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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공동성명] 여성과 아동, 누구도 보호하지 못하는 ‘보호출산제’ 통과를 규탄한다 -익명 출산이 대안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싸워나갈 것이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3. 10. 10. 18:19

 

여성과 아동, 누구도 보호하지 못하는 ‘보호출산제’ 통과를 규탄한다 -익명 출산이 대안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싸워나갈 것이다-

 

10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위기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보호에 관한 특별법안’이 통과되었다. 우리는 여성이 온전하게 임신의 유지와 중지를 결정하고, 안전하게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대안이 될 수 없는 이 법이 향후 아동과 여성의 삶에 미칠 심각한 영향을 우려하며, 끝내 이 무책임한 법을 몰아치듯 추진하고 결정을 내린 정부와 국회를 강력히 규탄한다. 

이 법의 근간은 ‘익명출산제’에 있으며, 입양인 당사자와 아동 권리 단체, 미혼모 단체를 비롯하여 아동과 여성 인권을 옹호하는 여러 단체들은 지난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익명출산제의 도입을 적극 반대해왔다. 뿐만 아니라 수차례 언급되어 왔듯, 이 법은 “익명 출산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고려해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에도 반한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도 국회에 서한을 보내 법 제정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모두의안전한임신중지를위한권리보장네트워크(모임넷)는 지난 7월 21일 “‘보호출산제’는 사회적 차별과 낙인, 민법 등 법과 제도상의 문제, 재생산권 보장이라는 근본적 대책은 외면한 채 익명 출산만을 개인의 선택지로 유도하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며, “지금은 ‘보호출산제’가 아닌 안전한 임신중지와 출산, 양육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의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토록 수많은 우려와 철회 요구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전례없는 의지를 보 이며 빠른 속도로 법안을 밀어부쳤고, 국회는 충분한 토론도 거치지 않은 채 결국 법을 통과시켰다. 투표 결과 재적 인원 298인 중 64명의 국회의원이 기권을 표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법이 향후 여성과 아동의 삶에 미칠 실질적인 영향에 대해 고민과 논의가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무책임한 결정과 짧은 토론에 비해 이 법이 가져올 결과는 장기적이고 심각할 것이다.

그간 ‘보호출산제’의 도입을 주장해 온 이들은 이 법이 병원 밖 출산으로 인한 아동유기를 막고, 여성들에게 ‘숨겨질 권리’를 줄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정반대가 될 것이다. 익명출산제도의 도입은 가족과 사회, 성관계의 상대방으로부터 임신 사실을 숨기기를 요구받는 여성들이 익명 출산의 선택에 더욱 취약해지게 만들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친생부모를 찾을 수 없는 아동을 더욱 많아지게 만들 뿐이다. 익명 출산의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많은 여성들은 대부분 사회경제적으로나 자기결정권에 있어서 더욱 취약한 위치에 있으며 자신의 의지보다는 출산 당시의 상황과 주변의 요구로 인해 익명출산을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법안의 9조에는 “임산부가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충분하지 아니하다고 판단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호자가 제1항에 따른 신청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보호자의 신청은 임산부의 신청으로 본다.”라는 조항이 있어 더욱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조항으로 인해 상담 과정에서 당사자보다 제3자의 결정 권한이 더욱 크게 작동할 수 있으며, 지금도 이미 부모와 주변인에 의해 출산 포기를 요구받는 장애인과 청소년들은 자기결정권을 더욱 심각하게 침해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과정에서 국가가 제도를 통해 양산한 고아호적의 아동이 증가하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익명출산을 통해 태어난 아동은 지자체장이 창설한 성과 본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되며, 대부분의 경우 시설에서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정부는 시설에서 성장하는 아동의 삶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이들의 삶은 지금도 심각한 사각지대에 있다. 2020년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 결과, 보호시설에서 보호가 종료된 자립준비청년 중 절반은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는 현실에서 향후 ‘보호출산제’로 태어나 살아가게 될 아동의 삶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유기되는 아동과 여성의 권리를 고려한다면 국가가 해야할 일은 ‘위기 임신’ 상담과  ‘보호출산제’가 아니라, 진정 여성이 자신과 자녀의 삶을 고려하여 임신의 유지와 중지를 결정하고, 출산 후에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이나 낙인과 차별없이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임신중지에 대한 제약으로 임신중지의 시기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 경제적 여건과 주변의 압력, 자신과 아이가 겪게 될 차별과 낙인으로 인해 출산 후 앙육을 포기하도록 내몰렸던  여성들의 현실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된다.

법은 통과되었지만 우리는 익명 출산이 대안이 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싸워나갈 것이다. '위기임신·출산’의 상담이 아닌 모두에게 포괄적인 상담과 교육,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는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요구할 것이며, 임신중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결정이 늦어지지 않도록 보건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양질의 안전한 약물과 시술, 건강보험 보장이 이루어지도록 요구해나갈 것이다.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관계의 단절로 양육이 어려운 여성들에게 경제적 지원 뿐 아니라 양육과 돌봄의 관계망 확대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며, 주거/고용/노동/학업 등에 대한 연계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요구할 것이다.  임신의 유지와 중지, 출산 양육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불평등과 차별, 낙인을 없애나가기 위해 함께 힘을 모을 것이다. ‘보호출산제’ 법안을 추진한 보건복지부와 이를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은 앞으로 이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2023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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