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녀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박복녀 (朴福女)
💄들어가는 말_
용주골에서 만난 젠더 불분명 레이디들과 24년 겨울, 레이디나잇을 보낼 때 입었던 가슴과 등이 패인 블랙 미니드레스에 디올 879호를 풀로 바르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때의 기세와 팸력을 장착해야지. 마감 기간은 5월 3일까지였지만, 어버이 없는 어버이날에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기 전 약을 이르면 저녁 7시 30분, 늦어도 10시에 복용한다. 지금은 밤 11시가 훨씬 넘었다. 렉사프로정 5mg, 트리티코정 50mg, 큐로켈정 12.5mg, 환인클로나제팜정 0.5mg은 투명한 봉투에 가지런히 담겨있다. 글을 쓰기 위해 잠시 약 봉투는 옆에 고이 두었다.
❚ 가출과 탈출 그 어느 사이.
알코올 중독과 폭력성이 있는 애비와 히스테릭한 엄마. 멘헤라 남녀가 만나 멘헤라 베이비를 낳았다. 2010년대 중반 어느 가을, 20대. 가방을 앞뒤로 메고 집을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폭력이 일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날은 비자발적으로 생명이 중단될 뻔할 정도의 폭력이 있었다. 신고는 가해자가 했다. 경찰이 도착하자 가해자는 자신의 직업과 소속을 밝히며 “쟤가 미쳤으니 정신병원에 집어넣어라.”라고 말했다. 경찰은 애비와 나를 파출소로 데려갔다. 파출소에 도착했다. 남경 몇 명이 있었다. 경찰은 내게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형사처벌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중 한 경찰은 “아버지가 공무원인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요?”라는 말했다. 공무원은 형사사건에 연루되면 회사에 그 사실이 고지되는 뭐 어쩌고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외상이 있어 인근 큰 병원으로 이동했다. 나를 차에 태우고 간 경찰은 2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 남의사에게 내가 가정폭력 피해자임을 고지했다. 졸린 눈을 한 의사는 심드렁하게 부러지거나 금 간 곳이 없다고 말했다. 병원 침대에 누웠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묘하고 쎄한 기분. 그 기분에 의사에게 진료기록을 어떻게 작성했는지 물었다. 의사는 “모르는 사람에게 폭력을 당했다고 적었다.”고 답했다. 나는 “모르는 사람 아니고요, 친부예요. 저 가정폭력 피해자예요.”라고 분명히 말했다. 의사는 사과 한마디 없이 “이거 나중에 바꾸고 싶어도 못 바꿔줘요.”라고 말했다. 나는 “알아요. 제3 자 아니고 친부라고 적어주세요. 친부한테 폭력당했다고요.”라고 또박또박 의견을 전했다. 가해자는 남경, 남의사에게 요청하지도 않은 환대와 연대를 받았다. 병원에 있다가 ○○경찰서로 이동, ○○경찰서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은 채 조사하려 했다. 나는 여성 경찰에게 진술하고 싶다 요청했다. 해당 서에는 그 시간에 여성 경찰이 근무를 하지 않았다. 끈질긴 요청 끝에 나는 옆 구에 있는 □□경찰서에 가서 여성 경찰에게 진술할 기회를 얻었다. ○○경찰서를 떠나기 전, 제발 당장 필요한 짐만 가져올 수 있도록 가해자를 잠시 붙잡아 두고 있어 달라고 말했다. 경찰은 나한테 그럴 권한이 없다고 했지만 죽기 살기로 빌었다. ‘빌었다’기 보다 구걸에 가까운 모양새가 되었다. 경찰은 빨리 챙겨서 나오라는 말을 했다. 그 시간에 집까지 뭐를 타고 어떻게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재빠르게 짐을 챙겼다. 통장, 도장, 신분증, 자격증 및 각종 수료증 사본을 모아둔 파일, 속옷, 옷 두어 벌, 노트북 비슷한 가전. 파란색 꽃무늬가 있는 하얀 드레스가 책장에 걸려있었다. 함께 활동하던 동료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선물.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 드레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야 했다. 시큰한 마음을 부여잡은 채, 그 드레스는 두고 나왔다.
택시를 타고 여성 경찰이 있는 □□경찰서로 향했다. 새벽에 집 나온 여자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택시 기사에게 친구한테 일이 생겨 가 주어야 한다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거짓으로 말했다.
그것이 나의 가출과 탈출 그 어느 사이의 시작이었다.
❚ 첫 출근. 그리고 재판.
