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활동 소식

[독서모임] 7월 활동가 독서모임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8. 10. 11:07

안녕하세요, 여러분~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네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차차에서는 독서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성매매에 투자하는 사회, 여성의 몸은 어떻게 담보가 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여성주의 정치경제학 연구자 김주희 작가의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입니다. 7월 독후감은 차차 활동가 혜곡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세요!


 

 

섹스워커 크레딧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혜곡

 

성매매를 둘러싼 담론은 오랫동안 소득/부채 그리고 자발/강제의 이분법에 갇혀 있었습니다. 성노동은 소득과 함께 자유를 가져다줄까요? 아니면 노동자를 부채의 굴레에 가두고 착취할까요? 〈레이디 크레딧〉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경제 성장의 종말은 '신용의 민주화' 시대를 열었습니다. 모두가 손쉽게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됐고, 빚을 내어 방이나 차를 마련하는 일도 수월해졌죠. 성노동자가 얻는 것이 소득이든 부채든, 그것이 그들에게 모종의 자유를 준다는 부분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는 새 자신도 모르게 금융자본주의에 깊숙하게 얽매이게 된다는 점입니다.

저도 학생 시절 급전이 필요해 대출을 이용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졸업하고 돈을 갚았더니 신용등급이 훅 올라갔어요. 그 일은 제게 굉장한 효능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내가 나를 잘 통제·관리하고 있다는 감각, 스스로 경제생활을 현명하게 꾸려나가고 있다는 확신을 선물해주었죠. 인터뷰에 참여한 당사자 '주현'도 자기의 신용에 대한 자부심과 욕망을 보여줍니다. "나는 신용이 좋다 보니까 요번에 1,000만 원 땡겼는데 9.9% 주더라고. … 전화 통화로만 하는 거지. 내 신용이 다 있으니까." '주현'의 자신감 있는 모습은 성노동자가 포주에게 예속되어 경제적 주체성을 박탈당하는 해묵은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 신용은 우리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신용 자체가 "여성들을 성매매 시장으로 유인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자유를 누리는 대가로 여성의 몸이 "담보화"되어 수탈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금융 테크놀로지에 의해 '우아하게' 약탈당하는 일은 성노동자에게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현상 유지나 미래 설계를 위한 각종 대출에 휘둘려 신체를 저당 잡히고 있죠. 물론 성노동과 비성노동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일은 언제나 조심스럽습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성노동의 특수성을 자칫 간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특수성을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라도 성노동의 보편성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저자는 부채 경제의 장면에서 성노동자를 "몸뚱이 빼고는 아무런 담보가 없는 사람들", "노동 없는" 존재로 호명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제공되는 신용 대출은 그들의 노동이나 임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몸과 존재에서 비롯된다는 거죠.

그러나 신용은 단순히 "매춘 여성의 몸"을 지녔다고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차등화가 이루어진 후 비로소 신용을 부여받게 되죠. 차등화의 근거가 되는 것은 "매춘여성의 몸"이 아니라 그의 노동과 임금입니다. 성노동자 B에 따르면, 조건만남으로 생계를 유지할 당시 '아가씨 대출'을 받는 데 탈락했었다고 해요. "월 2, 300 벌고, 담보할 수 있는 명품이 없고, 업소를 확인할 수 없어" 대출이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키스방에서 일하던 H 역시 수입이 적고 원룸에 살고 있어 유흥업소 종사자 대출을 받지 못했습니다. H가 대출 조건에 관해 묻자 대부업자는 '룸에서 일하고, 하루에 기본 4, 50은 벌고, 일주일에 2번 이상 출근한다면' 업소 영업진에게 연락해 확인해보고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답니다. 이렇듯 성노동자는 어떤 업종, 어떤 업소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급'이 매겨진 후 대출 가능 여부가 결정됩니다. 빌릴 수 있는 돈도 지역과 가게 규모, 출근일수에 따라 달라지고요.

그러므로 (잠재적) 성노동자가 돈을 빌리기 위해서는 결국 성실하게 성노동을 수행할 거라는 믿음, 성경제에 효과적으로 속박되어 고리대금을 상환해낼 거라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다름 아닌 성노동자의 노동과 임금으로부터 비롯되는 믿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노동자가 노동자라는 구호는 단순한 사실 기술 그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당사자들이 ‘성실한 채무자’로서 부채 경제에 포섭되고 철저히 파편화되는 일을 막아줄 수 있죠. 노동자 정체성을 일깨우는 일은 개인이 신자유주의적 주체 되기에 저항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략입니다. 자신이 노동자라는 인식은 노동 현장에서 경험하는 부당함이나 부채로 인한 곤경 등을 일개인의 실책으로 취급하는 대신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곧 연대나 저항의 실질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도 수월해집니다.

그런데도 〈레이디 크레딧〉은 성노동자 정체성을 경제적 사정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성향으로 단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노동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인터뷰이는 단 두 명밖에 없는데도요. 저자는 작금의 성산업을 성노동과 성착취의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보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부채 없는 '성노동자' 인터뷰이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야말로 그 구태의연함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레이디 크레딧〉은 '음지'로 여겨지는 성산업이 알고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금융자본주의를 아래에서부터 지탱하고 있다는 것, 성산업은 여성들의 ‘몸’과 ‘부채’에 기대어 굴러간다는 진실의 상세를 낱낱이 폭로했다는 점에서 뛰어난 저작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몸’은 노동하는 몸이며, 그 ‘부채’는 낙인과 혐오에 의해 부풀려진 부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정체성 정치가 있다면 그건 성노동자 정체성 그 자체는 아닐 겁니다. 성노동/자가 얼마나 바람직한 가치를 지니는지 설명하려는 욕구야말로 우리가 넘어야 할 장벽이겠죠. 차차는 〈레이디 크레딧〉에서 얻은 귀중한 지식을 바탕으로 당사자들과 당사자들이 서 있는 자리의 입체성을 탐색하는 일을 계속해 나가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