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죄와 벌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베라 : 140자를 초과하였습니다

규제된 닉네임 2026. 6. 15. 06:41

 

140자를 초과하였습니다

베라

*이 글은 자살, 임신과 유산, 성폭력, 사이버불링에 관련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를 나타내는 단어로는 뭐가 있을까? 나는 베라라는 닉네임을 쓴다. 현재 21살이다. 책 읽는 것과 게임하기를 좋아한다. 가끔 지뢰계 옷을 입는다. 채식을 한다. 여자이고, 퀴어이다. 기초수급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노동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노동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적인 직업으로도 생각했다. 청소년이 알바를 하려면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성노동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와 시간을 잠깐만 보내면 '일반적'인 노동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엇보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원하던 내게 완벽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결국 나는 청소년기에 성노동을 하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우리 가부장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처녀성'*1 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고, 최소한 첫 경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새로 생긴 연인과 관계를 맺었다. 그와는 멀지 않아 헤어졌다. 이제 이른바 '해방' 이 된 상태의 나는 원래보다 더더욱 성욕이 강해졌다. (나는 하이퍼섹슈얼*2이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게 다음 연인이 생기기를 기다리기에는 심하게 인내심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과 원나잇을 하고 다녔다. 하루건너 하루 그렇게 한 달 정도 섹스를 하고 다녔다. 피임약을 먹고, 산부인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원나잇 중 만나게 된 섹스 파트너가 나에게 랜덤채팅의 존재를 알려줬다. (서로 상대의 성적 생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관계였다) 앱을 깔자마자 다양한 나이대의 남성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들은 여러 은어들을 섞어가며 말했다. 그 은어들을 익히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아직도 모르는 단어가 많다.

그렇게 나는 2025년 11월 22일 성노동을 시작했다. 바로 두 명의 남성과 만나 섹스를 하고 돈을 받았다. 그러고 나니 지쳤다.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그래서 탕짬면을 시켜 먹었고, 그 경험을 트윗으로 썼다. (나는 그 이후에 농담으로 탕짬면을 창녀정식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이버불링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늘 그랬던 것처럼 성노동자 혐오를 받았다. '역시 수능이 끝나니까 포주들이 이런다' '쿠팡이나 뛰어라' '성착취지 무슨 성노동이냐' '경찰에 신고하겠다' '정신과나 가라' 이 글을 읽을 정도로 성노동운동에 관심이 있는 분이시라면 다 알만한 그런 말들. 그런데 내가 굽히지 않고 견뎌내자, 불링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이기적인 포주가 아니라 성매매를 하도록 사회운동계 '동지들' 에게 세뇌당한 안타까운 피해자가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나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너무 불쌍하다, 공부해서 괜찮은 직업 얻어라, 시위 다니지 말고 일해라(나는 사이버불링을 당하면서도 집회에 다녔다), 동지들이 잘못했다, 이런 말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이 변화가 매우 불쾌했다. 내게 동지들은 지금까지 성노동(그리고 그냥 노동도)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정말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동지들이 성매매를 권유했다니 나를 그렇게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건가? 내가 성노동에게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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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알바를 한 곳은 파리바게트였다. 내 몸은 의자도 없이 계속 서서 일하는 높은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저혈당이 왔다. 거기에 더해 직원들의 평가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나는 집에 가서 며칠 동안 방에 처박혀 울기만 했다. 그래도 유니폼은 반납하라는 문자를 받고 일한 만큼 급여를 받기는 했다.

그 트라우마로 한동안 알바를 구하지 못했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죽었다. 다시 알바를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겼을 뿐이었다. 이후 알바 구하기를 그만뒀다. 나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나약하다. 학력이라고는 고등학교 검정고시가 끝이다. 이 학력으로 구할 수 있는 알바는 나의 나약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이런 일련의 이유로 나는 앞으로도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럴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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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5년 7월 16일 탈가정했다. 그 집안 사람들과 더 이상 함께 지낼 수가 없었다. 지갑 하나에 전 재산인 현금 20만 원을 넣고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나의 삶은 안정적이었다. 비를 막아줄 지붕이 있는 집에서 지냈고, 먹을 것들이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살아가는 것이 아닌 "생존"해 가는 것 같았다. 내게는 폰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 외의 여가를 즐길 돈이 없었다. 남의 집에서, 남이 사주는 음식을 먹고, 남의 돈으로 돌아다니고...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마음을 바꾼다면 내 인생은 망가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출 이후로 기초수급비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사이버불링을 견디며 발만 동동 구르던 때 나에게 또 다른 일이 일어났다.

