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네게 닿지 않기를 바라는 비겁함과 그럼에도 내 몸에서 나를 꺼내 보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기적이고 옹졸한 마음으로
사랑해
“그럼 오빠네 단체는 그런 사람들을 지원하는 거예요?”
‘지금 나와 나의 단체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던 내게 나의 애인이 던진 질문이다. 차차에서 ‘용주골 성노동자 대상 경찰 압수수색 변호사비 긴급모금’을 준비하느라 급하게 카드뉴스 디자인을 해야 했던 때였다. 만약 다른 사람이 나와 용주골에 관해 대화를 하며 ‘그런’ 사람 같은 지칭어를 썼다면 나는 분명 눈에 불을 켜고 ‘그런’ 사람이 명확히 무엇을 지칭하는지를, 왜 ‘그런’ 단어를 골랐는지를 따갑게 물었을 테지만 나는 네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저 말에 굉장히 안도했다. 아! 너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우리 단체 이름을 알면서도, 우리 단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지를 못하는구나.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잘 모를 수가 있겠구나. 네가 전에 내게 갑자기 정말 뜬금없이 “오빠의 과거는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를 않아요”라고 말했던 것도, 어쩌면, 어쩌면 정말로, 아무것도 정확히 모르는 채 건넨 말일 수도 있겠구나. 정말, 정말 다행이다.
성노동을 시작한 이후, 그리고 내가 성노동자라서 전시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세상에 떠들어댄 이후*1 내가 성노동자임을 모르는 애인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는지 모르는지를 잘 모르겠다. 모를 리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모를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있다.
내가 목격한, 나를 목격한 수많은 너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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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다보니 모르기 좀 힘들어보인다.
나는 이렇게나 많이 들켜놓고도 “오빠의 과거는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를 않아요”라는 말과 “그럼 오빠네 단체는 그런 사람들을 지원하는 거예요?”라는 말 이렇게 두 문장의 사이에서 일부러 헤매고 있다. 네가 나의 그런 부분에 대해 영영 모르기를 바란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성노동 프로젝트>라는 제목 아래에서 차차 SNS에 올라갈, 아마 내가 내 SNS에도 올릴, 그래서 분명히 너의 눈에 맺히고야 말 이 글을. 왜? 무엇이 나를 쓰게 만드는가?
내 몸에서 나를 꺼내 남들 앞에 보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기적인 마음이,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를 끌어내어 그림을 그리고 극을 쓰고 무대를 만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 빌어먹을 성정이 내 과거가 네게 영영 닿지 않기를 바라는 비겁한 마음을 매번 이겨 먹었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나를 씹어 먹어 글을 뱉고 그림을 흘리고 무대에 피와 눈물을 흩뿌려야만 해서. 그런데 그 과정에서 네게 ‘나’들이 반드시 닿을 테니까, 내가 ‘나’를 검열할 수 없으니까, 나는 ‘나’를 검열할 줄 모르니까, 나는 무수한 ‘나’들을 품고 살아야 하니까, 나는 그런 애니까, 그렇게 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애니까.
…
죄스럽다. 내가 성노동자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알고 있었던 지난 애인들에게는 느껴본 적 없는 죄책감이다. 내가 성노동자임을 알 수밖에 없던 현장들-업소, 예술 현장, 퀴어 모임 등-에서 만나 연애를 하게 되었던 애인들에게는 느껴본 적 없는 부채감이다. 이전의 나는 얼마나 당당하게 그들 아래에서 그들을 손가락질했던가? 성노동까지 손을 대야만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던 내가 이렇게나 가난하고, 내가 이렇게나 불운하고, 내가 이렇게나 취약하다고 바락바락 우겨대며 얼마나 당연하게 그들의 애정을, 돌봄을, 재화를 요구했던가? 나를 사 먹던 당신 혹은 성노동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당신이 나보다 이만큼이나 더 큰 정상성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이 불균형한 관계에서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당신이 나에게 이만큼의 권리와 권한을 바쳐야만 한다고 얼마나 엉터리의 계산을 해댔던가? 한 시간에 얼마씩 하는 내 시간을 당신을 위해 포기하고 나의 삶을 무료로 보내고 있으니 당신이 내게 그만큼 잘 해주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얼마나 당당히 일갈했던가? 내 어린 나이와 동그란 얼굴과 반짝이는 눈을 담보로 그들의 얼마 남지 않았던 젊은 시절 혹은 인생 가장 돈이 많은 시기를 얼마나 거침없이 빨아먹었던가?
