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죄와 벌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피윤 : 피윤의 노트; 당론 없음

규제된 닉네임 2026. 6. 15. 06:47

 

피윤의 노트; 당론 없음

피윤

 

2033. 2. 7.

사회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재생산이론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노동, 젠더, 가족, 국가, 자본주의, 몸, 재생산을 함께 사유하려는 흐름. 적어도 이걸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성이 임금노동에서 차별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머물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 덧대, 노동자가 어떻게 매일 다시 노동자로 만들어지는지를 물어야 함. 마르크스가 일찍이 재생산이라고 불렀던 것. 누가 밥을 차리는지, 누가 아이를 키우는지, 누가 병든 몸을 돌보는지, 누가 정서적 소진을 받아내는지, 누가 친밀성과 관계의 비용을 떠안는지.

자본가는 공장의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고 노동력을 구매하지만, 그 노동력이 매일 다시 생산되고 유지되는 과정에는 비용을 치르지 않음. 가사노동은 ‘사랑’으로, 돌봄노동은 ‘가족의 책임’으로, 정서노동은 ‘여성의 특성’으로, 출산과 양육은 ‘모성 본능’으로 바꿔치기 된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공장 문 앞에서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아무리 바꿔치기한들— ‘노동자는 밥, 잠, 주거, 의료, 교육, 돌봄, 정서적 지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매일 다시 만들어진다’라는, 이 엄정한 진실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니까… 생산과 재생산을 무 자르듯 분리하려는 시도는 매우 부자연스럽다. 주거, 의료, 보육, 교육, 돌봄, 젠더 폭력, 이주, 장애, 섹슈얼리티 등은 노동계급 정치하의 ‘부문 의제’가 아닌, 노동자가 노동자로 존재할 수 있는 조건 그 자체니까.

위 사회재생산이론의 기초를 세운 것은 Lise Vogel, 『Marxism and the Oppression of Women: Toward a Unitary Theory』. 1983년 초판. 오랫동안 절판. 2013년 Brill 복간 이후 영미권 좌파 페미니즘에서 다시 크게 읽히기 시작함. 복간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사회재생산이론이 이렇게 많이 참조되지 않았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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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좌파 조직이나 진보 정당이라면, 돌봄을 선한 가치나 복지 사업 등속으로 환원하는 언어를 적극적으로 배격해야. 누가 돌보는지, 누가 그 비용을 떠안는지, 어째서 어떤 노동은 돌봄으로 인정받고 어떤 노동은 더럽고 부끄러운 것으로 밀려나는지: 성노동 (해당 단어를 빙 둘러친 동그라미가 여러 겹 쳐져 있음)

 

2033. 3. 19.

페미니스트 성 전쟁 Feminist Sex Wars

1970~80년대 북미·유럽. 포르노, 성노동, BDSM, 성해방, 검열, 성적 주체성 등을 둘러싼 지난하고 격렬한 논쟁. 이 논쟁 안에서 충돌한 것들: 성노예제 vs 성노동, 성매매된 여성 vs 성노동자, 성구매자 처벌 vs 비범죄화. 이후 한국 성매매 논쟁에서도 지겹도록 반복되는 그것.

중요한 건 누가 뭘 찬성하고 반대했느냐가 X. 성매매를 여성 억압으로 보더라도 해법은 다를 수 있음. 같은 해법을 공유함에도 이론적 입장은 다를 수 있음.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입장들이 비슷한 전제를 공유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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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쟁을 모르면 1) 성노동 문제, 나아가 2)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물론, 3) 돌봄, 이를 위시한 재생산 의제, 정교하게 다룰 수 없음.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말하면서 이를 누락함이란 성-노동-폭력-국가-처벌이 충돌한 핵심 전장을 통째로 누락하는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미필적 고의.

 

2033. 4. 2.

당원 대상 내부 강연에 참석함.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역사와 주요 의제가 강연 주제. 자유주의 페미니즘부터 마르크스주의, 급진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까지 여성운동사의 전반적 흐름을 짚어가는 구성이었음. 가사노동 논쟁, 재생산 노동, 성별 분업, 돌봄의 사회화,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결합.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정석적 주제와 의제였는데…

아니 근데 어케 페미니스트 섹스 워를 코빼기도 언급을 안 함? 2세대 페미니즘, 래디컬 페미니즘 흐름은 다 짚어놓고? 다른 것도 아닌,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사를 말하는데?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설명하면서 페미니스트 성전쟁을 생략한 특별한 의도나 이유가 있나 싶어 질문.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주제였기 때문에.

