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우리가 그리는 미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익명 : 수취인불명의 편지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9. 26. 12:20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익명 : 수취인불명의 편지 "이제 언어를 찾으려고 합니다.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었는지 말하기가 그 시작인가 봅니다. 그래서 이름 모를 당신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수취인불명의 편지

익명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당신에게,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지금 기분은 어떤지, 혹시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이 편지를 받게 될 당신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특정할 수도, 제 자신을 드러낼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제 잘못도, 당신의 잘못도 아닙니다. 

제가 용기가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편지를 띄웁니다. 

제 손가락의 수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꼭. 

제 손가락에는 수포가 있습니다. 

수포는 내가 나를 돌보고 챙기는 데 소홀했다는 신호입니다. 

수포가 올라올 즈음이면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나를 몰아붙일 대로 몰아붙여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무기력해질 때 즈음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자리에 누워 손을 들어 물끄러미 붉고 둥글게 툭 튀어나온 그곳을 들여다봅니다. 살짝 건드려 봅니다. 가렵습니다. 괜히 손톱으로 꾹, 꾸욱 눌러봅니다. 

수포는 고통입니다. 

수포는 수치입니다. 

수포는 흔적입니다. 

수포는 기억입니다. 

수포는 낙인입니다. 

언젠가, 짧게 만났던 그 사람과 헤어진 얼마 후, 분노와 원망에 가득 찬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는 ㅡ헤르페스ㅡ라고 했습니다. 그는 내가 ―그 끔찍한 전염병―을 옮겼다는 데에 한 치의 의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저 때문에 앞으로 평생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저는 그를 정말로 좋아했었는데 그는 몰랐나 봅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연인이었던 것 같은데 나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는 그를 보니 어쩌면 그건 저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떨떨한 감각이 사라지고 나자 ‘평생’이라는 단어가 생생해졌습니다. 그는 분명 ‘평생’이라고 했습니다. 겁이 나 한참 동안 그 일을 묻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생식기가 미친  듯이 가렵다 못해 뻐근하게 아프고 기력이 유난히 달리던 그 날, 저는 제 손가락에 볼록 튀어나온 수포를 발견했습니다. ―헤르페스― 완치가 불가능한 성병. 그가 나를 향해 비난의 말을 쏟아낼 때 항변하지 않은 것은 나에게는 아직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서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정말 그에게 성병을 옮겼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산부인과에 갔을 때 제 몸에는 네 개의 ―성병―이 있었습니다. 네 개의 ―성병―이 낯설고 두려워 그 이후로 산부인과 가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슬그머니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네 개의 성병. 하긴 그 많은 사람들이 제 몸을 들쑤시고 드나들었는데 네 개는 어쩌면 적은 숫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토킹을 하는 모던 바였습니다. 낮에 하는 아르바이트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됐을 때 술을 빨리빨리 빼지 못해 사장에게 “연애하러 왔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시는 술이 반, 버리는 술이 반이었습니다. 그래도 너무 많은 술을 마셔야 했습니다. 많은 술을 마시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술을 버려야 한다는 게, 그러니까 누군가를 속여야 한다는 게 더 힘들었습니다. 아르바이트에서 직원이, 그리고 매니저가 됐을 때 사장은 2호점을 냈습니다. 노래방을 리모델링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막상 가보니 그곳은 그냥 노래방이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이럴 거면 시급이 더 센 착석 바에 가서 일을 하지,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노래방에서 착석을 시키며 월급 200을 주던 그곳의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착석 바에서 요정으로, 요정에서 ‘비지니스 클럽’으로 일자리를 옮겼습니다.  착석 바에서는 제가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토킹 바에서 일하는 3년 동안 15kg이 쪘습니다. 사장은 대놓고 “우리 가게에선 살찐 애는 안 뽑아. 네가 웃는 게 예뻐서 뽑았어. 그러니까 살 빼.”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명 손님을 만들어야 했는데 처음 온 손님들에게는 퇴짜 맞기 일쑤였고, 가게에서는 저를 놀릴 순 없으니 다른 언니들 지명 테이블에 욱여넣었습니다.  그 테이블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른 사람들을 따라 어색하게 웃거나 얼음을 갈아오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테이블에서도 겉돌았고, 함께 일하는 언니들 사이에서도 겉돌았습니다. 나름 머리를 쓴 게 한복을 입는 요정이었습니다. 서울 강남에는 아가씨들이 한복을 입고 접대를 하는 요정이 서너 군데 남아 있습니다. 가게도 딱 10시까지만 예약 손님 위주로 받았습니다. 술과 안주로 한 상이 거하게 차려지면 밴드가 들어와 흥을 돋우고, 손님과 아가씨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습니다. 손님들은 대부분 매너가 있었고, 아가씨들은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모든 게 너무 밝았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복작복작하게 마주 앉은 긴 테이블에서, 내 나이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사람이 어깨를 끌어안으면 웃으면서 “오빠, 오빠” 하며 술을 따르는데, 그럴 때면 뭔가를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습니다. 

