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죄와 벌

[2026 성노동 프로젝트 제 6회] 씀 : 여성을 벌하는 여성정책, 한국에 ‘성평등 정책’은 없다.

규제된 닉네임 2026. 6. 15. 06:55

 

여성을 벌하는 여성정책, 한국에 ‘성평등 정책’은 없다.



이 글은 용주골 투쟁이 시작됐던 시기 정부 기관에서 일하며 여성정책의 기만과 모순을 내부자의 시선에서 목격했던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다. 나는 페미니스트로서 읽고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그간의 성노동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 각도에서의 비판이 이루어졌듯 페미니스트와 성노동의 관계는 그다지 조화롭지 않다. 나는 직장에서 그 생생한 불화를, 여성인권과 성평등을 위한다는 여성정책-페미니즘의 기만과 폭력성을 처음 체감하게 되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직장 생활은 성매매에 대한 고루한 이분법적 판단-피해자와 가해자, 자발과 비자발, 범죄화와 비범죄화, 억압과 자유, 종속과 해방-이 실제 성노동자들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과 이해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은 허울뿐인 명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지금의 여성정책 패러다임과 성평등 담론은 누가 ‘인권’을 가질만한 여성의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따지며 ‘자격 없는’ 여성을 벌하고 게토화하는 또 하나의 차별 정책이다.

 

1. ‘여성친화도시’는 누구의 도시인가?

2023년 11월,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를 철거하기 위한 파주시의 행정대집행이 시작되었다. 1년 안에 수도권에 마지막 남은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겠다고 선포한 김경일 파주시장은 용주골에 사는 성노동자들을 집결지 폐쇄의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자신의 실적을 위해 제거되어야 할 범죄 집단으로 낙인찍고 강제로 쫓아내고자 했다.*1 이로 인해 시작된 용주골 투쟁을 나는 2024년 봄쯤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첫 직장이었던 공공기관에서 소위 ‘성평등 정책’을 실행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현재 추진 중인 성주류화제도, 즉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여러 정책 도구들의 의미와 필요를 공무원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1년도 채 다니지 않은 직장에서 나는 내 일에 대한 의구심과 회의감에 지친 상태였다. 2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정책이 현재의 시대적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와 함께 정책이 말하는 성평등은 너무나 큰 한계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하기 싫다고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세상이 아니기에 매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것도 다 필요한 일이라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합리화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었던 일에 대한 의미, 성평등 정책에 대한 기대와 실낱같은 믿음은 용주골 투쟁을 지켜보며 산산조각 났다. 파주시는 여성친화도시다. 그리고 용주골 폐쇄는 여성친화도시 사업의 일환이다.*2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모순적이지 않은 일로 여겨지는 상황이 경악스러웠다. ‘여성친화’는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여기서 ‘여성’은 누구이며, ‘친화’는 어디에 어떻게 친화적이라는 걸까? ‘여성친화도시’라는 명칭을 자랑스럽게 내건 파주시는 용주골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공동체를 꾸리고 살던 여성들을 짓밟았다. ‘여성인권 신장’, ‘여성과 아이들이 행복한 파주시를 위해’와 같은 핑크빛 명분은 성매매 여성들을 구경거리 삼고 타자화하며 ‘정상-시민’ 여성의 규범을 재확인하는 폭력의 도구였다. ‘여성친화도시’와 ‘여성이 행복한 길’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용주골 집결지 폐쇄는 여성정책이 어떤 여성들을 제물 삼아 그 권위를, 그 정당성을 확립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폭로하는 현장이었다. 이는 여성정책도, 성평등정책도 아닌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성차별적인 정책이자 국가폭력이었다.

 

2. ‘시민-여성’의 삶은 누구의 삶을 짓밟은 대가인가?

매일매일 용주골에 ‘공무수행’ 조끼를 입은 용역이 들이닥쳤다. 주어진 ‘공무’는 사람이 사는 집을 무너뜨리고 여성들을 끌어내는 일이었다. 파주시에게 용주골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보기 싫은 사람과 건물이 즐비한 슬럼가이자 개발과 돈벌이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정부 포상까지 받을 수 있는 정치적 기회였다. 파주시는 용주골 여성들이 실제로 어떤 지원을 필요로 하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고, 당연히 제대로 된 지원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그저 여성들을 치워버리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 이에 용주골 여성들과 주민들, 활동가들은 스크럼을 짜고 경찰과 용역을 막아서며 자신들의 일터와 삶터를, 가족, 이웃, 동료, 친구를 지키고자 안간힘을 썼다.