지금의 애인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르고 나를 만났다. 업소도, 예술 현장도, 퀴어 모임도 아닌 곳에서 나를 마주쳤다. 내 이름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예술을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나의 다른 요소들-내가 좋아하는 것들, 싫어하는 것들, 취미나 BDSM 성향 등-보다도 조금 나중에 알았다. 이전의 애인들이 약자성과 소수자성을 내세우며 폭군처럼 구는 내게 한껏 굽실거리느라 나의 전시를 보여달라거나 무대 위 나의 모습이 보고 싶다거나 내 활동 소식이 알고 싶으니 인스타그램 차단을 풀어달라 는 하는 어필을 영영 하질 못한 반면 지금의 애인은 그를 공주처럼 떠받들고 아기처럼 돌보는 내게 무언가를 요청하거나 요구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그는 내 뒤에 꼭 붙어 나를 졸졸 따라다니느라 나랑 연애를 시작하기도 전에 내 포트폴리오 발표 자리엘 따라와서 내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쫑긋한 귀와 동그란 눈으로 듣고 보았으며 연애를 하고부터는 내가 하는 모든 공연과 모든 전시를 따라다니며 내 손을 꼭 잡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설치, 철수, 리허설, 리셉션, 뒤풀이, 그 모든 자리엘 따라와야 성에 찬다. 내가 가는 모든 자리에 쫓아다녀야 하는 사랑스러운 집착자. 나에게 인스타그램 계정을 차단당하지 않은-연애 전 미리 차단을 당했다가 연애 후 차단이 풀린- 유일한 애인.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은 내 그 어떤 애인들보다도 지금의 애인의 존재를 훨씬 열렬히 환영해주고 있다. 왜? 이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 나를 사 먹던 존재가 / 주름도 흰머리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는 나이 많은 사람이 / 내가 창녀란 걸 알고 접근한 사람이 / 성노동자라는 단어에, 혹은 성노동자 예술가라는 단어에, 그 매혹적인 취약성에 환상을 가지고 이끌린 사람이 ) 아니니까? 덕분에 나는 사람들에게 내 애인을 변호하거나, 내가 받는 애정의 진실됨을 증명하거나, 나의 안전을 증빙하거나, 내가 맺은 관계가 무결하다고 거짓말할 필요가 없다. 이전에는 내가 아무리 변호하고 증명하고 증빙하고 진실 혹은 거짓을 잘 조리하여 내어놓아도 그들의 존재를 사람들이 만족할 만큼 납득시키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모두가 축하하고 축복하는 관계.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내가,
내 애인에게,
나를 설명하지를 못하고 있다.
사실은 구구절절하게 전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냥,
나의 일부를,
영원히,
숨기고만 싶다.
내 작업도 보여줘 놓고,
내 인스타그램 피드도 다 공개해 놓고,
그러면서도 계속 모른 척,
내가 내가 아닌 척,
내가 나를 모르는 척하고 싶다.
네가 몰랐으면 좋겠다.
내가 부끄럽다.
내가 싫다.
내가 수치스럽다.
자랑하기 어려운 관계들, 말해봐야 내 손해인 연인들,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구조하고 싶어 할 만한 애인들을 데리고는 몸을 한껏 부풀려 온갖 진실과 거짓으로 치장하며 나와 그들을 보호하던 나는 지금 그 어떤 때보다도 당당하게 내보이고 자랑할 수 있을 애인을 데리고는 나 자신을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이전의 나는 나의 성노동자 정체성에 대해 한없이 당당한 얼굴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던 과거가, 내가 내 앞에 ‘성노동자’라는 단어가 달린 채 불려 다녀야했던 지난 시간들이, 후회스럽고 수치스럽다. 그때는, 그래, 잃을 것이 없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쫓겨나고 미움받고 고통스러워지고 억울해지면 나는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쟤네가 나를 편견과 혐오를 가지고 잘못 대하는 중이고, 나는 성노동자인 내가 좋고 내 삶이 자랑스럽다고 더 크게 몸을 부풀려 말할 수 있었다. 어디 한 번 나를 더 괴롭게 만들어보아라! 나는 어차피 잃을 것이 없다. 나는 내 몸을 풍선처럼 부풀리고 부풀리다 결국 찢어져 버릴 즈음에는 내 사지를 찢어발겨 당신들의 심술 두둑한 주머니에 나를 조금씩 넣어줄 자신이, 그래서 당신 살아가는 어느 순간마다 문득문득 내 살점을 발견하며 괴로워하게 만들 자신이 있다. 어디 한 번 나를 더 욕하고 돌로 쳐 보아라!
