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우리가 그리는 미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보람 : 어쨌든, 각자의 선택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9. 29. 11:46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보람 : 어쨌든, 각자의 선택 "조건만남 성노동자는 사이즈가 안 되고 얼굴이 못생겨서 조건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화류계 종사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조건만남을 하는 사람은 카페에서 나가라고 배척하는 일이 빈번했다."

 

어쨌든, 각자의 선택

보람

 

처음 업소에서 일했던 때는 2020년, 그러니까 작년 8월쯤이었다. 그전에는 계속 트위터로 조건만남만 해왔었는데, 5월에 경찰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처음에 모텔에 들어가 경찰 신분증을 마주했을 때는 정말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경찰은 부모님께 절대 연락하지 않을 것이며 상담 센터로 연계하기 위한 단속이라며 선심 쓰듯 말했지만 내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50분 가까이 모텔방에서 대화하는 동안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몇 번이나 참아냈다. 그는 내가 다니는 대학을 묻고, 왜 그런 좋은 대학 다니는 학생이 이런 일을 하냐며 훈계조의 말을 했다. 명문대 학생증만 있으면 빚 2,500만 원이 저절로 갚아지기라도 하나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쓸데없이 경찰과 부딪히고 싶지 않아 그 말을 삼켰다. 경찰과 함께 대방동에 있는 상담 센터로 들어가는데, 다른 경찰이 내 뒷모습 사진을 찍었다. 내가 항의하자 내부 보고 자료로만 쓰일 것이라고 나를 달랬다. 경찰 내부에서 ‘조건만남 여성’이라는 제목을 달고 돌아다닐 내 뒷모습 사진을 생각하니 욕지거리가 나왔다.

기소 없이 훈방 조치되었고 상담 센터와 연계되어 산부인과 진료와 몇 번의 형식적인 상담만을 받기는 했지만, 탈성노동 후에 공기업에 취업할 계획인 나로서는 경찰 단속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었다. 혹시나 기록이 남으면 나중에 취업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한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트위터 장미계 언니들 사이에서 트위터 조건시장에 단속이 만연하다는 얘기가 있었고 실제로 단속에 걸린 언니도 계셨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텔 예약 캡처와 얼굴 사진을 받아야만 예약을 받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었다(하지만 나를 함정 수사했던 경찰은 텔 예약 캡처와 얼굴 사진을 다 줬고 심지어 옵션 추가까지 했으며 나중에 모텔 카운터에서 주인과 싸워가며 모텔비를 환불받았다. 모텔 주인은 무슨 봉변이었을까).

3개월 가까이 일을 쉬었다. 단속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번엔 형식적인 상담 센터 연계로 끝났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기소유예라는 속칭 ‘빨간줄’이 나를 두렵게 했다. ‘빨간줄’이 그여 취업할 수 없게 되는 날이면 정말 목을 매달아야 할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장학재단 생활비 대출과 보험 계약 대출로 저축은행 대출금과 카드값을 돌려 막기 하며 버텼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때가 왔을 때, 나는 업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톡이나 ▲톡 등의 랜덤 채팅 어플로 만나는 조건남들은 노콘 강요와 낚시를 밥 먹듯이 했고 페이를 자기들 맘대로 깎는 일도 빈번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수 없었다. 오피는 조건보다 단속이 더 심했고, 한번 걸리면 기소유예나 벌금이라는 ‘빨간줄’이 바로 남을뿐더러 우편물이 바로 집으로 날아오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사는 나로서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없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곳은 한 살 어린 장미계 동생이 소개해 준, 잠실새내에 있던 어느 키스방이었다.