당시 일자리 사업 참여로 어딘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사건 다음 날이 첫 출근 하는 날이었다. 누군가는 부모의 축하를 받으며 첫 출근을 맞이하겠지만 나는 시퍼렇게 멍이 든 채 첫 출근을 했다.
처음에는 형사처벌을 하려고 했지만 □□경찰서에서 만난 경찰분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녀 님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인 폭력을 경험하셨지만, 신고된 것은 처음이기에 가해자는 초범이다. 때문에 벌금 몇만 원 정도 나올 것이고 자칫하면 벌금도 안 나올 수도 있다. 차라리 가사사건으로 진행하면 가해자에게 알코올중독 치료, 상담치료 명령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귀찮게 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셨다. 처음부터 친절하고 편안하게 진술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내가 울고 힘들어할 때 천천히 말해도 괜찮다고 다독였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가사사건으로 사건을 진행하게 되었다. 가정법원에서 진행하는 가사사건이라고 해도 일하면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죽고 싶어서 별 상상을 다했다. 자살과 관련된 검색을 했지만 검색어가 막혔다. 실패해서 장애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성공률이 높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원하는 정보 대신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메시지가 창에 떴다. 시간 감각은 사라졌고 악몽이 이어졌다. 하루하루가 정말 고달팠다. 인턴 활동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함께 일하던 사수분께서 이 지역에서 함께 활동을 이어 나가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주셨다.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피폐하여 정중히 거절하고 다시 서울로 갔다.
❚ 창녀 경력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보내던 시절이었다. 신림에서 잠시 머무를 때였다. 신림역에 내리면 온갖 업소가 즐비했다. 바닥에는 헐벗은 여성의 전단지가 뿌려져 있었다. 김밥 한 줄 사 먹을 돈에도 벌벌 떨어야 할 만큼 금전적 어려움에 시달렸다. 문제는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불안정한 생활이 이어지니 정신도 신체적으로도 더욱 쇠약해져서 ‘일반적인’ 일을 구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이다. 여러 업소, 늦은 밤 젊은 여자와 늙은 남자가 함께 걸어 다니던 신림*1. 역에 내려 걸으며 생각했다. ‘잠시라도 창녀가 되어야 할까?’ 그러나 창녀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키도 작고 날씬하지도 않은 내가 과연 창녀가 될 수 있을까, 일하다 성폭행을 당하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까, 안 그래도 재판 진행으로 힘든데 창녀로 일하다 경찰에 연루되면 일이 더 복잡해지는 것이 아닐까, 앞으로 여성단체 활동가로 일하고 싶은데 이 창녀 경력이 알려지면 여성단체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이어졌다. 결국, 창녀가 되지 못했다.
❚ 가난은 뼛속 깊이 잔인하다.
가난은 잔인하다.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밥값, 커피값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끼리 식사 이야기가 나올 때면 밝은 표정으로 “배불러서 밥까지는 못 먹을 것 같아!”라고 둘러댔다. 밥을 먹고 카페로 이동할 분위기가 되면 “나는 피곤해서 먼저 가 볼게!”라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너무나도 어울리고 싶었다. 겨울 신발 없이 겨울을 나던 때였다. 시린 발과 시린 마음을 안고 보일러가 고장 나 온기 하나 없는 철거 예정을 앞둔 봉천동의 임시 거처로 발을 향했다.
❚ 창녀 되기_손님의 조언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하나하나가 다 돈이었다. 수건, 수세미, 주방세제, 샴푸, 바디워시, 비누도 다 돈 주고 사는 것이라는 것을 집을 나와서야 알게 되었다. 일을 구하기 위해 몇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사회 초년생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한 곳에서 일하게 되었으나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말 그대로 0원으로 집을 나왔다. 아무것도 없이 나온 사람은 돈을 모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사야 했으니까. 계절 옷, 계절에 맞는 신발, 바닥깔개, 이불, 베개, 최소한의 소형 가구. 정말 생존에 필요한 것만 갖추고 살았을 때 몇 명을 잠시 머물던 거처에 초대했다. 수건 딱 2장만 갖고 있던 것을 보고 한 친구가 “야, 너 군인이야? ㅋㅋㅋ”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남자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수건 2장만 있는 것은 일반적이진 않지.
