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밀사 : 모든 것은 '비창녀'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비창녀'로부터 시작되었다
밀사
이 글은 성노동자 및 성노동자 앨라이를 향한 강도 높은 혐오 발언 및 사이버 불링의 직접 게시를 포함하오니, 열람 시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0.
일어날 일이 기어이 일어나고야 마는 모든 날의 시작이 그러했듯이, 그날도 어김없이 평범했습니다. 친구 잃은 지 만 3년 지난 그저 그런 사람이 그러하듯이, 저는 제가 잃은 친구인 메루메루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는 만큼 분노하며 트위터 계정에 뭐라 뭐라 써댔습니다, 평범하게요.
내용 역시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늘 하던 똑같은 얘기를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할 뿐이었으니까요. 메루메루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 저와 메루메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대략 아시리라고 생각해요. 모르시는 분들은 이 글을 읽으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평범하디 평범한 애도와 분노의 말이,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을 일인가? 최근 모종의 사정으로 밀사 계정에 잘 접속하지 않았던바, 제가 부려놓은 말마디들로 인해 뭔가가 돌이킬 수 없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저는 나중에야 알았답니다. 밀사 계정엔 늘 알림 퀄리티 필터를 활성화해두기 때문에 알림창이 뭐 어떻게 되진 않았습니다만, 타래의 첫 트윗을 클릭해보는 것으로 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죠.
트위터에 인생 좀 낭비해 봤다, 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리트윗 수에 비해 인용 리트윗 수가 압도적으로 높다는 건 어찌 됐든 좋은 징조는 아닙니다. 높은 확률로 해당 트윗이 사이버불링 좌표가 되었다는 뜻이지요. 저는 곧바로 저의 ‘페잉*1’ 페이지에 접속해보았고, 그야말로 무수한 수의 폭탄들이 거기 그득 쌓여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후 저는 만 이틀에서 사흘 정도에 걸쳐 끊임없이 페잉 답변을 하기에 이릅니다. 미친 사람처럼요……. 이미 미친 사람이니 미친 사람처럼, 이라는 비유는 부적절할까요? 하여간, 아마 그중 하루는 잠조차 아예 걸렀을걸요. 저도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진심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사람 일 늘 뜻대로 되지는 않는 거죠.
위 캡처는 제가 답변한 페잉의 목록을 보여주고 있어요. 보통 페잉은 1페이지당 5개의 질문을 출력합니다. 오, 다시 말하자면 당시의 저는 이틀에서 사흘 사이에 약 475개의 답변을 했던 거네요. 대단해라.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아니, 저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요?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비창녀’라는 워딩의 사용이 문제였던 것이에요. 많은 여성 트위터 유저들이 저 워딩에 화가 났고, 그래서 몰아치듯 저의 페잉에서 사이버불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네.
저만이 부르는 속칭이기는 하지만 하여간, ‘비창녀 게이트’의 시작이었습니다.
1.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저는 저의 운동을 속칭 ‘성노동 실험’으로 시작한 사람입니다. 성노동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직접 해보면 뭐라도 알게 되겠지! 뭐라고나 할까요, 운동의 성과를 위해서라면 자기 자신을 재료로 쓰는 일에서조차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결코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니 웬만하면 선망하거나 모방하지 마실 것을 간곡하게 덧붙입니다. 하여간, 불건강하든 말든, 그런 모든 시도가 불건강하다는 것을 알든 모르든, 전 이렇게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고, 그대로 제 버릇 어디에도 주지 못한 채 ‘성노동 실험’을 시도한 때로부터 십일 년이 흐른 오늘날도 똑같이 이러고 있게 된 것입니다. 저 자신이 여전히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방증이겠죠.
그래서 여러분은 지금, 최소 600여 개의 사이버불링 멘트를 연달아 처맞으면서, ‘오, 이거 갈무리해놨다가 성노동자 혐오 발화 분석용 컨텍스트로 써야겠다. 일일이 수집하러 다니지 않아도 알아서 내 쪽으로 사례를 가져와 주다니 완전 이득이고 훌륭하잖아?’ 따위의 생각이나 했던, 평범하지 않은 변태 그리고 그의 평범하지 않은 결과물을 보고 계시게 되었습니다. 이에 심심한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
‘창녀’가 너무나 싫었던 나머지 ‘창녀’가 아니라는 뜻의 ‘비-창녀’라는 말조차 너무나 모욕적으로 느껴졌던 여성들……. 이제 와서 말씀드리지만, 당시 이 모든 것을 마주한 충격이 저로선 꽤나 컸답니다. 툭하면 성노동 혐오자들과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사람이 뭐라는 거야 싶으시겠지만, 저도 사람이고 트위터 바깥의 일상이라는 걸 가진 사람이잖아요. 제 주변엔 성노동자 혐오를 하는 사람은 정말이지 하나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여성들이 ‘창녀’를 미워하며 또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금세 잊어버린단 말이죠. 완전히 잊어버리지 않더라도 뭐, 머리로나 아는 거예요. ‘음, 아무튼 바깥은 그렇다고들 하지. 하지만 나는 성노동자 혐오 따위 없는 안전한 온실에서 살고 있으니 파이팅!’
하지만 좋은 시절은 결코 오래 가지 않는 법입니다……. 꼭 이렇게 우물 안에 익숙해질라치면 온갖 세상 풍파가 폭풍처럼 몰아쳐 우물 안까지 거대한 물벼락으로 쏟아진다니까요. 슬퍼라.
우선 제가 답변한 페잉 질문, 답변하지 않았지만 인상 깊었던 페잉 질문을 아울러 총 269개의 성노동자 혐오 발언을 선정했습니다. 선정 기준은 음, 선정할 당시 저절로 제 이목을 끈 질문? 이렇게나 나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성노동자 혐오 발언은 네가 처음이야? ……하여간. 솔직히 레퍼런스 뽑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일반적으로 상정되는 인간의 집합인 대중이 일개인의 주관적 시야에선 지루하고 심심하며 특색 없는 군중 무리로 치부되는 것처럼, 저의 작은 찻잔 속 소요도 제겐 절대다수가 거기서 거기였거든요. 저 이래 봬도 트위터에서 11년째 성노동론과 성노동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러니 웬만한 수위의 성노동자 혐오 발언이 아니면 감흥 없이 흘려버리거나 넘겨버리거나 그런답니다? 애써 반응하는 것도 일이니까요.
그러니, 저의 성노동자 혐오 발언 사례 수집에 선정된 레퍼런스의 작성자분들께서는 뿌듯해하셔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분들이 이 글을 볼 확률은 한없이 0에 수렴하겠지만요, 알 게 뭐람? 이제부터 저는 해당 레퍼런스를 10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한 뒤, 각 항목 하의 성노동자 혐오 발언을 몇 개 꺼내 보여드리고, 이에 대해 뭐라고 떠들기도 할 예정입니다. 덧붙여, 제가 수집하고 분류한 해당 사례들은 저의 구글 드라이브 계정에 업로드했으니, 필요하신 분들께서는 얼마든지 마음 편히 쓰시기를 바랍니다. 이쪽을 클릭하시면 해당 데이터로 이동하실 수 있어요.
