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차 활동 소식/논평, 성명문, 입장문

24. [추모성명] 살인 사건 피해자의 신상정보는 언론의 조회수 장사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성노동자 인권 침해, 국가가 책임져라 :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 살인 사건에 부쳐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3. 1. 3. 20:39

 

[추모 성명] 살인 사건 피해자의 신상정보는 언론의 조회수 장사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성노동자 인권 침해, 국가가 책임져라 : 택시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 살인 사건에 부쳐

 

동거하던 여성과 택시 기사를 잇달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30대 남성, 이기영 살인 사건이 여러 시민의 주목을 받으며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12월 28일, MBN 추성남 기자의 <단독/ 살해한 동거녀와 현 여친도 노래방 도우미…택시기사 살해범 구속>라는 보도 때문에 피해자·제보자의 직업이 ‘노래방 도우미’라는 사실까지 강조되어 공개된 상황입니다.

1.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MBN 추성남 기자의 비윤리적인 보도 행태를 규탄합니다.

2.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무거운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국가의 책임을 묻습니다.

 


 

1.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MBN 추성남 기자의 비윤리적인 보도 행태를 규탄합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는 “피해자·제보자의 신상정보는 원칙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MBN 추성남 기자의 기사처럼 피해자·제보자의 직업을 공개하고, 그들의 직업을 소재로써 착취해 이익을 얻는 기사는 무고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 이기영이 노래방 도우미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사실 자체가 보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이기영이 노래방 도우미들에게 지속적으로 접근했다는 점을 고려해 추가적인 피해를 살피기 위한 보도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왜 노래방 도우미가 표적이 되었는지 조사하며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제도와 성노동자를 향한 낙인을 고발하는 보도까지도 가능하겠습니다.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보호하고, 충격받았을 제보자를 돕는 방향으로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MBN 추성남 기자의 보도는 피해자·제보자를 돕는 보도가 아니라 해치는 보도였습니다. <단독/ 살해한 동거녀와 현 여친도 노래방 도우미…택시기사 살해범 구속>에서 “그런데 이 씨가 살해한 동거녀는 유흥업소 종사자인 것으로 MBN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라는 문장에 다른 ‘일반 직업’을 넣어 읽어 보면 전체 기사 구조에 있어 피해자의 직업이라는 요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씨가 살해한 동거녀는 ___인 것으로 MBN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평범한’ 사무직 직장인과 같은 직업은 해당 빈칸에 들어가기 적절하지 않습니다. 저 문장에서의 빈칸은 전체 기사에서 가장 강조되는, 극적인 효과를 강요받는 자리입니다. 이는 단지 사실관계를 밝히고자 이루어지는 서술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사에서는 이렇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강조해야만 했던 이유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가해자가 금품을 노렸다는 사실은 기존 보도를 통해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굳이 제보자의 신상까지 추가로 밝혀가며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을 반복 보도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MBN에서 단독을 달고 시작한 피해자·제보자 신상정보 공개에 매일신문, 국민일보, 인사이트, 시사저널, 헤럴드경제, 서울신문, 위키트리도 뒤따라 동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인사이트는 유흥업소 종사자 사진을 이용해 기사 클릭을 유도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제보자의 직업은 이제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되어 조회수 장사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해된 사건입니다. 노래방 도우미도 사람입니다.

살인 사건 피해자·제보자를 언론에서 이런 식으로 다뤄서는 안 됩니다.

2.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무거운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와 같은 직종에 종사했던 여성을 애도합니다. 국가적으로 여자를 동원하고자 법에 유흥접객원이라는 직업을 명시했으면서도 정작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 개개인은 낙인찍어 괴롭히는 이 지긋지긋한 땅을 떠나 아름답고 평안한 곳으로 가셨길 바랍니다.

