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코 같은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
왹사리
“여성혐오의 발원지는 창녀가 아니라 창녀혐오를 만들어낸 그들의 권력인데. 여성도 창녀를 혐오한다. 그리고 여성혐오 맨 밑바닥에 창녀혐오가 있다. 나는 여성이고, 성노동을 했지만 나는 나를 혐오하지 않는다.”1) 이 문장이 세상에 공개된 지 4년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이 논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얼굴들이 사회 곳곳에서 숨쉬고 있다. 방구석에서 끽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숨쉬고 살면 훨씬 좋을 텐데, 매번 이 성노동 프로젝트에 관심 두고 참여하게 만드는 얘깃거리를 던지며 지저분하고 추잡하게들 산다. 최근에 “여성들이 제집에서조차 ‘자기만의 방’을 위해 투쟁할 때 남성들은 온 사방에 드나들 ‘룸’을 만들었다”2) 라는 문장에 엄청나게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공유하는 걸 보다 보니 다음과 같은 문장을 덧붙이고 싶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룸을 드나드는 남성을 욕하는 것보다 룸에서 일하는 이들이 여성 인권 하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욕하는 걸 즐긴다. 그렇게 모욕을 주면 반드시 룸 노동자들이 일을 그만두고 탈성매매를 할 것이라는 빈약한 희망과 함께.
전국 각지의 성매매 집결지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소된다는 기사가 매스컴을 탈 때마다3) 4), 항상 창녀혐오에 절어 있는 그들의 얼굴은 이제 그 자리에 들어설 화려한 건물 단지를 기대하고 희망한다. 유흥업소 출입 관련 코로나 19 안전 안내 문자가 돌 때마다5) 왜 이 시국에 ‘그딴 곳’에 가냐는 질문을 하며, 모든 업소는 다 망해버리길 희망하고 기대한다. 집결지나 업소가 망하는 것에만 관심 있고, 그곳에서 삶을 버티던 이들이 어떤 곳으로 다시 흘러들어 가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지 않고 오히려 잘됐다고 여긴다. 그냥 번듯하고 깔끔한 건물 대단지가 생기면 어떤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들어올지를 더 신경을 쓴다. 되레 해당 지역 종사자의 생계 걱정을 하는 얘기를 하면 세금부터 내고 얘기해라, 몸 파는 주제에 말이 많다고 할 뿐이다. 현행 조세제도를 생각하면 국내에서 먹고사는 이들은 어떤 일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다 간접세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왜 납세 여부를 들먹이는 건지 모르겠다. 의무를 다해야 권리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권리는 인간이고 국민이며 시민이니까 당연히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젊은 여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성매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힐 때, 사람들은 대개 ‘해봤자 오래 하지도 못하고 몸만 망가뜨리는 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냐’며 ‘왜 계속 그 수렁에서 나오지 못하냐’라고 말한다. 트랜스젠더퀴어가 의료 트랜지션 비용을 모으기 위해 성매매하고 있을 때, ‘정신도 이상한 것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몸을 망치고 싶냐’라고 한다. 심심찮게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는 이를 만나면 매번 그딴 걸 일이라고 할 바에는 차라리 쿠팡이나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해서 돈을 벌라고 한다. 그러면 돈도 많이 벌고 몸을 팔지 않아도 되니 우리 몸과 정신은 괜찮아질 것이라 기대하면서. 나날이 악성 기업 쿠팡의 면모가 공개되는 기사는 본 적이 없는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성매매, 쿠팡맨, 택배 상하차 등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사니까, ‘몸 파는 일’에 대한 대안으로 어디선가 들어본 ‘몸 쓰는 일’을 언급했다든지. 성매매하다 죽어서 기사화되면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택배 물류에 종사하다 재해로 죽으면 기사를 공유하며 눈물 훔칠 수준의 감성으로 느껴진다.