연사: 그 분야를 깊이 파지 못해서 모른다. 나는 포르노와 성매매에 반대한다. 그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여성폭력을 일상화하고,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노동과 달리, 성매매는 폐절되어야 한다.

???

답변의 주제 비약이 너무나 황당해서… 소위 운동권 혐오 성향이 강한 현대의 SWERF(성노동 배제적 페미니스트)와 TERF(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도 똑같은 말을 한다. 우리는 적어도 그것보단 더 정교한 이야기를 하며 논리를 벼려야 하지 않겠나, 뭐 그런 얘기를 의견으로 제시함.

연사: 네, 그걸 나중에 토론해 보기로 하고요. 다만 피윤 동지가 말씀하신 거에 대해서 제가 첨언을 하면 예를 들면 TERF가 반 포르노였기 때문에 반 포르노 입장은 문제다 이런 접근은 저는 아니라고 생각

나: 아니, 전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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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몇십여 년 전, 지금은 사라진 좌파 조직에서 성노동을 주제로 연속 강연을 기획한 적이 있었다. 한 강연은 서구 2세대 페미니즘의 성매매 논쟁과 페미니스트 성전쟁이 주제. 다른 강연은 내가 맡았다. 오늘 강연의 연사를 비롯한 강연 준비 주체들은, 과거 그 좌파 조직의 구성원이었다. 그들은 이미 성노동 운동과 페미니스트 성전쟁을 한 번 배운 적이 있었다.

당시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기억했고, 오래전 강연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했다. 그러나 몇십여 년 전 그 강연의 내용, 그 강연이 던진 질문은 기억하지 않았다. 성노동 운동이 제기한 질문, 페미니스트 성전쟁이 남긴 질문,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그 질문들을 피해갈 수 없는 이유. 이 모든 것은 그들에게도 당시 그들의 조직에도, 그들이 옮겨 온 지금 이 당에도… 축적되지 않았다. 축적은커녕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전혀.

 

2033. 5. 28.

예전에 친구랑 같이 친구네 정당 기획 강연에 간 적이 있다. 성노동과 불안정노동을 함께 다루는 자리였는데, 배제된 성, 배제된 소수자, 배제된 노동을 한자리에 놓는 기획이었다. 불안정노동 현장의 활동가가 자기 노동과 성노동 사이의 공통점을 말했다. 정상적인 노동자상 바깥에 있는 노동, 사회가 필요로 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노동, 말해지기 전에는 없는 것처럼 취급되는 노동. 와 이 당 감다살이네 생각하며 들음. 뒷풀이에서도 비당원들이 당원들보다 많이 왔다며 신기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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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디코하다가 그 때 얘기 나옴. 친구는 답답해함. 그냥 그게 다였다고. 왜 비당원이 그렇게 많이 왔는지, 왜 성노동이라는 의제가 당 바깥의 사람들을 끌어들였는지, 왜 이 주제가 핫했는지? 에 대해 아무도 관심 없고, 그렇다고 성매매 반대한다 이런 말조차 없고. 아… 감다살인 건 그냥 몇몇 젊은 당원들이었구나. 나머지는 다 감다뒤였구나… 놀랍지도 않음…

 

2033. 6. 11.

2000년대 성노동자 당사자 운동

성노동자 당사자 운동조직이 등장했던 건 2000년대. 당시 진보정당들의 반응이 인상깊음. 오랜만에 논평 읽다가 정리함

성노동자들이 말한 것 →

  • 자신들을 노동자라고 불렀음
  • 생존권과 노동권을 요구했음
  • 성매매특별법이 자신들을 보호하기보다 더 위험한 곳으로 밀어낸다고 말했음
  • 조직을 만들고 성명을 내고 공개질의서를 보냈음
  • 성매매와 강제·폭력·인신매매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음
  • 성구매자와 알선자를 무차별적으로 처벌하는 방식이 성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킨다고 했음
  • 자신들은 구출의 대상이 아니라 말하는 주체라고 주장함

진보정당들이 한 것 →

  • 성매매방지법의 집행과 단속을 대체로 긍정했음
  • 주요 인사들은 단속 강화, 업주 처벌 강화를 요구했음

성노동자들의 질문 →

  • 노동자·민중·빈민을 위한 정당이 왜 성노동자의 생존권을 살피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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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성노동자 당사자들의 질문은 날카로웠지만 진보정당의 언어와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음. 지금까지도. 아주 그냥 30여 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되었지.

