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프로젝트 66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이울 : 무제

무제 이울 슬플 때 손톱자국을 낸 적이 있나요? 초승달이 뜬 밤은 어둡다. 자세히 보면 날카롭게 떠 있는 손톱달이 보인다. 가끔 견딜 수 없을 만큼 속이 타들어갈 때 피부에 손톱자국을 내곤 했다. 달이 여러 개 뜬 피부는 점차 통각에 둔해진다. 나도 내 삶에 둔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우울이 강이 된다는 말 우울이 강이 된다는 말은 너무 식상할 정도로 익숙하다. 흘린 눈물과 흘리지 않은 눈물을 모두 모은다면 어느 정도일까. 욕조를 가득 채울까? 방 하나를 가득 채울까? 그렇지만 종종 울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 흘러가버린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흘러간 눈물과 슬픔도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뼛속까지 아플 때가 있어요.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을 느..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혜곡 : 어떻게 운동까지 사랑하겠어, 차차를 사랑하는 거지

어떻게 운동까지 사랑하겠어, 차차를 사랑하는 거지 혜곡 처음 차차에 들어왔을 때 저는 완벽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디서든 그랬어요. 한 번은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교육 첫날 매장 사진을 구석구석 찍어서 그날 밤에 집에서 전부 외웠습니다. 빵의 이름이나 제자리, 매장 구조 같은 것들을요. 그렇게 사는 건 저를 능숙하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는 했지만, 언제나 수치심이 그림자처럼 뒤따르는 방식이기도 했죠. 완벽한 자신에 대한 기준은 한없이 높아서, 아무리 사소한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고 아무도 저를 나무라지 않을 때도 제 그림자가 저를 매섭게 질책했어요. 그러나 그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와 말하는 거지만, 그런 제 눈에 차차의 느슨한 업무환경..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나디아 : 붉은 꽃

붉은 꽃 나디아 하얀 눈으로 가득 덮인 세상 하얀 세상 내딛는 발걸음마다 붉은 꽃 피리니 저기 저 이는 발자욱만 남거늘 긴 긴 걸음마다 붉은 꽃만 선연히 피었다 눈보라 속에서도, 살얼음 어는 추위에도 내 가는 길은 내내 붉게 피리라 작품 소개글 : 선입견과 본인에게 주어진 환경을 담담히 내딛어 가는 성노동자를 표현했다. 타인에게 받는 상처를 붉은 꽃과 핏방울로 빗대었다. 그 흔적들이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메세지가 될 수 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 작가 소개글 : 고양이 넷과 함께 생활하는 1인. 가정폭력 신용회복 성폭력을 겪으면서 성노동에도 잠시 발을 들임. 성노동이 왜 노동이 아닌지, 왜 무조건 막으면 사라진다고 생각하는지 의문을 품으며 온갖 편견에 맞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성노동자들을 시로 담아내고..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데파코트 : 죽음의 위계화에 저항하며

죽음의 위계화에 저항하며 데파코트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이건 곧 당신의 일이 될 거랍니다. 우린 쓸모없는 사람들이 아니오. 너희가 먹는 빵을 만드는 사람일 뿐 포도주를 담그고 그 찌꺼기를 먹을 뿐. -이랑, 늑대가 나타났다- 당신에겐 사랑했던, 소중했던 존재가 있는가? 나에게는 많지는 않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하늘의 색이 물드는 시간, 향기, 꽃, 꽃말, 좋아하는 색감, 노래, 장소, 좋아하는 음식, 싫어하거나 못 먹는 음식,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알아나가고, 알고 지내는 몇 년동안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들처럼 그 사람의 아주 작은 ..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밀사 : 모든 것은 '비창녀'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비창녀'로부터 시작되었다 밀사 이 글은 성노동자 및 성노동자 앨라이를 향한 강도 높은 혐오 발언 및 사이버 불링의 직접 게시를 포함하오니, 열람 시 각별히 주의 바랍니다. 0. 일어날 일이 기어이 일어나고야 마는 모든 날의 시작이 그러했듯이, 그날도 어김없이 평범했습니다. 친구 잃은 지 만 3년 지난 그저 그런 사람이 그러하듯이, 저는 제가 잃은 친구인 메루메루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는 만큼 분노하며 트위터 계정에 뭐라 뭐라 써댔습니다, 평범하게요. 내용 역시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 늘 하던 똑같은 얘기를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할 뿐이었으니까요. 메루메루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 저와 메루메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대략 아시리라고 생각해..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멜섭왹비 : 낙하

