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성노동자 추모행동/2021 성노동자 추모행동 <사회는 우리의 애도에 응답하라>

[2021 성노동자 추모행동] 도균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2. 3. 25. 05:53

 

도균

 

안녕하세요. 저는 도균이라고 합니다. 오늘 이렇게 귀중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주홍빛 연대 차차의 활동가분들과 이 자리에서 성노동자들의 죽음을 함께 추모하고 계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과 반가움을 전합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49명 이상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살해당한 피해자는 모두 성노동자였고, 그는 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유에 대해 성노동자들은 실종되어도 그 사실이 제대로 신고되지 않아서, 잡히지 않고 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2003년 12월 17일,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살해당한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가졌고 그 후로 12월 17일은 국제 성노동자 폭력 철폐의 날이 되었습니다. 바로 어제가 국제 성노동자 폭력 철폐의 날이었습니다.

올해 8월 한국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했던 두 성노동자가 한 사람에게 살해당했습니다. 강윤성 살인 사건으로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있으시겠죠. 비단 두 사건 뿐만 아니라 성노동자들은 빈번하게 범죄의 대상이 되고, 여전히 많은 언론은 그런 범죄를 개별적인 사건들로만 생각합니다. 가해자가 어떤 성장 환경에서 자랐는지에 주목하고, 그가 어떤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인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성노동자 추모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무엇보다도 반가웠습니다. 성노동자들의 죽음이 공적으로 추모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노동자들의 죽음이 운없고 가여운 개개인의 죽음로만 기억되거나, 그렇게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묻지마 범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묻지마 범죄'는 그런 범죄에 매개된 여성 혐오와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가리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노동자를 향한 폭력에 제대로된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가까운 몇몇을 제외하면 누구도 슬퍼하거나 기억하지 않는 죽음이 있습니다. 애도할 가치가 없다고 치부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죽어서도 기억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취약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죽음을 추모하는 일은 단지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성노동자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떠나간 이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면서 고민이 있었습니다. 잘 살아보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끊임없이 제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주장을 하는 사람인지를 환기시키고, 그에 따를 수 있는 낙인과 혐오를 감당하는 게 사실 조금 벅차고 또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조차 기억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말하고 기억하고 애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주홍빛연대 차차의 활동가분들이 그러하듯, 저도 이 자리에 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04년 거리로 나온 성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포주의 사주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했고, 어떤 이들은 그들을 연대해야 할 노동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모릅니다. 단지 2004년 겨울, 정부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그 사람들이 있어서, 2005년 평택에서 성노동자 법외노조를 만들고 단체협약을 맺었던 사람들이 있어서 오늘 이 자리가 마련될 수 있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기억합시다. 그리고 애도합시다. 죽어서도 공적으로 기록조차 되지 못하거나, 오로지 가여운 피해자로만 기록되는 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욕망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애썼는지 기억합시다. 그 누구도 각자의 고유한 삶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기억하고 떠나간 이들을 애도합시다. 우리 몫의 삶을 살아내면서, 서로를 돌보고 아끼면서 함께 잘 살아갑시다.

누군가 또 우리의 곁을 떠나더라도 함께 모여서 그를 기억합시다. 남은 이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라도요. 성노동자들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성노동자의 삶이 가능한 자리를 만들어냅시다. 트랜스젠더, 학교 밖 청소년, 비인간 동물들의 죽음을 함께 추모하고 우리 모두의 삶이 가능한 자리를 함께 만들어냅시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누락시키고 미끄러트려서 굴러가는 이 가혹한 세상에서, 기억조차 되지 못하는 죽음들을 드러내야 합니다. 애도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기억되고, 또 애도받을 것입니다. 홀로 내던져져 죽고 잊혀지는 대신 힘들면 도움을 청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 자리에서 함께하길 바랍니다.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랍니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이 하루아침에 모두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때로는 힘들고, 또 때로는 즐거운 삶 속에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선 얼굴들을 떠올립시다.

발언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