 

2033. 7. 30.

성노동 운동에서 현장과 집결이 중요한 이유

성노동은 불법화되고, 단속받고, 낙인찍힘. 당사자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위험해지고, 발화가 곧 처벌과 추방과 낙인으로 이어질 수 있음. 그래서 현장이 무너지면 조직도 약해짐.

2004년 성매매특별법 발효. 성노동 위계의 가장 아래에 있던, 가장 가시적이었던, 가장 노른자위 땅을 밟고 선 집결지: 단속과 규제의 1차 표적. 당사자들이 저항하는 과정에서 전성노련, 민성노련 같은 흐름 만들어짐. 민성노련은 외부 사회단체와의 연대에 개방적. 여러 여성운동·노동운동·사회운동 단위가 성노동운동네트워크로 결합.

모든 연대단위가 성노동을 긍정한 건 X. 집결지와 비집결지 성노동, 업주와 고객, 성판매여성 비범죄화와 완전한 비범죄화, 특정 구역 비범죄화 같은 쟁점에서 입장 차이 격렬.

집결지 운동은 생존권을 주요 언어로 삼았지만, 생존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음. “살기 위해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그 일 말고 다른 일을 하게 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반박 앞에서 쉽게 막히고 무화됨. 당사자들이 권리를 말해도 (그냥 대중도 아니고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업주의 개입을 의심, 운동의 주체성부터 반복적으로 검열대에 오름.

집결지 와해 → 개별 업소/온라인 플랫폼 이동, 당사자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물리적 조건 약화. 2010년부터의 한국 성노동 운동이 오랫동안 온라인과 담론 중심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건 단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조건의 제약이었음.

현장이 있어야 경험이 모이고, 경험이 모여야 언어가 생기고, 언어가 생겨야 요구가 조직됨. 집결은 장소가 아니라 정치의 조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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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발 마감

아 제발 강연료

 

2033. 8. 14.

강연하고 옴. 날 연사로 초청한 조직에서는 성노동자 투쟁 연대를 진지한 조직 내 사업계획으로 채택했다고 함. 집결지 강제철거 반대 행동에 함께하고, 성노동자 추모 입장도 발표하고, 조직 내 워크숍에서 세미나도 열겠다고. 아무래도 퀴어 관련 부문조직이 이런 데에 많이 깨어 있다.

분위기 좋았음. 다들 열의 넘쳤고, 질문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답하느라 쉬는 시간도 반납했을 정도. 토론도 길었다. 오래 활동한 조직원, 조직 내 주요 인사들도 있었고. 적어도 그 부문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 성노동 운동은, 앞으로 더 깊고 진지하게 결합해야 할 운동으로 합의된 듯 보였다. 성노동을 비정규 불안정 노동의 영역에서 접근하고, 성매매 피해자로서의 무결성 증명 담론과 보수적 성관념에 반론을 제기하겠다고, 투쟁하는 이들의 조직이라면 성노동자 당사자를 투쟁의 주체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연 제안서에 적혀 있어서 괜히 찡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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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조직 전체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을 것이다. 반대도 치열한 논쟁도 없을 것이다. 그냥 관심이 없을 테니까. 그 부문조직은 활발하고 성실한 어린 조직원들 모인 기특한 곳 취급될 거다. 그곳이 몇 년 동안 어떤 의제를 진득하게 붙잡아 왔는지, 그 의제가 조직 전체의 노선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무얼 노동정치 여성정치 소수자정치에 요구하는지, 이 모든 것을 묻는 사람은, 해당 부문조직의 여집합으로 나서는 순간, 증발한 듯 눈 씻고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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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내 대다수 사회주의자들에게 성노동 운동이란 목적도 없이 배회하는 유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

 

2033. 9. 3.

국가는 성노동자를 범죄화하고 단속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관리 자원으로 활용해왔다. 위생검사, 통계, 등록, 벌금, 뇌물, 관광, 기지촌 동원, 도시정비. 불법이라고 하면서 관리했고, 보호한다고 하면서 통제했고, 없애겠다고 하면서 필요할 때 이용했다. 세계적으로 관측되는 현상이다.

성노동 문제는 국가와 자본과 도시가 누구를 정상 노동자와 정상 시민의 바깥에 두고 관리하는가의 문제. 성노동자는 “나쁜 성”의 문제가 아니라 근대적 노동자상과 시민권의 경계에서 만들어진 존재.

