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다니요?
적성
“5년 후 본인의 미래를 상상해보세요.”
“5년 후까지 살아있다면, 정말 5년이나 지났는데도 살아가고 있다면, 그런 미래라면 그럼 전 분명히 아주 많이 행복하게 살고 있겠죠. 5년이나 나이를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 중엔 사랑도 있으면 좋겠네요.”
내가 올해 초 한 연구자분의 인터뷰에 답한 내용 중 일부이다. 나는 늘 나의 생존이 신기하다. 내가 살아왔음에 신기하고, 살아있음이 신기하고, 살아갈 것이 신기하고. 특히 이 인터뷰에 응할 때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올해 내 상황은 매 순간 급변했다. 그것도 꽤 긍정적인 방향이라 나조차 지금의 내 일상이 얼떨떨하다. 그래서 이번 성노동 프로젝트의 주제인 ‘우리가 그리는 미래’를 보았을 때, 난 이번에야말로 별 고민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성노동 이론이나 성노동 당사자 경험 말하기와 관련해선 늘 겁도 나고 자신이 없지만, 미래에 관한 생각이라면 최근 어느 때보다 많이 하고 있으니까. 새로운 진로를 생각하는 중이고, 성과도 조금은 얻어보았고, 다들 예전이랑 달라졌다고, 많이 나아졌다고 해줬으니까. 성노동이란 개념에 너무 묶이지 않고도 주제에 맞는 유의미한 얘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굳이 고민이 있다면 글의 내용에 내 신상과 관련된 정보를 어디까지 노출해도 될지? 이젠 잃을 것이 생겼고 그걸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아, 이런 배부른 고민이라니. 내가 이 정도로 미래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정신 상태가 되었구나! 새삼 대단하다 나 자신. 이런 생각을 하며 즐겁게 신청을 했다.
그런데 매일매일 상태가 급격한 속도로 바뀐다는 것은 늘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현재 섭식장애가 재발해 몇 주째 거의 매일 ‘먹토’를 하고 있다. 수면 패턴이 완전히 망가져 동트기 전엔 잠들지 못한다. 창문 너머로 희뿌연 빛과 함께 새소리와 매미 소리가 들려오면 그제서야 눈이 감긴다. 잠들지 않는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은커녕 친구들의 밀린 카톡에 답장조차도 하지 않는다. 이 글 또한 마감이 며칠 남지 않은 지금까지 손대지 않았었다. 그리고 난 동이 트면 두시간쯤 눈을 붙이고 일어나 두 시간 동안 머리를 말고 화장을 하고 44 사이즈 원피스에 몸을 구겨 넣은 후 약속장소에 나가 사람들에게 날씬한데 잘 먹어서 보기 좋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입에 음식을 밀어 넣을 것이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 공중화장실에 들러 다 토해낸 후 다음날 쫄쫄 굶다가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밤에 폭식하고 토하고 그다음 날 다시 크림이 잔뜩 든 디저트 앞에서 셀카를 찍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또 깨닫는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고. 변하지 못한다고. 나는 사랑과 관심에 굶주린 괴물이다. 내가 다가올 미래에 막막함을 느끼고 이만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지는 때는 살아있는 한 영원히 허기지리란 공포가 머리를 지배할 때이다.
나는 내 삶에서 성노동이 차지하는 정신적인 비중을 줄이면 이 집착과 불안이 조금은 완화되리라 생각했다. 객관적인 노동 시간이나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상관없었다. 다른 종류의 일로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내 삶의 새로운 보람을 찾는다면, 적어도 남자들 앞에서 나에 대한 관심을 끄는 일이 유일한 삶의 수단이자 목적일 때보단 나아질 거로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무엇을 하든 나에 대한 관심을 끄는 일이 내겐 유일한 일상이었다. 그리고 다들 관심을 준다. 여기에 있으니 가져가 보라고 손짓을 한다. 나는 공부를 하러 들어간 건데 매일 화장을 하고 가지 않으면 불안했고, 다들 나를 매일 꾸미고 다니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을 알자 시험 준비를 하느라 밤을 새울 때도 풀메이크업을 했다. 또 나보다 예쁜 사람은 많다. 그래서 밤도 샌 것이다. 난 ‘예쁜 애’도 ‘잘하는 애’도 될 수 없지만 ‘예쁜데 잘하는 애’는 어떻게든 될 수 있으니까. 발표에서 맞힌 답이 내 퍼진 콧방울을 가려주고 긴 속눈썹이 실습 시간에 한 실수를 용서받게 해줬다. 평균보다 가느다란 손목이 내가 매일 맛집 이야기를 하고 간식을 잔뜩 사 먹어도 털털하고 귀엽단 소리를 듣게 해줬다. 사 온 과자를 나눠주며 나중에 같이 칵테일을 마시러 가자고 애교살에 글리터를 얹은 눈으로 쳐다보며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더니 과제가 힘들 때 위로해주고 시험 준비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나는 열심히 노력하는 털털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 앞에 ‘예쁘고’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면 아무도 날 지금만큼 봐주진 않으리라는 불안이 일었다. 반대로 나는 누가 봐도 반박할 수 없이 예쁜 사람도 아니라서 노력하지 않고 재밌고 친절하게 굴지 않으면 예쁘게 봐주지도 않을 것이란 불안도 따라왔다. 성노동자로 살며 느꼈던 불안에서 결국 한 발자국도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 정도 사이즈가 아니면 이런 행위를 해줘도 지금만큼의 수입을 얻진 못할 것이란 불안. 반대로 이 정도 사이즈는 마인드가 이만큼 좋지 않으면 손님들이 굳이 선택하지 않을 것이란 불안.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허탈했다. 날 보는 시선이 피곤했지만 날 보지 않는 시선은 두려웠다. 다른 장소, 같은 시선, 같은 나, 같은 불안.