… 그렇지만 지금은, 지금의 나는, 아아, 잃을 게 생겨버려서, 너를 잃을 게 두려워서, 네가 잃을 게 많아서, 너도 이미 네 삶에서 상처받은 게 많은데, 네 스스로도 신경 쓸 일이 충분히 많은데,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더 괴로워지면 어떻게 하지, 아아, 나 그냥 쫓겨나면 쫓겨난 채로 살걸, 미움받으면 미움받은 채로 살걸,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채로 살걸, 억울해도 억울한 채로 살걸, 그게 뭐 자랑이라고, 그게 뭐 그리 당당한 일이라고 그렇게 내보이고 다녔는지, 공론화 같은 거 하지 말걸, 누가 날 성노동자라고 부르면 나는 그런 거 아니라며 팔짝 뛸걸, 아니, 적어도 그거 아웃팅이라고 당신 입에서 나오면 안 되는 단어라고 적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그렇게 불러서는 안 된다고 펄쩍펄쩍 뛰며 노발대발할걸, 성노동 그게 뭐 그렇게 당당한 일이라고 그 단어로 나를 호명할 수 있게 하고 다녔는지, 그게 뭐 그렇게…
요즘의 나는 내 지인이 나와 내 연인 앞에서 당연하게 나의 성노동 이야기 혹은 성노동자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까 봐 두려워하고, 성노동을 하던 동안 동그란 단발머리를 유지하며 그나마 조금의 ‘여자’스러움을 남겨두다 단발조차도 참지를 못해 소년같이 짧은 머리를 고수하고 있는 요즘의 나를 보며 누군가 나와 나의 애인 앞에서 ‘랑해님, 요즘은 성노동은 안 하고 계세요?’하고 물어볼까 봐 긴장하고, 내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내 애인에게 ‘사랑해가 성노동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만나느냐’고 까발릴까 봐 나의 착하게 살지 않은 과거를 후회하고, 애인이 나를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게시글에 태그할 때마다 그 태그를 타고 들어와서 나의 수상쩍은 피드를 발견한 애인의 친구가 안 그래도 발이 좁은 나의 애인과 절연을 해버릴까봐 그래서 내 애인의 세상이 나로 인해 더 더 더 더 좁아질까 봐 불안해하고, 애인의 동생이나 애인의 동생의 남자친구가 나의 과거를 알게 될까 봐 내 인스타그램 게시글 몇 개를 지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비공개 계정으로 돌려야 하나 고민한다. 애인이 내 공연장에 관람객으로 앉아있는 날이면 일부러 단어 하나씩을 빼먹기도 한다.
사랑해 (관객들을 보며) 저는 누가 제 역할을 맡게 될지가 너무 궁금해요. 아니, 사실 누가 오디션에 지원을 하긴 할지부터가 궁금합니다. 저는 예술 활동을 하는 내내, 살아가는 내내 좋지 않은 소문과 좋지 않은 사건들로 너무 많이 알려져서 아무도 제 역할을 수행하고 싶지 않을 것 같거든요. 이미 연극 세계에는 충분히 많은 가상의 창녀정신병자예술가 캐릭터들이 존재해서, 굳이 진짜 창녀정신병자예술가 역할까지 하고 싶을 사람은 잘 없을테니까요.*3
이런 식이다. 유치하고 비겁하다. 나도 내가 지긋지긋하다. 이렇게는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단어를 하나씩 지우는 비겁하고 옹졸하고 졸렬한 방식으로는 내가 어디에도 떳떳할 수 없음을 단어 하나 지워 말하며 깨닫는다.
그래, 공주야, 내 사랑스러운 연인아,
나는, 너를 ‘공주’라고 부르고 네가 ‘오빠’라고 불러주는 나는, 우리의 웃긴 대안 가족 안에서 네가 ‘며느리’라고 불리는 동안 ‘아들’이라고 불리는 나는, 여자로 호명될 때마다 조금씩 외로워하는 나는, 몸에 달라붙는 옷에 기겁하고 몸이 드러나는 일을 끔찍해 하는 나는, 내 안의 어떤 ‘나’들은, 성노동자다. 내 안의 ‘사내자식인 나’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한 번도 누군가에게 ‘오빠’라고 불러본 적 없지만, 분명하게 ‘언니’들과 함께 일했고, 그 누구도 여자 아닌 것으로 의심한 적 없는 어린 여자의 몸과 얼굴을 하고 있었고, 가게의 사장님이나 언니들에게 인형 놀이를 당하며 지금의 내가 몸에 대보지도 않을 몸에 달라붙는 얇고 짧은 옷들을 종종 입었다.
