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성노동프로젝트 21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멜섭왹비 : 표착될 수 없는 지표

표착될 수 없는 지표 멜섭왹비 이 글은 성폭력 묘사를 포함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테이블 아가씨로 방에 들어갔는데, 얼마 뒤에 갑자기 손님이 바지를 탈의하더니 자신의 성기를 빨라고 시켰습니다. "오빠 저는 테이블 아가씨라 이런 건 부끄러워요"라고 말하며 술이나 먹자고 했습니다. 손님은 자긴 분명 작업 아가씨를 불렀다면서 그럼 네가 왜 온 거냐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고, 사장을 불러오라고 시켰습니다. 바깥에 있는 사장에게 손님 이야기를 하니, “너 작업 아가씨 아니야?”라고 물었습니다. 사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실장과 전화하더니, 한숨을 푹 쉬었어요. 알고 보니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꼬여 실장은 절 테이블 아가씨로, 사장은 작업 아가씨로 착각하고 방에 넣어준 거였습니다. 작업이란 게 뭔지 ..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교두애 : 항상 사회에게 바라는 것

항상 사회에게 바라는 것 교두애 첫 경험은 스무 살이었습니다. 돈이 필요했고 크게 부담되는 제의가 아니었기에,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데이팅 어플을 통해 연락해 온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분과 데이트를 했습니다. 마땅히 건수를 무는 방법도 모르고, 조언을 구할 수 있을 만한 분도 없었기에 유일한 수단인 데이팅 어플에만 매달려 사람을 찾았습니다. 업소도 고민해보았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탈가정이나 업소 취업 역시 어려울 것 같아 조건만남의 형태로 건수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이런저런 시민 단체에서 활동했던 덕분에 운 좋게도 성노동 경험이 있는 지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런저런 조언을 들어가며 나와 맞을 것 같은 업종을 찾았을 때 코로나가 터지고 세계적인 전염병 사태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평소라면 친구를..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유하 : 성노동자의 낙태와 재생산권을 생각하기

성노동자의 낙태와 재생산권을 생각하기 유하 한국에서 임신 중절권을 위한 싸움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2016년 검은 시위, 2018년 광화문 시위, 2019년 헌법재판소 헌법불합치 판결에 이르는 변화는 급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실상 낙태를 둘러싼 투쟁은 2016년 이전까지 큰 흐름 속에서 생존권을 호소하는 긴 시간을 지나왔다. 기성세대 페미니스트는 수많은 반동을 마주하며 정치화 작업을 쌓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들어 온라인으로 결집한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임신 중절에 대한 최대한의 권리를 상상하고 목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적극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의 여성주의 운동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을 이뤄냈으며 앞으로의 과제들을 안고 있다.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의 과제 임신 중절권을 포괄적인 재생산권..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익명 : 성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익명 엄마가 데려오는 아저씨들은 나를 더듬는 대가로 용돈을 쥐여주곤 했다. 어떤 아저씨는 나를 모텔에 데려가서 강간하려고 했고, 돈을 줄 테니 섹스를 하자고 하기도 했다. 섹스는 돈이 된다는 걸 나는 이미 어릴 때 알고 있었다. 첫 섹스 이후에 나는 랜덤채팅 어플을 찾았다. 이제 섹스를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용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건만남을 처음 시작한 건 그때였다. 처음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람은 A였다. 나는 A에게 섹스하면 얼마를 줄 수 있냐고 물었다. A는 5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나에게 5만 원은 굉장히 큰돈이었고,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만나고 보니 A는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나를 조심스럽게 대하고 매너 있게 행동하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나는 콘..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이오 : 성노동자에겐 없다

성노동자에겐 없다 이오 2년 동안 잘 살고 있던 집주인과 올해부터 자꾸 사소한 일로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샀더니 집 앞 어떤 공간에도 남은 공간이 없다고, 왜 자기한테 허락도 안 받고 마음대로 자전거를 사왔냐는 얘기도 듣고, 세탁기가 고장나서 고칠 때에는 ‘왜 말도 안 하고 혼자서 세탁기를 고치느냐, 미리 말을 해야지 우리도 대비를 할 거 아니냐, 그 집에서 전화 오면 이제는 뭘 고쳐달라고 할까 싶어서 겁부터 난다’는 타박도 들었다. 우리집은 참 말 잘 듣는 세입자였다. 자전거도 그냥 세워 둔 게 아니라 어디에 세워 둘지 집주인과 조율하기 위해 전화를 한 거였고, 쓰레기 한번 무단으로 투기한 적 없고, 내달라는 공과금도 밀리지 않고 잘 내고, 다른 집에서 웃고 떠들고 난리를 쳐도 시끄럽게 ..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쟁뉴 : 왜 성노동자에게는 그렇게 말하는가

