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성노동자 추모행동/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후기] 희음 :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후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12. 31. 07:52

photo by. 곽예인

 

언저리 넓히기

- 2022 성노동자 추모행동 <성노동자, 성소수자, 약물 사용자, 이주민, HIV/AIDS 감염인, 모든 취약한 존재가 초대된 장례식> 후기

 

희음

 

이 장례식에 든 건 2022년 12월 17일 저녁이었다. 바로 전날, 비슷한 시각에 나는 이태원역 앞 도로에 있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49재 추모제에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희생자들 이름이 하나하나 호명되었다. 이름을 듣고 또 되뇌면서 함께 아파하고 분노했다. 다른 일로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도 잠깐씩은 숙연해졌다. 쨍하게 추운 날에 하도 울어서인지 나중엔 머릿속이 징징 울렸다. 추위와 분노와 슬픔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곳은 다를 것이었다. 차차 측은 종종 파티룸으로 쓰이기도 하는 아늑한 공간을 빌려두었다. 알맞은 온도 안에 머물다가 돌아갈 수 있겠구나 했다. 정말이지 이곳은 사랑과 다정으로 가득했다. 한 사람도 허투루 맞이하지 않겠다는 듯 조문객들과 꼼꼼히 눈 맞추며 자리를 안내하는 차차의 활동가들이 그랬고, 스크린 앞에 마련된 오늘의 제사상이 그랬다. 테이블 위엔 김사월의 노래 가사 중 한 대목인 “너는 누군가에게 너무 특별해”가 레터링 된 빨간 장미 장식의 비건 케익, 갖가지 담배와 촛불, 흑백실로 짜인 단아한 티 코스터, 책 <반란의 매춘부>, <지영>,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등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위로 손들이 어른거리는 상상을 했다. 덧대어지는 차가운 손들. 손들은 서로를 확인하고 어루만지면서, 잃었던 온도를 찾아가고 있었다. 테이블 위 알록달록한 사물과 글자들은 손들이 잊었던 기억일 거였다. 손들의 틈새로 가만가만 입김이 스며들고 있었다. 따뜻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했다. 이곳은 이 사회가 빚어낸 폭력적인 경계선들에 의해 죽임당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사회자 유리는 지난여름 성구매자들이 주입한 약물 때문에 사망에 이른 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일터, 안전망을 요구할 수조차 없게 하는 사회적 낙인이 불러온 산재였지만, 경계선 뒤에 숨은 사람들은 온갖 억측과 힐난과 조롱으로 그의 죽음까지 할퀴어댔다. 일하고 사랑하고 울고 웃던 어떤 삶의 박탈을 일순간 가십 거리로 만들었다. 그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내던 한 사람을 깡그리 지우고, 이름 없는 한 ‘문란한’ ‘성매매 여성’만 남겼다.

그런 그의 이름을 다시 부르기 위한 자리였다. 그의 진짜 이름을 부르지는 않는다 해도, 차가운 가장자리에 아무렇게나 구겨 던져버리려 했던 그 삶을, 그 죽음을 단정하게 되뇌는 자리였다. 장례식에 초대된 발언자들은 그와는 다르지만 꽤나 닮아 있고 또 이어져 있는 이들의 이름과 삶을 꺼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소주는 HIV감염인이 잘 꿈꾸고 잘 일하고 서로를 잘 돌볼 수 있는 존재임을 힘주어 이야기하며, 먼저 떠난 한 동료의 이름을 불렀다. international waters 31의 달연은 ‘가축’이란 명명 하에 일평생 약물을 주입당하면서 ‘방역’이란 이름으로 죽음의 처분을 당한 비인간동물의 이름을, international waters 31의 정여름은 지난 8월 부산출입국외국인청 보호실에 입소하여 입소 여섯 시간 만에 사망한 이주민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죽음은 입소와 보호 아래 자행되는 감금과 폭력, 국민과 비국민이라는 경계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차차의 혜곡과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보통은 성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의, 누구나처럼 평범하고 또 특별한 삶의 시간이 존중받고 나누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또박또박 전했다. 몇 글자의 고유명사로 된 이름은 발언들 중 어디에도 없었지만 발언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사랑하고 아파하고 노래하는 구체적인 얼굴들을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상상할 수 있었다.

기어이 우리 대부분을 울게 했던, 연구모임 POP 나미푸의 발언은 따로 떼어 말하고 싶다. 그는 감염인과 약물사용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 여전히 너무 크기에, 먼저 떠난 친구에 대한 지금까지의 애도가 ‘침묵’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켐섹스를 하는 사람이자 감염인이었던 한 친구의 너무도 갑작스런 죽음. 그 황급한 죽음이 이해되지 않고 막막했던 것 이상으로 그는 이 사회에 대한 이해와 용서가 어려웠을 것이다. 혼자서 아무리 애쓴다 해도 친구를 향한 온당한 애도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 사회 앞에서는 ‘없는’ 것이 되기 십상인 애도라면, 차라리 소리 ‘없음’의 방식이 나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미푸는 끝내 이곳 추모행동에 왔고, 와서 소리 내어 말했다.

“창녀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이 자리, 약쟁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이 자리, 병 걸린 세금도둑이라고 무시당하는 이 자리, 여기는 분명 세상 언저리 어딘가겠죠. 다만, 우리가 함께한다면, 우리의 자리를 넓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취약한 존재들이 모여 연대하고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우리의 자리는 분명 넓어질 것이고, 그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취약한 존재들이 모여 서로의 삶을 나누고, 연대하고, 연결지점을 발견하고자 하는 오늘 이 자리가 저에게는 큰 희망이고,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이름과 삶과 온도를 찾아 이렇게 손을 포개는 것이 자리를 넓히는 일이라면, 그리고 그게 오늘만 같다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그걸 하겠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혹은 다르게도 자꾸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언저리를 넓힐 궁리를 해봐야겠다. 아름다운 언저리를 내어준 차차에 뜨거운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