생리 두 번째 날이었다. 늘 그렇듯이 생리통이 가장 강했고 생리혈도 가장 많았다. 하지만 갈 곳이 있었던 나는 진통제를 먹고 밖으로 나섰다.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배가 심각하게 아파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질에서 무언가 빠져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의 굴 같은 생리혈이 아닌 큰 무언가가 느껴져서 목적지인 역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확인했다.

생리대에는 피로 뒤덮인 작은 흰색 덩어리가 있었다.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그것의 사진을 찍고 바로 근처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나는 그 덩어리가 무엇인지 보자마자 알았다. 아니길 바라며 걸어가는 길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 작은 덩어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다. 나는 유산을 경험했다.

의사 선생님은 큰 문제 없이 그대로 빠져나와서 수술은 필요 없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생리까지 피임약을 먹지 말고 관계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정신이 어디로 빠져나간 것 같이 느껴졌다. 어제부터 나오던 피는 생리혈이 아니라 유산을 알리는 피였다. 그 덩어리는 크기를 보아 몇 주는 된 것 같았다. 성노동을 하기 전의 원나잇 상대가 그 아이의 아빠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유도 모르게 그저 울고만 싶었다. 머릿속에서 그 아이의 모습을 지울 수 없었다.

일정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거기서 계속 생각했다. 생명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 덩어리는 지하철 화장실 위생용품 함에 버려졌다. 내가 술을 처마시지 않았다면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었을까? 피임약 때문인가?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 아이를 낳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눈물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할 즈음이 되어서 내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의 이름을 첫 번째라는 뜻으로 하나라고 지어줬다. 케이크를 사서 촛불 하나를 키고 나름의 장례를 치러줬다.

나는 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스트레스 속에서 ‘그럼 임산부석에 앉았었어야 하는데’ 라는 농담이 떠올랐다. 나는 유산을 통해 나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임신 중지를 할지, 출산을 할지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힘든 거라고 하셨고, 나는 그 말에 크게 동의했다.

시간이 지나 출혈이 멈추자마자 나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무시하고 바로 섹스를 했다. 피임약은 먹지 않았다.

이후 좀 더 믿을만한 산부인과에 들러서 상담을 했다. 이곳의 선생님은 왜 처음 갔던 산부인과의 선생님이 피임약을 먹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다른 임신을 막기 위해 유산/임신중지 뒤에도 피임약은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응급피임약을 먹고 이후에 피임약을 재개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응급피임약은 비보험이라 값이 꽤 나갔지만, 나 대신 의료비용을 부담해 줄 복지센터 선생님이 계셨기에 괜찮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트위터에 곧바로 의료계를 욕하는 글을 썼다.

와중에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이미 한 번 만난 손님 ― 꽤 먼 곳에 살았지만 택시비까지 부담해 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을 다시 만나러 갔다.

여기서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BDSM 스펙트럼 중 마조히스트이자 섭이다. 쉽게 말해 신체적 고통을 즐기고 관계를 주도하는 것보다 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쪽이다. 나는 손님들에게 이 사실을 편하게 말하곤 한다. BDSM 관계를 맺으려면 사전에 필요한 것(세이프 워드, 호/불호 조율 등)이 많지만, 하룻밤 섹스하고 다시는 안 볼 사람들과 그런 준비를 하기에는 그들은 물론 나에게도 귀찮은 일이어서 그냥 스킵한다. 사실 그들의 대부분은 제대로 된 사디스트/돔이라기보다는 조금 강압적인 섹스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이 손님에게는 이미 내가 강압적으로 당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 상태였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별일이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은 정말 불쾌한 일이었다. 먼저, 나를 너무 강하게 때렸다. 고통을 즐긴다면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쾌감이 불쾌감이 되는 선이 있다. 딱 소리가 날 정도로만, 그닥 크게 힘을 주지 않은 타격을 받는 게 그 선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맞는 건 진심으로 아팠다. 또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은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등의 언어적 폭력이었다. (아니, 창녀에게 다른 사람과 섹스를 했냐고 물어보는 건 대체 뭐냐?) 굉장히 기분이 나빠졌다. 이번만 버티고 차단해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그가 질내사정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나는 모든 손님에게 콘돔 착용을 요구했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조절을 잘한다" 며 착용을 하지 않았었다. 나는 안 된다고 울며 빌었지만 그 사람은 관계를 계속했다. 내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아무 반응도 없자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걸 깨달았는지 관계를 멈췄다. 나는 옷을 입으며 돈은 상관없으니 지금 가겠다고 했다. 그는 돈은 주겠다고, 그리고 좋아서 우는 줄 알았다며,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며 변명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서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돌아가는 택시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게 강간인가? 어디에 말할 순 있을까? 억지로 섹스를 한 게 아닌데 강간이라고 할 수 있나? 어차피 경찰에 신고도 못 하는데 무슨 상관일까? 정답을 찾지 못하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한 사람 더 만나고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그럴 힘이 없었다.

