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방에서 나는
효진
퇴근길 택시에서 가끔 하는 망상이 있다.
언젠가 존나 잘돼서 진짜 마지막 출근 날을 정해야지. 그날은 현금으로 정산해달라고 미리 말하는 거야. 순범이가 현금 뽑아와서 주겠지? 받아서 그대로 돌려주는 거야. “영업진 회식에 보태 써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와 소름. 그때 내 진짜 이름도 알려줄까? 진짜 번호도 같이 주고 올까?
물론 그런 <나는 솔로> 남자 출연자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술, 담배, 피로 등으로 뇌 기능이 저하된 상태로 하는 생각이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후회한다. 팁으로만 백만 원을 받은 날이어도 한 푼도 남김없이 내가 가질 거다. 하루라도 덜 출근하고 누워 있을 거다. 그 가게에서 알게된 모두를 어디에서 만나도 완전히 모른 척할 거다.
이런 생각도 한다.
순범이 귀엽게 생겼어… 순범이라면 섹스는 가능할지도 몰라… 여자 친구 있을까?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걸 보면 혹시… 그에게 남자 친구가 있는 건 아닐까?
순범이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이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라서다. 나는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바깥에서 문을 여는 사람들을 두려워했고, 두려운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했고, 잘 보이고 싶은 사람과 섹스하고 싶어 했다.
진행 중인 방에 순범이가 들어오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다.
- 세팅 직후, 손님+아가씨 수만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져올 때 (형님들 모시려고 제가 커피 한 잔씩 가지고 왔습니다. 웨이터들은 별도로 월급이 없어서요, 조금만 챙겨주시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네! 열심히 모시겠습니다 형님!)
- 손님이나 아가씨가 시킨 심부름 (각종 호출, 사입 등)
- 10분 정도 남았을 때 연장 체크
가끔 변화구가 들어오기도 한다. 숙취해소제를 가지고 들어와서 한 번 더 팁을 유도하거나, 결제가 안 되었으니 확인 한 번 해달라고 부탁하거나. 이 모든 경우를 제외한 타이밍에 순범이가 벌컥 문을 연 일은 딱 한 번 있었다. “빨리 홀복으로 갈아입으세요.”, “ㅇㅔ? 왜요?”, “지금 단속 떠서요. 셔츠 입고 밖에 나오시면 안 돼요.” 출톡을 확인해보니 [‼️홀복으로갈아입으세요‼️]라는 메시지가 도배되어 있었다.
“오빠 잠깐만 갈아입고 올게!” 나는 침착한 척 홀복을 들고 룸 안에 있는 화장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가씨가 룸 안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갈 일은 잘 없다. 남성용 소변기와 세면대만 있는데다 손 안 씻고 나오는 손님들을 너무 많이 봤고 하수구 냄새가 나기 때문에. 그리고 어차피 셔츠룸은 손님과 마주 앉아 옷을 갈아입는 곳이다. 그런데 셔츠에서 홀복으로 갈아입으라는 역-지시에 버그 걸린 시스템처럼 뚝딱이며 그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근 것이다.
자꾸 미끄러지는 작은 옷감들을 쥔 손을 떨며 여기가 아닌 공간들을 떠올렸다. 나는 유명한 여가수고 여기는 공연장 대기실, 지금은 빨리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상황이야. 누가 들어올지 모르는 동아리방,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를 모텔방, 언제 담임이 들어올지 모르는 야자 자습실, 새벽의 독서실, 피아노 학원 연습실, 교회 지하실, 그 오빠네 집 거실…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있다. 나는 결국 발각된다. 나는 좆된다.)
좆되기 직전은 흥분된다. 흥분이 가라앉으면 생각만큼 좆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좆되게 할 방법을 아득바득 찾아낸다. 자책하고 후회하는 방식으로. 성형할 용기도 살 뺄 독기도 없는 주제에 밤일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서울에 살지 말았어야 한다. 직장을 그만두지 말았어야 한다. 저금했어야 한다. 평범한 일에 만족했어야 한다. 그때 죽었어야 한다…
[‼️이제 셔츠 진행하셔도 됩니다‼️] 공지 메시지가 떴다. 그 방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내가 손님이었어도 공황 온 아가씨랑 계속 놀고 싶진 않았겠지. 아가씨 대기실에 들어가니 언니들이 다 단속 얘기였다. 셔츠로 환복하는 것 자체가 일반 유흥업이 아니라서 풍기 문란으로 걸릴 수가 있단다. 유사 성행위여도 성매매처벌법에 걸릴 수 있어서 빨거나 밑에 만지는 건 걸리면 안 된다고. “어느 가게에나 수위 조는 있어~ 그런 애들도 가게에 꼭 필요해. 근데 같이 들어가는 언니들 피해 주거나 걸리면 안 되지.” 오래 일한 언니가 삐쭉하게 말했다.
몸을 판다는 건 매번 그 방에다 몸을 두고 오는 일이다. 그런가? 나는 너무 피곤해서 더 이상 맞장구칠 기력이 없을 때, 잡담하거나 노래 부를 힘도 없을 때 그냥 손님들이 나를 만지게 둔다. 땁방일 때만 그렇게 한다. 수위라도 받아줘야 사이즈 커버치지, 생각하면서. 아무도 지켜보지 않을 때도 무능력하고 싶지 않다. 영업진 애들한테 잘해주고 싶다. 그런다고 돈을 더 벌어주는 것도 아닌데.
방을 몇 개 봤는지도 기억 안 날 정도로 취하고 지친 채로 퇴근하면서 생각한다. 본인에게만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고 믿는 여자애들이 우습다. 사실 과거의 나를 비웃는다. 언젠가 이 일에 대해서도 쓸 수 있을까? 성노동의 장점이 뭔 줄 알아? 그 방이 끝나면 끝나는 거야. 아무것도 쌓이거나 남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이걸로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쓰고 있다.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작가의 말 : 평소 차차의 활동을 응원해왔고 제가 하는 일에 대해 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성노동 프로젝트 >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죄와 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베라 : 140자를 초과하였습니다 (1) | 2026.06.15 |
|---|---|
|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사랑해 : 내가 네게 닿지 않기를 바라는 비겁함과 그럼에도 내 몸에서 나를 꺼내 보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기적이고 옹졸한 마음으로 (0) | 2026.06.15 |
|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유원 : 어느 트랜스젠더 남성의 수기 (0) | 2026.06.15 |
|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샘물 : 우리는 괜찮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0) | 2026.06.15 |
|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박복녀(朴福女) : 창녀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2) | 2026.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