자, 그러면 시작해볼까요.
2.
거두절미하고, 제가 분류한 데이터와 그 결과값부터 보여드릴게요. 각 항목의 퍼센티지는 소수점 두 번째 자리에서 반올림한 수치로, 퍼센티지의 총합이 100을 초과하거나 미달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SWERF들은 TERF이기도 하구나)
………… 14 / 5.2%
그렇게 당당하면 창녀라는 거 숨기지나 마시든가요
………… 12 / 4.5%
(나 성노동자인데 동년배들 다 너 싫어한다 + 톤 폴리싱 시도)
………… 11 / 4.1%
비창녀 워딩 모욕적이에요
………… 34 / 12.6%
성노동 선동하고 미성년자 현혹하지 마세요, 나대지 말고 닥치라고요
………… 32 / 11.9%
성노동 아니고 성착취. 성매매는 비윤리적이고 끔찍한 행위입니다. 마치 장기매매, 매혈, 도박, 마약, 기타등등처럼요
………… 31 / 11.5%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범죄자 주제에……. 세금이나 내고 말하세요
………… 24 / 8.9%
어딜 감히 멍청하고 더러운 창녀를 나와 같은 사람이라 말하죠?
………… 45 / 16.7%
좋은 대학 다니는 여자가 몸을 팔 리가 없잖아요?
………… 22 / 8.2%
창녀짓은 여성 인권 하락시키고 본인 인권 존엄도 깎는 자업자득 짓거리죠
………… 44 / 16.4%
총계
………… 269 / 100.0%
항목의 순서는 한글 오름차순에 따라 정렬했고요, 이번 ‘비창녀 게이트’에서 특징적이고 핵심적이라고 판단한 항목은 보다 채도 높은 색상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러니까, 비창녀 워딩 모욕적이에요, 성노동 선동하고 미성년자 현혹하지 마세요, 나대지 말고 닥치라고요, 어딜 감히 멍청하고 더러운 창녀를 나와 같은 사람이라 말하죠?, 창녀짓은 여성 인권 하락시키고 본인 인권 존엄도 깎는 자업자득 짓거리죠, 이렇게 네 항목을 말이지요.
덧붙여, 원형 차트로 데이터를 정리한 것은 우리들의 영원한 친구 워마드 래디컬 페미니스트 여러분들의 유구한 파이 사랑의 오마주임을 또한 알려드립니다―예를 들어, ‘창녀들과 젠더론자들은 여자 인권 파이 뺏어가지 말고 꺼져라’ 같은 언사―.
3.
3.1. (SWERF들은 TERF이기도 하구나)
여러모로 저의 ‘비창녀’ 워딩은 성노동 혐오자분들께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분들은 높은 확률로 ‘보돕보*2’의 신봉자이기도 하셔서, 이런 말을 하는 제가 ‘천연 보지’ 소유자일 거라고는 도무지 받아들이실 수가 없으셨던 모양이에요. 마침 제가 ‘트젠’이라는 정보도 슬슬 돌고 있으니, 이분들은 ‘비창녀’당한 모욕을 참을 수 없어 급기야 저를 MTF 트랜스여성으로 만들고야 맙니다. 하긴, 이분들께는 MTF 트랜스여성도 여성이 아니라 그냥 ‘한남’이긴 하죠.
제가 느끼기에 TERF*3와 SWERF*4는 사실상 불가분의 관계를 지닙니다. 왜냐하면 성노동은 필연적으로 여성 빈곤의 문제와 직결되는데, 트랜스젠더들은 ‘승인받은, 정상적인 노동 시장’에서 미끄러져 성노동을 진지한 생계책으로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쉬이 내몰리기 때문입니다. 특히 HRT*5와 SRS*6가 포함될 확률이 높은 적극적인 트랜지션을 수행 및 지향하는 트랜스여성의 경우, 기존의 노동 시장에 포용되지 못할 확률이 다대함과 동시에 만족스러운 수준의 트랜지션을 진행하기 위해 상당한 액수의 금전이 필요한바, 이 곤경을 돌파할 방법의 하나로 성노동을 고려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혐오자들의 눈에는 트랜스젠더나 ‘창녀’나 ‘트랜스젠더는 곧 창녀, 즉 유유상종인 혐오스러운 종자들’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기묘하리만치 맹목적인 ‘시스터후드*7’ 내지 ‘보토피아*8’를 향한 신뢰입니다. ‘여자들은 다 착해요 천사 같아요’로 대표되는, 여성만의 사회는 절대로 폭력적이지 않으며 구성원 서로는 서로에게 선하고 헌신적이라는 믿음이죠. 이들에게 여성 호모소셜의 폭력적인 동학은 없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여성 호모소셜 내에도 서열이 있으며 최하위 서열의 구성원은 해당 호모소셜의 유지를 위해 쉬이 희생양이 된다는 걸 애써 외면하는 것이죠. 누군가가 여성 호모소셜 내에서 안전감, 유대감, 수용감 등등의 정서를 경험했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여성 호모소셜 내 서열 최하위 성원이 그만큼 착취당했다는 방증이 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러한 진실을 깨닫기란 요원한 일일 것입니다. 서열의 강자로서 존재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요.
제가 첨부한 사이버불링 발언들은 그 자체로 여성 호모소셜을 공고화하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트랜스젠더이자 ‘창녀’로 표상되는 ‘밀사’는 저들의 세계에서 ‘서열 최하위’이며, 따라서 그들의 사이버불링 수행에서 저는 본인들이 속한 여성 호모소셜 내의 불안, 불신, 불길함 등을 일소할 ‘희생양’으로 소환되고 착취되는 것이지요. 여성 호모소셜은 절대로 ‘보토피아’가 아님을, 혐오자들은 본인들의 존재와 언행으로써 스스로 입증한 셈입니다.
3.2. 그렇게 당당하면 창녀라는 거 숨기지나 마시든가요
오, 정말이지 고전적인 성노동 혐오 레퍼토리죠. 얼마나 고전적인지, 양식미마저 느껴집니다. 클래식이 클래식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함께 보실까요.
이제 와 고백하자면, 저의 친모께서는 성노동의 경험이 전무하십니다.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친모께 미안한 건 아니고요.