이질감을 버티지 못해 옮긴 곳이 ‘비지니스 클럽’이었습니다. 손님들은 훨씬 매너가 없고, 거칠고, 저를 막 대했지만 왠지 마음은 편했습니다. 어둠 속에 제 자신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 저는 아마도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아무 요령이 없었습니다. 술을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고, 손님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짓을 해도 그냥 웃었습니다. 웃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제가 아는 저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생존할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게가 끝날 때까지 초이스를 못 받았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 만취한 손님 방에 욱여넣어져야 겨우 그날의 일당을 받아 나올 수 있었습니다. 

초이스를 보러 방에 들어가는 건 공포였습니다. 촌스러운 소파에 앉아 저를 구석구석 뜯어보는 손님들의 얼굴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습니다.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눈과 마주칠 때 두려웠습니다. 저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을 때 두려웠습니다. 노골적으로 가슴이나 허리를 쳐다보며 히죽거릴 때 두려웠습니다. 초이스를 보는 동안 제 몸은 조각조각 나 손님 앞에 펼쳐져 점수가 매겨졌습니다. 가슴 A-, 허리 C, 엉덩이 B, 허벅지 B+, 손목, 종아리, 발목, 목선, 얼굴의 이목구비까지… 그리고 손님들의 거들먹거리는 말투가, 자신만만한 태도가 두려웠습니다. 그 태도가 나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공간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초이스를 할 수 있는 손님과,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선택당해야 하는 저 사이의 힘의 격차를 느껴야 했습니다. 어쩌다 손님 옆에 앉게 되면 더 두려웠습니다. 그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술을 들이부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건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고, 시급도 센 아르바이트를 찾았습니다. 데이트를 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보내준 주소로 가니 오피스텔이었습니다. 그곳은 조건만남 사무실이었습니다. 우습게도 저를 안 뽑아 줄까봐 오버스럽게 의욕적인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2시간 한 번 15만 원, 노콘은 16만 원. 노콘으로 남는 만 원은 실장이 가져갔습니다. 실장은 콘돔을 써서 15만 원을 받으면 자기가 만 원을 손해 보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만 원을 자신이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고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언니가 모텔 방에서 칼로 위협을 당해 패닉한 상태로 돌아왔을 때에는 미친놈이 괜히 한번 그래본 거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돌이켜보면 부당한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저는 그래도 그곳이 좋았습니다. 그때는 너무 외로웠고, 또 너무 외로웠습니다. 빈말이라도, 그런 척일지라도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남들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 일들을 그만 둔 이유는 적성에 안 맞아서였습니다. 저는 그 일을 노동으로 감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분명 노동이었습니다. 고강도의 감정 노동이었습니다. 알량하지만 매번 노동 조건과 환경을 따졌습니다. 저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나름의 방식으로 열심히 나의 상황과 노동 조건을 따져가며 일자리를 옮겼습니다. 제가 그것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못한 이유는 그것이 노동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저에게 언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생식기가 미친 듯이 가렵다 못해 뻐근하게 아프고 기력이 유난히 달리던 얼마 전의 어느 날, 손가락에 볼록 튀어나온 수포를 봤습니다. 수포를 보면 그날들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제 언어를 찾으려고 합니다. 내가 어떤 시간을 보냈었는지 ―말하기―가 그 시작인가 봅니다. 그래서 이름 모를 당신에게 이 편지를 띄웁니다. 