나는 그 현장에 갈 수 없었던, 가지 못했던 사람이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저 죄책감으로만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매일 차차 인스타그램을 통해 용주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했다. 누군가에게는 비겁하거나 기만적이거나 이기적인 태도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용주골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계속 연결되는 감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올해 성평등 정책의 방향은 뭔지, 어떻게 정책 효과를 높일 것인지, 어떤 지자체 사업이 성평등에 기여하는지, 여성친화적인지, 페미니즘적인지 살펴보고 평가하며 일을 ‘잘’ 해내야 하는 나의 위치가 너무도 참담했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연결된다고 느끼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면서 내가 ‘실제로’ 일하는 공간의 기묘한 평화와 모순을 견디는 건 다른 문제였다. 이곳의 사람들은 자기 일이 어떤 폭력에 가담하고 있는지 알까?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걸까? 아니면 이런 방식의 집결지 폐쇄가 성평등에 기여한다고, 성노동자들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할까? 물론 나 또한 관료제 행정의 일부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일이 여성인권을 위시하며 ‘시민 될 자격 있는 여성’을 선별하고, 낙인찍힌 여성들의 삶을 황폐화하는 공권력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이것을 회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현장을 내 일과 적극적으로 연결하면서 내가 지금 무슨 짓에 가담하고 있는지 똑똑히 기억하려고 했다.

무력 진압과 행정 집행이 말 그대로 폭력적인 행태였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성들은 용주골의 ‘불법 성매매 시설’을 철거하기 위해 들이닥친 경찰과 용역에 맞서서 이곳은 우리의 ‘집’이며 삶의 터전이니 이렇게 강제로 철거하지 말라는 당연한 요구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우리의 요구에 맞는 장기적인 대책을 세워달라고 공무원들에게 애원하고 읍소하며 CCTV를 달고 집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에 맞섰다. 이에 대한 무시는 너무도 노골적이었다. 용역, 경찰, 공무원들은 사람들을 끌어내고 집을 부쉈다. 파주시는 감히 나랏일을 하는 자신들의 앞길을 막고 이의를 제기했다며 여성들을 고소했다.

이에 더해 파주시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혐오를 양분 삼아 ‘시민’들을 대동하여 용주골 여성들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다. '여행길(여성과 시민이 행복한 길)' 사업은 행정 집행과는 다른 방식의 매우 노골적인 폭력이자 감시체제로 작동한다. ‘여행길’은 ‘성매매집결지 폐쇄와 성평등 문화 확산’을 목표로 2023년부터 추진 중인 ‘시민 참여형 교육 및 현장 체험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시민’은 성노동/자를 파주시에서 쫓아내고 싶은 파주시 시민들이며, ‘현장 체험’은 이들이 보라색 조끼를 입고 줄지어 용주골을 거닐면서 용주골 여성들을 철저히 타자로 위치시키며 ‘구경하는’ 행위다. 이들에게 용주골 여성들은 자신들과 같은 파주시민이 아니라 어떻게 처분해도 문제 되지 않는 ‘철거’의 대상일 뿐이다. 이들이 ‘시민’으로서 용주골을 ‘체험’할 동안 ‘불법 성매매 종사자’로 낙인찍힌 용주골 여성들은 건물 안에서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4년째 진행 중인 해당 사업은 “성매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집결지 폐쇄의 필요성을 시민과 공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교육”으로 프레이밍 되고 있으며, 이 사업을 담당하는 파주시 공무원은 성노동 없는 “깨끗한 파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3 시민과 시민이 아닌 자의 경계를 긋고 비시민의 배제된 상태를 위안 삼아 자신의 정상성을 확인하는 행위가 어떻게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교육이 될 수 있다는 걸까? 표면적으로는 성매매 산업의 착취적인 구조를 문제 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주변화된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 파주시는 ‘성평등’과 ‘시민’이라는 공인된 가치로 성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표백하면서 자본 친화적이고 성차별적인 의도를 은폐하고 있다.