이런 발언들에 대한 모범 답안은 다음과 같아요. ‘모두가 알다시피 성노동은 위험한 일이기에 선뜻 권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나의 긴밀한 주변인들이 그들의 결정에 따라 성노동을 하게 되더라도 그들을 낙인찍고 재단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이 안전하게 성노동할 수 있도록, 성노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혐오 및 소외당하지 않도록,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쓸 것이다’라고요. 한 마디로 주변인들이 ‘창녀’나 ‘창남’이 되어도 세상 무너진 듯 충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에요. ‘몸 파는 사람’의 삶이 단지 그가 ‘몸 파는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행해 보이거나 끔찍해보인다면, 그건 바로 ‘몸 파는 사람’의 존재를 끔찍해 하고, 그들이 불행하기를 바라는 성노동 혐오자들 때문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저열한 혐오 발언들을 보고 있자면, 진지하게 대하려는 마음조차 절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에요. 아니, 어쩜 이렇게까지 사전적 의미로서의 낙인찍기를 일말의 죄의식조차 없이 자랑스럽게 지껄이며 긍정할 수 있는 것일까? 거의 뭐 사실상, ‘네 이마에 창녀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고 싶다’는 말과 같잖아요? 이런 분들에게는 ‘성노동자를 향한 낙인의 존재 여하는 성노동자가 정말로 부도덕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성노동자를 부당하게 대하기 때문이며, 낙인 그 자체는 낙인찍힌 대상의 존재론적 타당함의 여하를 조금도 설명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그가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소수자일 가능성을 드러낼 뿐’이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것조차 힘 빠지고, 하기 싫어지고, 이런 정성을 들이는 일조차 아깝게 느껴지고, 뭐 그런 것이죠.
3.3. (나 성노동자인데 동년배들 다 너 싫어한다 + 톤 폴리싱 시도)
톤 폴리싱*9이야 뭐,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소수자 운동에 참여하는 활동가들이나 그들을 지지하는 앨라이들이 잦게 마주하는 곤경이기도 합니다. 대중을 설득하고 포섭하려 시도하면서 그 어조와 태도가 부드럽고 친절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자세부터 글러 먹었으니 네 말은 무가치한바 나는 듣지 않겠다, 뭐 그런 흔한 평가의 말들 있잖아요. 완전히 외부자의 시선에서 팔짱 끼고 내려다보는 듯한, 본인이 이 모든 곤경에서 완벽하게 무관함을 너무나 잘 아는 자 특유의 태도.
하지만 제겐 뭐랄까, 이런 역동들에 애초부터 제대로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같은 말도 ‘싸가지 없’고 ‘재수 없’게 해버리는 나쁜? 좋은? 하여간 그런 버릇이 있어요. 대개 온라인 공간에서 논쟁할 때의 저는 상대를 설득시키려는 생각 따위 하지 않으며, 그저 이 싸움을 구경하는 이들만을 고려할 뿐입니다. 프로레슬러라도 된 듯이 말이죠. 그렇기에 부러 제 말의 톤을 비트는 건 꽤 괜찮은 시도가 됩니다. 너희가 날 인간 취급 안 한다는 것쯤은 아주 잘 알고 있어. 저는 그저 혐오자들이 자아내는 충격적인 것들을 저의 의도 아래 재구성하여 드러내고, 보여줄 뿐입니다.
이런 사유로 제게 고전적인 톤 폴리싱이 먹히지 않으니, 이제 저의 사랑스러운 혐오자들은 저의 태도 그 자체를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공격 아래, 성노동자 인권을 말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떼쟁이 안하무인인 거예요.
모든 페잉의 수신자는 일차적으로 저입니다. 제가 해당 페잉을 읽었을 때 그 메시지가 저의 존재와 입장, 나아가서 성노동자의 존재와 입장 등을 존중하기는커녕 무시하고 묵살하고 함부로 대했다고 느꼈는데, 기본적으로 제삼자인 분들께서 저보다 뭘 얼마나 더 깊이 있게 읽으셨길래 저의 판단을 글렀다고 하는지, 저로서는 참 알기가 어렵군요.
하지만, ‘나 장미계 운영하는 성노동자인데 그런 내가 보기에도 너는 답이 없고 정말 실망스럽다, 너 때문에 다른 장미계 분들까지도 욕먹고 피해를 보고 있지 않느냐’는 메시지는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너무나 흥미로운 나머지, 그가 정말로 장미계를 운영하는 성노동자인지, 아니면 흔히 도는 밈인 ‘나 청년인데 동년배들 모두 어찌어찌하다’, 즉 비-장미계-성노동자 분의 거짓부렁인지 알 길은 없지마는 사실 여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저의 존재 양식 및 성노동 운동에 전신하기 위한 여러 전략이 성노동자 당사자 전반에 그다지 고와 보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저는 매우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장미계를 운영하는 성노동자분들 중 상당수에게도 저는 그리 함함한 인물은 못 될 겁니다. 또한 저는 저 자신이 장미계, 나아가 성노동자 전반을 대변하기를 원치 않으며, 제가 그럴 수 있다고조차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와 이어지는 맥락에서, 저분들이 실제로 장미계를 운영하는 성노동자 당사자라 해서 제 입장이 변하지는 않을 겁니다. 사회적 소수자 당사자의 육성을 기계적으로 절대화하는 불성실하며 책임전가적인 기제 자체에도 워낙 비판적이거니와, 애초에 저는 이런저런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모든 성노동자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려 하지도 않는걸요. 이를테면, 캡처 본문에도 명시된 ‘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상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드럽고 고운 말을 써야 한다’는, 톤 폴리싱의 기제를 긍정하는 종류의 발화에 저는 조금도 동의하지 않으며, 이러한 주장에 그들의 성노동자 당사자성이 설득력을 더해준다고 느끼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그들을 성매매 경험 당사자로서의 삶을 직접 살아나가는 존재로서 경애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의견들을 장미계 성노동자 당사자의 진지한 의사 표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듯, 비-장미계-비당사자의 거짓말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가능성 아래 생각하자면, 자신이 당사자임을 주장하며 저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늘어놓는 일련의 메시지들에선 일말의 위화감마저 느껴집니다. 게다가 장미계를 운영할 정도로 자신의 성노동자 당사자 정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성노동론을 위시한 성매매 안팎의 담화에 대해 나름대로의 주관과 의견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단순히 성노동자 당사자이기에 ‘밀사’의 의견에 동조하고 지지한다뇨. 전술했듯, 대다수의 성노동자 당사자들에게 ‘밀사’는 마음 놓고 편들기에 그다지 좋은 상대가 아닌걸요. 자신의 기분을 심히 상하게 한 어떤 이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자신이 혐오해 마지않는 존재의 껍데기마저 뒤집어 써가며 그 존재인 척 거짓말을 해댄다니. 그런 행위가 폭로하는 것은 무엇인지, 저로서는 그다지 섬세하게 헤아려주고 싶지가 않군요.
3.4. 비창녀 워딩 모욕적이에요
그들이 ‘비창녀’ 워딩을 모욕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정상’인 쪽은 몸 파는 ‘창녀’가 아닌 ‘일반 여성’ 쪽임에도 이야기의 관점을 ‘창녀’ 쪽으로 둔 것 자체가, 마치 ‘창녀’인 것이 여자의 ‘디폴트’인 것처럼 느껴져 불쾌하다.