좌파 조직 및 진보 정당이 이 문제를 단지 성매매 찬반이나 피해자 구제의 문제로만 다룬다면, 국가가 성노동자를 어떻게 이용하고 처벌해 왔는지, 자본이 낙인화된 노동을 어떻게 착취해 왔는지, 도시가 집결지를 어떤 방식으로 정화와 개발의 대상으로 삼아 왔는지를 볼 수 없고.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작자들을 사회주의자라 부르는 게 가당키나 한가?

 

2033. 10. 22.

곧 지방 선거. 한 불안정노동 현장의 활동가가 후보가 되었다. 그는 소수자고, 불안정노동자고, 자신을 특정 정체성 하나로만 규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소수자 의제에서 출발해, 모든 불안정노동자를 호명하고 싶어 했다. 플랫폼 노동자, 물류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동자, 그리고 성노동자. 그는 ‘성노동자 불처벌’을 공약에 넣고 싶어 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응원하고 존경하는 활동가다.

그는 곧 조직 내 정책 라인과 부딪혔다. 성노동 운동에 대한 당론이 없다는 것이 이유. 당론이 없기 때문에 ‘성노동’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말이었다.

결국 후보는 자신의 의사를 접고 다른 표현을 써야 했다. 선거 공보물에는 성노동자가 아닌 더 넓고 중립적인 표현이 들어갔다. 이런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어조에 속상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가 그동안 무슨 일을 겪어왔을지 직접 지켜본 것처럼 가늠할 수가 있었다. 나는 그 표현이 더 전략적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를 위로했다(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긴 했음).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 될 거라고, 정말 싸움은 선거가 끝난 후부터가 될 거라고 서로 결의를 다졌다.

그러니까 그 시작점은 여기다: 당론이 없다.

그런데 그 당론을 만들기 위한 전 당원 토론은 열린 적이 없었다. 공식 토론회도 없었고, 정책토론도 없었고, 총투표도 없었다. 몇 년 동안 당내 일부 조직은 성노동 운동에 연대했고, 성명을 냈고, 현장에 갔다. 그러나 이 의제가 당 내 공론장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한 용기 있는 청년 당원이 출마 선언과 함께 공약을 제출할 때, 논의가 없었다는 사실은 의제 묵살의 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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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론이 없고, 당론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이보다 편리한 순환은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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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불편하게 만들어줘야지.

 

2033. 11. 9.

성노동 의제에 침묵하겠다는 결론을 낼 수는 있다. 성산업을 강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론에 도달하려면 통과해야 할 것들이 있다. 성노동자 당사자 운동이 무엇을 말해 왔는지, 성매매방지법 이후 단속과 처벌이 실제로 누구에게 어떤 효과를 냈는지, 비범죄화 논쟁이 무엇을 어떻게 고발하는지. 

보다 근본적으로는— 페미니스트 성전쟁에서 어떤 입장들이 충돌했는지, 사회재생산이론의 관점에서 성과 친밀성과 노동력 재생산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국가 처벌과 노동권 요구는 어떤 관계에 놓이는지. 이것들을 검토해야 한다. 그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 남기면,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도덕적 단축이다.

문제는 성노동 운동에 대한 반대 그 자체가 아니다. 반대할 수 있다. 논쟁할 수 있다. 당론을 만들 수도 있고,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토론하지 않은 채 당론이 없다고 말하고, 당론이 없다는 이유로 당사자와 연대자의 언어를 밀어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것은 입장이 아니라 회피고, 묵살이다.

성노동자 투쟁에 연대한다는 문서가, 강연이, 토론이, 현장 연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이론과 정책과 선거 언어로 축적되지 않았다. 성노동 운동은 반복해서 등장했고, 반복해서 새로 발견되었고, 반복해서 다음 토론으로 밀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음 토론이 열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그것을 다시 말하지 못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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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동자들은 단 한 번도 침묵한 적 없다. 성노동자 당사자 운동은 조직을 만들었고, 성명을 냈고, 질문을 던졌고, 진보정당과 진보운동에는 그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일부는 실제로 들었다. 그러나 들은 것을 기억하지 않았고, 기억한 것을 축적하지 않았고, 축적하지 않은 책임을 다시 성노동이라는 단어에 돌렸다.

