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 프로젝트/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우리가 그리는 미래

[2021 성노동 프로젝트 제 5회] 이오 : 나는 어떻게 성노동론자가 되었나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10. 8. 10:46

 

나는 어떻게 성노동론자가 되었나

이오

 

나는 젠더퀴어다. 그 이전에는 내 정체성을 고민하는 퀘스처너였고 그 전에는 앨라이였다. 꽤 자주 ‘계집애 같은 새끼’ 라는 소리를 듣고 늘 자기검열에 빠진 채 벽장 속에 갇혀 살던 나에게 퀴어이론과 페미니즘은 자유를 가져다줬다. 많은 과정을 거쳐 나 스스로를 젠더퀴어로 정체화했을 때 나는 내가 나로 사는 것이 틀린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뒤로 나는 나뿐만 아니라 남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공감하는 시야도 조금 더 넓어졌다. 그렇게 내 안에 있던 다양한 혐오를 조금씩 걷어내고 더 많은 지식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누군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날조됐고 자기들 편한 대로, 유리한 대로 비틀어댔는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페미니스트들은 늘 시끄럽고 과격하고 자기가 옳다고만 주장하고 늘 남성혐오를 하며 여성인권에만 몰두하여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상생할 줄 모른다’ 라거나, ‘게이들은 항문섹스에 미쳐 있고 언제나 에이즈를 퍼뜨릴 준비가 돼있으며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게이의 결혼을 축복해주지 않는 목사는 징역형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든가 하는 것들. 혐오하고 싶어서 온갖 거짓말들을 지어내거나 개인의 의견을 사실인 양 떠들어대는 현장. 그중에는 성노동자에 대한 것도 있었다. ‘쉽게쉽게 돈 벌어먹는 사람’ 이라거나 ‘쉽게 번 돈이라서 늘 사치에 빠져 있다’ 거나 ‘탈성매매하는 데에 세금이 장난 아니게 쓰이는데 왜 자기가 좋아서 몸 파는 애들한테 세금이 쓰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거나 하는 소리들.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왜 내가 그런 소리를 듣기 힘들어 했는지, 그런 말들이 얼마나 편협한 비성노동의 시각인지 깨닫게 된 것은 페미니즘을 공부한 이후의 일이었다. 모든 소수자는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감정노동자로 꽤 오랫동안 일을 하며 살아왔다. 고객센터에서는 도합 4년이 넘는 시간을 근무했고 그 외에 방역업체, 시민단체, 고시원 총무, 스피커 매장 판매원 등의 다양한 일을 하면서 감정노동은 나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단어였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는 것이 있다.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등으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고객의 폭언 등 괴롭힘으로 인해 얻게 될 수 있는 건강장해에 대한 사업주의 예방조치를 핵심으로 한다. 이 법이 만들어진 지는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법이 생기기 전 나는 폭언을 일삼는 고객과 전화를 하다가 헤드셋을 쓴 채로 그대로 쓰러져 정신과에 다녀온 뒤 얼마 안 가 직장을 그만둔 적도 있었다. 그런 극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폭언과 욕설에 자주 노출돼야 했으며, 그런 일이 있어도 내 ‘감정’은 보호받지 못했다. 이 법이 생기면서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상담사에게 폭언, 욕설을 하는 경우 징역 혹은 벌금에 처할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생겼고, 사업장에서는 상담사가 폭언, 폭행 등의 괴롭힘에 노출되는 경우 업무의 일시적 중단 혹은 전환, 휴게시간의 연장, 괴롭힘으로 인한 건강장해 관련 치료 및 상담지원, 괴롭힘에 대한 고소/고발/손해배상 청구 등을 할 때 증거물 확보 등을 해줄 의무가 생겼지만, 실제로 고객센터에서 상담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기 시작했는가 하면 당연히 아니다. 욕설을 들었을 때 일정 시간 이상의 휴게 시간을 보장하라고 법에 명시돼 있지만, 실제로 고객센터에서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쉴 수 있는 상담사는 거의 없다. 쉬는 경우 자체가 극히 드물고 쉬게 되더라도 상담 건수·시간의 압박 혹은 관리자가 주는 무언의 눈치로 인해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금방 돌아와야 한다. 