- 나는 ‘몸 파는’ ‘창녀’들처럼 (되는 대로, 쉽게, 자신의 몸 소중한 줄도 모르고 ‘막 굴리’며) 살지 않았고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에 ‘창녀’라는 워딩을 포함시키냐. 모욕적이다.
저는 이 발언들을 정리하면서, 새삼스럽게도 가부장제 하의 경전과도 같은 ‘성녀-창녀 이분법’, 그리고 이로써 이루어내는 분할 통치가 얼마나 지독하리만치 성공적인가에 대해 절감했습니다. 분해서 절로 아랫입술을 깨물 정도였지요. 저는 저 발언들의 저변에 짙게 깔린 공포를 읽었습니다. 여성 일반에는 거역할 수 없으리만치 깊게 내면화된 남성 호모소셜 발發 규율이 있고, 그 규율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은 절대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난잡하게 다루어서도, 자신의 섹슈얼리티가 난잡하게 다루어지게 두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은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제대로 된 여자의 자격’을 이야기하는 모든 언어는 여성 그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어떤 여성의 존재를 승인하며 어떤 여성의 존재를 파문할 것인가를 가르는 기준 역시도, 여성이라는 존재 본연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죠. 창녀이지 말 것. 이를 시작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바람직한 여성-됨 지침’은, 이를 받아들이는 여성들로 하여금 ‘이 지침을 심신에 육화해 제대로 수행해내면 나는 여성으로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로부터 말인가요. 자명한 실상은, 그저 가부장제가 성녀된 여성도 창녀된 여성도, 모두 필요로 한다는 오로지 그 하나뿐입니다. 남성중심적 권력으로 대표되는 그 모든 것들이 의도하는 것은, 자신들이 착취할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서로를 견제함으로써 비정치적인 일개인으로 분열되어, 스스로 연대의 가능성을 와해하고 남성 호모소셜 발發 규율, 즉 통제의 질서를 내면화하며, 그로써 남성-착취와 여성/비남성-피착취의 구도를 보다 견고하게 유지 및 재생산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관련하여 제가 작성했던 트윗 타래를 첨부합니다.
모두들 남자들의 ‘룸살롱 아가씨 취급’에 화를 내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 화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분노의 포인트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나는 창녀가 아닌데 창녀처럼 천대당했다’는 데에 있으면, 이미 ‘룸살롱 아가씨’인 이들은, ‘창녀’들은 어떡해? 그토록들 선을 그으시는 ‘룸살롱 아가씨’들에게도 이 일은 분노할 사안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물론이거니와 룸에서 일하는 아가씨, 성노동자들도 그런 취급 멸시 천대를 당해서는 안 되니까요. 그러니까 분노의 포인트는 ‘창녀 취급’이 아니라 노골적인 분할 통치에 있어야 하는걸요. 누군가가 당신을 ‘창녀 취급’함으로써 멸시하고 천대하려 들었다면, 당신은 그 누군가가 당신을 깎아내리기 위해 성노동자를 끌어왔다는 사실에 분노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노동자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멸시 천대받아 마땅한 이들인 양 구는 것, 실제로 그들을 멸시 천대하는 일에 분노해야 하고요. ‘감히 날 창녀 취급하다니’에서 멈춰버리면, 남성 호모소셜의 고전적인 지배 기법에 보기 좋게 말려들어가 버리는 것밖에 안 됩니다. 성녀-창녀 이분법이 괜히 여성주의의 주요 의제겠습니까? 그 이분법은 여러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10
한편으로 든 또 다른 생각은, 이러한 반응이야말로 가부장제를 위시한 남성중심적인 언어가 얼마나 여성 내지 비남성들의 삶을 전방위로 옥죄고 있는지 ‘여성-비남성 당사자’로서 처절하리만치 절감하기에 가능한 백래시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녀-창녀 이분법이 작동하는 핵심 중 하나는 ‘성녀’의 자리를 사실상 공백으로 만드는 역동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여기서 네가 더 창녀네 내가 덜 창녀네, 너는 창녀고 나는 창녀가 아니네 아웅다웅해도, 남자들 눈에는 다 똑같은 창녀야. 그러니, ‘바람직한 여성-됨 지침’을 곧이곧대로 수행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해당 지침은 여성으로 하여금 언제나 심신을 정결하게 할 것을 요청하는 동시에, 온 세상이 여성을 포르노적으로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일을 당연하단 듯이 상연하는 생지옥 한가운데에서조차 여성에게 아무 일 없단 듯 의연하기를 요구합니다. 여성으로 패싱되는 모든 존재들은 이러한 맥락 아래,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어느 정도씩은 모욕적인 성적 대상화를 일상에서 감내하게 됩니다. 이런 세계를 만들어놓고는, 금전을 포르노적 대상화 및 소비의 대가로 뚜렷하게 명시하는 가시적인 성적 행위의 거래에 여성이 매도자로서 참여하는 일은 ‘성실하지 못한’, ‘쉽게 살려고 하는’, ‘게으른’, ‘불공정한’ 일로 프레이밍합니다. 이 일에서 ‘창녀’로 멸시당하는 여성이 한 것이라고는, 자신을 성적으로 약취해놓고 은유와 암묵지로 눙치는 세계의 질서만을 체념적으로 수용하느니, 차라리 성적 거래의 내용을 선명하게 명시하는 성매매 또한 선택하고 승인하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발휘한 것뿐인데도요.