이 사실을 어디에든 말하고 싶었지만, 트위터에 올리면 분명 "그러니까 성매매를 하면 안되는 거임" 같은 말을 들을 것이 분명해서 뒷계에만 올리고 말았다.

이 모든 일들이 한 번에 몰아치며 그저 울고만 싶었지만,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버텨냈다.

시간은 지나 12월 중후반이 되었다. 당시 나는 성노동이 아닌 다른 주제로 사이버불링을 당하고 있었다. 밖에서 북토크를 들으러 와서 앉고 잠깐 트위터를 켰는데, 다음과 같은 인용을 받았다.

 

베라님, 당신께서 성노동으로 돈을 벌었다는 트윗을 올리셨을 때, 주변의 동지들이 죄책감에 괴로워했다는 걸 아시나요? 

제 한 몸 건사하기 아슬아슬한 수입을 가진 저도, 기초수급이 나오기까지 몇 개월간이라면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며 힘들어했습니다.

성노동으로 인해 성병에 걸리고, 사후피임약을 처방받았다는 이야기를 본 이후에는 더더욱 괴로웠습니다. 

베라님, 제발 비건강 성노동 전시를 그만두어주십시오. 광장에서 당신을 만난 동지들은 당신의 건강과 안녕에 진심으로 염려하고 있습니다. 동지들에게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전가하는 행위를 그만두어주세요.

정말로 그것이 정당하고 떳떳하여 하시는 성노동이라면, 그로 인해 병에 걸리고 사후 피임약을 먹는 이야기까지 전시하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다른 노동도 노동자가 다칠 수 있다는 반박은 받지 않겠습니다. 사후피임/낙태 등을 고려해야 하는 "다른 노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노동으로 인해 얻은 피해를 전시하며 성노동이 자의로 인한 것이고 떳떳하고 자랑스럽다고 하셨지요. 저는 이것이 자해를 전시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것을 전시하는 행위가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이고 유해한지 모르실까요 

또한, 성노동을 통해 탈세를 하며 기초수급을 받고 계시는 것으로 압니다. 이 나라의 복지제도를 수혜받으시며 다른 시민들에게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기초수급자제도에 문제가 많음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탈세행위를 하며 복지혜택을 누리면서 국가 권력이 부당하다고 말하시는 것은 부끄럽지 않으신지 묻고 싶습니다.

베라 님을 소중히 여기는 동지들이 많습니다. 베라 님도 스스로를 소중히 여겨주시길 바랍니다. 정신과 내원은 잘하고 계시는지요. 술과 담배에 의존해서 현재를 버티시기보다는, 전문성 있는 의사에게 올바른 도움을 요청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저는 탄핵광장 시설부터 동지들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스스로 돈을 벌지 못하고 빌붙기만 한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성노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저는 이 죄책감에서 드디어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혼자서, 자랑스럽게 일한다고 말할 수 있었죠. 금전과 관련된 가정사로 트라우마도 있어서 더욱더 후련했습니다.

저는 동지들에게 더 도움을 받고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입니다. 근데 저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죄책감으로 고통스럽다는 말은 대체 무엇인가요? 제가 원하지도 않는 도움을 주지 못해 괴로우시다는 건가요? 혹시 광장에서 외친 "시혜 아닌 연대" 를 잊어버리신 건가요? 저는 지금도 사실 노동할 수 있는데 기초생활수급을 받는건 아닐까라는 의심에 시달립니다. 수입이 안정된다면 자격을 포기할 예정입니다.

