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성노동자 추모행동/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나미푸(연구모임POP/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12. 23. 18:11

 

영상 촬영 : 은석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성노동자, 성소수자, 약물 사용자, 이주민, HIV/AIDS 감염인,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발언문 공유

나미푸(연구모임POP/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

안녕하세요! 나미푸라고 합니다.

저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소모임이자 감염인 자조모임인 ‘HIV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 가진사람들’의 운영자를 맡고 있고, 게이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경험하는 섹스의 맥락에서 약물 사용의 위해 요소를 감소하기 위한 담론인 켐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연구모임POP의 구성원입니다.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성노동자, 성소수자, 약물 사용자, 이주민, HIV/AIDS 감염인,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에 초대해 주시고, 발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추모 발언을 하겠다고 약속은 해 놓고, 몇 날 며칠을 컴퓨터 앞에서 워드 파일을 열어 둔 채로 자기 소개 외에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속 커다란 감정의 소용돌이는 있었지만, 이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지 생각을 해 봤더니, 저에게 추모와 애도는 침묵이었습니다. 저는 매년 4월 한달을 저 혼자만의 추모와 애도의 달로 정하고 SNS를 삼가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사람들과의 만남을 자제하면서 먼저 떠난 친구들을 기억해왔습니다. 벌써 5년째 지켜온 저만의 의식입니다.

아마도, 저에게 가장 강력한 애도는 침묵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침묵이어야만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사회적 낙인과 편견 속에 머물러야만 하는 감염인과 약물사용자의 삶에 대한 회의와 상처가 켜켜이 쌓여, 먼저 떠난 친구들의 죽음을 꺼내서 얘기하고 애도하는 것이 더없이 미안했습니다. 먼저 떠난 제 친구들이, ‘넌 그 동안 뭐했니?’라고 할 것만 같았습니다.

역시, 연대는 강력하고, 약한 마음에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감염인과 약물사용자 뿐 아니라,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이번 추모 행사를 계기로, 이제 그 침묵을 깨고,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제 마음을, 함께 했던 소중한 기억을, 그리고 우리를 항상 세상 언저리 어딘가에 분리시키고자 하는 이 사회와 커뮤니티에 대한 얘기를 꺼내보고자 합니다.

몇 년 전, 감염인이었고, 켐섹스를 하는 사람이었던 친구가 자살을 했습니다. 게이 커뮤니티에 약물이 얼마나 깊게,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 있는지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친구였고, 우연한 계기로 연구모임POP와 긴밀하게 켐섹스의 경험을 나누게 됐습니다. 그 친구의 켐섹스의 경험은, 원래 추구하고자 했던 쾌락보다는 경찰의 함정수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텔 한켠에 떨면서 숨어야만 했던 공포였고, 켐섹스를 하는 사람이라는 주변의 시선이나 낙인으로 인한 고통이었습니다. 약물 사용으로 인한 체중 감소가 두드러질 때 주변으로부터 느껴지는 그 시선을 특히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POP와 함께 인권이라는 틀 안에서 약물사용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이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문란함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게이 커뮤니티가 공통으로 경험하는 섹스와 관계에 대한 맥락이 개입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혼자 힘들어하지 않고, 커뮤니티의 이야기로 함께 만들어보자는 다짐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약물 사용과 상관없는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도 나누고, 무엇보다, 켐섹스라는 개인의 경험을 커뮤니티의 이야기로 만들어 갈 원동력을 얻었습니다. 그 친구는 그렇게 본인이 감염인이라는 두 번째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그 만큼, 우리가 얘기하는 공간이 안전하다고 느껴주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 그 친구는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그 자살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분명, 우리는 켐섹스와 감염인 당사자로서의 삶을 더 잘 이해하게 됐고, 커뮤니티라는 울타리 안에서 강력한 지지기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우리의 경험을 공포나 두려움이 아닌 커뮤니티의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중 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2년 후 제가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제 자살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제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이제 정말 왜 저나, 제 친구, 그리고 주변에 수많은 PL들과 켐섹스를 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택하는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제가 죽음을 택하려고 했던 이유는 아무리 아둥바둥 외쳐도 바뀌지 않을 이 세상이, 이 세상 속의 위치한 제 삶이 싫었습니다. 살면서 죽어가기 보다는, 죽음 속에 삶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켐섹스를 하는 사람들과 PL들은 비슷한 낙인과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켐섹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불법으로 규정된 약물의 소지와 사용일테고, PL들에게는 섹스가 포함되는 모든 관계에서 가해자로 규정당할 수 있는 전파매개행위 금지법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니라, 의료적 도움이 필요할 때, 약물 사용자와 PL 모두 병원이나 119등의 제도적 도움이 꺼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권의 틀 안에서 얘기되는 보편적인 HIV/AIDS에 대한 얘기들, ‘약 먹으면 괜찮다, 예방하면 된다, 개독의 공격이 문제다,’ 등 PL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얘기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PL이 된다면, 나와 섹스를 한 사람이 PL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PL은 항상 감염 사실을 알리고 섹스를 해야 하나, 나는 PL과 사귈 수 있나’ 등의 질문에서는 미세하지만 날카로운 떨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내 삶 안에 PL이 직접적으로 들어오게 되는 상황이 주어졌을 때, 그때부터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거리두기는 시작됩니다. 근본적으로 내가 배제되고 타자화되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PL와 켐섹스를 하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는 일일 것입니다.

모두의 경험이 같을 수 없고, 삶과 죽음을 분석할 수는 없지만, 먼저 떠난 제 친구는 물론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PL과 켐섹스를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 속에, 이러한 커뮤니티 속에 위치한 본인의 자리가 싫었을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위치한 이 자리는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창녀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이 자리, 약쟁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이 자리, 병 걸린 세금도둑이라고 무시당하는 이 자리, 여기는 분명 세상 언저리 어딘가겠죠. 다만, 우리가 함께한다면, 우리의 자리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약한 존재들이 모여 연대하고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우리의 자리는 분명 넓어질 것이고, 그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취약한 존재들이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누고, 연대하고, 연결지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오늘 이 자리가 저에게는 큰 희망이고, 한 줄기 빛이였습니다.

‘나의 아저씨’ 드라마 OST 중에 Dear Moon 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가사를 아이유가 썼는데요, ‘네가 나에게 이리 눈 부신 건, 내가 너무나 짙은 밤이기 때문인걸’이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아이유는, 달빛은 어두울수록 더 밝게 빛나고, 어두운 곳에서만 구석구석까지 빛을 비추기에, 더 공평한 빛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위치한 세상 언저리가 어두운 곳일 수 있지만, 그 어둠 속에서 함께 밝게 빛날 달빛을 희망하고 상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