내가 일하는 업계가 이만큼 환경이 안 좋다는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그러면 그만두면 되겠네. 일 할 곳 많은데 왜 굳이 거기 가서 그래? 다른 데 가서 일할 거 아니면 그냥 참고 일해야지.’ 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불편함을 개선시켜주는 일을 좋아하고 잘한다. 다른 상담사와 상담하며 해결되지 않았던 불편사항이 나로 인해 해결되었을 때의 뿌듯함은 다른 업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상대하느라 힘들기는 해도 그만큼 직접적으로 반응이 오는 곳이기도 하니까.

사실 이런 점에서 콜센터 노동자들과 성노동자들의 처지는 닮았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지만 고숙련노동이라는 점이 그렇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수준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그러하다. 성노동이 무슨 저임금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성노동은 성노동자들이 투입해야 하는 다양한 자원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받고 있다. 꾸밈노동에 들어가는 자원들만 해도 굉장히 다양한데, 이른바 ‘헤메렌’이라고 불리는 헤어, 메이크업, 의상 렌탈에만 들어가는 돈만 해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이런 꾸밈을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체력도 만만치 않게 많이 든다. 하지만 꾸밈노동에서 헤메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업계는 성노동자들에게 성형 및 시술, 다이어트 약 등 건강을 해치는 꾸밈을 강요한다. 그 방식도 굉장히 다양한데,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업종으로 올라갈 수 있으니 조금만 성형을 해보자든가, 그 외모로는 일을 못한다며 꾸밈노동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위험요소(진상손님과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 및 살해위협, 벗어나기 힘든 과도한 부채 등)를 대부분 노동자가 직접 대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성병에 걸리거나 임신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다른 업계에서 일하다가 질병에 걸리거나 다칠 경우 산재처리를 받을 수 있지만 성산업에서는 산재처리를 받지 못할 뿐더러 치료 혹은 임신중단을 성노동자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무엇보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일을 못하게 된다. 짧게는 며칠이지만 길게는 몇 달이 걸릴지 혹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너무 좋지 않은 노동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런 정신질환에 대한 케어까지도 노동자 스스로 해야 한다. 이렇듯 취약한 성노동자의 처지를 이용해 범죄공모를 권하는 경우도 많은데, 은근슬쩍 마약 투약을 권유한다든가, 성노동자를 바지사장으로 세워 업소를 연다거나 포주로 직접 일해보라거나 하는 등의 권유를 하기도 한다. 

또한 성노동은 고객센터 상담사 이상으로 고도의 감정노동이 요구된다. 대체로 구매자들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힘들다고 얘기하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해주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위로하기를 원하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칭찬해주고 응원해주고 기분 좋게 해주기를 바란다. 무엇을 해줘야 기분이 좋아지는지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노동자는 상황 따라 구매자를 케어해야 하며, 그런 감정노동을 성실히 하지 않는 순간 ‘서비스가 별로네’ 라는 소리를 듣는 건 물론이고 화대를 못 받거나 구매자가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초이스를 못 받는 경우도 왕왕 있고, 웃어주지 않는다며 상을 엎어버리고 아가씨를 바꿔달라며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기타 업종의 경우 손님이 시간 안에 사정을 하지 못하면 성노동자에게 폭언을 가하는 경우도 흔하고, 심지어 신음을 잘 내주지 않는다며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고객센터 상담사들이 친절하지 않을 경우 고객의 기분을 망쳐 일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과 비슷하나, 성노동자들이 받는 처우는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친절하지 않았을 때 받는 처우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에 더해 성노동은 고도의 돌봄노동 또한 동반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구매자는 단순히 성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전 취급을 받길 바라기 때문이다. 안 좋은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기분이 좋은 상태라면 기분을 망치지 않도록 계속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웃어주고 좋은 말을 해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룸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손님이 여러 명 왔을 때 이 사람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눈치껏 살펴야 하고, 내가 맡은 손님에게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 다른 손님의 기분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게다가 서비스의 만족도는 성구매자들이 각자 주관적으로 판단하데, 그 기준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다른 노동에 비해 ‘일을 잘 하’려면 정말 많은 노력과 센스, 눈치 등이 필요하다. ‘잘 생겼다 오빠’ 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누군가는 갑자기 화를 낼 수도 있는 상황에서 모두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정말 살얼음판 같은 노동환경이다. 언제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그런 살얼음판.

