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영
식혜
2024년부터 지금까지 구제샵에서 일하고 있다. 구제 의류 중에서도 중년 여성복을 주로 판매하는 이곳에서 온갖 여자들을 다 만났다. 나이 든 여자들은 말이 많다. 무슨 일을 하다 늙어 그만두게 되었는지, 어느 아파트 몇 동 몇 호에 사는지, 남편 욕, 자식 자랑.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한다. 그럼 나는 온갖 표정을 써가며 정성껏 대답한다.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이는 많을수록 좋다. 내 취향은 연상녀다.
본인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손님도 있다. 만화에 등장하는 미영(가명)이다. 미영은 올 때마다 나에게 가장 예쁜 옷을 골라서 대령하라고 한다. 막상 가져가서 보여주면 다른 옷을 보느라 내가 내민 옷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럼 나는 미영이 내가 가져온 옷을 봐줄 때까지 계속 들고 서 있는다.
그런 미영이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야!”, “뭐래니?”, “그 옷 싫어.”, “너네 사장은 십 원도 안 깎아주는 씨발새끼.”, “택시 좀 불러봐.”
처음에 나는 그 말들이 너무 세다고 생각했다. 듣기 싫었다. 싫어서 저 멀리서 우리 가게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미영의 모습이 보이면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미영을 과하게 반기기 시작했다. 유리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였다.
2025년 8월, 유리글방을 처음 등록했다. 유리 선생님이 ‘성노동자 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의 활동가이신 건 알았지만 ‘성노동자’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는 상태였다. 첫 수업을 듣자마자 나는 선생님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여태 이런 선생님을 기다려왔구나 싶었다. 선생님은 점심 메뉴 얘기하듯이 시민 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을 들려주신다.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내가 몇 년을 찾아 헤맸던 트랜스젠더 담론 도서를 3초 만에 추천해 주신다. 자칫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었던 내 합평을 유연하게 감싸주신다.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교수에게 동성애 혐오 발언이나 듣고 있던 내 대학 시절이 꿈같다. 유리 선생님은 학생들 삶에 별로 관심도 없어 보이고 그래서 학생을 편애하지도 않았다. 정말 딱 합평에 필요한 말만 하고 줌 화면을 끄고 사라지셨다. 줌은 방장이 퇴장하면 바로 회의실 창이 꺼진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이 나랑 잘 놀아주다가 갑자기 날 버리고 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게 나를 좀 공허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글방 재등록을 하기가 꺼려졌다. 그래도 꾹 참고 재등록을 했다. 수업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에게는 납득이 안 되는 존재가 없는 것 같았다. 무심해 보이는데도 사랑하지 않는 존재가 없어 보였다. 수업을 들을수록 나는 더 많은 존재들을 납득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그게 좋았다. 지금은 회의실 창이 뚝 꺼지는 순간도 좋아한다.
선생님이 너무 좋았다. 선생님처럼 글 쓰고 말하고 싶었다. 따라 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에 올라온 선생님의 글을 모조리 찾아 읽기 시작했다. 너무 선생님 글만 읽고 살다 보니 선생님이 자주 쓰시는 단어나 말투가 툭툭 튀어나왔다. 만족스러웠다. 한 번은 내 글 합평 중에 “이 문장이 되게 제가 쓰는 문장이랑 비슷해요.”라고 하셔서 너무 당황스러워서 모르는 척했다. 내가 음침하게 따라 하고 있다는 걸 들킬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다행히도 선생님을 따라 하기란 정말 어려웠다. 아무리 따라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도 선생님의 글을 주구장창 읽었다. 그러다 하루는 블로그에서 이 글을 읽었다.
“요즘은 누가 성노동자이기만 하면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에 관해 생각 중이다. 다른 그룹보다 여기에 동지애를 강하게 느낌.(…) 성노동자이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ㅇㅋ 이리 오셔서 따듯한 자리에 편히 앉으시고 커피, 차, 술, 과자 밥은 뭐 드시고 싶은지 뭐 필요한 건 없는지 궁금…”*1
‘성노동자이기만 하면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나도 똑같이 느껴보고 싶었다. 미영이 술집 여자인 것 같다며 내게 뒷말하던 손님들이 떠올랐다.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 상상하며 미영을 대했다. 미영에게 무작정 잘해줘 봤다. ㅇㅋ 이리 오셔서 따듯한 자리에 편히 앉으시고 원피스, 가디건, 치마, 청바지 중에 뭐가 좋으신지. 미영이 나에게 별것도 아닌 걸로 야! 소리치면 푸흐흐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미영도 왜 웃냐면서 푸흐흐 웃었다. 웃는 게 귀여워서 택시도 곧잘 불러줬다. 어느 날 택시를 기다리던 미영이 내게 말했다.
“내 인생 원래는 이렇지 않았어.”
나는 대답 없이 미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미영은 내게 본인의 인생이 어떤지 알려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남편 얘기, 자식 얘기. 다른 손님들은 다 하는 얘기를 미영은 하지 않았다. 나는 들은 것도 없으면서 멋대로 미영을 추측했다. 미영이 반짝이는 짧은 원피스만 사가서. 미영에게 늘 술 냄새, 담배 냄새, 향수 냄새가 나서. 미영이 구제샵에 들어오면 늘 속닥거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미영도 내가 미영의 지금을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옛날에는 내가 이 동네에서 제일 예쁘고 부자였어.”
