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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리치] 2021년 3월 가락동 아웃리치 후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2021. 4. 1. 10:45

2021년 3월 8일 가락동 유흥업소 아웃리치 후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가락동의 큰 특징은 한 건물에 유흥업소가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하에 있는 모든 가게가 유흥업소였다. 길을 걷다 유흥업소 밀집지역으로 들어서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간판을 달아놨다. (사진 제공 =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아웃리치팀)

2010년대 초 서울 도심 유흥업소 단속과 주민의 항의를 못 이겨 업주들이 외곽으로 흩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도심에 있던 업주들이 물색한 곳이 가락동이었다. 가락동은 24시간 영업하는 전국 최대 규모 농수산물도매시장인 가락시장이 있는 곳이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중도매인과 상인들이 많다 보니 유동 인구가 많았다. 이들은 거래를 기다리며 밥도 먹고 술을 마셨고, 자연스레 이런 분위기에서 유흥업소는 점차 늘어났다. 가락은 고정 아가씨 비율보다 보도 아가씨 비율이 높은 동네다. 낮부터도 손님이 많다. 낮에는 주로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현금이 두둑한 상인과 유통업자들이 주된 손님층이며, 밤이 되면 직장인이 주된 손님층을 이룬다. 듣자 하니 가락시장 재단장 공사 후 손님이 늘었다고 한다. 덕분에 가락동 유흥업소는 성행하게 됐고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은 빗발쳤다. 2017년 가을, 경찰과 송파구청이 가락동 유흥업소 집중단속에 나섰고 이때 유흥업소 숫자는 한창때의 절반 수준인 100개 안팎으로 줄었다. 이런 막강한 단속이 지나고 나니, 가락동의 손님은 길동으로 흩어졌고 남은 업소의 보안이 매우 철저해졌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아웃리치를 갔을 때 문전박대를 하던 사장들의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가락동에는 이런 역사가 서려 있으니 말이다.

지하 1층에 있는 한 노래연습장. 간판이 빛나고 있다. (사진 제공 =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아웃리치팀)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가락동은 문을 닫아걸고 CCTV로 아가씨와 손님을 확인한 뒤 들여보낼 만큼 몸을 사리게 됐다. 어떤 업소들은 예약제로 손님을 받기도 했고, 경찰 단속이 뜨면 손님에게 차를 잡아줘 도망칠 곳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가씨는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 실장도 유흥업소 사장도 단속이 뜨면 아가씨에게 알아서 하라는 지시뿐, 손님을 뒷문으로 빼돌려 차를 타서 보낼 만큼 아가씨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영업진은 아가씨에게 단속 대처법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단속에 대해 질문하면 우린 단속 안 당한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밖에 안 한다. 눈앞에 경찰차가 순찰을 하고, 경찰 때문에 차에서 내려 뒷문으로 출입하는데 어떤 걱정을 하지 말라는 걸까. 한마디로 운 좋으면 살아서 만나자이런 느낌 같았다. 운이 안 좋아 경찰한테 잡혀가면 자기 이름은 말하지도 말랬다고 한다. 평소에는 가족이라더니 정작 단속 뜨면 나 몰라라다. 영업진들은 아가씨들이 벌어다 준 돈으로 산 차를 타고 도망간다. 생판 남인 성구매자보다 가족인 아가씨를 내팽개치고 자기 이름은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가족이 코로나 시대에도 가락동에서 기생하고 있다.

트랜스해방전선에서 후원해준 마스크와 차차 소개 글이 담긴 엽서.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장미 그림을 넣어봤다. 뒷면은 빵 그림도 있다. 마스크와 엽서를 포장지에 밀봉해서 가방에 가득 담고 활동가들과 가락동으로 나섰다. (사진 제공 =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아웃리치팀)

트랜스해방전선에서 후원해준 마스크와 차차 소개 글을 가지고 가락동에 방문했다. 유흥업소 아웃리치는 성노동자 당사자에게 물품을 직접 전달해주기가 어렵다. 활동가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방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고, 대기실에 언니들이 있어도 영업진은 우리를 대기실까지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특히나 보도 비율이 높은 가락동은 아가씨가 늘 업소에서 대기하는 상태가 아니다. 가게에 손님이 왔을 때 업소 사장이 보도 실장에게 연락한다. 그리고 실장은 연락을 받고 언니들을 업소에 보낸다. 그러므로 운이 좋지 않으면 도착해도 언니들이 없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영업진에게 아웃리치 물품을 꼭 전달해달라고 말한 뒤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설령 영업진이 전달해주지 않더라도 미련을 버려야 한다. 유흥업소 밀집 지역을 돌면서 눈에 띈 간판 중에 영상제작실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201710월 기준 송파구청의 조사 결과 가락동에 약 143개의 유흥업소가 있었다. 노래연습장(61), 음반·영상제작업(27)에 단란주점과 유흥주점이 55곳이었다. 우리가 봤던 영상제작실은 유흥·단란주점에 대한 규제나 높은 특별소비세 등을 피하기 위한 업주의 꼼수였다. 규제를 피하려고 노래연습장이나 음악·영상제작실로 개업한 뒤 유흥주점으로 운영하는 가게들이었다. 우리는 체감상 가락동 유흥업소의 10% 정도를 방문했고, 10% 방문했던 업소 중 절반은 물품을 거부했다. 어떤 영업진은 우리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니 활동가들을 아가씨라 생각하고 반갑게 어서 들어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활동가라고 밝히니 표정이 굳으며 이런 거 필요 없으니 나가보라고 했다. 첫 방문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유독 외부인에게 입은 상처가 많아선지 경계심이 매우 높았다.