감정노동자와 성노동자 모두 지금 현실이 어렵고, 앞으로 언제 인권이 개선될지도 멀게만 느껴진다는 점 또한 닮았다. 이런 생각이 든 후에는 감정노동자이자 성소수자로서 소수자성을 지니고 있는 내가 성노동자와 연대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웠다. 하지만 세상에 많고 많은 소수자가 존재하는데 왜 내가 하필 성노동자에 이렇게 깊은 연대감을 느꼈는지 생각해보니 내 친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퀴어퍼레이드에서 만나 성노동 운동을 하고 있다고 소개받은 이 친구와 알고 지낸지 꼬박 2년 가까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그냥 한 다리 건너 알게 된 동료 활동가 정도였는데, 전부터 일방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혼자서 생각하던 내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연락처를 물어보고 친구하자는 말을 했다. 그 친구는 너무 쉽게 응해줬다. 그렇게 서로 얘기를 하다 보니 함께 공유하는 취미도 있었고 여러모로 얘기가 잘 통했다. 사람이라는 게 남 얘기보다는 친구 얘기를 더 귀 기울여 듣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이 친구가 올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더 공감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공감하다보니 내 처지와 굉장히 많은 면이 맞닿아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됐고.

나는 이 친구와 얘기할 때 많은 부분이 조심스럽다. 내가 걱정돼서 하는 얘기가 뭣도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고, 혹은 그 자체가 또 다른 가해가 될 수도 있다. 굳이 가해까지 되지 않더라도 내 말이 상처가 되거나 하나마나한 소리여서 맥이 빠질 가능성도 많다. 그러니까 그저 조신하게 옆에 있을 뿐이다. 연락이 되면 많은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많이 이야기하게끔 북돋아주되 내가 묻는 것이 당사자를 대상화하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그냥 그렇게 옆에서 그의 친구 중 한 명으로 남아 얘기하고 싶을 때 함께 이야기 나누고, 내 걱정이나 위로가 큰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내가 친구로서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렇게 기회가 주어질 때 공개된 지면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걸어 ‘나는 성노동론을 지지한다. 성노동자가 차별 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고 목소리를 내는 것 정도.

때로는 굉장히 빛나고 때로는 굉장히 위태로워 보이는 이 친구에게 여태껏 내가 하지 못한 말이 있다.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언제든 당신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이 글을 보고 많은 성노동자가 위로와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못하더라도, 내 친구가 성노동 운동을 하면서, 또 지긋지긋한 현생을 살아가면서 잠깐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이번에 성노동 프로젝트를 참여한 건 정말 잘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난 아직도 ‘제가 성노동론자입니다.’ 라고 확실히 말하기가 두렵다. 이는 ‘제가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하기 두려운 것과 같은 이유인데, 나 같은 게 성노동론자,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을 쓸 수 있을 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끼리가 아니라 흔히 얘기하는 ‘일반인’들과 얘기할 때 나는 성노동론자이며 페미니스트임을 밝히길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그런 자리에서 나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 대한 연대임을 알기 때문이다.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공감한다면 우리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내가 성소수자이고 감정노동자이듯 누구나 소수자성 하나씩은 다 갖고 사는 거 아닐까?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성프에 참여하길 권유해준 내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년에도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젠더퀴어 : 젠더퀴어란 젠더를 남성과 여성 둘로만 분류하는 젠더 이분법과, 지정받았거나 또는 생물학적 성의 젠더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시스젠더 규범성에 저항하는 사람을 말한다.

*퀘스처너(리) : 퀘스처너(리)는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로맨틱 지향, 성정체성 등을 탐구중이거나 확립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앨라이 : 앨라이는 넓은 의미에서는 사회 속의 차별을 관심 있게 찾아보고,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든 사람을 뜻한다.

*초이스 : 초이스란 보통 유흥업소를 기준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성노동자가 여러 명 서 있고, 성구매자가 이 중 자기가 앉힐 사람을 고르는 것을 말한다. 

*기타업종 : 기타 성매매 업종은 산업형 성매매 업종이 아닌 변종 성매매 업종을 말한다. 기타업종의 종류는 키스방(대화카페), 립카페, 핸플방, 안마방, 건마, 오피, 휴게텔, 출장 성매매, 조건 사무실 등이 있다.

 


 

작가 소개글 : 밖에선 침착해보이지만 속은 비글미가 있고 겉으론 남성패싱도 되지만 사실은 젠더퀴어인 타로마스터, 퀴어, 노동자, 초보운전자.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저는 여러분이 저의 존재 자체를 오롯이 봐주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