“지금도 예뻐.”
“지금이랑은 비교도 못 해. 엄청 예뻤어.”
“그래?”
“응. 그러다 남편을 만났어. 사업하는 남자였는데, 엄청난 빚을 남기고 죽었어. 갈게~”
미영이 말을 하다 말고 택시를 타고 떠났다. 나는 미영의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렇게 미영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던 때에 갑자기 애인과 헤어지게 되었다. 애인은 내가 ‘자아가 비대한 부치’라서 싫다고 했다. 애인이 내게 ‘성매매는 노동이 아니’라고 일찍부터 가르쳐 뒀는데, 내가 글방을 다니더니 갑자기 ‘성노동도 노동’이라고 반박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애인에게 ‘팸 말 안 듣는 자아 비대 부치’로 불렸다.
애인이 차를 타고 나를 집까지 데려다준 날이었다.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애인이 말했다.
“요즘 버추얼 방송이 돈이 그렇게 잘 벌린대. 그래서 나도 한 번 도전해 보려고. 근데 이 일은 다 괜찮은데 남자 시청자들 비위를 맞춰줘야 돼서 문제야. 그래도 남자들 비위만 잘 맞춰주면 돈이 잘 벌린다니까 한 번 해보려고.”
내가 답했다.
“근데 성노동도 남자들 비위 맞춰주고 돈 버는 일인데, 왜 성노동은 노동이 아니야?”
그 말을 듣자마자 애인이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왜 또 그 얘기를 하느냐고. 울면서 나에게 성노동이 노동이 아닌 이유를 설명했다. 성매매는 여성 인권을 퇴보시킨다고. 성매매가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자들도 남자들이 돈이면 다 살 수 있는 줄 알게 된다고. 아무리 돈이 없어도 성매매를 하는 건 안 되고, 공부를 해서 직업을 갖든 알바를 하든 해야 한다고. 네가 성매매를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단체를 지지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애인의 말을 듣고 나서도 나는 성노동과 버추얼 방송이 뭐가 다른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애인이 하겠다는 버추얼 방송은 남자 시청자들에게 신청곡을 받아서 노래를 불러주고 수다를 떠는 방송이었다. 애인이 평소 싫어하던 BJ 방송과도 비슷했다. 반박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애인의 말을 잠자코 듣는데, 자꾸만 미영과 유리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라서 속이 메스꺼웠다. “네 말 들으니까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서 토할 것 같아.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말했다가 애인의 차에 더 오래 붙잡혀 있게 되었다. 애인이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서 토할 것 같다고? 네가 사랑해야 될 사람은 나 아니야? 우리는 왜 남의 일 때문에 싸워야 돼? 네가 성매매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때는 얘기하지 못했지만, 나도 차차의 글을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세상에는 이주, 장애, 질병, 학력, 빈곤, 나이, 성정체성,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가족 형태로 인해 성노동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공부를 할 수 있는 몸과 정신으로 태어나 돈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랄 수 있는 건 아니다. 공부를 해서 직업을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지원서를 내도 알바 자리 하나 구해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읽은 성노동자 개개인의 사연을 여기에 옮겨 적고 싶지는 않다. 언제까지 성노동자의 서사는 충분히 불쌍해야 하는가. 얼마나 불쌍해야 납득할 것인가.
차차는 그저 ‘성매매를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가 아니다. 차차는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성노동 비범죄화를 주장한다. 앞서 말했듯 다양한 이유로 ‘굳이’ 성노동자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는 탈성매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고, 당장 탈성매매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차차는 탈성매매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의 탈성매매를 적극적으로 돕는다. 탈성매매가 불가능한 성노동자를 위해 차차는 그들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맞서 싸우고 있다. 성노동자는 ‘불법 존재’라는 낙인 하에 성폭력, 살인, 사기, 협박 등 온갖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가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자들도 남자들이 돈이면 다 살 수 있는 줄 알게 된다는 애인의 말에는 차차의 글 “최대한 많은 기회를 누리며 있는 힘껏 자유롭기를”*2 전문을 인용해 답해주고 싶다.
2주 정도 지났을 때, 내 자취방에 놀러 온 애인이 다시 말을 꺼냈다. 나 때문에 버추얼 방송 준비를 포기했다고. 정말 진지하게 생각했던 꿈이었는데 내가 한 말이 자꾸 떠올라서 그 일이 싫어졌다고. 내가 한 말 때문에 사실 많이 힘들었다고.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내 할 일을 했다. 애인이 양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고 내 입에서 공감과 위로가 나오도록 나를 탈탈탈 털었다. 그게 끝이냐고. 진짜 끝이냐고 묻는 애인에게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 내게 헤어진 이유를 묻는다. 나는 ’성노동에 대한 생각이 달라서 헤어졌다’고 답한다. 친구가 내게 성노동이 뭐냐고 다시 묻는다. 성노동?..... 성노동 몰라?.... 성노동이 성노동이지 무슨 소리야… 성노동 생각만 하며 살다 그만 성매매라는 단어를 까먹은 것이었다. 기뻤다.
작가의 말: 그림 실력이 대단한 것도 글솜씨가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꼭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동네의 작은 구제샵도 차차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차차가 가는 모든 길에 연대하겠습니다.
각주
1) https://blog.naver.com/yurihanlovesyou/223737409660
2)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https://sexworkproject.tistory.com/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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