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성노동자추모행동 11

[후기] 하은빈(이끼) :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후기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하은빈(이끼) 젯밥으로 상에 오른 사물들이 반짝이고 있다 담배 케익 딜도 바이브레이터 양초 콘돔 만화 알약 연고 섹스가이드북 즐거워하고 있잖아 한번도 사랑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는 듯이 조명이 따뜻하고 파티가 한창인데 사람들이 곳곳에서 훌쩍이고 있다 마음놓고 슬퍼할 수 있어서 기뻐하고 있는 중입니다 괄호쳐진 이들을 셈할 손이 모자라 문상객들이 너도나도 손을 보탠다 여름 원피스를 입고 혹독한 한파를 뚫고 온 이가 말한다 이것은 몇 해 전 입으려 했던 수의입니다 사회자가 말한다 축하합니다 아무쪼록 계속해서 죽는 데 실패합시다 크림과 체온과 병균과 추문을 푹푹 찍어 나누어먹고 눈가의 짠물을 닦아주느라 부산을 떨며 손에 손잡고 박수를 치고 장례식에 모여앉은 사람들이 생일축하 노래..

[후기] 팔도 :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후기

‘우리’의 형식 -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후기 팔도 요즘 호명에 관심이 많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론을 통해 설명한다는, 호명의 구조에 대해 찾아보면 대충 이런 예시가 있었다. 경찰이 “어이, 거기!” 하고 지나가는 누군가를 부른다. 행인은 돌아본다. 개인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과 마주쳐서 어떤 동일성을 부여받을 때 주체가 돌발하고 어쩌고··· 근데 솔직히 뭐라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이런 장면을, 그러니까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고 돌아서는 장면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작년 차차가 주최한 성노동자 추모행동 때는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그러고 보면 이때도 행사 ‘안전’을 관리하는 경찰들이 있었다.) 폭설 속에서 걸그룹 음악에 맞추어 가사를 함께 외치고, 웃고, 춤추며 걸었던 기억이 아직, 그리고..

[후기] 희음 :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후기

언저리 넓히기 -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후기 희음 이 장례식에 든 건 2022년 12월 17일 저녁이었다. 바로 전날, 비슷한 시각에 나는 이태원역 앞 도로에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49재 추모제에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희생자들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되었다. 이름을 듣고 또 되뇌면서 함께 아파하고 분노했다. 다른 일로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도 잠깐씩은 숙연해졌다. 쨍하게 추운 날에 하도 울어서인지 나중엔 머릿속이 징징 울렸다. 추위와 분노와 슬픔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곳은 다를 것이었다. 차차 측은 종종 파티룸으로 쓰이기도 하는 아늑한 공간을 빌려두었다. 알맞은 온도 안에 머물다가 돌아갈 수 있겠구나 했다. 정말이지 이곳은 사랑과 다정으로 가득했다. 한 사람도 허투루..