이 일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몇 곱절의 질문과 같다: 1) 돌봄을 말하는 정당은 어떤 돌봄을, 재생산 노동을 외면하는가. 2) 노동을 말하는 정당은 어떤 노동을 불승인하는가. (이게 사회주의자야 부르주아지야…) 3)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말하는 사람들은 성과 노동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어떤 언어를 제시할 수 있는가. (언어 자체가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당론이 없다는 말은 언제부터 토론을 시작하자는 뜻이 아니라, 말하지 말자는 뜻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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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글은 성노동 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기 위해 쓰인 글도, 사회주의 페미니즘 입문을 돕기 위해 쓰인 글도 아닙니다. (사족으로, 작중 등장하는 2033이라는 연도는 핵전쟁 이후의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 텍스트 로그라이크 게임 『서울 2033』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이 글은 ‘피윤’이 여러 진보정당과 사회주의 조직 안팎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하나의 경험을, 일기 및 메모의 형식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보다 날것의 육성으로 드러내기 위해 쓰였습니다. 그 경험이란 성노동 운동이 끊임없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축적되지 않는다는 경험입니다.

본문 앞부분에 사회재생산이론과 페미니스트 성전쟁 관련 개념 정리가 배치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는 성노동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임의로 선택한 배경지식이 아닙니다. 사회재생산이론은 오늘날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토대 가운데 하나이며, 페미니스트 성전쟁은 성, 노동, 폭력, 국가, 처벌, 주체성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논쟁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단지 여성 차별을 비판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노동력 재생산이 어떻게 조직되는지, 돌봄과 가사노동은 왜 특정 집단에게 전가되는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강화하는지, 국가와 법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묻는 이론입니다. 

사회재생산이론은 이러한 질문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토대이며, 페미니스트 성전쟁은 성과 노동, 폭력과 주체성, 해방과 처벌을 둘러싼 페미니즘 내부의 가장 치열한 논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실천하거나 교육하거나 토론하려면, 적어도 이 두 흐름은 반드시 거쳐야만 합니다. 이는 특정 입장을 채택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노동을 노동으로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산업을 강하게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결론이든 그 결론은 논쟁과 비판을 통과한 결과여야 합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이 수십 년 동안 축적해 온 핵심 논쟁들을 생략한 채 곧바로 결론만 제시하는 것은, 입장의 문제가 아니라 축적의 문제— 특정 의제에 대한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피윤’이 한 좌파조직 내 퀴어 ‘부문조직’에서 성노동을 주제로 강연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노동을 낭만화하거나 성산업의 착취를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노동자 당사자 운동이 실제로 무엇을 말해왔는지, 성매매특별법 이후 어떤 논쟁이 있었는지, 왜 집결지와 현장이 중요한지, 왜 비범죄화 논쟁이 등장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미 존재하는 논쟁을 새로 발명하기 위해서가 아닌, 이미 존재하는 논쟁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집결지 폐쇄에 맞서 거리로 나선 여성 종사자들은 스스로 성노동자라 칭하며, 성노동자로서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요구했습니다. 자신들은 구출의 대상이 아닌 말하는 주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요 진보정당들은 대체로 이 언어를 외면하고, 거부하고, “‘포주’의 강제 동원”을 의심했습니다. 성노동자들의 질문은 언제나 선명했지만, 그 질문은 좀처럼 진보정당의 정책과 당론, 이론 속으로 파고들지 못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사건들은 모두 이 문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노동 운동에 연대하는 진보·좌파 조직은 소수나마 존재했습니다. 강연도, 토론도, 현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각각 개별 사건으로 머무르는 데에 그쳤습니다. 하나의 줄기와 역사로 엮이지 못했기에—조직 전체의 기억, 정책, 당론으로 남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이 글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째서 좌파조직 및 진보정당은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처음 듣는 사람처럼 대하는가, 왜 이미 제기되었던 논쟁들이 매번 새롭게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지는가, 왜 토론하지 않은 결과가 ‘당론 없음’이라는 말로 되돌아오는가.

이 글은 그 축적의 실패에 대한 기록입니다.

 


 

작가의 말 : 이 노트는 피윤이 2033년 한 해 동안 여러 진보정당과 사회주의 조직 안팎에서 겪고 목격한 장면들을 기록한 것이다. 사건의 순서, 조직의 이름, 직책, 지역, 행사명은 흐렸다. 그러나 반복된 문제는 흐리지 않았다. 반복된 것은 성노동 운동에 대한 노골적 반대만이 아니었다. 더 자주 있었던 것은 연대의 말, 토론의 약속, 이론의 이름, 그리고 축적의 부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