날씨가 많이 선선해졌습니다. 

남은 하루는 어떻게 보내실지 궁금합니다. 

부디 아프지 말고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익명의 ‘나’ 드림.

 


 

작가 소개글 :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글을 씁니다.

 

성노동 은어 풀이

더보기

 

1. 착석바 : 착석바는 테이블이나 룸 등에 성노동자를 착석시켜 영업하는 업소를 말한다. 유흥업소나 기타업종, 집결지에 비해 수위가 매우 낮은 편이다.(“착석ㆍ스킨십 없어요”…여대생 ‘Bar 알바’ 피해 속출, 헤럴드 경제, 2013)

2. 요정 : 요정은 일본식 성매매 업소로, 일제강점기부터 100년 가까이 사회 저명인사와 각계 지도층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차림상으로 술과 한정식이 나오고 성노동 여성은 한복을 입고 국악 공연을 하기도 한다. 1970~1980년대는 요정의 전성시대였다. ‘밤의 정치’, ‘밀실 정치’로 가는 비밀 통로로 정·재계 인사들의 회합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정부기관 간에 서로 접대하는 '관관접대'의 장으로도 활용돼 대통령은 물론, 3부요인과 외국 국가원수까지 찾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룸살롱과 같은 현대식 유흥업소에 밀려 자리를 잃었다. 현재 강남에선 요정 2~3곳이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상태다. (100년 전통 요정, 성매매 알선 덜미, 동아일보, 2009 [뉴스쇼 판] 관관 접대한 요정은 어떤 곳?, TV 조선, 2015)

3. 비지니스 클럽 : W지역에 있는 이 클럽은 상호명은 '00비지니스 클럽'이었지만 사실은 보도(사무실 차량을 타고 다니며 여러 업소로 파견나가 일하는 것)였다. 손님이 있는 경우 클럽 안에서 초이스를 보지만, 손님이 없는 경우 보도차를 타고 다른 유흥업소로 초이스를 보러가는 구조였다. W지역은 이런식의 클럽이 많았다.

4. 초이스 : 룸초이스는 룸에서 이뤄지는 전통적인 성노동자 초이스 방법이다. 영업진이 성노동자를 적당히 조로 나눠서 룸에 들여보낸다. 여성들은 남성 앞에 나란히 서게 되며, 한번에 들어가는 여성 수는 5~6명이다. 이렇게 해서 초이스를 보는데, 언니들이 많이 출근하면 4조 5조까지 나온다. 손님은 몇조의 몇번 이라는 식으로 언니를 기억해뒀다가 영업진에게 말하고, 초이스 된 언니는 룸에 들어가게 된다. (페미위키)

5. 조건(만남) 사무실 : 조건만남 사무실이란 개인 조건만남이 아니라 실장을 끼고 기사와 함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일하는 형태를 말한다. 이 곳의 경우 오피스텔은 사무실로 사용했다. 실장이 어플로 손님을 잡으면 성노동자가 손님과 모텔을 가는 시스템이었다. 실장은 만약 손님이 근처에 사냐 물어보면 이 오피스텔을 집이라고 대답하라 했다. 대개 조건만남 사무실 중 작은 사무실의 경우, 실장이 기사 역할을 겸하며 차를 타고 성노동 여성과 지역을 돌아다닌다. 랜덤채팅 어플이나 트위터로 손님을 잡고, 성노동자를 손님에게 보낸다. 성노동자는 손님을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모텔로 가고 서비스를 한 후 시간이 끝나면 대기된 차로 돌아간다. (페미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