저는 제 일상 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왜 이것이 "자해 전시" 가 되는걸까요? 혹시 다른 노동을 하는 동지가 다리가 아프다고 하거나, 눈이 아프다고 하면 그것도 자해 전시이며 당장 직종을 바꾸라고 하실 건가요?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 고통을 혼자 참기를 원하시나요?

저를 도와드리고 싶다고 하면서 탈세 이야기를 굳이 왜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세상에서 복지를 받는 모든 사람은 사기꾼입니다.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함을 거짓말까지 해가며 빌어야 그제서야 돈을 줍니다. 제가 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가면서 가출하고 복지시스템에 적응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저를 모욕하시나요? 그러면 아무런 도움도 받지 말고 그냥 죽으라는 말씀이신가요? 왜 제가 지금 정신과에 다니면서 상담을 받지 않고 있다고 단정하시나요? 그러면서도 죽고 싶은 제 마음은 모르시나요? 성노동이 그 죽고 싶음을 덜어주는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모르시나요.

길게 이야기해 주셔서 저도 길게 답해봅니다.

그러자 타임라인에서 - 특히 '깃발계' 라 불리는 집단 안에서 - 나를 비난하는 사이버불링이 시작되었다.

‘누가 하지 말래? 전시하지 말라고

눈 앞 에 서 치 워

이 6글자가 그렇게 어려움?’

‘제발 그 능력을 더 잘 쓸 수 있게 방통대라던가 사이버대학이라도 말한거에요 대학에 소속되는 게 싫으면 ebs에서 강의를 듣거나 유튜브에서 철학을 보거나 세계사를 듣거나 진짜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까 죽지 말고 재능 살려요 오지랖 부리는 거 아는데 너무 속상해서 그래요’

‘그럼 저분이 자살을 암시하면서 전방위 협박하신 건 사이버 불링이 아니고요?’

‘아니 글쎄 사과는 제가 받아야 할 거 같다니까요’

‘성노동자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노동해야 한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그 ‘노동’ 에 성노동은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선생님의 성노동과정에서 안도감을 느끼신 건… 정말 죄송하지만 큰 불안을 해결함으로 인한 잠시간의 안도감으로 추측됩니다. 성노동과정에서 더더욱 큰 정신병에 올 것 같으니… 제발 아르바이트 등의 일을 어떻게든 시작하세요… 수급자들은 전부 사기꾼이라고 하셨는데 그건 아무리 비유라고 해도 수급자분들에게 굉장히 무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주장과 제 주장이 다르다고 상처받았다고 하시는 건 그냥 선생님 본인의 기분 상해죄가 아닌지 말씀드리고 싶네요.’

‘읽는 내가 기분이 나쁘다! 사이버불링이다! < 지랄깝까지마시길…’

‘본인의 선택? 뭐 알겠어.

본인이 선택한 걸 뭐 어쩌겠어.

근데 다른 사람한테도 인정받고 싶다고 본인의 선택이 남에게도 이해될 거라고 생각하지를 말고 바라지도 말길 바람.

그래… 자기가 제일 똑똑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은 너무 멍청해 보이고 꼰대같고 막 그러지

왜 이렇게 쉬운 거 하나 이해를 못 하나 싶고 답답하지’

‘그리고 사과를 바라신다며 자살을 암시하시는 행위 정말 비건강하시고 남한테 협박하는 꼴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번에 “괜히 공트로 빙빙 돌면서 주변 사람들 의아하게 만들지 말고 직접 가서 말하라” 라는 트윗을 보고 직접 가서 말한 겁니다

맘에 안드시면 뭐… 님 맘이죠 알아서 하세요

굳이 한 줄로 줄이면 트위터에 헛소리 그만 써라 주변 사람 피곤하다. 에 그치는 문제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어이없는 말은 "모든 수급자가 사기꾼이라는 말은 수급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였다. 이 말을 하는 그 누구도 수급자가 아니었다. "내게 수급자 친구가 있다" 라며 "나한테 게이 친구가 있는데" 를 시전하신 분은 계셨다. 오히려 수급자인 한 동지는 디엠으로 와 공감과 연대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전시' 라는 말이 정말 너무 웃겼다. 나는 성병과 피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여성들이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함으로써 페미니스트적 실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섹스를 하는 모든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를 "성노동이라는 자해 전시" 로 라벨링 한 것이다.

