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마리아 레인보우 : 저는 ‘성노동자’이며,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입니다
저는 ‘성노동자’이며,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입니다
마리아 레인보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성노동자인 ‘마리아 레인보우’입니다. 원래 본명을 밝히려고 생각했으나, 아직 그런 용기는 나지 않아서 밝히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 저의 활동명이자 별명인 ‘마리아 레인보우’ 또는 ‘마리아’라고 불러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따로 바(bar)나 룸 형태 등의 업소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애인 대행이나 조건만남을 하면서 성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업소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밤 시간대에 운영해서 엄마 때문에 외출을 못 하고,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제가 확진이 되거나 일터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가족까지 자가격리에 들어갈까 걱정이 돼서 반 포기 상태에 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원래 대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엄마와 주변 지인분들이 대학은 가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좀 저랑 안 맞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나마 원하는 학과로 가서 공부는 괜찮았으나, 학과 생활이나 선후배, 동기들 간의 관계에서는 힘들어서 자퇴를 고민했습니다. 교통비와 식비는 하루 평균 만 원씩 나가고, 공부할 때 필요한 교재비, 학용품 값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게다가 저는 기초생활수급자라서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힘들었어요.
기초생활수급자는 국가에서 빈민층에게 생계비나 의료비 등을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저희 가족은 기초수급자였어요. 수급자가 되면 아르바이트를 할 때 4대 보험에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업장에서 소득신고를 하게 되면 수급비가 깎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물론 차명 계좌 같은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요즘 법이 강화되기도 했고 또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곤란했죠. 그래서 단기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수급비를 쓰면서 대학 생활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단기 아르바이트는 많지 않았고,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성노동을 알게 되어 결국 시작했죠. 대학교에 다닐 적에 성노동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학교에서 생활비 장학금을 주고, 단기 아르바이트도 나름 잘해나갔기 때문에 성노동은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쯤에 우연히 연애를 시작하게 되어서 성노동을 잠시 쉰 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조금 비극적이었습니다. 전 남자친구를 G라고 할게요. 그래야 이야기하는 게 쉬워질 것 같아서요.
G군은 저처럼 우울증이 있는 친구였고, 성격도 비슷해서 저랑 죽이 잘 맞는 친구이자 연인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건이 생긴 후부터 저한테 집착하더니, 결국 동아리방에서 성폭행을 했고, 가스라이팅을 했습니다. 다행히 엄마와 주변 지인분들의 도움으로 G군과 이별했고 학교도 자퇴했어요.
현재는 한 사이버대에 다니며 취업 준비를 하며 성노동도 하고 있어요. 성노동은 다시 안 하려고 했지만, 취업 준비나 취미생활을 하려면 용돈이 필요한데 괜히 가족에게 말하기가 그래서 처음에는 단기 알바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데이트폭력 때문에 우울증도 심해지고, 사회생활을 하는 게 무섭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성노동을 시작했죠. 일을 다시 시작할 때 초반에는 힘들었지만 딱히 다른 방법도 없었어요. 그래도 저 같은 경우는 다행히 대부분 친절한 손님분들을 만나서 그나마 어렵지 않게 현재까지 하고 있죠.
성노동을 하면서 곤란한 점은 상당히 많았어요. 대학 생활을 하면서 성노동을 할 때는 술을 반강제적으로 마시다가 준강간을 당한 적도 있었고, 곤지름이라는 성병에 걸려 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죠. 씻지 않은 상태에서 오랄을 해달라는 손님도 있었고요. 아,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한 2018년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사람을 A라고 할게요. A는 저랑 만남을 하고 싶다고 경기도 광명시까지 오면 교통비를 포함해서 돈을 주겠다고 했어요. 저는 광주광역시에서 차를 미리 예매해두고, 엄마한테 둘러대고서 경기도 광명시까지 갔죠. 광명에 도착했고 A랑 텔에 들어갔어요. A는 저한테 당시 이렇게 말을 했죠. “오느라 고생했어. 근데 너도 점심을 안 먹었고, 나도 점심을 못 먹었거든. 우리 먼저 관계하고서 내가 점심을 사 올게. 아, 그리고 내가 콘돔을 쓰면 이상하게 안 서더라. 대신 돈 더 주고 안에는 사정 안 할게.”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답한 후 관계를 했고, A는 가까운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을 사 오겠다고 외출을 했어요.A는 점심 먹고 저에게 용돈을 준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휴대폰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A가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안 오는 거예요. 혹시 몰라서 연락을 주고 받았던 채팅창을 봤는데 이미 A는 계정을 탈퇴해버려서 연락할 수도 없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게 사기인지 잘 모르고 ‘설마, 기다리면 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한 두 시간이 넘었나. 그래도 안 와서 저는 불안해졌고, 수중에 있는 돈으로 급하게 광주 가는 저녁 기차를 예매했어요. A는 퇴실 시간까지도 안 왔고, 저는 그제야 사기를 당했구나, 깨닫고서 돈도 받지 못한 채로 겨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 가는 길에 정말 후회감, 죄책감, 우울감... 그런 감정이 몰려오더라고요. 다행히 그 당시에는 돈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고 몸에도 아무 문제가 없어서 지금은 그저 본의 아닌 흑역사라고 생각하고 웃으며 글을 쓰고 있지만, 만약 기차를 예매할 돈도 없어서 집으로 못 돌아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진짜 끔찍했을 것이고 트라우마가 더 생겼을 것 같아요.