게다가 난 성노동자로서 살기를 그만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아르바이트와 성노동을 병행하던 시절보다 성노동으로 버는 돈의 액수가 훨씬 커졌다. 그 돈으로 필요한 교재를 망설임 없이 신품으로 구입하고 줄을 좍좍 그어가며 썼다. 다른 알바를 하지 않고 남아도는 시간에 새로 생긴 친구들과 함께 점심마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갔다. 쉬는 시간엔 간식을 잔뜩 사 와 나눠 먹었다. 이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데 어쩜 그렇게 날씬해? 그날도 맛있는 걸 새로 알아 와 가져온 나에게 고맙다면서 한 칭찬. 그날도 끝나고 약속이 있다며 허리 라인이 강조된 원피스를 차려입고 온 나에게 해주는 칭찬. 정말 고마웠다. 수업이 끝나고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에서 그날 먹은 음식을 될 때까지 게워낸 후 손님을 만나러 가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해주는 칭찬이라서 정말 고마웠다. 그 친구들과 시험 기간에 함께 단톡방에 요점정리를 공유하며 밤을 새웠다. 갑자기 허리가 쿡쿡 쑤셨다. 성노동을 하던 중 감염된 헤르페스의 전조증상이었다. 원래도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생리 기간이 가까워졌을 때 조금이라도 무리를 하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밤새 하반신이 퉁퉁 붓는 듯한, 정말로 기분이 더럽다고밖에 표현 못 하는 통증을 견딜 때마다 평소에 꾹꾹 눌러놓았던 절망이 흘러나왔다. 고통이 나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다. 꼭 나를 ‘성병 캐리어’라며 욕하는 트윗을 읽을 때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목소리와 말투를 하고 “넌 바뀔 수 없어. 이미 다 늦었어. 넌 이미 이런 인간이 되어버렸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네가 정상인들 사이에 끼어보려고 노력할 때마다 난 너한테 이 사실을 알려주러 올 거야.” 이런 말들을 머리에 꽂아 넣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나는 한숨도 못 자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을 하고 수업을 들으러 갔다. 내가 나를 바꾸든 말든 남들은 나를 보고 있으니까. 이것도 노력이잖아. 난 전보다 한 발짝 나아간 인간이 된 게 맞아. 괜찮아. 라고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다.
그런데 남들을 위해 해야 할 것이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면 생산적인 노력이라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늘어져 있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선 열심히 사는 척이라도 할 수 있었는데, 단지 여유 시간이 생기면 집에 틀어박혀 끼니를 챙기긴커녕 제대로 씻지도 않고 누워 있기만 했다. 방 안에서 홀로 무기력한 나를 향해 자학을 쏟아냈고 그 스트레스로 더 무기력해져만 갔다. 나에게 늘 채찍을 휘두르는 또 다른 자아는 널브러진 나에게 증명을 요구했다.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아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인간이란 증명. 이틀 동안 밥을 굶지 않아도 될 만큼 날씬하고, 거울에 비친 자기 입에게 어쩜 이렇게 흉하게 생겼냐는 폭언을 들은 뒤 자기 오른손에 있는 힘껏 싸대기를 맞지 않아도 될 만큼 예쁜 얼굴을 했다는 증명. 이 좁은 방에 갇혀 일주일이 넘도록 연락 한번 주고받지 못하다가 결국 나 스스로에 의해 살해당한대도 아쉬워할 사람 하나 없는 그런 무가치한 자가 아닌, 사람들이 원하고 아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란 증명. ‘나’는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가 나에게 가하는 학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나를 증명해줄 관심과 사랑을 찾아 헤맸다.