[후기] 탈해 :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후기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후기 탈해 성노동자 추모행동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말 그대로 세상을 떠난 성노동자(를 비롯한 여러 취약한 존재)를 기리는 행사라고 했다. 진행자인 유리님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좀 안 하려나, 안 해도 될까 싶었으나, 어김없이 각지에서 성노동자가 부당한 죽음을 당했기에 어김없이 행사를 준비했다고. 아무래도 그럴 것이다. 대체로 취약한 존재가 먼저 떠난다, 마치 그것이 중력 같은 물리 법칙이라는 듯이. 하지만 그 죽음들은 철저히 사회적이다. 사회는 이들을 부르는 방법조차 모른다고 항변하겠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에서 이 부당함은 사회적인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존재들, 불려지지 않는 존재들, 말이 되지 않는 존재들, 말하도록 허락받지 못한 존재들. 언제 어디서 어..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보통(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발언문 공유 보통(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띵동에 놀러온 청소년이 따뜻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고 소파에서 뒹굴다 일을 하러 갑니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소란해집니다. 말하진 않았지만 그이가 하는 일이 성노동일 거라 예상될 때, 배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안부를 기다립니다. 띵동은 위기에 처한 청소년 성소수자를 상담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찾아오는 이 중엔 당연히 성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노동 청소년을 만나면 말해준 용기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어떤 머뭇거림 속에서 말을 해주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이와 함께 보다 안전한 일자리나 복지제도를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청소년이 스스로 자립하고 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정여름(International Waters 31)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발언문 공유 정여름(International Waters 31) 일면식조차 없는 한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그는 A 씨라고 불립니다. 2022년 8월 16일 부산출입국외국인청 보호실에 입소한 A 씨는 여섯 시간 만에 사망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8월 23일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산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A 씨가 정신적 이상행동을 보인다고 ‘판단’하여 수갑 등 보호 장비를 채우고 ‘정신’ 치료를 받을 시립의료원으로 이송하였는데, 대기 중 열이 40도가 넘는 걸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학병원으로 재이송되는 과정에서 A 씨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같은 날 올라온 또 다른 기사 타이틀은 이러합니다. “40대 태국 불법 체류자, 자해 후..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달연(International Waters 31)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발언문 공유 달연(International Waters 31) 안녕하세요. 저는 외국인보호소 폐지를 위한 물결 international waters 31에서 활동하고 있는 달연입니다. 제가 활동하고 있는 INTERNATINAL WATERS 31은 국경없는 모두의 바다라는 뜻을 가지고 외국인 보호소 철폐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보호소의 이름을 한 구금소인 그곳에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지구의 땅을 쪼개어서 만든 얄팍한 국경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내몰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계는 차별과 혐오를 만들었고, 그곳에서 은폐되는 폭력의 논리가 ‘행정’이라는 변명을 낳았습니다. 행정의 이름을 한 구금은 ‘보호’라는 딱지를 달고 사람들의 삶을 난도질합니다. 성적 취향을 이유로,..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나미푸(연구모임POP/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발언문 공유 나미푸(연구모임POP/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 안녕하세요! 나미푸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소모임이자 감염인 자조모임인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의 운영자를 맡고 있고, 게이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섹스의 맥락에서 약물 사용의 위해 요소를 감소하기 위한 담론인 켐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연구모임POP의 구성원입니다.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에 초대해 주시고, 발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추모 발언을 하겠다고 약속은 해 놓고, 몇 날 며칠을 컴퓨터 앞에서 워드 파일을 열어 둔 채로 자기 소개 외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 커다란..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소주(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발언문 공유 소주(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안녕하세요,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소주입니다. 오늘의 이 추모행동, 장례식을 설명하는 언어, “아픈 존재로서의 연결, 약을 사용하는 존재로서의 연결, 병을 옮기는 존재로서의 연결, 무엇보다, 노동하며 생존 중인 존재로서의 연결” 을 키워드 삼아 이야기를 나누어 드려봅니다. 첫번째, “아픈 존재로서의 연결”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잘 아파야 합니다. 이는 아플때 차별없이 안전하게 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HIV감염인과 에이즈환자들은 잘 아프기를 어려워합니다. 잘 아프려면 병원에 잘 갈 수 있어야 하고, 병원에서 차별당하지 않아야 하지만, HIV감염인과 에이즈환..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혜곡(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발언문 공유 혜곡(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안녕하세요. 주홍빛연대 차차의 혜곡입니다. 이번 발언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사실 지난 이태원 참사였습니다. ‘지난’ 이태원 참사라고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네요. 국가는 그날로부터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날의 비극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아픔으로 다가왔죠.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자면, 사건이 막 터졌던 당시에 SNS에서 온갖 억측이 난무했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특히 ‘이 사람들은 압사당한 게 아니다, 다 같이 마약을 즐기다가 저렇게 된 것이다, 봐라, 몸에 아무런 흔적이 없지 않냐’ 이런 주장이 대표적이었어요. 참사의 영향력이 일파만파 퍼져나가면서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