창녀가 되기 위해 핸드폰으로 이곳저곳 찾았다. 주변인에게 갚아야 할 돈도 있었다. 첫 일터는 가락시장 근처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미성년자가 아님을 확인받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몸까지 파는’ 것은 무서워서 술을 따르고 시중을 들고 가벼운(?) 터치까지 받는 일을 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여러 손님 중 한 명의 파트너로 앉는 자리도, 혼자 온 손님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느 날 혼자 온 손님이 조언했다. 이 지역은 빡센 동네라고. 그리고 혼자 온 놈 중에 변태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손님은 내가 어디 사는지 물었다. 사는 곳 말고 사는 곳 인근 다른 구에서 일하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 창녀 되기_초이스
페미니스트로서 성노동 하는 것, 초이스 시간은 참으로 괴리된 감각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내가 만나고 경험한 여성주의는 다양한 몸을 추구하고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외모 기준을 강요받는 것에 대한 부당함, 채용 시 외모 차별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 이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성노동 환경에서 ‘외모’는 가장 큰 자원이자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외모가 상위 티어면 초이스에 유리했다. 그만큼 진상손님을 피해 비교적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진상 당하면 그 룸을 바로 나오면 되니까. 어차피 다른 방에서 금방 초이스 되니까! 나 역시 뭔가 모르게 부어있거나 어정쩡한 느낌의 날엔 초이스가 어려웠고, 살이 오르지 않았을 때, 화장이 잘 된 날에는 편하게 일했던 것 같다.
한 번 어느 가게 여자 사장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아! 얘 상태 왜 이래? 여기가 노래방이야?!”라고 대놓고 말했다. (저 귀 잘 들려요). 이 말은 즉, ‘노래방급’ 애가 왜 여기에 와서 얼쩡거리느냐 이것이었다. 성산업도 업종과 ‘수준’이 다르다. (수준 맞는 분 찾아요). 텐프로, 하이쩜오, 룸, 노래방, 기타 등등. 20대였던 당시 ‘같은 여자’에게 그런 말을 들어 더욱 충격받았다. 두 가지의 충격이었다. 첫째, 내가 ‘노래방급’이라는 평가를 들은 것. 둘째, 이런 말에 휘청거리는 페미니스트라는 나의 자아. 마르고 예쁘고 색기까지 겸비되어야 신체적, 정신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생태계 속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은 조우하기 힘들었다. 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기도 힘들었다. 그러면 정말 내가 ‘노래방급’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페미니스트로서 외모 차별 금지를 말하고 다양한 몸에 대해 말하던 그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군가가 성노동을 한다고 하면,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사이즈 관리하라고. 그래야 너를 보호할 수 있다고.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고.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서라도 ‘사이즈’ 관리가 필요하다고. 성노동 업계, 특히 초이스를 보는 업종에서 가장 큰 능력은 ‘외모’다. 내가 경험했던 화류계에서의 고평가되는 외모는 이랬다. 첫째, 몸매에 대한 부분. 적당히 키도 크고 마르고 그렇지만 동시에 ‘여성적’인 라인이 있어야 한다. 말랐지만 가슴은 있고, 골반도 드러나야 한다. 작은 머리와 얼굴, 목 길이, 목과 어깨라인, 곧은 다리. 비교적 수술로 채우기 힘든 요소들. 둘째, 와꾸에 대한 부분. 손님마다 취향이 다 다른데 크게 이렇게 나뉘었다. 화려함과 섹시함, 귀여움, 청순함. 평소 하남자들이 화려하고 기 쎈 언니 스타일을 (감당하지 못해) 후려치지만 업소에서 고양잇과 동물의 아우라에 화려한 느낌의 언니들이 인기가 많았다. 여자력이 넘치는 동시에 귀여움과 청순함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은 안다. 이런 생각이나 말이 내가 페미니스트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각 집단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다르다. 그 능력은 곧 그 집단에서의 인정이고 그 인정은 곧 성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영업직이라면 말솜씨, 신뢰감 주는 옷차림, 무례한 상황에서도 분위기 싸해지지 않게 유머러스하게 넘길 수 있는 스킬. 이것을 싸바싸바나 자존심도 없는 인간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 창녀 기갈_손놈 패기
쎄함은 과학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번은 어느 룸에 들어가서 초이스를 보고 있었다. 쎄한 느낌에 일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 방은 정말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그런데 한 손님이 어딜 가냐며 여기 앉으라고 말했다. 찜찜했지만 앉았다. 그런데 알 수 없이 정말 못 참겠다는 감각이 온몸을 타고 돌아다녔다. 손님에게 테이블 셋팅 좀 다시 할 수 있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잠시 숨을 돌리고 룸에 다시 들어가 앉았다. 내가 앉으니 그놈 손가락이 내 보지에 닿았다. 손가락을 세웠다. 하. 씨발. 룸 테이블 구조상 들어가고 나오기 힘들다. 그 사이 그 새끼가 내가 앉기 직전 손등을 쇼파에 두고 손가락을 세운 것이다. 말없이 일어났다. 문 앞에 섰다. 그러다 깨달았다. ‘잠깐. 내가 왜 그냥 나가?’ 그 새끼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앉아 있는 그 새끼를 아무 말 없이 위에서 내려다봤다. 손을 들어 힘껏 그 새끼 턱주가리를 쳤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다른 언니들도 얼이 빠져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나는 방을 나갔다. 씩씩거리며 나오는 내게 사장은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어떤 개새끼가 남의 보지에 손가락을 넣잖아!” 그 새끼가 누구냐면서 들어가서 알려달라고 했다. 그놈은 턱을 부여잡으면서 “저년, 저거, 저거. 내가 폭행죄로 신고할 거야!”라고 (ㅈ⊥ㅈ)뱀 마냥 쒸익~거렸다. 사장은 “아저씨, 아저씨가 먼저 성추행으로 깜빵에 들어가.”라고 일갈했다.