그 키스방은 어느 허름한 건물 지하 1층에 위치해 있었다. 골목골목을 돌아 들어간 키스방은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실장 언니와 면접을 보았다. 언니는 여기는 비교적 ‘소프트’한 수위의 키스방이라고 하며 에서 따로 돈을 받거나 손님의 연락처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주간에는 나보다 더 사이즈가 좋은 언니들이 많다며 나에게 야간에 나오기를 권했다. 하지만 잠실새내는 우리 집과는 꽤 거리가 있어서, 야간에 근무가 어려웠던 나는 웃으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면접 후 세 시간 가까이 대기하다 첫 손님을 받았다. 조건만남을 하던 때와 별다를 것도 없었다. 다른 점은 실장 언니의 강요로 억지로 웃으며 손님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어야 한다는 것(조건만남을 할 때는 억지로 말을 시키면 손놈, 아니 손님에게 짜증을 냈다), 섹스가 아닌 손이나 입으로 끝낸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53분간 노동을 했는데 페이가 한 시간에 4만 원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실장 언니는 계속 일하면 페이를 한 시간에 4만 5천 원으로 올려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3일 만에 출펑을 내고 일을 그만두었다. 우선 거리가 너무 멀었고, 억지로 노콘 섹스를 하고 팁도 주지 않은 채 튄(다음에 주겠다고 하고 오지 않았다) 손님이 있었을뿐더러 결정적으로 한 시간에 4만 원을 받고 하기에는 너무 힘든 노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2주 만에 나는 다시 키스방에 가야만 했다. 카드값을 내는 날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키스방은 우리 집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충동적으로 출펑을 내고 일을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긴 머리를 한 실장은 나에게 이곳은 수위가 센 곳이라고 했지만, 조건만남을 하던 나에게는 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나에게 시급을 4만 5천 원밖에 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섹스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잠실의 손님들과는 차원이 다른 손놈, 아니 손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다들 섹스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손이나 입으로 끝내려고 하면 섹스를 요구했다. 나는 이런 손님이 오면 우선 콘돔이 있는지 묻고, 나는 절대로 노콘 섹스를 하지 않는다며 손이나 입으로 얼른 처리하고 내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키스방에 콘돔을 가져오는 손님이 있었다. 이런 손님을 거부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몇 번이나 강간을 당하고 말았다. 심지어 이곳의 손님들은 섹스가 기본 수위가 아닌 업소에서 섹스를 하고서는 팁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과연 화류계 언니들 사이에서 악명이 자자한 지역의 손님다웠다. 나는 내야 할 카드값과 대출 상환을 생각하며 3주를 버텼지만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트위터 조건계를 만들었다. 경찰 단속이 아직도 있는 것 같았지만 최근 가입 계정을 피해가며 일을 하는 것이 키스방보다 나을 것 같았다.

최근에 장미계 언니들이 모인 커뮤니티를 보다 보면 조건 여성을 배척하는 일이 많다. 대표적인 화류계 커뮤니티인 다음의 모 카페에서는 조건 여성을 박카스 할매’ 라고 칭하며 조건만남 성노동자는 사이즈가 안 되고 얼굴이 못생겨서 조건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화류계 종사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조건만남을 하는 사람은 카페에서 나가라고 배척하는 일이 빈번했다. 물론 하이 언니들이 보기에는 조건만남이 위험천만하고 돈도 안 되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하이 업소에서 일하려면 헤메렌 비용이 들어가고 밤에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일할 수 없다. 물론 오피라는 대안이 있지만 나와 같이 단속에 예민한 사람은 어렵다. 다양한 일의 종류가 있는 화류계에서 어떤 일에서 돈을 벌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어떤 일이든 빨리 돈을 벌고 탈성노동을 할 수 있는 일이 각자에게 가장 좋은 일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시간을 내 맘대로 조정할 수 있고 옷이나 화장도 평소에 하던 대로 하면 되는 조건이 가장 잘 맞았다. 안 그래도 힘든 성노동자들인데,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어떨까.

 


 

작가 소개글 : 20대 초반 여대생. 누군가의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자 성노동자. 돈과 자유가 간절한 사람.

 

성노동 은어 풀이

더보기

 

1. 장미계: 트위터에서 성노동자들이 서로 모여 정보를 공유하는 계정을 말한다. ‘장미’는 화류계 여성들의 상징이여서 서로를 ‘장미계’ 라고 부른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조.

2. :  키스방에서는 손님과 만나는 방을 티라고 부른다.

3. 사이즈 : 사이즈란, 성노동자의 외모 수준이 높은 정도와 얼마나 말랐는지를 말한다. 지역에 따라, 업종에 따라, 업소에 따라 사이즈가 달라진다. 사이즈가 비교적 높은 여성들이 일하는 업소를 하이 업소, 그 외의 업소를 로우(일반 룸이나 변종 룸) 업소로 구분하기도 한다. 

4. 악명이 자자한 지역 : 이 지역이 정확히 어디인지 공개할 수 없지만 웬만한 키스방이나 오피 언니들은 어느 지역인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악명높은 지역이다.

5. 박카스 할머니(할매) : 성매매로 생계를 해결하는 여성 노인을 일컫는 말로, 공원에서 박카스를 내밀며 성매매를 권유하는 데서 유래하였다. 윤여정 배우님의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 묘사되어 있다.

6. 헤메렌 : 헤메렌이란 헤어, 메이크업, (옷)렌탈의 준말로, 성노동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비강남 지역에서 일할 경우 성노동자들은 헤메렌을 아무 것도 하지 않거나 헤어를 받는 정도이며, 강남에서 일할 경우 헤어를 받거나 헤메를 받는 정도다. 하이 업소에서 일할 경우는 헤메렌을 모두 받아야 한다. 

출처 : 페미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