한 노래연습장 문 앞에 “소독을 생활화 하자”는 종이가 붙어있다. (사진 제공 =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아웃리치팀)

한 업소에 소독을 생활화 하자는 종이가 붙어있는 걸 발견했다. 문구가 기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업소 안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싶어도 초이스가 되면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 손님들은 당연히 마스크를 벗고 있고, 아가씨들도 눈치껏 벗길 종용한다. 손님이 기침을 하고 열이 나는 거 같아도 방을 나갈 수 없다. 혼자만 예민하게 유난 떠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고, 잘못해서 손님과 싸움이 나면 돈을 못 받고 차 안에서 대기만 할 수도 있다. 코로나 시대가 되어도 유흥업소에 손님들이 많이 온다지만, 그 많은 손님이 모든 아가씨를 초이스해주는 건 아니었다. 아가씨들은 예전보다 대기실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손님이 줄어든걸 체감한다. 방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절실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증상을 보이는 손님이 있어도 방을 박차고 나갈 수 있을까. 더더욱 간절해지고 취약해진 아가씨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영업진들은 방역의 책임을 유기하고 있다. 가장 최소한의 방역인 마스크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업소 안에서 소독을 생활화한다고 감염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송파구청에서 가락동 노래연습장 업주들에게 보낸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 연장에 따른 노래연습장 방역지침 안내서. 2021년 1월 18일부터 2월 15일 0시까지 유흥업소 종사자의 어떤 생계 대책도 없이 강제로 가락동을 떠난 여성들이 있었다. (사진 제공 =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아웃리치팀)

2021118일부터 215일까지 가락동을 떠났던 여성들은 3월 초부터 다시 가락동으로 돌아왔다. 유흥업소 집합금지명령은 2021년에만 있던 게 아니었다. 코로나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던 20203월부터 수도권 유흥업소는 방역을 위해 폐쇄됐다. 국민의 방역을 위해 유흥업소 집합금지명령을 내리는 건 타당하다 볼 수도 있겠다. 서울시 내에만 룸싸롱 1,800개가 넘게 있으니 이만큼의 감염이라도 줄여보자는 거다. ‘모두를 위한 방역을 위해서 때로는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할 것들도 생겨난다. 하지만 그 모두에 성노동자는 포함되지 않는지 아무리 기다려도 성노동자를 위한 방역 조침이나 생계 대책은 세워지지 않았다. 성노동자들은 모두를 위해 대거 일터를 잃고 생존이 위태로워졌다. 성노동자를 밟고 올라가 모두를 위한 방역을 운운했던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의 생존과 맞바꿔 얻은 방역은 좋았냐고. 그래서 감염병에 대한 불안감은 좀 가셨냐고. 유흥업소가 닫혀도 똑같이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판국에 왜 그 사람들에게는 유흥업소처럼 똑같은 잣대를 들이밀지 않냐고.

낮과 밤을 연속으로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고 아웃리치에 함께 참여한 활동가들. 꼬꼬, 리아, 양파, 열심, 왹비, 지현, 시카. (사진 제공 =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아웃리치팀)

아웃리치가 끝나고 많은 과제가 생겼다. 가락동의 업주들, 그리고 언니들에게 차차를 어떻게 설명하고 관계를 쌓아나갈지, 가락동이란 공간에서 차차만 할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뚜렷하게 나오진 않지만 고민할수록 차차가 가락동에 방문한 이유가 확연해져 갔다. 아웃리치가 끝나고 열심과 오랜만에 신나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앞으로 언니들에게 어떤 물품을 줄 건지, 우리의 예산은 어떻게 할 건지, 언니들과 재밌게 놀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면 우리도 좋고 언니들도 좋지 않겠냐고. 분명 우리는 언니들을 만나고 지원하기 위해 방문한 거였지만 집에 가는 길에 이렇게나 가슴이 벅찼던 걸 보면 오히려 우리가 언니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받고 가나 보다.

주홍빛연대 차차에서는 매월 정기적으로 가락동 아웃리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가락동은 100개가 넘는 업소가 있고, 한 가게에 언니들만 5~10명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20개의 업소만 방문해도 물품이 금방 떨어져요. 최대한 단가가 낮은 물품으로 언니들에게 소식지를 전해주려 하지만, 아웃리치 물품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3월 아웃리치 때 가락동 유흥업소의 10%만 방문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차차는 정부 지원금 없이 100% 여러분의 후원금으로만 활동합니다. 아직 1년이 조금밖에 넘지 않은 단체라 재정이 넉넉하지 않아 아웃리치를 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차차가 가락동 언니들과 연결되고, 계속해서 지원해나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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