그놈이 쫓아와서 팰까봐 그 가게에서 돈도 안 받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또 그 소갈딱지가 폭행죄로 신고해서 혹시라도 경찰에 연루되면 비합법적인 일,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일을 했기에 문제가 생길까 자리를 피한 것도 있었다. 후회하진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싸다구로 정의를 구현했잖앙?💖 통쾌했다. ‘주님. 오늘도 정의로운 업소녀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아, 딱 하나의 후회가 있다. 좀 더 강하게 내리쳐야 하는데 살짝 빗나갔던 것. 여자는 체력이라던데. 아쉽다. 그리고 최고의 치유는 역시 복수다.🔥
❚ 비싸지길.
성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단가(?), 임금이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들은 쉽게 돈 번다, 어쩐다하며 나팔을 분다. 돈을 쉽게 벌든 어렵게 벌든 님이 뭔 상관? 성노동 내에서도 직군, 업무 내용이 다 다르다. 경력도 다 다를 테지! 성노동에는 ‘위험 수당’이 포함되어야 하기에 더더더 비싸져야 한다. 다른 일을 할 때 이력서에 쓸 수도 없고, 주로 밤에 일하기 때문에 루틴이 틀어지며, 야간 노동은 발암물질 1급이라고 뉴스에도 나왔다.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당당하면 누가 성노동 했는지 국가 시스템으로 기록에 남기라고. 성노동자가 현재 공무원이야 정치인이야 뭐야. 사회적 지위나 국가 녹봉을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한 달 두 달, 1년 일한 경력도 국가 시스템에 등록하라고 말할 건가? 쉽게 돈 버는 것 같아 질투 나고 배 아프면 성노동에 도전해 보세요! 여성이나 기타 누군가의 성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돈가스 먹을 돈 아껴서 제대로 된 값을 지불할 생각이나 했으면 좋겠다. 그게 훨씬 더 발전적인 생각이다.
❚ 복녀씨도 이제 한계다.
나도 이제 한계다.
여자 탓, 업소녀 탓, 비용 탓하지 마라.
나도 다른 언니들도 충분히 참아줬다.
네 놈이나 나나 각박한 세상에서 살고, 그저 그런 인간 1로 살아간다. 그래서 다른 아가씨들이 돈 없는 새끼들이 더 진상이라는 말에 허허 웃기만 했다.
너에게 언제나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서비스를 해주려고 했다.
네가 염병하거나 수위 높이거나 짜치게 굴 때도 앞에선 웃었지만 뒤에서는 다른 언니들이랑 네 지갑 사정 염려했다.
그래도 저놈은 없는 돈 긁어모아서 여기 왔겠지.
돈 많은 놈이라면 뽕 뽑으려 아가씨들 괴롭히지 않았겠지.
이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게 뭐냐?
너가 양심이 있긴 하냐?
도대체 여자 후려치기에 짜치게 하는 것밖에 더 있냐? 돈도 없어 욕심만 그득해, 제값 낼 생각도 없고 맨날 수위 높이려고 해, 은근슬쩍 떠보려고 해
늘 요구는 많으면서 해주는 게 뭐냔 말이다.
오늘 문득 내가 널 잘못 조련했다는 생각이 든다.
네놈들 꼬라지를 보니 헛웃음만 나더라.
그냥... 이제 발이나 씻고 여혐 그만하고 잠이나 자라.
업소녀들 원망하지도 말고 돈가스 배달, 게임 현질, 낚시에 쓸 돈 아껴서 찾아가라.
나도 지쳤다.