 

3. 오래된 이분법의 한계와 모순

성노동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가 성산업을 주도했던 국가와 성구매자 남성이 아닌 성노동자 여성에게 향하는 것은 슬프게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을 뿌리 뽑고 치워버리면 그만이라는 발상이 여성정책, 성평등 정책, 여성-아동-가족친화적인 사업으로 실체화되고 있는 것은 충격적이고 놀라운 일이어야 한다. 성노동자의 존재는 왜 성평등과 여성·아동의 안전 및 권리를 위협하는 요소로 취급되는가? 왜 이들의 삶은 ‘성매매 여성’이라는 명칭 하나로 모두 설명되는 것으로 여겨지는가? 성노동을 한다는 사실 외에 다른 사실들-돌볼 가족이 있다는 사실, 집안의 가장이라는 사실, 용주골에 이웃과 친구가 있다는 사실, 용주골이 ‘집’이라는 사실-은 왜 무시되는가? 성평등과 여성인권은 왜 ‘성노동자-여성’의 권리와 무관한 것으로 이야기되며, 왜 이들의 삶을 뿌리 뽑는 것이 ‘시민-여성’의 권리 신장이 되는가? 성노동자의 자립 지원은 왜 탈성매매를 조건 삼아 여성들을 감시하는 장치로 활용되는가? 여성들은 왜 성노동을 해도, 성노동을 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범죄자로 취급되면서 체포, 고소, 기소, 압수수색, 지원금 몰수의 방식으로 처벌받아야 하는가? 여성들은 왜 성매매 문제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가? 이 문제의 진짜 가해자는 누구인가?

용주골 집결지 폐쇄를 주도하고 가담한 김경일 시장, 담당 공무원, 시민들, 그리고 정부는 용주골 여성들의 삶을 발판 삼아 실적을 채우고, 성과를 가져가고, 예산을 따내고, 치하를 받으며 이득을 취했다. 이들이 말하는 ‘여성인권’에 용주골 여성들의 인권은 없었다. 누군가는 지원금이 나온다는데 탈성매매 하면 되지 않느냐, 또 누군가는 왜 ‘창녀’에게 돈을 주느냐 화내며 자신의 정상성과 타자의 비정상성을 확인한다. 성노동자에 대한 시혜적 태도는 손쉽게 혐오와 분노로 탈바꿈한다. 이들 중 당사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했던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이들에게 자녀가, 이웃이, 가족이, 친구가 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나 있을까.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졌던 숱한 모욕, 폭력, 차별 속에서도 용주골을 떠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을 조건으로 -거액도 아닌- 돈을 주겠다는 자활지원조례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본 적 있을까. 당사자들이 성매매를 ‘선택’했건, 인신매매 ‘당했’건, 용주골에 남거나 남지 않건, 어떤 이유로든 지금 파주시가 용주골 여성들에게 하는 짓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떤 이유로 성매매를 시작했든, 탈성매매를 하지 않는/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당장 나의 집과 공동체, 일터가 없어지고 이웃과 가족과 단절되며 더 위험한 곳으로 내몰려야 하는 여성들 앞에서 성매매가 성착취냐 아니냐, 그걸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느냐 같은 논쟁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 거대한 국가폭력이 수많은 기관과 행위자들의 이해관계 속에 정당한 행위로 이해되면서 진행되는 방식이다. 애초에 이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폭력과 착취를 ‘여성인권’ 같은 말로 포장하며 시작부터 용주골 여성들의 제거를 목표로 자행된 파주시의 강제 철거는 여성정책이 어떻게 여성의 비인간화에 공모하는지, 가부장적 국가폭력이 오늘날 얼마나 노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면서도 성평등의 언어로 체계적으로 은폐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도시 개발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성노동자에 대한 국가폭력의 연장선에 있다는 분석과 함께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은 여성인권의 유린이 성평등정책, 여성정책의 일부로 이루어지면서 정당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4. 내 안의 모순과 불화를 마주하기

끝으로 ‘여성의 여성혐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노동 또는 성매매에 대해, 자신의 ‘여성적 신체’를 상품화하는 이들에 대한 논쟁이 일 때 많은 페미니스트-여성들이 여성인권의 언어로 ‘창녀’에 대한 혐오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종종 매우 공격적이고 적대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러한 불화가 성노동 의제가 섹스와 가난에 대한 내면화된 혐오를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노동은 여성을 사람이 아닌 성적인 객체로 대상화하고, 착취하고, 심지어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 성차별적 구조에 분노하게 하는 문제인 동시에, 친밀한 관계와 성적 실천을 욕망하는 자기 안의 모순-시스 헤테로 여성일 때 더욱 심화되는 모순-을 직면하게 한다. 모순으로 분열되는 자아는 손쉽게 타인에 대한 혐오로 나아간다.