그 후로 성노동을 진짜 그만둘까 생각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상황이 또 생기면 어떡하지?’, ‘이러다가 나중에 유흥 쪽에서 계속 일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만 들었고요. 그래서 성노동을 그만둔 후 주로 지인의 일을 도와준다든지, 알바 대타를 한다든지 등 여러 일을 통해 받았던 용돈으로 한동안 취업 준비를 하거나 취미생활을 했어요. 돈이 부족하면 다른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고요. 그런데 단기 아르바이트로는 수중에 들어오는 돈이 별로 없어서 취업 준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카페, 편의점 등에서 장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자니 수급자 생계비가 깎이고, 잘못되면 수급자에서 탈락할 수 있다 하고요. 그렇다고 소득신고를 안 하거나 4대 보험을 안 들면 아르바이트를 할 때 불이익을 받을까봐 걱정되었습니다. 다시 성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라에서 하는 자활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당시 저는 근로 무능력 판정을 받고 반 포기 상태여서 성노동밖에 방법이 없구나,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다가 2020년에 국가에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취업 준비도 잘 안 되었고, 단기 아르바이트도 잘 구해지지 않아서 성노동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성노동도 쉽지 않았죠. 그래서 당분간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은 하지 않고 계속 연락했던 분들만 만났어요. 다행히 저는 사이버대학교 신입생으로 막 입학했던 참이고, 한국장학재단의 ‘취업 후 상환 학자금 생활비 대출’을 이용해 무이자 대출을 받아 그걸로 용돈 겸 취업 준비 비용으로 썼습니다.
계속 인턴이나 계약직 채용공고를 살펴보면서 자격증 공부를 했어요. 모 기업의 청년 인턴 모집에 서류가 통과되어서 면접을 보고 온 적도 있었죠. 떨어지긴 했지만요. 그리고 올해 3월, 한 공공기관에 육아휴직 대체로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정말 기쁜 순간이었죠. ‘와, 이제 성노동을 안 하고 나름 내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구나’, ‘계약직이지만 기쁘다’, ‘나도 나름 할 수 있구나’ 여러 생각이 들면서 얼떨떨하고 기쁘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회사가 좋지 않았어요. 왜 그 회사 평가가 안 좋았는지, 구직자들이 왜 가지 않는지 알겠더라고요.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저는 왕복 출퇴근 3시간이라 집에서 공부나 취미생활을 할 여유도 없었고, 퇴근도 눈치 보면서 해야 했어요. 무엇보다 사무직 상사의 괴롭힘이 장난이 아니었어요. “마리아 씨, 이렇게 감정적으로 일하면 내가 일을 어떻게 시키겠어요?”, “마리아 씨, 왜 이렇게 일을 느리게 답답하게 해요? 내가 다른 일도 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일을 못 해요?” 머리 나쁜 제가 이해 못 한게 잘못일 수 있겠지만,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정말 답답했어요. 그 회사는 공공기관으로 승격한 지 얼마 안 되었었고, 제가 계약직이라 그런지 4대 보험도 제대로 안 들어주고 차별대우가 심했었죠. 그래서 일을 다니며 자해도 몇 번 하고 강박증도 심해지고심지어 하혈도 해서 병원도 갔다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결국 주변 지인분들의 권유로 한두 달 만에 그만두고 조울증이 생겼어요.
그 경험을 통해 취업 준비를 할 때 좀 더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제 미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고요. ‘한 달 만에 퇴사했는데 앞으로 사회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그냥 성노동을 하면서 이대로 지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고, 앞으로의 진로를 위해 여러 책이나 유튜브 등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 미래를 정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현재는 성노동을 하면서 제 미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노동을 하다가 몸이 안 좋아질 때도 있고, 가끔 이상한 손님들을 만나기도 하며 조울증과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채 지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책을 읽어도, 진로에 관련한 콘텐츠를 찾아봐도 미래를 정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콘텐츠 하나를 정해서 유튜브나 생방송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SNS를 하던 중에 우연히 성노동자 분의 글을 보고 저도 성노동 관련 계정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하다가 성노동 운동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 분들의 활동이 왠지 위로와 공감이 되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같이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고 싶더라고요. 제가 성노동을 그만둔다고 해도 성노동은 노동이고, 다른 성노동자 분들을 존중하며 성노동 그분들이 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과연 성노동을 그만둘 수 있을까?’, ‘내가 완전히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열심히 독서나 자격증 공부 등을 하고 성노동을 하면서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나중에 원하는 미래를 생각하고 취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번 프로젝트 주제가 ‘우리가 그리는 미래’잖아요. 앞에서 언급했듯이,
1) ‘성노동’은 다른 일처럼 항상 존중받아야 한다.
2) 성노동자도 다른 노동자들처럼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한다.
3) 관계 안에서 서로 비난하지 않고 사이좋게 지낸다.
4) 성노동자를 위해 법과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5) 성노동을 그만두더라도 같이 지지해주고 공감해준다.
제가 생각하는 성노동자에게 필요한 미래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소개를 한 번 더 하자면, 저는 조울증과 경계선 성격장애가 있는 20대 청년이자 성노동자,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인 ‘마리아 레인보우’입니다. 뒤죽박죽이었던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작가 소개글 : 안녕하세요. 이 글을 쓴 '마리아 레인보우'입니다. 잘 부탁드리며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