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우리가 그리는 미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열심 : 너무한 거 아니냐고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10. 7. 15:17

 

너무한 거 아니냐고

열심

 

그 즈음 유흥업소는 거의 닫았다가, 잠깐 열었다가 하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동선 공개 때문에 유흥업소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신상이 털리고, 언니들이 다 같이 싸잡혀서 너무 욕을 먹으니 다 같이 출근하지 말자는 여론이 주였다. 어떤 언니들은 몰래 영업하는 가게를 신고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다들 대출을 땡겼다. 잠깐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코로나 시국이 6개월이 되고, 1년이 되고, 다시 한 해를 넘기니 빚이 연체되는 언니들이 생겼고, 자살하는 언니들이 생겼다. 많은 언니들이 유흥 업종에서 다른 업종으로 떠밀렸다.

나는 평소에 주기적으로 만나던 용손이 연락이 없어서 돈이 다 떨어졌다. 당장 월세, 공과금 낼 돈이 필요한데 수중에 돈이 없으니까 마음이 초조했다. 그렇다고 적금을 깨버리기엔 또 아까웠다. 나는 그날 오랜 만에 출근을 했다. 다행히도 그때는 업소들이 6시부터 10시까지 영업할 수 있던 시기였다. 상황이 상황이니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나는 예전에 다니던 가게에 출근하기로 결정하고 담당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오랜만에 출근한 지라 전에는 나를 반겼던 영업진들도 이제는 무심하게 눈짓을 하며 지나쳐갔다. 오랜만에 나간 가게에는 손님도 언니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예전에 열심히 출근할 때는 항상 다섯 방씩은 찍고 집에 갔는데, 그날은 7시쯤 출근해서 10시까지 겨우 방 하나를 봤다. 꽁을 친 언니도 있었다. 담당은 10시 이후에도 몰래 영업하는 가게가 있는데 거기로 넘어갈 거냐고 넌지시 나에게 물었다. ‘몰영’, ‘몰영’ 하더니 이게 그거구나. 나는 당연히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10시가 되자 외투를 입고 가방을 챙기라고 하더니 언니를 승용차에 세네 명씩 태워서 어딘가로 갔다. 다행히 남은 언니의 수는 많지 않아서, 그래도 두세 방은 더 찍고 갈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곳에 도착하니 언니는 총 스무 명이 안 되는 것 같았고, 초이스도 계속 들어왔다. 초이스를 세 번째 쯤 보았을 때 한 손님 옆에 앉을 수 있었다. 그 손님은 처음에는 내가 너무 예쁘다고 칭찬했다가, 나중에는 니가 못생겨서 마인드가 좋을 거 같아서 앉혔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가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근데 사실 이런 관계가 자기를 시험에 밀어넣어 괴롭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너는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냐? 하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나보고 또 영혼이 없다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면서 속으로 이 사람이 술에 많이 취한 건지 아니면 미친놈인 건지를 고민했다. 그렇지만 그 손님은 시간을 연장했기에 어쨌든 좋은 손님이었다. 근데 연장한 방이 끝나갈 때쯤 그 손님이 계속 팬티 속에 손을 넣으려 했다. 심지어 내가 서 있을 때 갑자기 내 레깅스를 엉덩이가 반쯤 보이게 내리기도 했다. 그때 나는 그 손님을 진상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그 손님은 땁방으로 연장하기를 원해서 나는 속으로 어떻게 도망갈 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맞은편에 앉아있던 언니와 일행의 극적인 도움으로 그 손님을 택시에 넣은 채 집으로 배송할 수 있었고, 나는 대기실로 돌아와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가 한 세 시쯤이었다. 영업진한테 퇴근하겠다고 수금해달라고 하자, 오늘은 몰영이라 현금 지급이 안된다고, 내일 아침에 계좌로 보내줄 거라고 했다. 계좌로 받는 일은 예전에도 종종 있었어서 알겠다고 말하고, 대기실에서 언니들과 담배를 피고 있었다. 갑자기 모니터를 보고 있던 영업진이 경찰 떴다! 라고 말했다. 내 눈에는 경찰차로 보이지 않았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단속 디비에 있는 차 번호인 것 같았다.

영업진들은 언니들에게 명령조로 우리에게 외투를 끝까지 올려 입고,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대화도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다. 몇 분이 지나자 경찰인지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이 와서 바깥의 철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지금 안에 있는 거 아니까 나오라고 막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계속 그 앞에서 서성대면서 문을 두들겼다. 나는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워서 정말 목석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옆 방에서 술 마시면서 큰 소리로 대화를 하는 손님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여태껏 내가 일하면서 경찰이 올 때는 그저 보건증을 검사하러 오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우리를 잡아가려고 온 것 같았다. 잡혀서 경찰서로 끌려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과태료가 300만 원이라던데. 돈을 벌러 왔는데 빚을 얻어서 가겠구나. 전과가 생기는 건가? 그럼 난 이 일을 청산하고 낮일을 못하게 되는 건가? 온갖 상념들이 머릿 속을 떠돌았다.

삼사십 분 지났을까, 다행히 영업진들이 경찰이 떠났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는 위태로운 좁은 계단이 이어지는 후문으로 우리를 내보내줬다. 나는 올라와서 몇 번을 두리번거리다가 걸음을 재촉해 근처에 있는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밥도 먹지 않은 채로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 날 계좌를 확인하니 어제 번 돈이 입금되어 있었다. 돈이 급했던 나에게는 꽤 큰 돈이었다. 그래도 출근하면 굶어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핸드폰을 켜자 카톡으로 “오늘도 출근하니?”라고 묻는 담당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어제의 일이 떠오르려는 것을 억눌렀다. 그 메시지를 읽지 않은 채로 바로 용손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빠, 우리 오늘은 만날 수 있어?”

 


 

작가 소개글 : 성노동자 페미니스트. 남편과 동생과 고양이와 살고 경험과 생각에 대해 글을 씁니다. 창녀가 욕이 되지 않는 세상, 섹스가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을 바랍니다.

 

성노동 은어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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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용손 : 용손은 용돈손님을 줄여 부르는 말로, 화류계에서 가게가 아닌 밖에서 성노동자가 돈을 받고 만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보통 용손이 한번 주는 금액은 30~50 정도로 언니들의 생활을 책임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용돈" 정도 이기에 용손이라고 부른다. 용손을 만날 때는 주로 1회 만남을 가질 때마다 돈을 받는다.

2. 땁방 : 유흥업소 업종에서 손님이 혼자 와서 성노동자도 혼자 들어가야 하는 방. 보통 스킨십을 목적으로 찾아온 손님들이 많기 때문에 성노동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3. 디비 : 데이터 베이스(database)의 줄임말로, 쉽게 말해 모아진 정보를 뜻한다. 실장이나 가게는 성구매자의 디비를 가지고 있고, 간혹 아가씨들의 디비도 공유하기도 한다. 디비에는 개인정보와 핸드폰 번호, 특징 같은 것들이 적혀있는데, 아가씨의 디비를 공유한다고 소문난 지역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영업진들의 아가씨 디비 공유 때문에 성노동자는 본폰을 쓰기 보다 투폰을 쓰는 것이 낫다.

 

출처 : 페미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