업소'는 룸보다 티씨가 높고, 하루 수입이 더 높은 곳이다. 다만 모든 여성들이 하이업소에서 일할 수는 없고, 사이즈가 좋은 여성만 하이에서 일할 수 있다. 하이 업소는 다른 룸과는 다르게 따블, 따따블 등의 문화가 있으며, 이는 한 번에 한 테이블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테이블을 한꺼번에 보는, 한마디로 손님 여러 명을 돌아가면서 서비스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낱개로 방을 보는 경우를 알방을 본다고 한다.

출처: 페미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