차차는 반복되는 성노동자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작년에도, 강윤성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노래방 도우미’였습니다. 이기영 살인사건의 피해자 역시 ‘노래방 도우미’입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의 결과였습니다. 강윤성과 이기영은 노래방 도우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인범에게, 성노동자는 현금을 든 취약한 상대입니다. 성노동자는 추적이 어려운 현금으로 임금을 받고, 폭력을 경험해도 경찰에 찾아가기 어려우며, 갑자기 사라지거나 사망해도 주변에 알려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하던 동료의 부고를 소문으로 듣게 되거나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곤 합니다. 많은 성노동자가 사회적 관계망이 단절된 상태로 성산업에 유입되어 일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피해자 B씨는 지난 8월에 사망했지만, 12월이 되어서야 발견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살인 사건은 가해자의 잘못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과 가해의 책임이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있다는 진실을 구별해야 합니다. 성노동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면서 피해자를 탓해서는 안 됩니다. 살인 사건의 원인을 피해자의 취약함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언제나 치명적인 오답으로 향하게 됩니다.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황이었든, 잘못은 언제나 사람을 죽인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회가 할 일은 취약한 사람을 살해하려는 움직임을 막고, 취약한 사람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취약한 사람도 살해당하지 않고 폭력에서 스스로를 방어하며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국가가 책임지고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3.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국가의 책임을 묻습니다.

성노동자는 성매매처벌법에 의해 불법화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범죄피해를 당해도 경찰에 신고할 수 없습니다. 경찰은 성노동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단속과 처벌을 두려워하며 피해야하는 ‘공포의 대상’입니다. 심지어 경찰은, 종종 우리를 고용한 업주이자 단골 손님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경찰 조직은 이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경찰 조직에 있어 자신들이 원할 때는 구매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처벌하는,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버려진 시민입니다.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우리를 이런 자리에 방치하고 있습니다.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가는 3년마다 국내외 성매매 실태조사(성접대 실태조사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를 실시하여 성매매 실태에 관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성매매의 예방을 위한 정책수립에 기초자료로 활용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조사 결과가 어떻습니까? 국가가 판단하기에 성산업에 유입된 성노동자들이 어떤 존재로 보입니까? 우리가 법에 의해 처벌당해 마땅한 범죄자가 맞습니까? 맞거나 착취, 갈취당하거나 사기당하거나 강간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당해도 괜찮은 존재가 맞습니까? 범죄 피해 경험을 호소해봤자 오히려 성노동자가 처벌받고 비난받고 더 가난해지는, 이렇게 살인 사건의 주된 표적이 될만큼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우리의 현실이 국가가 보기에 정당합니까?

우리 중에는 10대 시절부터 미성년자를 노리는 구매자들에게 시달려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폭력 때문에 강제로 성산업에 유입된 사람, 더 큰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성산업을 선택해야 했던 사람, 가진 것이라곤 자기 자신 하나뿐인 상황에서 스스로를 부양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픈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고, 학업을 중단하고 싶지 않은 가난한 학생들이며, 낮에 아이를 돌봐야 하는 미혼모입니다. 우리는 노동 시장에서 배제된 트랜스젠더이자 장애인이고, 국경을 넘은 이주민이며, 약물과 함께 살아가는 약물 사용자고, 집이 없는 탈가정 청소년이자 홈리스이며, 국가가 경제 성장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동원해왔던 바로 그 여성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이 반복해서 죽임당하고 있는 와중에, 실태 조사를 통해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국가는 어떤 조처를 했습니까?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또다시 성노동자가 죽었습니다. 사회가 성노동자를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가해자들은 끊임없이 죽여도 되는 존재를, 또 다른 성노동자를 찾아낼 것입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국가가 성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국가는 노래방 도우미를 비롯한 성산업 종사자를 보호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하나, 성노동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신고자에 대한 성매매 혐의 수사를 멈춰야 합니다. 성노동자에게 피해자 지위를 우선 부여하고 피해 구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 성노동자는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기영의 범죄를 엄중히 처벌해야 합니다.

하나, 성노동자가 성노동자라는 이유로 상해를 입거나 살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성매매 처벌법을 개정하여 성노동자 불처벌이라는 최소한의 기준선을 만들어야 합니다.

2022년 12월 31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