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성노동자 추모행동/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소주(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12. 23. 18:01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성노동자, 성소수자, 약물 사용자, 이주민, HIV/AIDS 감염인,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발언문 공유

소주(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안녕하세요,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 소주입니다. 오늘의 이 추모행동, 장례식을 설명하는 언어, “아픈 존재로서의 연결, 약을 사용하는 존재로서의 연결, 병을 옮기는 존재로서의 연결, 무엇보다, 노동하며 생존 중인 존재로서의 연결” 을 키워드 삼아 이야기를 나누어 드려봅니다.

첫번째, “아픈 존재로서의 연결”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잘 아파야 합니다. 이는 아플때 차별없이 안전하게 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많은 HIV감염인과 에이즈환자들은 잘 아프기를 어려워합니다. 잘 아프려면 병원에 잘 갈 수 있어야 하고, 병원에서 차별당하지 않아야 하지만, HIV감염인과 에이즈환자는 이내 진료를 거부당하기 일쑤여서 ‘나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아프면 치료받아야지’, ‘아프면 병원에 가’ 라는 손쉽게 할 수 있는 비감염인들의 언어는 HIV감염인 사이에서는 때때로 거만한 말일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하나?’, ‘그곳은 나를 거부하지 않고 치료 해주려나?’, 가기전부터 걱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한 HIV감염인께서 한 말씀이 생각이납니다. ‘걱정없이, 불안한 마음없이 마음껏 갈 수 있는 병원이 제발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HIV감염인도, 여기 모인 우리 모두도, 잘 아플 권리가 필요합니다. 잘 아파봅시다.

두번째, “약을 사용하는 존재로서의 연결”

HIV감염인은 매일 약을 먹어야 합니다. 어떤 HIV감염인은 약을 먹을 때마다 자신이 HIV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어 매우 괴롭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을 사용합니다. 저도 17년째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매일 먹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섹스를 할 때, 혹은 외롭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잠을 자기 위해, 누군가는 마음이 아파서, 또 누군가는 신체의 건강을 위해 약을 사용합니다. 약은 그런 도구이자 생필품입니다. 그런데 왜 누군가는 약먹는 걸 숨겨야 하거나, 약통 대신 비타민 통에 약을 넣어놓아야 하는 걸까요? 숨겨야 하는 약이 따로 있고, 숨겨도 되지 않는 약이 따로 있는 것은 누가 이렇게 정하고 만들었을까요? 혹은 왜 누군가는 원치않는 위험한 약을 강제로 타인에 의해 먹게될까요? 약은 무엇일까요? 때로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지만, 때로는 건강을 위협하고, 때로는 이롭지만 매우 해롭기도 한 약을 사용하는 우리는 어떻게, ‘나는 약을 먹는다/먹었다/먹어야만했다’를 숨기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오늘 저는 저부터 ‘저는 매일 약을 먹습니다. 이 약을 먹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잘 살아갑니다’ 라고 말해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로부터도 ‘약이 나를 살렸다’거나 ‘나는 (어떤) 약으로부터 벗어났다거나’, ‘나는 약때문에 죽었다’라는 말을 들을 준비를 하겠습니다. 아, 미등록 이주민 혹은 난민인 HIV감염인의 경우에는 건강보험제도에서 배제되고 약값이 너무 비싸 살기위해 필수적인 그 약을 구하는 것조차 너무 어렵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습니다. 초국적제약회사가 아예 외면해버려서, 혹은 그 약값이 정말 너무 비싸서, 약을 먹지 못하고 있는 이 지구의 수많은 목숨들도 생각합니다.

세번째, “병을 옮기는 존재로서의 연결”

제가 만나고, 사랑하는 HIV감염인 동료들은 누군가로부터 HIV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HIV를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동시에 가집니다. 우리는 사람입니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합니다. 그 관계의 다양한 방식에는 어떤 질병의 감염경로에 해당하는 행위도 있겠지요. 그런데 왜 세상은 관계를 보지 않고 피해자와 가해자만 보는 걸까요? 우리가 형성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질병, 감염병을 가지게 된 사람은 피해자일까요 가해자일까요? 그게 구분이 가능할까요? 아니, 그렇게 구분해야 할까요? 사람들 사이를 옮겨다니는 질병의 감염경로에서의 좋은 예방방법을 더 많이 얘기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우리의 사이는 단순하게 ‘나는 피해자, 너는 가해자’, 혹은 ‘나는 가해자, 너는 피해자’라고만 얘기할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옮겨갈 수 있는 병을 옮기지 않으면서, 만약 이미 옮겨갔다 하더라도, 사람을 잘 만나고 관계를 이을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더 많이 얘기해야 하겠습니다.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대신에요. 우리는 연결된 사람과 사람이니까요. 그러니까, 나의 HIV감염인 동료들이 사람을 새로이 만나는 것을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비쥬얼에이즈 작품에서 나왔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지만, 모든 것을 줄 수 없기에, 그래서 너에게 모든 것을 준다’

네번째, “노동하며 생존 중인 존재로서의 연결”

HIV노동권 침해 사안이 발생해 대응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부당해고를 당하셨는데요, 그분은 HIV감염인이 아니었습니다. HIV감염인인 가족이 있는 가족이었을 뿐이었죠. 또 어떤 분은 자신이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평생의 꿈을 포기했어요. 우리 모두는 일을 하며 자아를 실현하거나, 기본적으로 일단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만난 어떤 HIV감염인들은 꿈을 꾸기를 너무 어려워했고, 일터에서 HIV감염인이라는 이유로 모진대우를 받아야만 했어요. 먹고 사는 일이 어렵다는 건 우리 모두가 너무 잘 경험하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노동하며 잘 생존하고 있다는 것에 우리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차별없이 안전하게 노동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일터에서의 거부를 경험하거나, 혹은 일터로 인한 거부를 경험하거나, 혹은 거부하고 싶은 일터로 가야만 생존할 수 있는 우리 모두에게, 모두와 박수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 HIV감염인이라 하더라도 꿈을 꿀 수 있고, 일을 할 수 있고, 잘 노동할 수 있다는 것도 꼭 말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 많은 HIV감염인들은 너무나도 잘 살고 있어요. 잘 노동하며 잘 생존하고 있어요. 제가 활동하는 커뮤니티알의 HIV감염인 회원들은 종종 취업성공이나 승진의 경험을 자랑하고 모두가 기뻐하고 축하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너무 특별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

저도, “우리가 죽어도 싼, 죽은 게 부끄러운, 죽어봤자 신경쓰이지도 않는 존재가 아니고 누군가에겐 너무 특별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저도 해내고 싶습니다. 올해 어떤 날에,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저는 HIV감염인 동료들과 함께, 먼저 세상을 떠난 HIV감염인 동료를 찾아갔어요. 먼저 떠난 동료를 생각하면서 함께 찾아간 동료끼리도 우리가 서로를 신경쓰고 보살피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이 자리를 빌어 저도 다시 이 말을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싼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은 게 부끄러운, 죽어봤자 신경쓰이지 않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 특별하고 영원히 기억될 사람입니다.” 먼저 간 이들의 명복을 빌고, 여기 계신 모든 분께 감사합니다. 특별히 성노동자였고, 성소수자였으며, 약물을 사용했고, 이주민이었던, 교정시설에 있었던, 난민이었던, HIV/AIDS 감염인과 그 모든 취약한 존재들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고 또 행동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