나는 내가 성노동을 해야만 했던 시간에 대해, 성노동을 했던 시간에 대해, 성노동을 좀 좋아하기도 했던 시간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아마 똑같이 살게 될 것이다. 성노동을 하게 될 것이다. 화방에서 물감과 캔버스의 가격을 볼 때마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아갈 줄 모르는 스스로를 저주했던 미대생은, 비싼 물감 가격표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겨우 물감 한두 개를 구매하고는 집에 돌아가 며칠씩을 굶어야 했던 예술가는, 통장 잔고를 보며 굶주림을 억지로 참던 37kg의 청년은, 이런 삶과 이런 몸뚱어리를 가지고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가 없어서 엉엉 울기만 했던 어린애는, 아마 다시 기회가 주어진대도 똑같이 할 것이다. 그래서 성노동을 한 내가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나를 살려놓고, 살찌우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내가 예술을 지속할 수 있도록 먹이고 입히고 키울 것이다. 물감을 사주고 캔버스를 사줄 것이다. 영상 작업을 하는 나를 위해 눈을 딱 감고 큰맘 먹고 좋은 빔 프로젝터도 하나 사줄 것이다. 성노동자라는 이유로 쫓겨나고 미움받으면 참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성노동자인데 어쩌란 말이냐 하고 고통의 양보다 큰 소리로 소리 지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야 했던 시간들에 내게 손을 내밀어 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작은 몸을 안아주던 사람들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와 좋은 언니 좋은 가족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들은 내게 그럴 것이고 그런 존재일 것이다. 내가 성노동자임을 알고도 욕하거나 혐오하지 않고 친구로 남아준 사람들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도 영영 친구가 되어주어서 너의 작은 꿈처럼 너와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하객으로도 와줄 것이다. 네가 이 글을 읽고도 정말 나랑 결혼을 하고 싶어 할지, 가족이 되고 싶어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친구이다.
내 친구들은 ‘그런’ 나와도 함께한다.
내가 속한 단체는 ‘그런’ 사람들을 돕는다.
나는 내 단체가 ‘그런’ 나와 연결되어 기쁘다.
나는 ‘그런’ 나에게 고마워한다.
나는 ‘그런’ 나와 함께 작업을 한다. 내 몸에서 ‘그런’ 부분들을 긁어모아 사람들 앞에 내보인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나의 관객들은 ‘그런’ 나도 좀 좋아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네가 나의 ‘그런’ 부분을 알고 있었을지 아닐지는 정말 잘 모르겠지만,
나의 과거가 너에게 정말로 아무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떤 ‘나’들이 네게 닿지 않기를 바라는 비겁함과 그럼에도 내 몸에서 나를 꺼내 보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이기적이고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그 모든 시간에 대한 벌을 한꺼번에 받는 기분으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수치심과 죄책감 그리고 그럼에도 막을 수 없는 은근한 기대가 부딪혀 터져나갈 것 같은 몸으로, 이기심과 사랑으로, 쓴다.
2026년 4월, 사랑해.
작가의 말 : 저는 겁쟁이입니다. 겁이 너무 많습니다. 다리에 올라가면 다리가 무너져 내릴까 걱정하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내가 나를 밀쳐버릴까 두려워 아래를 내려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저입니다. 머리를 감을 때도 눈을 감았다 뜨면 공포영화 속 장면이 현실이 될까 봐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도 고개를 숙이질 못합니다. 이런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거짓말을 들키는 일입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거짓 속에 꽁꽁 숨겨둔 진짜를 들켰을까 봐, 들킬까 봐 미리 몸을 떨다 결국 처음 보는 사람들, 오래 알던 친구들, 앞으로 마주칠지 모르는 관람객들에게 미움받을 만한 진실을 토해내는 사람이 저입니다. 그럼에도 오래 들키고 싶지 않았던 어떤 내가 내 안에 있었습니다. 만천하가 다 알아도 지금 애인만은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역시 들키는 일은 너무 무섭습니다. 내가 모르게 들켜서 미움받을 바에야 먼저 무릎을 꿇고 눈물 젖은 말들로 발을 씻겨주겠습니다. 잘 사랑하기 위해, 더 잘 사랑받기 위해, 용서받기 위해 죄지은 마음으로, 벌받는 심정으로, 구구절절한 입으로, 맑은 정신으로 적은 지독한 편지입니다.
각주
1) 제3회 페미니즘예술제 ≪지구탈출≫ 전시에서 일어난 검열 및 전시 배제 사건
2) 코미디언 김경욱이 연기하는 ‘호스트바 선수’ 컨셉의 가공의 캐릭터.
3) 사랑해 1인극 <사랑하는 아빠에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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