혐오는 복합적이다. 가난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절대 빈곤해지지 않겠다는 결심과 성매매에 대한 혐오의 결합은 성매매할 돈이 있는 남성이 아니라,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되는 성노동자 여성을 공격한다. 그것이 자기모순과 자기혐오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구조와 알아차리고 싶지 않은 자기보호 본능은 ‘창녀 혐오’라는 아주 쉽고 간단한 해결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특정 인구 집단을 ‘소수자’ 또는 ‘취약계층’으로 구성하며 그들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구조 속에 얽혀있고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지, 어떤 힘들이 이런 총체적 은폐를 조장하는지 직면해야만 이런 기만적인 성차별적 여성정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삶으로 내몰리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성노동자, 퀴어, 장애, 이주민, 빈곤에 대한 혐오가 판치는 세상에서 내면화된 소수자 혐오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나의 삶의 어떤 부분은 누군가의 삶이 짓밟힌 대가로 주어진 특권일 수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알아차림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거기서부터 저항과 투쟁이 시작될 수 있다.


 

작가의 말: 페미니스트 연구자이자 공부 노동자. 주로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잔다. 모순투성이인 세상에서 모순덩어리인 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용주골 투쟁이 한창일 때 관련 기관에서 일하면서 받았던 충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 일이 여성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참담했습니다. ‘참담하다’는 심정은 용주골에 공무수행 조끼를 입은 용역과 보라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들이닥치던 수개월 동안 저의 일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왜 그때의 저에게 용주골이 그렇게나 크게 다가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짐작컨대 일에 대한 회의감이 용주골 투쟁을 기점으로 임계점을 넘었던 것 같습니다. 그 회의감에는 성평등이 기계적인 평등으로 의미가 제한되고 ‘귀찮고 성가신’ 행정업무로 전락한 것에 대한 실망감, ‘성난 남자들을 달래기 위해' 여성이 과반인 기관에서 돈과 인력을 갈아 넣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 여성정책이 말하는 ‘여성’이 얼마나 협소한 범주이자 정상성에 기반한 개념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여성정책이 말하는 여성은 고분고분한 노동자이자 아내이자 딸인 규범적인 존재라는 것을, 남성 중심적인 구조에 저항하지 않고 지금의 체제가 잘 유지되도록 ‘정상 생애주기’에 맞게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것을, 그 궤도에서 벗어난 여성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음을 소리쳐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정책은 가부장적 체제를 여성이 더 잘 떠받들게 하기 위한 기만일 뿐이라고. 

법이 말하는 ‘여성’으로 묶일 수 없는 수많은 존재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권리를 요구하고, 페미니즘의 언어로 여성들을 위계화하는 권력에 저항하고 싶었던 마음이 용주골 투쟁을 마주하면서 어떤 결심으로 나아갔던 것 같습니다. 용주골 여성들과 내 일의 모순적인 관계가 만들어내는 불편함, 껄끄러움을 나와 분리하지 않고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그건 여성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의 책임감과 부채감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저는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달라진 저의 위치에서 그때의 감각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용주골 기록집 토론회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꺼내본 제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고 눈을 맞추어준 분들로부터 얻은 힘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야만적인 세상은 도무지 폭력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저항은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모인 마음과 힘이 또 다른 원동력이 되기를 바라여 봅니다.

각주

더보기

1) 씨리얼(2023.12.22.). “용주골, 수도권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속 여성들”.
https://youtu.be/oAW-5FJqvVw?si=iRfOl-XvnpbsGybO

2) 파주시는 2020년 여성친화도시로 신규 지정되었다. 2019'파주시 여성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 제정과 여성 경제·사회 참여 확대, 지역사회 안전 증진, 가족친화환경 조성 등 특화사업을 추진하면서 202012월 처음 지정된 후 2025년 재지정되었다. 여성친화도시 재지정에 기여한 사업이 바로 성매매집결지 폐쇄, 즉 용주골 여성들의 강제퇴거 조치와 강제철거 행정집행이다.

3) 안상일(2026.04.15). ""반복이 아닌 변화의 축적" 파주시, 6차 여행길 교육 운영". 미디어투데이. https://www.mediatoday.asia/sub_read.html?uid=1697702§ion=sc18§ion2=%ED%8C%8C%EC%A3%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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