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성노동자 추모행동/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정여름(International Waters 31)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12. 23. 18:46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성노동자, 성소수자, 약물 사용자, 이주민, HIV/AIDS 감염인,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발언문 공유

정여름(International Waters 31)

일면식조차 없는 한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러 왔습니다. 그는 A 씨라고 불립니다. 2022년 8월 16일 부산출입국외국인청 보호실에 입소한 A 씨는 여섯 시간 만에 사망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8월 23일이 되어서야 공식적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산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A 씨가 정신적 이상행동을 보인다고 ‘판단’하여 수갑 등 보호 장비를 채우고 ‘정신’ 치료를 받을 시립의료원으로 이송하였는데, 대기 중 열이 40도가 넘는 걸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대학병원으로 재이송되는 과정에서 A 씨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같은 날 올라온 또 다른 기사 타이틀은 이러합니다. “40대 태국 불법 체류자, 자해 후 사망”. 구금 과정에서 일어난 자해는 자해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말을 들어 주지 않고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목숨을 쥐고서 말하는 방법만이 최후의 수단으로 남을 겁니다. 죽음을 단절하여 읽는 오만한 시선은 A 씨의 사인을 숨기는 데에 복무합니다. 사망일로부터 한 달이 지나 사건을 마무리하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수용실에서 이상 행동을 보여 병원 이송 중 숨진 불법체류자가 마약 투약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부검 결과가 공개된 이후에는 기사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마약으로 죽었다는데 설명할 필요가 있겠냐는 부정적인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약물’이 사인으로 납득되는 동안, 취약성을 끌어낸 ‘보호’와 편견 가득한 ‘판단’은 어디로 갔을까요? 한 사람이 죽게 된 원인은 갈라 헤친 몸속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단속을 피해 숨어지내며 시간을 견뎌야만 하는 삶에도, 취약성을 강화하는

외국인보호소의 열악한 여건에도 죽음이 들어 있습니다.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M 씨를 새우 꺾기 고문한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후, 출입국은 자해를 방지하기 위해 그랬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머리에는 헤드기어를 씌우고 수갑 찬 팔은 뒤로 꺾어 족쇄에 연결하고 미미한 움직임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몇 시간씩 방치하는 고문이 ‘보호’라고 불립니다. 외출이 불가능한 좁은 방에 사람이 갇힙니다. 부실한 식사를 합니다. 똑같은 메뉴를 몇 달, 몇 년간 먹습니다. 매일 아침 돌아가라는 폭력적인 언사로 압박해도, 아픈데 약을 주지 않아도 얌전히 있어야 합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정상성은 과연 정상인가요? M 씨가 말했습니다. “나는 난동을 부렸다. 인정한다. 그것은 내가 겪은 부당한 폭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올해 5월에도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자해 소동이 있었습니다. 통역조차 없는 시설에 잡혀온 이유를 모르는 채로, 기한 상한도 없이 연일 버텨야 하는 이들에게 자해는 낮은 곳에서부터 밀어 올리는 유일한 말이 되어버립니다. 외국인보호소는 죽음이 가장 효율적인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 죽음과 통모하지 않았다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죽어가는 동안에 웃고 있는 이들, 한 사람의 운명을 손에 쥐고도 심드렁한 공모인들에게 이 문장을 전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남을 죽이지 말 것. (…) 만일 누군가의 생명이 자기 생명과 이어져 있어서 하나가 죽으면 둘 다 죽게 되어 있다면, 그래도 상대가 죽기를 바랄 수 있을까?”1)

죽어도 되는 사람들, 죽어도 싼 사람들, 맨날 울고 누워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마음의 고향에서 점점 멀어져야 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들과 얽혀서 두고갈 수 없는 귀중한 것을 만들겠습니다. 내 심장 소리가, 살아 있음이 불편하지 않을 때까지 달려와서 말하겠습니다. 침묵을 더럽히겠습니다.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에서 A 씨를 애도합니다. 장례식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떠난 친구들을 애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맘때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보고 싶다는 인사를 전하며 발언을 마칩니다.


1) 시몬 베이유, 중력과 은총, 폭력, 문학과지성사(2019),p.118-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