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코로나 시대의 성노동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유하 : 성노동자의 낙태와 재생산권을 생각하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0. 9. 29. 15:02

성노동자의 낙태와 재생산권을 생각하기, 유하

 

성노동자의 낙태와 재생산권을 생각하기

유하





 한국에서 임신 중절권을 위한 싸움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2016년 검은 시위, 2018년 광화문 시위, 2019년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판결에 이르는 변화는 급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실상 낙태를 둘러싼 투쟁은 2016년 이전까지 큰 흐름 속에서 생존권을 호소하는 긴 시간을 지나왔다. 기성세대 페미니스트는 수많은 반동을 마주하며 정치화 작업을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들어 온라인으로 결집한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임신 중절에 대한 최대한의 권리를 상상하고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적극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여성주의 운동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뤄냈으며 앞으로의 과제들을 안고 있다.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의 과제

 

 임신 중절권을 포괄적인 재생산권과 연결 지어 정치화하는 작업은 헌법재판소 판결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1. 법 개정에 있어 소극적인 허용이 아닌 적극적인 권리 보장이 되도록 목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2. 임신 중절을 여성이 결정하고 행위하는 선택으로서 여성에게 일임하는 것을 넘어, 공공의료로서 체계화된 보편적인 건강권으로 논의해야 한다.

  3. 재생산권과 노동권의 긴밀한 관계를 정치화해야 한다.

  4.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동성 커플, 빈곤층 등 비주류 임신 주체를 포괄적 논의에 포함하면서도 이들의 특수한 상황을 드러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성노동자에게 낙태와 재생산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아본다. 또한 성노동자가 겪는 재생산의 문제들이 재생산권의 정치화에 어떻게 핵심적인 논의점을 가지는지 짚어본다.

 

성노동자에게 낙태 의제란

 낙태는 성노동자에게 중요한 의제다. 성노동자는 원치 않는 임신에 취약하다. 이는 성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내재한 위험이다. 성구매자가 피임을 거부하며 임신 위험을 가중시킬 때 성노동자는 쉽사리 대응하기 어렵다. 지역이나 업종의 관행에 따라서도 성노동자가 피임을 요구하기 어려워진다. 빚이 있어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할 때 역시 피임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인다. 이들은 임신 중절 비용을 벌기 위해 임신한 상태로 다시 일을 하기도 한다.

 성노동자는 출산을 원할 때 낙태를 강요받기도 한다.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 계속 일해서 빚을 갚으라고 포주가 낙태를 강요하기도 한다.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9조(의료비의 지원 범위)는 성매매로 인하여 임신한 성매매피해자등의 검사 및 출산 등 임신과 관련한 비용이 지원 범위에 있다고 서술한다. 하지만 막상 성노동자 여성의 임신 중절을 지원하려는 상황에서 여성가족부는 임신 중절에 대한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의견서를 성매매피해상담소에 보냈다. 성매매특별법의 한정적인 지원체계가 성노동자에게 있어 필수적 의료 서비스에 다가가는 데 방해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가부장 국가는 성노동자의 낳지 않을 권리, 낳을 권리를 모두 침해한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대독 한 다음 발언은 이를 명확히 드러낸다. 

“ 저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성구매자에 의한 임신을 했고, 출산을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임신중절 수술을 할 돈이 없고, 성매매는 성폭력이 아니기 때문에 임신 중절 수술비 지원이 안된다고 합니다. 주차가 늘어갈수록 중절에 따르는 위험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을 찾기가 점점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간절하게 출산과 육아를 원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빚을 많이 지고 있던 그 당시 업주는 일하면서 애를 어떻게 키울 거냐며 낙태를 하라고 했습니다. 업소 말고 어디서 돈을 벌어 자기 돈을 갚겠느냐고요. 그리고 제가 업소를 나와 출산을 준비하는 동안 업주는 나를 사기죄로 고소했습니다. ”

-2017년 9월 28일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절 보장을 위한 국제행동의 날'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대독 발언 (출처 링크)



가부장제는 재생산 문제를 여성에게 떠넘긴다

 

