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우리가 그리는 미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루비 :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9. 27. 11:51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루비 :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사실은 유흥업소에는 영업진, 성구매자뿐 아니라 그곳에서 생계 유지를 하는 성노동자 또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면

루비

 

코로나19가 시작된 지도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부터 대면 업종에서 일했습니다. 과도한 업무를 지시하는 윗사람에게 한마디도 할 수 없어 퇴사했고, 그 이후로 아직도 안정적인 근무처를 찾지 못했습니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힘들다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마스크는 우리 삶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조차 이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되는 조치입니다만, 병증이 없고 상대적으로 민감한 정도인 저에게도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스크 상시 착용 수칙을 사업장에 적용하였을 때는 마냥 수긍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직 3개월 만에 어렵사리 취직한 곳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니고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류를 나르고, 청소를 하는 일상적인 업무만으로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모두가 힘들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힘들다고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나마도 그렇게 주 40시간을 일하던 곳은 코로나19로 인한 영업 손실로 취직 4개월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처음으로 경험한 주 40시간 근무는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어딜 가더라도 누구나 다 한다는 주 40시간 근무가 저에겐 과로였습니다. 그러나 과로로 인한 피로보다도 나 자신을 향한 혐오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유달리 지친 상태로 퇴근한 날에는 고작 이 정도로 힘들면 정말 다른 일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거냐며 자책했습니다. 나에게 좋은 기회가 온다 한들 내가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나에게서 원인을 찾았고, 결국 나의 노력이, 나의 열정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스스로 물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경험 이전에도 ‘정상적인 노동’이 불가능한 이들은 언제나 존재했을 것입니다. ‘정상적인 노동’이 불가능한 경우를 간략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신적/신체적으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성에 부합하지 않거나 노동에 절대적으로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는 경우(부양 등), 한 가지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  저학력 등의 이유로 성노동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원조차 가지지 못한 이들, 그리고 이 짧은 설명에 미처 다 적지 못한 다양한 상황에 놓인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이렇듯 제한적인 선택지 앞에 선 사람 중 다수가 성산업에 유입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서는 코로나19 상황 이전부터 같은 직장에 재직 중인 여성 중 46.3%는 부분 휴업·유급·무급휴직·해고·권고사직 등 고용조정을 하나 이상 직·간접적으로 겪었고, 그중 35~47%는 해당 고용조정을 여성·임산부 및 육아휴직자를 우선 대상으로 시행했다고 답했습니다.”[1]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이전과 같은 수준의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때보다도 생계가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부당함을 겪고도 그만두지 못하거나, 처우가 좋지 않음에도 새로운 일자리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노동자가 위태로운 지금, 이 이야기는 성노동자에게도 적용됩니다.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하여 일할 뿐이지 진정 일하고 싶은 자 하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오고 가는 사회에서마저 성노동자는 인신매매가 아닌 이상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며 비난의 표적이 됩니다. 설령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절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 선택을 비난해선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맙니다. 어떠한 곳이든 간에 용인되어서는 안 될 폭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을 한다고 해서 폭력에 노출되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 또한 근로기준법 미적용으로 위와 같은 위험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동자 개인에게 일자리를 그만두어야 한다거나 부당한 환경에 처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행위 자체를 죄악시하려는 의도가 기저에 깔린 것이 아니라면, 성노동자를 향하여 숱하게 벌어지는 폄하와 구조적 문제의 개인화를 멈추어야 합니다.

요즘은 매일같이 코로나19 방역의 허점으로 꼽히는 유흥주점/단란주점에 대한 분노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때에도 그런 곳에 가고 싶냐고 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업 제한이 아니라면 문을 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평소와 같이 영업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은 당연하게 감내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많은 곳이 이전과 같이 영업을 하고 있으며, 그저 방문 기록 작성이나 방역 수칙을 지키는 등의 수고로움이 늘었을 뿐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생활 방식은 많이 바뀌었고 소비 또한 위축되었지만, 길거리의 수많은 업장은 언제나 그렇듯 문을 엽니다. 특정 시설에 덜 가고, 안 가면 된다는 이야기는 지극히 소비자 중심적입니다.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사실은 유흥업소에는 영업진, 성구매자뿐 아니라 그곳에서 생계유지를 하는 성노동자 또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유흥주점/단란주점에 대한 분노를 따라가다 보면 마주하는 결론은 한결같습니다. 그런 불건전하며 불필요한 행위를 하는 곳은 현재로서 필요치 않으니 문을 닫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와 불필요는 누가 결정합니까? 우리가 유흥업소를 불필요하다 규정할지라도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자신의 생계, 건강,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재화를 얻기 위해 노동합니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리두기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면, 변화해야 할 규제에서 성노동자가 배제되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확진자가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시설이 있다면 그 안에서 방역수칙이 얼마나 잘 지켜지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적절치 못한 시기임을 이유 삼아 해당 업종 자체를 비난하는 행위가 방역에 도움을 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고, 일상적인 외출조차 어려운 이들이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겨야 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한적인 정보만으로 타인을 평가하거나 비난하는 행동을 멈추어야만 합니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또는 우리의 대의에 어긋나는) 시설이라는 이유로 폐쇄를 논하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성매매 현장이 그 어떤 노동 현장보다도 신체 접촉이 잦고 코로나19 감염 위협이 크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는 성노동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성노동은 생계수단이며, 이 생계수단을 차단했을 때 생겨나는 노동자의 금전적 손실을 국가적 차원에서 보상할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코로나 이후의 삶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1] 코로나19 시기 초등 이하 자녀를 둔 여성 약 2명 중 1명은 휴업·해고 등 고용조정 경험, 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21/06/22

 


 

작가 소개글 : 시시하고 물렁하지만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 그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