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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논평] 최대한 많은 기회를 누리며 있는 힘껏 자유롭기를

규제된 닉네임 2026. 5. 19. 16:38

 4월 23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에서 <양지와 음지라는 구분을 거부한다. – 인터넷 방송 BJ 여성의 광고 모델 기용 취소 및 사이버몹에 부쳐>라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익명화 했지만 분명하게 BJ 과즙세연을 둘러싼 논란을 겨냥한 글이었어요.
 
 최근 BJ 과즙세연은 화장품 브랜드 시드물과 협업 세트를 출시, 광고했다가 소비자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본인이 관여한 시드물 광고 기획을 모두 철회 당했습니다. 이전에도 그는 제작이 완료된 자신의 포토이즘 프레임을 출시 직전에 취소당한 경험이 있어요. 개그우먼 이수지-BJ 과즙세연을 따라 해 웃음을 유도했었죠-의 유튜브 프로그램에서 촬영을 마친 뒤 삭제 및 비공개 처리를 당하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는 늘 “음지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양지로 나오는 것에 대한 항의”*가 있었습니다.
 
 한사성의 성명문은 섹슈얼리티로 수익을 창출하는 BJ 여성이 저급하게 여겨지며 차별과 혐오를 겪는 상황을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상황과 연결합니다. 왜냐하면 성폭력 피해자가 보호할 만한 여성인지 아닌지 급을 나눠 평가하는 잣대는 BJ 여성을 양지에 나와서는 안 될 음지 여성으로 분류하는 잣대와 같은 것이거든요. 일단 한번 성적인 존재로 드러난 여성은 그 계기가 폭력 피해든 인터넷 방송이든, 성적 행위의 자발성 여부와 관계없이 비슷한 판정 아래서 비슷한 취급을 받곤 합니다. 문란한, 더러운, 훼손된 여성, 여자 망신시키는 수치스러운 여성, 우리 곁에서 쫓아내야 할 그런 여성 취급이요.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몸매를 부각하는 춤을 추는 BJ 여성의 몸은 음란하고 유해하다고 손가락질받지요. BJ 여성의 몸을 향한 손가락질에 함께 하는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BJ 여성의 몸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원치 않게 촬영되거나 동의 없이 유포된 ‘일반’ 여성의 몸, 사이버성폭력 피해자의 몸 또한 법, 제도, 사회적 인식 측면에서 BJ 여성의 몸처럼 음란하고 유해한 것 취급을 받습니다. 불법촬영물을 삭제하고 규제할 때도 그 영상이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음란물이라는 논리로 유포를 중단시키는 방법을 써야만 할 때가 있어요. 그게 지금 당장 모든 여성의 몸이 공통으로 처한 현실입니다. 마치 여성의 몸 자체가 문제인 것처럼 일이 돌아간단 말입니다.
 
 자신의 성폭력 경험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공개된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는 그 자체로 문제인 몸, 보호할 만한 여성 자격에 미달하는 ‘급’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BJ 여성과 ‘급’이 낮은 성폭력 피해자를 신중하고 섬세하게 구분해 대우하지 않아요. 따라서 사이버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자주 “급이 낮은 여성으로 여겨짐에 따른 고통”**입니다. 사이버성폭력 가해자의 범행 의도부터가 여성의 ‘급’을 낮춰 여성이 양지에 나아갈 권리를 박탈하기 위함일 때도 있을 정도니까요. 한사성이 임의로 “감히 성폭력 피해자와 BJ 여성을 동급에 놓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성폭력 피해자와 어떤 BJ 여성은 이미 동급에 놓여 있습니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덜기 위해서는 여성의 급을 나누는 평가 자체에 저항하며 BJ 여성도 낙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한사성의 성명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이하 차차)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해볼게요. 같은 얘기라도 사뭇 다르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차차는 BJ 여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이 최대한 많은 기회를 누리며 있는 힘껏 자유롭길 바랍니다. 여자가 옷을 좀 덜 입으면 뭐 어떻습니까. 여자가 카메라 앞에서 섹시 댄스 추는 게 뭐 어때요. 여자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그렇게 일하는 이유가 다 있겠죠. 예를 들어 그 이유가 빈곤이다, 그래서 사회의 정의로운 개입이 필요하다 하면 개입을 해야겠지만, 어쨌든 BJ 여성 개인의 인생은 그때그때 본인이 가장 행복한 방향으로 이어지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부당한 계약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금전을 갈취당하거나 원치 않는 노동을 강요받는 상황은 아닌지, 건강은 괜찮은지 등등이 궁금할 뿐, 기본적으로 BJ 여성의 일은 생계를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응원과 연대를 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이는 BJ 여성의 일이 완전무결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BJ 여성의 일 또한 노동자인 BJ 여성과 사회 전반을 얽으며 특정한 영향력을 만들어냅니다. 그 영향력이 아주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 그에 따라 일정 부분 노동자 개인에게도 노동에 관한 책임을 묻게 되는 지점이 생긴다는 점을 압니다. 그러나 차차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다른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입니다. BJ 여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로 사람을 상품화하고 직간접적으로 사람을 살해해 온 거대 자본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은 BJ 여성처럼 비난받지 않고 ‘양지’에서 선망받으며 살아갑니다. 아동과 여성을 착취하며 전쟁 범죄에 가담한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은 절대 BJ 여성처럼 천대받지 않아요. 심지어 ‘양지’에 나와 있는 섹시 콘셉트 여자 아이돌의 안무와 BJ 여성의 동작이 거의 동일한 순간에도 BJ 여성의 행동은 여자 아이돌의 행동보다 특별히 더 저질이라고 여겨지곤 합니다. 이렇게 비슷한 일을 했는데도 BJ 여성만 가혹하게 비난하고 배제하는 현상의 기저에는 앞서 언급했던 여성의 급을 나누는 문제가 있습니다.   
 