게다가 나를 걱정한다면서 동시에 수급을 받으며 성노동을 하는 행위는 “탈세”라고 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성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성노동자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낼 방법이 없다. 물론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내는 것은 같지만 소득으로는 세금이 나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수급 제도는 일정 금액 이상의 소득이 있으면 수급자 자격을 박탈하는 식으로 작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려면 부정수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당당하게 그들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날의 나는 당장 밖으로 나가 뛰어내릴 곳을 찾았다. 다행히 그러지 않고 다른 동지에게 말해 위로를 받아 일단 진정하긴 했다. 하지만 사이버불링은 며칠간 계속되었고, 나는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저들이 잘못했음을 내가 죽어야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나 싶었다. 그동안 옥상에 몇 번을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죽을 곳을 찾으러 강가로도 걸어갔다. 집 앞에 있는 강이 너무 얕아서 포기하고 돌아갔지만.

그리고 지금이 됐다. 나는 아직도 그 누구한테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그 트라우마로부터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약 19년의 내 인생을 트윗 한두 개로 전부 파악한 것처럼 굴었는가? 140자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 길고 긴 글의 모든 글자를 새겨들었다고 해도 내 인생이라는 책의 한쪽을 겨우 알게 됐을 뿐이다. 

당신들은 외모가 안되어서, 화장을 못 해서, 예쁜 옷이 없어서, 제시간에 자고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출근이라는 것에 스트레스받기 싫어서 유흥업소에 간 게 아니라 조건만남을 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3 산부인과에 가서 마지막 성관계가 오늘이었다고 말하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당신들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내 인생을 전부 헤아릴 수 없다.


 

작가의 말: 성노동자가 된 이후에야 성노동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 가슴을 울리는 글들이 참 많아서 자주 들려 읽고는 했는데요, 참가할 생각은 하지 못하다 이번에 다시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글에서는 지금까지 다른 곳에서는 비난받을까 봐 하지 못했던, 성노동 프로젝트에서만 할 수 있는 말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성노동자라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억압을, 그것으로 인한 슬픔을, 분노를, 그리고 그것마저 분출하지 못해 답답한 마음을 날것으로 드러내려 했어요.

성노동자의 이야기는 늘 '음지'에 있어야 한다며 쉬쉬되곤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제 글이 조용히 묻혀 지나가길 바라지 않습니다. 독자의 일상을 휩쓰는 태풍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누군가를 화나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성노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만이 돌을 던지라" (요한복음서 8:7.)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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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녀성 : 굉장히 구시대적이고 반페미니즘적인 개념이지만,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단어라 생각해서 사용했음을 밝힌다. 개념이 고안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러 방식의 섹스(오럴, 항문, 핑거링 등)나 자위 등까지 처녀성에 포함되어야 할지 등의 논의가 일어났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처녀성은 "(상대방의 젠더와 그 방식에 상관없이)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와 섹스를 하였는가의 유무" 를 말한다.

2) 하이퍼섹슈얼 : 성적인 생각이 개인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한 사람을 나타내는 단어로, 정신질환으로 분류된다.

3) 유흥업소와 조건만남 : 유흥업소란 성노동이라고 하면 주로 떠올리고는 하는 형태를 말한다. 홀복을 입고 아저씨들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하는 노래방/유흥주점 일이 가장 흔하게 알려져있는듯 하지만, 키스방, 오피, 휴게텔 등 그 종류는 다양하다.

유흥업소는 ‘일반적인’ 직장과 상당히 비슷하다. (성 '노동', 기억하는가?) 거기서 일하려면 면접을 봐야 하고, 합격하면 출근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회적인 여성성을 따라 ‘아름다워’ 보이는 외모를 갖춰야 한다. 이게 바로 내가 조건만남을 하는 이유이다.

조건만남이란 트위터나 랜덤채팅을 통해 개개인과 직접 만나서 모텔 등에서 성관계를 이루는 형식의 성노동을 말한다. 유흥업소와 달리 입문이 상당히 쉽다. 일하고 싶은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손님도 직접 고를 수 있다. 성구매를 자주 하는 한 손님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쌩얼에 츄리닝을 입고 나오는 성판매자가 많다고 하며 나도 가끔 귀찮을 때는 그렇게 나서곤 한다. 

‘이 경우에 성매매는 포주를 통하지 않으며 구매자가 낸 돈을 판매자가 그대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매개자가 없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시에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단점이 있다.’ (페미위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비정규직 프리랜서 플랫폼 (성)노동자로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