 성노동자의 재생산 이슈에는 성과 재생산의 권리에 무엇이 필요한지가 응집되어 있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대독 한 위의 발언에서는 성착취 구조 속 성구매자와 포주와 대부업이 이루는 카르텔이 성노동자의 재생산권을 침해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적 이유로 성매매 산업에 인입된 사람이 성매매 현장에서 성구매자의 피임 거부로 인해 임신하고, 역시 경제적 이유로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 낙태를 결정하면 불법 시술인 임신 중절 수술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빚을 진다. 그러면 그 빚을 갚기 위해 성매매 현장을 떠날 수 없는 순환이다. 이는 가부장제 아래 공고한 남성 연대가 재생산의 문제를 여성 개인에게 맡기며 부차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 여성의 성관계는 숨겨야 하는 일이기에 어떻게 몸 관리를 해야 하는지 설명을 들을 길은 요원해요. 하혈 등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피임약 복용을 중단합니다. 그러다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합니다. 일을 쉰 기간만큼을 돈을 메꾸기 위해 또 성매매를 하고 손님들은 늘 그렇듯 콘돔을 뺍니다. 그러고는 손님들은 내가 부인을 7번을 낙태시켰어. 이 형이 그렇게 힘이 좋아. 쌌다 하면 다 임신이야. 이런 말들을 농담으로 합니다. 남성연대 속에서 여성의 몸은 소모되고 있습니다.

문란한 성생활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낙태죄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요. 정말로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상사가 선임이 남성 동생들을 이끌고 룸살롱을 찾는 알탕 카르텔이 조직에서 힘을 발휘하는 사회에서 성관계는 개인들만의 것이라기보다는 남성 성역할 수행, 그로 인한 사회적 지위 획득 등 우리 사회 문화 제도가 작동하는 장으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눈감아주고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남성 간 연대가 공모하는 이 성관계에 이들은 무엇을 책임지고 있습니까. 여성에게만 주홍글씨를 남기는 낙태죄 이제는 폐지해야 합니다. 성관계와 임신에 대한 국가의 역할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낙태죄 폐지로 시작될 수 있길 바랍니다.”

-2018년 7월 7일 광화문,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대독 발언 발췌 (출처 링크)

 가부장제 사회는 여성의 몸을 사적 영역에 붙잡아두고 소모한다. 광화문 시위에서 대독 발언한 위의 증언은 이를 성노동 현장의 언어로 고발한다. 재생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는 성노동자의 성적 권리가 빠져서는 안 된다.



재생산권 정치는 여성 노동과 연결되어야 한다

 

 임신 중절에 대한 권리는 성노동자의 노동과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재생산권과 노동권은 아직 공론장에서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 이에 더해 한국에서 성노동은 그 노동성을 통째로 부정당하고 있다. 성노동자의 재생산권은 여성주의 이슈 파이팅에 참여해 경합하지도 못한 채 이들의 권리를 애써 상상하지 않는 사회에서 은폐되고 있다. 

 그러나 성노동자의 재생산권은 반드시 여성주의 이슈파이팅에 참여해야 한다. 성노동자는 노동권이 부정당하기에 자연스럽게 노동환경과 연결되는 재생산권 역시 논의되기 힘들다. 이는 여성주의가 재생산권과 노동권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하는 패러다임 전환에 있어 핵심을 제공한다. 노동의 개념을 여성주의적으로 확장하면 결국 성노동이 아니더라도 여성의 노동은 예외 없이 성적인 노동을 동반한다. 여성의 노동을 성과 재생산의 권리와 연결해야만 노동권과 재생산권 모두 정치화할 수 있다. 이 관계 속에서 여성주의는 성노동 운동의 언어를 공유할 수 있다. 성노동에서의 재생산 문제를 공론화하면 일을 위해 출산을 포기하는 것도,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위해 일을 포기하는 것도 여성 노동자의 보편적 경험인 동시에 각각의 여성 노동자가 특수성을 겪는 경험임을 직시할 수 있다. 

 

사후피임약에 대하여

 

 성노동자의 사후피임약 이슈 역시 재생산권을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논의가 필요한지 드러낸다. 우리는 여성 성노동자의 건강권을 논의하며 사후피임약 문제를 공적 영역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성노동자의 재생산권에 필요한 것은 임신 중절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진정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피임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성노동자는 사후피임약을 자주 복용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성노동자가 콘돔을 거부당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성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로 성노동자는 콘돔 사용이 힘들어지곤 한다. 여기에 작용하는 권력 중 하나는 경찰의 단속이다. 경찰은 성노동자를 처벌하기 위한 증거물로 콘돔을 채택한다. 성구매자는 이 사실을 콘돔을 거부하는 핑계로 이용한다. 성노동자들은 콘돔을 빠르게 인멸하는 방법을 화류계 커뮤니티에서 공유한다. 성노동자에게 콘돔은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인 동시에, 현장에서 발각되면 처벌받게 되는 증거물이다. 