하여간 이 모든 것이 통틀어 가리키는 것은, ‘비창녀’를 지향하는 삶은 ‘창녀’된 삶과는 다른 맥락에서, 언제나 벼랑 끝에 선 것처럼 힘겹고 위태롭다는 것입니다. ‘창녀’와 ‘비창녀’라는 지칭만을 제시했음에도 이로부터 ‘왜 멀쩡한 나까지 창녀 취급하느냐’는 강렬한 분노의 정념이 성노동 혐오자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 ‘창녀 아닌 여성’으로 살아감으로써 주류의 관점에서 인정받기가 얼마나 고된지 절감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든 생각은, ‘아, 이것이 인셀의 출현이라는 것인가’였습니다. ‘인셀’이 가리키는 일차적 의미를 노골적으로 번역하자면 ‘번식 탈락’ 정도쯤 되겠군요. 갑자기 ‘인셀’을 언급하는 것이 조금 뜬금없게 느껴지시려나요. 하지만 제가 파악하기로, 여남을 가리지 않는 인셀의 출연에서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의 가호와 맥락 아래 발생하는 집단적인 억울함의 정조입니다. ‘나는 노력했으나 그 노력으로써 응당히 받아 마땅한 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정서죠. 부, 명예, 건강, 사회적 지위, 영향력에서부터 교양, 지식, 심지어 인간 관계나 심리적 지지에 이르기까지 절대다수의 자원이 빠짐없이 양극화된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그러한 구조 자체에 문제 제기하지 않고 이를 내면화 및 순응하기로 선택한 이들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분노 표출 방식은, 오로지 ‘자신이 판단하기에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나보다 약한 존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지도식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사태와 더불어 더욱더 날카롭고 극단적으로 드러나며, 절대다수의 공동체 내에서 ‘불결한 타자’로 여겨지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를 노골적으로 소외시키며 그들을 향한 부당한 폭력을 공회전시키는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창녀 워딩 모욕적이에요, 라는 언사와 이것이 담은 정서는, 이하 성노동 선동하고 미성년자 현혹하지 마세요, 나대지 말고 닥치라고요, 어딜 감히 멍청하고 더러운 창녀를 나와 같은 사람이라 말하죠?, 창녀짓은 여성 인권 하락시키고 본인 인권 존엄도 깎는 자업자득 짓거리죠 의 언사와 이것이 담은 정서를 모두 포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 모든 소요를 불러일으킨, 신자유주의-팬데믹 시대 성노동 혐오자들의 핵심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가 나로서 존엄하기 위해서 ‘창녀’들과 명확하게 다른 존재로 선 그어지고 갈무리되어야만 한다는 규약은 그대로이나, 근대와 더불어 본격적으로 태동해 핵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지는 이상적인 가부장의 상은 불안정 노동의 만연과 사회 안전망의 해체, 지역 및 가족 공동체의 와해로 인하여 완전히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가부장과 엇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획득함으로써 ‘창녀’나 ‘기혼 여성’이 아니어도, 즉 남성들에게 기대지 않아도(어떤 면에서 그들은 성노동자나 기혼 여성이나, 그 수행성의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걸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다는, 일견 ‘이상적인 가부장의 상’의 열화판이기도 할 ‘비혼 여성의 이상’ 또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원의 양극화와 사회적 안전망의 와해,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간 유대 가능성의 분열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가혹한 통치성은 ‘창녀’가 아닌 여성들, ‘비창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며, 이러한바 ‘창녀’와 무관한 삶을 살기엔 정서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점점 여의치 않아지기에―‘바람직한 여성-됨 지침’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교시하고 약속하였음에도! 그러나, 해당 지침은 ‘창녀’와 ‘여성 빈곤’이 긴밀한 상관관계로 묶여 있음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키고, 진실을 기만합니다.―, 표출 가능한 분노가 오로지 ‘창녀’, 그리고 ‘창녀’로 표상된 ‘밀사’에게 쏟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의 구조는 직전 문단에서 설명한 ‘인셀’의 정서 및 인지도식의 구조와 상당히 흡사함을, 더불어 확인할 수 있습니다.
3.5. 성노동 선동하고 미성년자 현혹하지 마세요, 나대지 말고 닥치라고요
‘발화할 자격’.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톤 폴리싱 이슈와 더불어 곧잘 마주하게 되는 곤경이 아닐까 합니다. ‘너에겐 발화할 자격이 없으니 입을 다물라’는 메시지로 요약되는 말들은, 겉보기에는 상당히 온건하고 부드러우며 섬세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흔히 ‘이러저러한 맥락상, 아무리 본인이 처한 처지가 있다고 해도 본인의 소수자성과 이로 인해 겪게 되는 차별과 혐오, 그로부터 발생하는 어려움 등을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이기 십상이며, 운동 전략의 차원에서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식의 외피를 두르지요. 그러나 성노동 그리고 성노동자와 관련된 말들에서는 이런 허울 좋은 껍데기조차 아깝게 느껴지는 걸까요. ‘너의 말들은 모조리 해로우니 모두를 위해 제발 닥치라’는 말들이 페잉 보관함에 그야말로 그득한 걸 한참을 넘겨보며, 저는 일말의 경이로움까지도 느꼈답니다. 이야, 2021년에 이게 되다니. 정말이지 성노동 의제는 인류 최후의 전장이 맞구나, 싶을 지경이었죠.
사실 저에게 쏟아진 사이버불링 메시지를 수집하고 선별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건 불링 메시지들의 원색적으로 저열한 인신공격이 아니었습니다. 쏟아지는 불링 메시지 사이로 들어온, ‘지금 처한 처지가 너무나도 어려워 성노동을 시작하려 하는데 혹시 조언이나 정보를 주실 수 있겠느냐’는 메시지의 존재였어요. 아, 질문 자체가 괴로웠다는 이야기는 아니니, 관련한 메시지를 주신 분들께서는 혹여나 마음 쓰지 않으시기를 바라요. 그저,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처한 세상이라고, 부정하기 어려운 엄정한 단언이라도 듣는 듯한 기분에 괴로웠을 따름입니다. 네, 아무리 누군가들이 성노동과 성노동자를 향한 불링을 쏟아낸다고 해서 이러한 현실을 쉬이 가릴 수는 없다는 듯이 말입니다. 저는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르는 저보다 성노동 입문 관련된 상담 및 정보 공유를 더욱 잘해주실 분이 계신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분께 연락 취해보실 것을 권유 드렸고, 이는 또 다른 불링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성매매를 하려 할 때 막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부추기며 인생 망하는 길로 밀어넣는다. 얼마나 여자를 미워하면 저렇게까지 하는 걸까’, 그렇게 말이에요.
하지만 성노동과 성노동자를 혐오해 단 한 명도 성매매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창녀’를 경멸하는 마음이 여성 빈곤의 현실을 해소하거나 무마시키지는 못합니다. 2017년 여름부터 성노동자 당사자들의 트위터 커뮤니티인 ‘장미계’가 생긴 것도, 역시 성노동자가 되겠다는 무거운 결심을 해야만 했던 수많은 여성 내지 비남성들의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성노동 혐오자들 때문에 더더욱이나 성노동자들에게는 서로의 처지를 진솔하게 공유할 그들만의 안전한 커뮤니티가 언제나 절실하고, 이것은 또한 제가 익산에서 룸살롱의 실장직을 수행하던 두 달여 동안 안심할 수 있는 성노동자들의 일터를 만들고 싶어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네, 툭하면 ‘밀사 포주’라는 허위사실 기술과 더불어 소환되는 그 일들 말입니다.
누군가에겐 절실한 삶과 생계의 문제에 대한 고민과 공감 그리고 상호 공조가, 성노동 혐오자들로 인해 몰인간적이며 비윤리적인 가해로 곡해되고 선동되는 이 모든 일들에 진지하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노동자 혹은 성노동자였던 이들이, 성노동자로서 혹은 성노동자였던 이로서 성노동자의 현실에 대해서 입을 열 때, ‘그런 말들은 어린 여자들을 성매매라는 구렁텅이로 꼬드길 뿐이니 제발 닥치라’ 일갈하는 속 편하고 가벼운 말들. 이런 식의 말마디들은 성노동자들을 더욱 고립되게 하고, 그만큼 더더욱 가파르고 위험한 곤경에 빠뜨릴 뿐입니다. ‘여성 인권’을 위해서라는 성노동 혐오자들의 허울 좋은 명분이 무색하도록 말입니다.