✨나가며_
아무 준비 없이 어느 가을 집을 나와 춥고 시린 겨울을 넘어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은 동료 페미니스트들 덕분입니다.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날 새벽, 경찰 조사가 끝나고 워크숍 장소로 갔던 내게 한 끼도 못 먹었을 거라며 샌드위치를 만들어다 준 B. 가정폭력 피해자로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준 여성단체, 20대 초반 또래의 친구에게 혹시 집에 반찬이 있으면 조금만 나눠줄 수 있을까 하고 물었을 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던 친구. 우리 그때 어렸었네. 너는 대학교 재학 중이었고. 당연히 밥 한 두끼 정도 먹을 돈을 보내주겠거니 했는데 10만 원이라는 지금도 아주 큰 돈을 선뜻 보내준 친구. 이제 나 돈 갚을 수 있다고 했을 때 내게 말했지. “복녀야, 돈 안 갚아도 돼. 나중에 네가 도울 사람 있으면 도와줘.”라며 내 앞날을 응원했던 D. 난방과 가스가 들어오지 않았던 집에 먹을 것을 보내준 H. 혹시라도 분실될까 복도에 있던 세탁기에 먹거리 택배 상자가 들어있던 날을 잊지 못합니다. 집 나오면 다 돈이라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 준 K. 법정에 들어가기 전 전화 너머로 울며 통곡하던 나를 위로해 준 L. 나를 위해 개별 탄원서를 써 준 20여 명의 연대의 손길. 이리저리 떠돌다가 처음으로 1년 넘게 집다운 집, 들어가고 싶은 집에 함께 살던 하우스메이트 언니 N. 그때 너무 신나서 언니가 사는 집으로 이사 가고 두세 달 가까이 거의 매주 주말 친구들 초대했잖아. 어떻게 견뎠어? 언니가 만든 맛있고 정성 가득한 식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어. 언니 찐 보살이야. 정병으로 쓰레기 집을 하고 살았을 때 내가 없던 집에 와서 쉬지 않고 청소해 주던 친구들 L, P, C. 이런저런 좋은 정보 물어다 주고 달달한 케이크 사주는 상여자 범띠 S. 혼란스럽고, 갈팡질팡했던 시간을 들어준 ‘성노동자 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의 여름. 그리고 우리 동네 고양이들 고맙습니다.
작가의 말: 인생이 참으로 박복한 여자, 동시에 복을 짓는 여자. 박복녀 입니다. 여러분은 박복녀의 이야기를 들으셔야 합니다. 읽어 보셔야 합니다. 거창한 이유는 따로 없습니다. 자랑입니다. 그러나 이 친절한 레이디는 차근차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 창작물을 쓰게 된 계기, 공개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드립니다.
저는 차차를 애정합니다. 차차에서 하는 프로젝트인데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요. 창작물을 쓰게 된 계기는 페미니스트로서 성노동 경험, 일터 안에서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어떤 상황에서 혼란스러웠는지,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과 성노동을 하며 들었던 생각들이 조우할 수 있는지, 혹은 조우하기 힘들었는지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글 안에서 날 것의 언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 맥락들이 낙인과 혐오로 관통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일부의 무리’는 박복녀의 글을 보고, ‘하, 역시 페미들도 바디 포지티브, 외모 차별 반대 이지랄 하면서 역시 지들도 어쩔 수 없구나. 지들도 이쁜 여자들 질투하고 부러워하나 보네.’ 라고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말을 배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그들은 나를 이해할 필요도 없고 박복녀도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입니다. 작품을 공개하고 싶은 이유요? 여러분, 박복녀는 관심 따위에 관심 없는 척 관심받기 좋아합니다. 박복녀의 글에 많은 댓글이 달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정신병자라 관심이 필요합니다. 가장 큰 관심은 하트와 따봉, 댓글입니다. 페미니스트, 젠더소노, 젠더불분명 무지개반사 퀴어분들, 터프분들, 한국 남성분들, 제가 누군지 추측하고 싶으신 분들, 못생기고 뚱뚱한 것들을 혐오하시는 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당신이 박복녀의 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 복(福)이 찾아올 것입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관심을 남겨주신 분들의 일상에 복이 찾아갈 수 있도록 향을 켜고 진심을 다해 기도를 올리려 합니다. 저, 박복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여자 아닙니다. 여러분의 관심이 저를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박복녀의 기도빨로 당신의 일상에 복을 누리십시오.
각주
1) 특정 지역을 낙인화 하기 위해 지역명을 거론한 것이 아님을 밝힌다. 내가 경험한 공간, 그 안에서의 서사를 드러내기 위해 지역명을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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