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고리 바깥, 안전한 노동과 일상이 보장되는 사회를 촉구하며 :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22주기에 부쳐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해수
2000년 9월 19일, 전북 군산시 대명동 ‘쉬파리골목’의 성매매 집결지를 덮친 화재로 5명의 여성이 질식사했다. 2002년 1월 29일, 군산시 개복동의 유흥업소에서도 화재로 14명의 여성이 죽었다. 두 업소 모두 1층 출입구에는 몇 겹의 잠금장치를, 위층 창문에는 쇠창살을 설치해 성노동자들을 감금해두어 대피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열아홉 명의 죽음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의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성매매 집결지가 연이어 폐쇄되는 와중에도 성매매 업소에서의 화재 참사는 반복되었다. 2005년 3월에는 서울 ‘미아리 텍사스’ 업소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이 죽고, 2018년 12월에는 서울 천호동 집결지 화재로 16분 만에 성노동자 6명이 죽었다.
성매매 업소에서 화재 규모에 비해 인명 피해가 큰 것은 감금뿐 아니라 건물 구조 탓이기도 하다. 화재 참사가 발생했던 대명동과 개복동의 건물들은 불법 개조로 인해 창문이나 환기구가 없었고 천장이 스티로폼으로 채워져 있어 불길이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많은 유독성 물질을 배출했다. 미아리와 천호동 업소의 경우 감금 정황이 알려진 바 없지만, 노후화된 시설과 불법 증축으로 인해 창문이 막혀있었고 합판으로 공간을 잘게 분할해둔 바람에 대피가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2019년에 서울시에서 유흥, 단란주점 46군데를 불시 점검했을 때, 무려 30군데가 소방시설 불량으로 적발되었으며, 대부분의 업소가 비상구를 마련해두지 않은 상태였다. 성노동자들은 불법으로 간주되는 노동의 ‘대가’로 불법적인 공간에서 노동하고 일상을 영위했으며, 이 불법의 연쇄 고리가 많은 성노동자를 죽음의 길로 내몬 것이다.
불법성과 가난 위에 드리우는 불의 그림자는 성노동자를 한국의 다른 노동자 및 빈곤 인구와 연결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2018년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창문과 비상구가 없어 7명의 사망자와 1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올해 4월 영등포 고시원에서도 화재로 인해 2명이 목숨을 잃는 참극이 발생했다. 이에 더해, 불법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이 불법 개조된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숙소에서의 화재로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까지 떠올린다면 한국 사회가 방조하는 ‘사고사’, 혹은 구조적으로 유도되는 지속적인 죽음들 간의 연결이 더욱 명확해진다.
주홍빛연대 차차는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22주기를 맞아 서로 연결된 이 이름 없는 죽음들을 함께 기억하고자 한다. 오늘,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의 몸을 가져서, 또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 충분치 않아서 생존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존재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함께 생각하기를 요청한다. 또한, 성노동자를 포함한 가난하고 ‘불법적인’ 이들에게 혐오를 분사하다 누군가 죽고 난 후에야 동정과 연민을 보내는 기만적인 사회를 함께 규탄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다층적인 연결의 맥락 속에서 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민하고 존중하고 개선하려는 담론을 함께 키워가자는 부탁을 남긴다. 이것이 참사의 반복을 끊는 첫 걸음일 테다.
현재의 성매매특별법은 성노동자가 구조의 문제로 인해 불법의 세계로 들어섬에도 불구하고, 개인에게 ‘자발’과 ‘강제’의 이분법을 적용해 무결한 ‘피해자’가 아니라면 범죄자의 낙인을 씌워 책임을 전가한다. 게다가 성매매특별법 제정 이후 정부는 재개발을 통해 집결지를 폐지함으로써 그 역사를 침묵시키고 여성들을 몰아내었을 뿐, 당사자의 목소리를 고려해 성노동자를 보호하지는 못했다. 집결지의 폐쇄로 성노동자들은 흩뿌려졌고, 성매매는 사라지기는커녕 변종 업소나 온라인 알선의 형태로 변주되고 확장되고 있다. 개인업주와 성구매자를 처벌하는 정도로는 수습할 수 없는 성노동자들의 취약성과 고립을 직시해야 할 때다. 우리는 성노동자를 짓누르는 주홍글씨를 규탄하며, 정부가 성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안전하게 살고 노동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하기를 촉구한다.
2022년 9월 19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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