3.6. 성노동 아니고 성착취. 성매매는 비윤리적이고 끔찍한 행위입니다. 마치 장기매매 매혈 도박 마약 기타등등처럼요
이 역시 ‘그렇게 당당하면 창녀라는 거 숨기지나 마시든가요’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고전적인 성노동 혐오 레퍼토리입니다. 어찌나 틀에 박힌 그대로인지, 구태여 캡처를 일일이 가져오고 싶지조차 않을 지경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일전에 정리해둔 FAQ를 대신 첨부합니다. 꼭 성노동에 대해 뭐라도 얘기할라치면 매크로라도 입력된 마냥 이런 질문 들고 오시는 분들이 꼭 계신데, 여러분께서 그런 분들을 상대하실 때에 모쪼록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Q1. 성매매 자체가 한국에선 불법인데 이에 참여하는 행위가 어떻게 노동이 될 수 있습니까?
A1. 그렇다면 성노동이 합법/비범죄화된 나라에서는 그것이 합법/비범죄화되었기 때문에 노동일까요? 노동의 정의는 국가별 법제화의 여부에 따라 임의로 승인되거나 폐기될 수 없습니다. 노동이란 각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자원을 투여해 일련의 이윤 내지 성취를 획득하는 활동 제반을 이르며, 성노동은 이 정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바 성노동을 노동이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Q2. 그렇다면 당신은 사회구성원으로서 성노동자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성노동의 비전이나 장점 등을 나열하며 타인에게 추천할 수 있습니까?
A2.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 것이, ‘노동’이라는 지칭을 ‘사회적으로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적법하고 보편적인 활동의 표지’라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비단 성노동뿐만 아니라, 많은 임노동들이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승인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경향은 해당 노동을 주로 담당하는 계급이 얼마나 소수자성을 지니느냐에 따라 특히 도드라집니다―여성, 퀴어, 아동-청소년, 장애인, 유색인……―.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노동이니까 괜찮은 것’이 아니라, '노동이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질문자 님의 두 번째 질문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악독하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권할 수 없지요. 질문자 님도 성노동에 얹힌 낙인과 억압이 얼마나 두텁고 가혹한지 잘 아시니까 이렇게 질문하시는 것 아니십니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노동’은 ‘사회로부터 적법하고 보편적인 행위임을 승인받았다는 표지’가 아닙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노동 아니라 한다고 해서 해당 노동이 정말로 노동이 아니게 되지는 않습니다.
Q3. 성노동을 노동으로 생각한다면, 마약 제조업자나 브로커, 살인 청부업자 등도 노동자로 인정하십니까?
A3. 제 앞서의 답변들을 잘 되짚어보십시오. 다만 성노동과 언급하신 활동들의 차이를 이야기하라 하신다면, 저는 성노동이란 행위 자체는 타인을 침식하고 가해하는 것을 목적하며 그로써 이득을 취하는 범죄 행위가 아니다, 라고 말하겠습니다.
Q4. 노동이란 각 개인의 신체적/정신적 자원을 투여해 일련의 이윤 내지 성취를 획득하는 활동 제반을 이른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자발적인 매혈이나 장기매매 역시 찬성하십니까?
A4. 노동이 그러하다는 걸 정의로 지닌다는 것과 ‘성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한다면 장기매매나 매혈을 찬성하느냐’는 질문은 완전히 다른 층위일뿐더러 후자는 무슨 수로도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활동조차 아닙니다.
Q5. 저는 스스로의 신체 일부를 거래하는 행위 자체가 인간 존엄의 문제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매혈,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도구화는 피할 수 없겠습니다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잠시간 판매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빼내어 판매하는 종류의 일은 근력이나 지식을 판매하는 일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A5. 우선 성노동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잠시간 판매’하는 노동도 아니거니와―비록 구매자의 상당수가 성노동자의 노동 행위를 저렇게 ‘오해’하고 있다고 한들, 그것이 성노동 역동에서 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노동 내지 성매매의 작동 구조와 신체 일부를 빼내어 판매하는 행위의 작동 구조를 기계적으로 병렬시키는 것은, 후자의 행위에 ‘노동’ 수행이 개입되지 않기에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장기매매, 매혈, 인신매매, 성매매 등만이 인간 존엄의 문제에 있어 잡음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신다면 정말 큰 오산입니다. 이를테면 배달/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이나 소위 직업소개소란 곳에서 연결해주는 일용직 노동엔, 사실상의 (굉장히 많이 후려쳐진) 생명 수당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의 일용할 먹거리 절대다수를 생산하는 한국의 일차 산업이, 거기에 참여하는 외국인 노동자 다수를 곧잘 사망에 이르게 하리만치 극단적으로, 부당하고 가혹하게 착취하지 않으면 작동조차 불가할 지경이라는 사실은 이젠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화이트칼라는 예외일까요? 게임업계와 같이 노동집약적인 산업의 경우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사망이나 상해와 같은 산재로부터 안전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한국은 그 경제 구조의 특성상 더더욱, 노동집약적이지 않은 3차 및 4차 산업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이런 것들이 옳지 않다는 문제의식 아래 성매매를 폐절하고 싶으시다면, 그러나 성노동 혐오에 빠지지 않으면서 해당 문제의식의 일관성을 지키시려면, 성노동뿐만이 아닌 노동 제반이 본질적으로 착취적이라는 통찰 아래 모든 노동의 폐절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자가 되어야 마땅하실 겁니다.
Q6. 성노동과 성노동자의 존재 자체가 여성혐오적인 사회의 산물인데, 모두가 성노동이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여성혐오가 강화될 뿐이지 않나요? 성매매가 합법이 된다고 해서 성노동자들이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A6. 성노동은 미소지니에 기반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게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질문자님께서는 성노동뿐만이 아닌 노동 전반에도 마찬가지로 분노하고 계신 게 맞으신지요? 일전에 미래 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노동3권은 사실상 안전하게 착취당할 권리입니다.*11 애초에 노동 자체가, 해당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기반하지 않고서는 성립이 불가능합니다. 질문자 님의 통찰을 덧대자면, 저변의 노동일수록, 필연적으로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혐오 역시 착취와 함께 전제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유독 성노동에만 그런 통찰을 벼리신다면 창녀 혐오라고밖엔 달리 진단할 수 있는 바가 없겠죠? 따라서 제가 지향하는 성노동 운동은 사회주의에 사상적 기반을 두며, 노동 해방 즉 노동 전반의 완전한 폐절을 위한 과도기적 단계의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Q7. 페미니스트라면 여성혐오를 없애야 하는데 왜 여성혐오의 산물인 성노동과 성노동자를 지지하나요?