 BJ 여성과 유사한 일을 하는 남성들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 곁에는 다양한 종류의 남성 성노동자가 존재하고, 미디어에도 반복 재현되지요. 아동·청소년도 쉽게 볼 수 있는 방송에서 아예 상의를 전부 탈의한 채 맨 가슴을 보여주며 춤추고 연기하는 남성 연예인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남자들이 남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나쁜 본보기가 돼서 다른 남성을 위험에 처하게 할 거라고 진지하게 우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남성 집단의 권력은 남성 개개인이 성적 활동을 좀 노출한다고 해서 위협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BJ 여성이 아닌 이러한 성별 권력 격차입니다. 똑같이 옷을 벗고 몸을 흔들며 돈을 벌어도 여자가 한 일과 남자가 한 일의 의미를 다르게 만드는 차별, 여자를 남자보다 불리하고 취약하게 만드는 불공정한 사회 구조 말입니다.  
 
 좀 더 단순한 층위로 올라와서, 최근에 있었던 BJ 과즙세연 관련 사건을 생각하며 다시 말해 보겠습니다. BJ 여성이 다른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녀가 다른 일을 해선 안 되는 이유로 그녀의 ‘급’을 따지지는 맙시다. BJ 여성의 일을 사라져야 할 ‘음지’라고 규정하는 동시에 ‘양지’로의 진입은 막는 것은 사실상 ‘음지’ 여성에게 영원히 욕먹는 삶과 죽음,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그런 양자택일을 강요 받아서는 안 됩니다. BJ 여성은 ‘음지’에 발을 걸친 채 ‘양지’로 나와볼 수 있습니다. ‘양지’가 마음에 들면 거기서 살아볼 수도 있고요. 그러다 나중에는 ‘음지’와 ‘양지’ 구분 없이 모든 여성이 어디서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다면 가장 좋겠지요.
 
 일각에서는 BJ 여성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완전히 성적인 활동과 단절한다면 ‘BJ 여성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사회 활동을 제약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더군요.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차차는 지난 7년의 활동 기간 동안 여성의 탈성매매가 어떻게 좌절되는지 지켜봐 왔습니다. 당사자의 허락 없이 이 자리에 구체적인 예시를 나열할 수는 없지만,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BJ 활동 등의 성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들키고 나면, 그 여성은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말단 사무직 한 자리를 지키기도 버거운 처지로 추락하곤 합니다. 그와 같은 현상은 여성의 현재 태도와 별로 상관이 없었습니다. ‘양지’로 기어 나오지 말고 ‘음지’로 돌아가라는 압박, 한번 ‘창녀’였으면 계속 ‘창녀’에 머무르라는 압박은 여성이 아무리 고개 숙여 과거를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도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달리 봐주길 빌며 자기 잘못이 아닌 일까지 사죄하던 여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납니다. 이런 얘기가 전부 납득 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BJ 여성을 타인으로서 존중하는 선에서라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어떨지 상상해 보게 돼요. BJ 여성을 찾아가서 저주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의 열정이 관계없는 타인을 향한 무관심 정도의 온도로 사그라든 세상에서는 더 많은 여성이 탈성매매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이 여자 이런 여자다, 다른 일을 해선 안 될, 비난 받아 마땅한 여자다’라고 알리려는 의도로 BJ (출신) 여성의 사진이나 영상을 타인에게 유포하는 현 세태도 구시대의 악습으로 사라져 있지 않을까요. 
 
 BJ 과즙세연은 방송 중 “언제까지 방송을 할 수 있을까? 이것저것 해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차차는 그 목소리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BJ 일에 고민이 많은 BJ 여성들이 다른 일도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는 걸 다 해볼 수 있기를 바라요. 그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상처를 덜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언제나 응원하고 연대하겠습니다. 
 
 
*한사성 성명서 중 "모두 ‘음지’에 있어야 할 존재가 ‘양지’로 나오는 것에 대한 항의였다."라는 문장에서 가져온 표현입니다.
** 한사성 성명서 중 "사이버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은 ‘나’라는 존재를 이 세계가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구성된다. 함부로 대해도 되고 보호할 가치도 없는, 즉 여성의 섹슈얼리티 위계에 따라 나뉜 ‘급’이 낮은 여성으로 여겨짐에 따른 고통이다."라는 문장에서 가져온 표현입니다. 
*** 한사성 성명서 댓글 반응 일부를 요약하였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비영리단체가 성폭력 피해자와 벗방 비제이들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이게 무슨개소리십니까ㅜㅜ성폭력피해자와 지가 돈많이벌고싶어서 돈받고 가슴 흔드는애들이랑 같은선상에 놓는다뇨","스스로 존엄성을 팔고 인권을 팔아 돈을 버는 bj를 성폭력 피해자에 함께 엮어 비유하듯 말하는게 여성단체가 추구해야하는 가치가 맞나요?","벗방비제이를 성폭행 피해자랑 비교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