증명서를 발급해주던 사람들은 대부분 손님이었고 한번은 손님 아닌 남자였다. 그 사람은 손님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나에게 번호를 주고 내렸다. 첫눈에 반했다고, 이상형이라고 말해주는 게 좋았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는 내 말에(놀랍게도 거짓은 아니다) 그럼 이런 것들이 다 처음이냐며 스킨십을 해대는 게 귀찮긴 해도 나쁘지 않았다. 사랑을 받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 돌려줄 수가 없어서 문제였다. 난 한 번도 사랑을 주고받아본 적이 없었다. 돌려받지 못한 사랑은 잔뜩 해봐서 이번엔 정말로 나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돈을 주겠다는 사람에겐 섹스를 돌려주면 됐는데 사랑을 줄 테니 너도 사랑을 달라는 그런 요구가 너무 어렵고 무겁고 부담스러웠다. 헤어지자고 말한 날에 나는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도 당장 뛰쳐나가 꽃다발을 사 들고 사랑한다고 말하러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나에게 사랑은 그런 것이다. 받음으로써 가치를 증명받는 것이다. 오카자키 쿄코의 만화 ‘헬터 스켈터’ 속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나를 들여보내는 클럽에는 들어가기 싫다. 즉 나는 나를 사랑해줄 인간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이 말처럼 오직 원하는 자와 원해지는 자만이 존재하는 감정이다. 사랑을 더 받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가치들을 더 갈고닦아 내어줄 수는 있다. 예쁜 얼굴, 젊고 날씬한 육체, 뛰어난 능력, 상냥한 말, 어쩌면 사랑과 아주 비슷해 보이는 말과 행동. 그렇지만 사랑으로는 돌려줄 수가 없다. 적어도 나에게 그건 성립할 수가 없다. 그는 다시 생각해보라며 나야말로 너에게 사랑을 알려줄 수 있다며 설득하다 날 강간했다. 나는 그제야 안심했다. 이 사람도 결국 내가 가진 가치를 원했다는 게 편안했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그와 일주일 정도 더 연인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보여주기 위해서, 나도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증받은 몸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였다. 그 사람과 약속을 잡아서 밥이나 한 끼 먹게 된다면, 그럼 그 사람이 이만 가봐야 하니 나가자고 했을 때 남자친구가 데리러 올 테니 소개해주겠다고 해야지. 누가 봐도 멀끔해 보이는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가치를 아주 소중히 여겨 사랑한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내가 사랑할 만한 가치를 지닌 인간이라고 깨닫게 해서 나의 가치를 궁금해하고 아까워하고 원해보고 그렇게 이번에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입장으로 만들어야지. 그러니까 제발 밥 한 번만 같이 먹어줬으면... 아님 커피 한 잔이라도 같이 마셔줬으면...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결코 다른 중요한 일들도 아닌 나의 얄팍한 술수 따위에 어울려줄 만큼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오는 현타에 결국 그 계획은 포기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돈도 안 받고 나의 가치와 사랑 흉내를 내어주는 것에도 현타가 와서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과도 결국 끝났다. 그리고 난 변하지 않은 채로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 일이 일어났을 시점에선 미래였던 날짜가 지금 오늘이 되어 있다. 나는 여전히 뒤틀리고 망가져 있다. 정신과 진료를 받든 성노동을 그만두든 이젠 나라는 인간의 심신은 온전하게 변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데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죽지 않으면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난 괴롭지도 않은데 얼마든지 죽으려고 했던 인간이다, 내가 그냥 죽어버린다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건 매분 매초 매 순간 이렇게 된 이상 살아야만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오직 사랑을 위해 미래를 향한다. 사랑받고 싶다. 그래서 난 매일 밤 얼굴에 팩을 올린다. 손님에게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그래야 예쁜 옷을 사서 예쁜 사진을 찍어 올릴 수도 있고, 시험 기간에 다른 친구들처럼 아르바이트 걱정을 할 필요 없이 모아놓은 돈으로 공부만 하면 남들에게 성적이 잘 나왔다고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 사랑하고 싶다.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더없이 아름답고 가치 있고 재능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티켓을 사고 선물을 주고 밥을 사주며 예쁘고 멋진 곳으로 같이 여행을 다니고 싶다. 그리고 나를 사랑한 사람들이 그랬듯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 그런 미래가 오길 바란다면 나는 내가 사랑할 만큼 가치 있는, 사람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어야겠지. 더 예뻐지고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능력 있고 상냥하고 여유로운 사람. 위에 썼듯이 나는 현재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 사람이 결국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된 모습이 보고 싶어져서 그 장면이 있는 미래를 꿈꾸며 노력하게 되었다. 사랑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사랑이 없는 때에도.
작가 소개글 : 검정 드레스, 빈티지 주얼리, 공연 티켓, 계절과일, 초콜릿, 칵테일, 샹들리에가 걸린 매장, 살아가는데에는 하등 쓸모없는 지식이 담긴 흥미로운 책들, 이것들을 함께 즐겨줄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줄 선물, 장미꽃 한 송이를 위해 오늘도 한번 살아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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