 성구매자의 거부는 가장 직접적으로 성노동자의 콘돔 사용을 어렵게 한다. 이들은 성매매 후기 사이트를 언급하며 성노동자를 압박한다. 성노동자는 성구매자의 협박에서 요령껏 대처해야 한다. 이럴 때 성노동자가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콘돔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다. 콘돔을 사용하지 못한 성노동자는 사후피임약에 자주 기대게 된다. 

 그러나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은 사후피임약을 복용하는 것으로 충분히 해결되지 않는다. 사후피임약의 피임 성공률은 성관계 후 24시간 이내 복용 시 95%로, 처방전을 통해 빠르게 사후피임약을 복용해도 콘돔에 비해 낮은 피임 성공률을 보인다. 시차가 벌어질수록 피임 성공률은 48시간 이내 복용 시 75%, 72시간 이내 복용 시에는 42%로 급격하게 떨어진다(양미애 기자, 관계 후 피임을 위한 응급피임약, 복용해도 임신 가능성 있다, 2020-06-04, 하이닥). 그럼에도 성노동자는 사후피임약을 자주 복용한다. 피임 실패의 위험과 함께 성노동자는 약의 부작용도 겪는다. 사후피임약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이나 피임의 성공률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비하다. 성공률이 보장되지 않고 부작용마저 제대로 연구되지 않는 사후피임약에 성노동자는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재생산과 성적 건강에 대한 권리가 보편적 권리임을 외면하고 여성에게 전가하려는 사회에서 사후피임약은 의도적으로 과대평가되고 있다. 사후피임약에 대해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사후피임약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한편, 안전하게 사후피임을 할 수 있는 연구와 지원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낙태 금지는 생명의 위계와 정상성을 강화한다

 

 가부장 사회가 가진 생명에 대한 이중성도 성노동자가 겪는 낙태 이슈에서 명확히 찾을 수 있다. 여성 성노동자가 이름도 모르는 성구매자 남성으로부터 임신했을 때 이를 낙태하는 것은 성노동자 당사자들 사이에서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 성노동자의 낙태를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비장애-이성애 커플의 낙태와 똑같은 방식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이성애 커플의 낙태에 대해서는 태아의 생명권 윤리가 흔히 언급되지만, 성노동자의 낙태에 있어서는 성매매 행위를 비난하고 ‘몸 파는 여자’를 손가락질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이를 통해 낙태에 대해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논의가 생명의 위계와 정상성을 강화하고 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여성주의 정치는 가부장 사회가 낙태를 다루는 방식이 생명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실상 생명의 위계를 만들고 정상성을 공고히 하려는 장치임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정상 여성’의 규범에서 추방된 이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여성주의 정치가 재생산권을 논의할 때 경계해야 할 타자화가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다.

 

성노동자의 언어는 여성주의의 언어다

 

 낙태죄에 대한 입법 개정 기한이 다가오고 있다. 낙태에 대한 여성주의 정치는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성노동자의 경험이 제시하는 과제들을 끊임없이 공론장에 제시하며 어떻게 개정될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성노동자의 경험을 논의할 때 여성주의는 재생산권이 임신-출산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음을 명확히 할 수 있다. 성노동자를 비롯한 소수자가 재생산의 권리를 가지는 것은 법적으로 처벌되고 문화적으로 금기시된다. 성노동자는 가부장 사회가 재생산 이슈를 은폐하는 장치들을 금지의 형태로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겪는다.

 성노동 운동은 여성주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주의 정치 역시 성노동자의 이슈를 드러냄으로써 재생산에 관여하는 억압의 본질을 이야기할 수 있다. 재생산권을 비장애-이성애-기혼 여성의 임신-출산 권리로 한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노동자 억압에 저항하는 언어가 필요하다. 성노동자의 억압에 저항하는 언어는 여성주의의 언어다. 남성 연대를 고발하는 언어인 동시에 여성 노동의 언어이며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의 언어다.

 


 

작가 소개글 : 유하입니다. 추방당한 경험들이 정치가 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