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성노동자 추모행동
발언4 : 성노동자 B(*대독 : 쯔미)
안녕하세요, 저는 **** 에서 일하는 성노동자인 B라고 합니다. 여름 님께서 발언문을 부탁하셨을 때 솔직히 조금 망설였습니다. 저의 글이 행여나 다른 성노동자분들께 누가 되지는 않을까? 아픈 상처를 괜히 끄집어내는 건 아닐까? 말이라는 건 쉬운 거 같으면서도 어려운 거 같아요.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기분이 상할 수도 있고, 위로가 될 수도 있기에… 그리고 제가 직접 얼굴을 뵙고 발언문을 낭독하는 게 아니다 보니 조심스러웠습니다.
우리 성노동자들에게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아픈 사연과 상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전한 가정에서 살아왔던 분 중에서도 집안의 갑작스러운 가정의 변화로 인해 생계를 위해 성노동자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단순하게 돈 벌기 쉬우니까 몸이 힘들지 않으니까 성노동자의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제 삶에 대해 이해해달라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지 본인이 겪어보지 않은 누군가의 삶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대는 게 화가 날 뿐입니다.
작년 9월 저는 동료 M을 잃었습니다. 1년이 넘었음에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아직도 우리 동료 M의 미소가 눈에 선합니다. 항상 씩씩하게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동생이었기에 절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싱글맘으로 어떻게든 아이를 열심히 키워보겠다고 천 원짜리 한 장 허투루 쓰지 않던 그런 동료였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열심히 돈을 모아서 자격증을 따서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그 말을 입에 달고 항상 아이만 생각하는 그런 엄마였습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게 있다면 아이를 위해서 조금 더 버티고 해결방안을 동료들에게 알려주었다면 아이를 두고 세상을 등지는 일은 안 생기지 않았을까?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저는 우리 M을 존경했습니다. 비록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혼자 열심히 키우려 했던 그 마음이 저보다 성숙하게 보였고, 책임감이 강한 그런 엄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 걱정이 됩니다. 우리 M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그런 일들이 생겨 M를 또 한 번 죽이는 건 아닌지… 과연 우리 성노동자들이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입방아에 상처받고 아파해야 하는지… 글을 쓰다 보니 제 동료 M의 삶이 너무 허탈하게 느껴집니다.
이 이야기는 외부에 더는 노출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이 발언문을 듣고 계신 분들은 공감해주시고 이해해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직도 언론에서는 동료 M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인터뷰 요청이 있어 거절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은 동료 M의 이야기로 인해 이슈화되는 꼴을 보기 싫어서입니다.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런 공감보다 M에 대한 안 좋은 글을 보면 화가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 같아선 따지고 묻고 싶지만, 현실은 우리 성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을 깨지 못하고 있기에 꾹 참고 있습니다.
우리 성노동자는 대부분이 부모님의 불화 또는 갑자기 집안의 형편이 안 좋아져서 어쩔 수 없이 성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심정을 누가 알까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성노동자들이 처음부터 성노동의 길로 들어선 건 아닙니다. 주유소 알바, 편의점 알바, 공장, 식당 서빙, 미용실 스텝, 그 외에 다른 일을 하다가 선택한 것이 성노동입니다.
나라가 발전하면 뭐 합니까? 학력이 짧은 이들에게 주어진 직업의 선택권은 소수에 불과한데… 학연, 지연으로 연결되고 물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르는 마당에 과연 버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듣고 계신 분들께 힘내라고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지금의 시련을 버티고 견디시길 바랍니다. 주제넘은 말이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저 또한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견디고 있습니다. 한때는 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번개탄과 장소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 제 짐 사이에는 번개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의 조언 덕분에 버티고 견디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센 비바람이나 힘듦도 반드시 지나가게 되어있다고….
그분의 이 한마디에 다시 용기를 내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조금은 억울하더라구요! 내 인생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았는데 왜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고 당장의 현실을 피할 생각만 했는지… 인생의 꽃이 피는 시기는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든 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엉망이었던 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발언문은 저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동료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잘챙시길 바랍니다.
다음에 직접 얼굴을 뵐수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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