A7. 멸시당하고 혐오당하는 존재들이 사라지면 그들로 인해 존재하는―물론 사실이 아닙니다. 인과를 완전히 뒤바꾸셨죠. 차별과 혐오가 선행했기에 이에 희생당하는 존재가 있는 것이지, 멸시당하고 혐오당하는 존재들의 존재함 그 자체가 차별과 혐오를 존속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차별과 혐오 역시 사라지리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압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것이야말로 기득권과 억압하는 권력에 부역하는 사고방식입니다. 더러운 걸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끝나고 사라질 것 같나요? 선후 관계가 잘못되었잖아요. 성노동자가 존재하기에 미소지니*12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미소지니가 선행했기에 여성의 인신을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며 성노동과 같은 노동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인데요. 흔한 반성매매 논리에서마저 수요 차단을 가장 기본적인 반성매매 실천 방안으로 이야기하는데, 미소지니를 없애기 위해 성노동을 없애야 한다니…… 이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성노동론을 주도하는 성노동론자 그 누구도, 현대에 실존하는 성노동이 이상적인 노동이라 선동하지 않습니다. 성노동의 유지 및 존속에도 무관심합니다. 미소지니와 빈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멸시로 인해서, 억압은 성노동자가 맞닥뜨리는 일상과 세계 전반에도 상호교차적으로 발생합니다. 오히려 성노동의 인정을 주장하는 이들의 입장은 성노동이 어쩔 수 없이 노동의 속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노동 혐오자들로 인해 이마저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이때문에 성노동자 당사자들은 최소한의 노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며, 이로 인해 심대한 고통과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해방이 이루어지고 나서까지 성노동이 존속할지는 알 수 없지만―저는 사라질 거라 보는 쪽입니다―, 적어도 지금 당장 존재하는 이들의 고통을 없는 것 취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를 부정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억압하고 혐오하는 자, 즉 가해자의 논리라고밖엔 저로선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덧붙여,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서술하는 성노동의 노동성에 대해 명쾌하게 서술해주신 페잉 메시지의 일독 또한 권해드립니다.
3.7. 성매매는 불법입니다. 범죄자 주제에……. 세금이나 내고 말하세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으리만치 절 향한 사이버불링 중 상당수를 차지한 내용입니다. 성매매가 불법임을 강조하면서, 불법이기에 그러할 수밖에 없는 세금 문제를 거론하다니요. 성노동자가 합당하게 세금을 내길 원하신다면 성노동 운동에 참여하는 당사자 및 지지자들과 함께 성노동 비범죄화 운동을 조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3.8. 어딜 감히 멍청하고 더러운 창녀를 나와 같은 사람이라 말하죠?
제가 3.4. 비창녀 워딩 모욕적이에요 파트에서 이야기한 부분들이 현시대 성노동 혐오의 작동 기제이자 본질이라면, ‘창녀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나와 동급으로 놓지 마라’는 일갈은 현시대 성노동 혐오가 실제로 드러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적으로 원색적이지 않은 표현을 선택해 게시했습니다만 성노동자 혐오 및 사이버불링 트리거에 특히 주의하며 열람해주세요.
3.9. 좋은 대학 다니는 여자가 몸을 팔 리가 없잖아요?
이 플로우가 등장했던 계기는…… 설명을 하려는 시도마저도 구차하게 느껴질 지경이네요. 아래의 페잉이 시작이었습니다.
미소지니스틱*13한 사회 아래 자원의 분배가 극도로 성간 불균등한 사회에서, 성매매는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의 자원을 재-약탈하는 가장 고전적이고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입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처지가 낫게 느껴지는 현대의 여성-명문대생에게조차 예외가 아닙니다. 그게 엄연한 사실이기에 이에 동의하는 답변을 게시했는데, 성노동 혐오자들에게는 이 답변 자체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본인들께서 규율과 지침으로 배우고 내면화한 바에 따르면 명문대에 다니는 여성이야말로 성매매에서 가장 먼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겠죠. 급기야는 페잉의 질문에서 특정 대학이 거론되자, 마치 제가 해당 대학만을 특정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애써 내용을 곡해하며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해당 대학을 위시한 여대와 여대생들이 페티시와 성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비약마저 서슴지 않으시더군요. 저는 이 역시도 인셀의 인지도식과 상통하는 바 있다고 느꼈습니다. 학벌 등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을, 기득권이 아닌 ‘일개인이 떳떳한 노력으로써 얻어낸 정당한 산물이자 훈장’ 정도로 생각하며, 마땅히 이에 따라 확고부동한 이득이 뒤따라야 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명문대생인 동시에 성노동자인 사람들도 많다’는 명제는 이 믿음을 정면으로 부순 겁니다.
무엇보다 제가 분노하는 지점은, 이런 식의 언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당 명문대의 재학생인 동시에 성노동자인 이들을 지워버린다는 점입니다. 이런 방식의 여성 호모소셜 내 성노동자의 존재 지우기는 크게 두 가지 층위에서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 ‘창녀’와 ‘비창녀’ 사이, 즉 성노동자와 비-성노동자 사이의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미약하고 위태롭다는, 다시 말해 남성 호모소셜 발發 성녀-창녀 이분법의 작동 기제 및 실제가 비논리적이며 조금도 견고하지 못함을 인정할 수 없음.
- ‘바람직한 여성-됨 지침’에 따르면 성노동자, 즉 ‘창녀’는 예외적 존재이며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미약하고 적은 수여야 마땅하므로 그렇지 못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음.
결국, 다시 3.4. 비창녀 워딩 모욕적이에요 에서 서술한 바로 돌아가게 됩니다. 성노동 혐오자들은 사실상 남성 호모소셜의 공모자라는 씁쓸한 현실이 다시 한번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3.10. 창녀짓은 여성 인권 하락시키고 본인 인권 존엄도 깎는 자업자득 짓거리죠
우선, 이러한 관점이 만연한 현실을 개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모럴리스*14라는 시대정신에 힘입어 보편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인권 담론에까지 침투한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인권의 개념 및 실제와 전혀 맞지 않는 ‘파이’ 비유를 내세우며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은 ‘탈락해야 마땅한 것’으로 몰아가는 이러한 방식의 반동적인 인권 개념화는, 그들이 그토록이나 치를 떨고 싫어한다는 ‘일베’의 방식과 놀라우리만치 판박이입니다.
나아가 공동체 성원의 존엄과 인권마저 깎여나가게 한다는 사고관은 인권 운동의 핵심인 공감과 연대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이와 같은 증상을 단적으로 드러내기라도 하듯, 이러한 부류의 불링 중 온건한 축에 속하는 질문들은 ‘몸이 성하면 다른 일을 하지 왜 성매매를 해요?’라는, 정말 어디에서부터 지적해야 할지조차 암담해지는 말마디를 ‘의견’이라는 미명 아래 양산합니다. 더불어 성노동의 문제를 ‘일개인의 의지로 선택하고 멀리할 수 있는 것’으로 그 맥락을 무화하고 개인화함으로써, ‘성매매라는 현상은 그 자체로 여성 빈곤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기초적인 사실 인지조차 형해화합니다. 결국 진지한 현실 인식과 사유를 배격한 자리에 남게 되는 것은 ‘성노동이 아니라 성착취’라는 밈*15뿐인 것입니다.
4.