낙하 멜섭왹비 망가져 버렸다, 라는 단어를 그 어느 때보다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임신 중절 수술 후 더 아픈 사람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조증과 울증을 넘나들었고,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새로운 통증에 시달리게 됐다. 매일 근육통과 관절통에 시달렸고, 어떤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으며, 비가 오는 날엔 통증이 더 심해졌다. 통증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산발적으로 온몸을 돌아다녔다. 어제 가슴이 아팠다면 오늘은 허리가 아팠고 내일은 배가 아팠다. 어떤 때는 누군가 칼로 내 배를 들쑤시는 것 같기도 했다. 배가 칼에 꽂히면 이 정도로 아프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섭식에도 문제를 겪었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토할 것 같았고 하루에도 화장실을 대여섯 번씩 ..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달연 : 밤은 길어, 노래해 소라야

밤은 길어, 노래해 소라야 달연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그때를 기록하는 것에 앞서서 많이 망설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제 발로 들어갔으니까’ ‘어쨌든 돈 벌었으니까’ ‘합의 한 거니까’ 약자의 위치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누군가들의 단호한 편협함 앞에서조차 부끄럽고 싶지 않았던 비겁한 나라서, 정작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나조차 모르겠다. 하지만 끊임없이 그때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 뒤돌아보게 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폭력이 아닌 노동을 위한 투쟁, 그걸 하려는 사람들이 마음에 밟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도 거기 있었고, 같은 걸 겪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에, 기록할 용기가 났다. 말하고 싶은 것은 한도 끝도 없이 많지만..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모르겠는 사람 :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는 사람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이 언제나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예외에서 태어나 법 바깥에서 살아내는 일은 언제나 내 말문을 막았다. 사람들의 질문에는 언제나 답이 정해져 있었고 내 말풍선은 언제나 정답 바깥에 있었다. 붉게 그어진 채점표 아래에서 나는 입을 닫았다. 언제나 바쁘게 설명하고 열변을 토하던 입은 읽는 법도 쓰는 법도 듣는 법도 말하는 법도 잊어버려서 그저 꾸역꾸역 먹기만 한다. 맛있는 음식을 씹어 삼키고 있으면 혀에 스며오는 단맛이 뇌세포를 사르르 녹여낸다. 구겨진 뇌 주름이 매끈하게 펴지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동안 뇌에 너무 힘을 주고 살았던 걸까? 이전에는 어떻게든 잘 살려고 아등바등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냥 살아진다. 그냥. 이 낯선..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이오 : 나는 어떻게 성노동론자가 되었나

나는 어떻게 성노동론자가 되었나 이오 나는 젠더퀴어다. 그 이전에는 내 정체성을 고민하는 퀘스처너였고 그 전에는 앨라이였다. 꽤 자주 ‘계집애 같은 새끼’ 라는 소리를 듣고 늘 자기검열에 빠진 채 벽장 속에 갇혀 살던 나에게 퀴어이론과 페미니즘은 자유를 가져다줬다. 많은 과정을 거쳐 나 스스로를 젠더퀴어로 정체화했을 때 나는 내가 나로 사는 것이 틀린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뒤로 나는 나뿐만 아니라 남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공감하는 시야도 조금 더 넓어졌다. 그렇게 내 안에 있던 다양한 혐오를 조금씩 걷어내고 더 많은 지식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누군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날조됐고 자기들 편한 대로, 유리한 대로 비틀어댔는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페미니..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다영~♡ : 참을 만한 존재의 가벼움

참을 만한 존재의 가벼움 다영~♡ 예전에 선배들은 나에게 ‘무엇이 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어떻게’에 대한 문제는 중요하고, 지금도 계속 세상사 속에서 나에게 던져지는 질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어떻게’가 뿌리내려야 하는 ‘무엇’에 대한 문제가 의문문으로 남아 있다면, 즉 내가 정상성 범주에 삶이 놓여 있지 않기 때문에 던져지는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삶의 가치와 의미는 내 존재 표면에서 계속 미끄러져 내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자기가 원하는 그 ‘무엇’ 자체가 삶에 가치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끊임없이 부딪히고 답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