왜 사람들은 성/노동을 하는 이에게 직급이나 연차가 쌓이지 않는 일로 돈 버냐고 쉽사리 비난하는 걸까? 이 논리대로라면, 여러 이유로 숙련도를 인정받지 못하는 다른 노동자들 역시 똑같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몸 쓰는 건 누구나 똑같고, 사실 몸 쓰지 않는 일이라는 건 현대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노동의 이데아를 설정해서 어떤 건 더럽고 어떤 건 돈 받을 만한 일이라 달리 생각하게 되는 걸까? ‘그딴 일’을 하냐고 모욕을 주는 게 왜 적절한 비판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사는 걸까? 성매매는 영혼이 파괴되는 행위이며 전혀 일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있는 한편, 성매매 종사자는 남들처럼 별다른 수고를 들이지 않고 쉽게 몸 팔아 돈 벌면서 세금도 하나 내지 않고 사회에 기생하며 사는 무리라 말하는 이도 있다. 이쯤 되면 그냥 다른 아쉬운 변명을 들지 말고 차라리 몸 대주고 웃음 팔며 돈 버는 게 부럽다고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진다. 이따위 의견들을 반성매매라고 외치고 싶다면, 차라리 하나로 정리를 해서 당당하게 단체도 세우고, 광장에 나가서 확성기 들고 시위도 해봐라 권하고 싶다. 그래봤자 진지하게 들어주려는 이는 없겠지만.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이 일” 하면서 지내는데, 이것들은 대체 왜 계속 아무것도 모르면서 텅 빈 깡통처럼 요란스럽게 굴러다니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더는 ‘몸을 팔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면서 지내고 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도 같이 침대에 누워있을 때 자기가 돈이 얼마나 많은지, 딸린 사업체가 몇 개나 되는지, 집안끼리 연을 맺어 어쩔 수 없이 마음에도 없이 결혼한 남편이 벌써 몇 번째 남편인지 등을 내 손에 돈 쥐어주며 말하던 그들의 얼굴을 아직도 기억하고 산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과 아부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손만 잡고 강가를 거닐기도 했다. 반대편으로 누군가 지나갈 때 둘 다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곤 했다. 요즘 말로 하면 일종의 ‘스폰’을 받으며 살았던 건데, 그 덕에 비청소년이 된 지 얼마 안 된 당시 정말 풍족하게 살았다. 그 돈으로 먹고 자고 노는 데 모자람 없이 아주 잘 쓰며 살았고, 일부는 모아뒀다가 훗날 유학 갈 때 쓰기도 했다. 그들 중 심하게 집착하며 의식주 걱정할 것 없이 살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자기랑 동거하자는 이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발끝에서 밀려오는 모멸감을 떨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그들의 성적 취향에서 벗어난 나이대가 되어서야 그 일을 더 하지 않게 됐고, 과외나 식당 알바 등 다른 걸 하며 돈을 벌게 됐다. 유학 갈 당시 무슨 돈이 어디에서 그렇게 많이 나서 돈을 모을 수 있었냐는 주변인들의 질문에, 아는 사람 덕에 주식 몇 개 잘 굴려서 대박난 것이라고 거짓말하고 넘어갔다. 성노동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지 못했던 당시엔 그렇게 말하며 숨겼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서야 이렇게 글로나마 불특정 다수에게 이 경험을 얘기하게 됐는데, 그래도 여전히 실명으로는 아무에게도 공개할 자신이 없다. 뭇사람의 기대에 걸맞게 ‘성매매를 그만둔 이가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과거와 결별하고 미래를 향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식의 희망찬 미소가 스며든 글을 읽길 원했던 이들에게는 아주 조금 미안하다. 그래도 그 시절을 보내고 여태까지 조용하게 버티는 점에 대해선 언제든 미안해지고 싶진 않다. 이 얘기도 하지 않으려다가, ‘성매매 같은 걸 하는 이는 내 주변에 없어!’라는 구린 인식으로 나와 몇 천 걸음은 동떨어져 사는 당신들에게 제발 그 추한 얼굴 그만 좀 들고 다니라고 전하고 싶어서 꺼냈다. 그런 얘기를 하고 다니니 우리의 경험을 공유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우리는 어디에서나 몸을 팔고 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웃음과 몸을 팔며 돈 벌고 쉬는 당신에게 이 글을 남긴다.
1) 홍승희, 붉은 선 - 나의 섹슈얼리티 기록 (파주: 글항아리, 2017), 236.
2) 이라영,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서울: 문예출판사, 2020), 96.
3) "마침내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 이미디어, 2021년 6월 2일 송고, 2021년 8월 3일 접속, https://m.ecomedia.co.kr/news/newsview.php?ncode=1065572051568139
4) "평택시, 성매매 집결지 '삼리'에 치안환경 개선공사 완료," 연합뉴스, 2021년 7월 21일 송고, 2021년 8월 3일 접속, https://www.yna.co.kr/view/AKR20210720116500061
5) "룸살롱 와서 QR코드 찍겠나…확진자 나와도 못 찾는 손님들," 머니투데이, 2021년 3월 6일 송고, 2021년 8월 3일 접속,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30519040817086
작가 소개글 : 안녕하세요, 항상 변변찮은 이야기로 성노동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매번 참여 공고가 돌 때마다 나 같은 것도 글 기고해도 되나 망설이며 글 써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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