저는 정말이지, 최대한 가볍게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보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무겁고도 잔혹한 이야기를 어찌 시작하고 끝맺을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여느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이 이따금 ‘악플 읽기’를 컨텐츠화하듯, 저 역시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길고도 긴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니, 무엇보다도 짙게 느껴지는 감정은 후련함도 개운함도 아닌 짙은 슬픔입니다. 하긴, 글의 구상 자체는 한참 전에 마쳤음에도, 저는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정말 오랜 시간 주저해야만 했고 ‘현실 도피’를 해야만 했어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이 모든 것이 결국 다시금 ‘코로나 시대의 성노동자’ 의제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시대의 여성/비남성 생존’과도요. 여자들이 남자들의 모든 것을 뺏어갔다는 남성 인셀들의 목소리가 귀 따가우리만치 드높은 가운데, 팬데믹 시대 들어 청년층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했다는 조용하고도 건조한 신문 기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요. 팬데믹 시대의 뉴-노멀은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들의 만남과 연대의 장을 근본부터 분열시키고 각 개인의 고립을 촉진하여, 신자유주의의 인간 소외와 맞물려 우리의 생존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녀-창녀 이분법’이 무엇인지 압니다. ‘성녀-창녀 이분법’의 파훼법이 무엇인지도요. 그것은 ‘창녀’와 ‘비창녀’ 사이의 거리가 멀지 않음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너와 나의 아픔이 같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에요. 이 지긋지긋하리만치 고전적인 남성중심적 통치 전략을 근본부터 부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성노동 및 성노동자와 관련된 모든 논쟁이 어김없이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음이 언제나 사무치도록 마음 아팠습니다. 돌아오고 나면 나와 말을 섞던 상대는 항상 어딘가로 가버리고, 나는 늘 같은 이곳에 혼자 남아요. 하지만 사실 당신은 당신만의 방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유대의 가능성보다 익숙한 고립을 택해, 그저 이 자리에서 등을 돌리기만 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비창녀’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창녀’로부터 시작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은 가부장제,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강자의 독식을 합리화하는 저 모든 반동적인 언행과 구조로부터입니다. 우리는 구조 바깥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이 구조의 반동성과 몰인간성을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차츰 밀어낼 수는 있을 겁니다. ‘비창녀’의 지칭에 누구도 모멸감을 느끼지 않는, ‘창녀’와 ‘비창녀’의 지칭조차 필요 없는 세계가 머지않아 우리의 것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또 그러할 수 있음을 확고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 곧 다시 만납시다.
1. 페잉 (Peing) : 익명 질문을 모집하며, 모집된 익명 질문에 직접 답변하는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
2. 보돕보 : ‘보지는 보지를 돕는다’의 준말로써, 페미니즘의 맥락 아래 여성 간 유대 및 상호 공조를 상징하는 단어.
3. TERF : 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t, 트랜스젠더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스트
4. SWERF : Sex worker-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성노동자 배제적 래디컬 페미니스트
5. HRT : Hormone replacement therapy, 호르몬 대체 요법
6. SRS : Sexual Reassignment Surgery, 성별 재지정 수술
7. 시스터후드 : Sisterhood, 자매애
8. 보토피아 : 보지-유토피아의 준말
9. 톤 플리싱 : 주로 사회적 소수자들의 발화에 가해지며, 발화가 담은 메시지 자체보다는 발화가 지닌 어조 등을 공격해 메시지 자체를 무화하려는 시도의 일환.
10. https://twitter.com/krjfL/status/1373117020108058632
11. https://twitter.com/ongoingwithyou1/status/1255903878752550912 “노동3권은 안전하게 착취당할 권리죠. 초과노동도 불안정노동도 야간노동도……. 아니 근본적으로 어떠한 부불노동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지.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하고. 문제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걸 모르거나 모른 척 넘어가버리면 이제 ‘사람이 꼭 노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같은 원론적으론 맞지만 지금 사회 현실에서는 아무 쓸모없는 한가한 소리를 해방론이랍시고 설파하게 됩니다. 주류 페미니즘 일각이 노동계급에게 보내는 은근한 멸시의 시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죠. 모든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이 그렇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식의' 반성매매 페미니즘은 결국 자기 자신의 정상성 개념을 수호하기 위해서 가장 취약한 자매들의 곤경을 없는 척하는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구좌파들한테 부르주아 이념이라고 욕먹어도 그래서는 할 말이 없음. 그러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정면 직시하는 데서 비로소 변혁적 계급의식 같은 것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러지 않는 것은 본질적으로 나이브한 계몽 운동을 벗어날 수가 없음. 물론 나이브한 계몽 운동이라도 필요한 곳들도 세상에는 많지만요.”
12. 미소지니 : Misogyny, 여성혐오
13. 미소지니스틱 : Misogynistic, 여성혐오적
14. https://twitter.com/krjfL/status/1428244961443467268 “인류 역사상 선악이 가장 와해되어 지극히 상대적인 것으로 곡해되는 시대. 모럴리스가 시대정신인, 선악을 가르는 기준의 단순명료함과 칼같은 절대적임을 그 누구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 사실 여하를 떠나 보편이라는 가치가 더는 공동선을 담지하지 못한다는 감각에 강력하게 사로잡히며, 더는 보편이 보편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된 시대. 이 시대는 그야말로 부당함과 괴로움에 수몰된 형태며, 파편화되어 도처에 그득한, 책임소재가 ‘지워진’ 죄악에 모두가 절어 있기 때문. 누군가가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것만으로는 스펙터클하게 어필될 수 없는 시대. 물화와 타자화로써 스펙터클을 인위적으로 극대화해, 자신이 얼마나 압도되었으며 지독하게 진심인지를, 기를 쓰고 필사적으로 전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로지 그런 행위만이 각자 존재의 항상성을 유지시키는 것처럼. 우리의 몇 마디 말은 정말로,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그야말로 언령의 시대… 그러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말의 힘과 무거움을 필사적으로 불신하는.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더더욱 비종교적인 신앙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
15. 밈 : Meme, 사람에서 사람 사이 정형화된 채 전파되는 어떤 생각, 스타일, 행동 등의 총칭. 밈이 된 것들은 고민과 사유되기보다 그저 복제되고 전파되는 것으로 그 기능의 목적을 충족할 따름이다. 한국어 위키피디아 일부 참조.
작가 소개글 : 2011년 봄부터 2014년 여름까지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의 상근활동가로 일했으며, 당시의 경험과 공과로 말미암은 문제의식을 토대로 원고 <우리의 오랜 연대를 위하여>를 작성, 2019 성노동 프로젝트 제1회 성노동 글쓰기에 투고했다. 보편에 속할 수 없는 파손된 자들에 대한 관심을 줄곧 이어가고자 노력하며, 그 고민의 산물을 트위터 계정에서의 담화 생산, 브릿G 페이지에서의 소설 탈고 등으로 드러내고 갈무리해 왔다. 부서진 자들의 영원한 생잔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