왜 성노동자에게는 그렇게 말하는가 쟁뉴 1. 특수화, 이중잣대 특수화하는 것은 무언가를 부정하는데 아주 손쉬운 접근법이다. 여자는 특수해. 남자와 달라. 여자는 이러이러한 존재야. 너는 유별나고 특이한 존재이며, “정상”이 아니야. 그리고 그 기술(記述)은 곧장 모순에 부딪힌다. -여성은 흔히 머리가 비어 있고 남자에게 들러붙어 명품 타령을 하는 존재이지만, 경쟁 상대가 되는 순간 꼼꼼하고 독한 최악의 상대다. -여자는 순결을 지켜야 하지만 나에게는 다리를 벌려줘야 한다. -여자는 나의 섹스 상대지만 내 딸은 외박조차 하면 안 된다. -여자들은 밥보다 비싼 커피에 돈을 쏟아붓는 멍청한 존재지만 밥은 내가 사고 여자는 고작 커피나 사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는 감쪽같이 여자화장실에 들어가 ..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윤해후 : 바이러스를 드릴게요

윤해후님의 글, '바이러스를 드릴게요'는 규제가 반복되는 문제로 인해 윤해후님의 브런치 페이지(https://brunch.co.kr/@kimraina/442)에 업로드되었습니다. 성노동 프로젝트 4회 준비팀은 이의 제기 준비중에 있으며, 티스토리 페이지가 복구되는 대로 다시 공지드리겠습니다.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데파코트 : 보이지 않는 노동 속의 노동

보이지 않는 노동 속의 노동 데파코트 로맨스 진상, 그들은 누구인가? 성판매 여성의 인권과 노동권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한 남성 필자가 ‘성구매를 하면 성노동자와 진짜 연애로 발전된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 것을 읽고 뜨악한 적이 있다. 1시간에 15~20만 원의 임금을 받고 노동을 제공하는 성노동자에게 일적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자신과 섹스 파트너를 하자고 요구한다. 자신보다 10~20살가량 나이 차이가 나는 성노동자에게 ‘네가 이런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나 이외에 다른 남자들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결혼하자’고 한다. 업장에서 노동하는 성노동자에게 ‘술집 말고 밖에서 만나면 안 되냐’고 묻고, 외부 노동에 대한 임금을 지급해줄 것인지 물어보면 ‘왜 우리 관계를 돈으..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타래 :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경계에 대하여 -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과 성노동자의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한 발화를 중심으로

자발성과 비자발성의 경계에 대하여 -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과 성노동자의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한 발화를 중심으로 타래 1. 성착취 피해자를 바라보는 비당사자의 시선에 대한 문제 2018년 6월 27일 개봉한 영화 는 일본군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 중 한 사람인 서귀순 노인의 대사를 통해 중요한 지점을 시사한다. 영화 전반부에서 그는 다른 피해 여성들과 자신의 포지션을 별도로 구분 짓는 것 같은 언동을 보여주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내는 뭐 그래도 ‘위안부’는 아인데…….” 이 같은 대사가 실존 인물의 증언에서도 나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발언이었는가에 대해서 적어도 여기서는 판단이 무용하다는 것을 우선 언급해둔다. 사실 이러한 발화에 내재된 사고방식조차도, 구조를 지탱하는 사회인식에 의해..

[2020 성노동 프로젝트 제 4회] 스텔라 : 코로나 시대에 성노동자로 살아남으며

코로나 시대에 성노동자로 살아남으며 스텔라 "나는 코로나 걸려도 되니까 키스해줘." 손님이 말했다. 어차피 애무를 해야 하는 곳이니 키스를 안 해도 감염 위험이 있는 것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키스를 해줬다. "코로나 걸려도 되니까"라는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대구에 1차 대유행이 시작되고 한창 동선 추적이 심한 시기였다. 그런데도 코로나 걸려도 상관없다니. 부모와 같이 살고 있고 이미 부모에게 성노동을 한다는 사실이 아웃팅되어 몰래 성노동을 하는 나에게 코로나 감염은 정말 치명적인 일인데 말이다. 대구 키스방은 대부분 원룸형이다. 원룸형 키스방은 원룸의 한 방을 빌려 그곳에서 손님과 키스, 애무 등을 하는 곳이다. 한 방을 매니저들이 돌려쓰고 매시간 다른 손님이 오는 원룸형 키스방의 특성상 감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