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해 필요한 표현의 자유
일시: 2021. 05. 25. 오후 3시 ~ 5시
장소: 온라인(Zoom)
공동주최: 오픈넷, 주홍빛연대 차차
성노동자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하면 안되나요? : 사이버불링, 2차가해, 모욕죄 고소 그 이후
왹비(성노동 활동가, 주홍빛연대 차차 활동가)
2020년 5월 온라인(트위터)상에서 래디컬 페미니스트1)를 비롯한 여러 명의 페미니스트가 내가 성매매 현장에서 경험한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하자 성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집단으로 2차 가해한 사건이 있었다. 모 트위터 사용자는 내가 성노동 중에 겪은 성폭력 피해를 토로하는 글을 남기자, 어떤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이 글을 캡처해서 “성매매는 인간을 갉아먹는다. 성매매는 노동이 아니다. 성매매로 돈 못 번다. 지속 가능한 삶과 행복을 원한다면 저쪽엔 절대 발 들이지 마세요.”라는 코멘트를 붙였다. 이 글은 삽시간에 적극적인 공감과 지지를 얻으며 래디컬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나는 이 글을 발견하고 해당 발언은 2차 가해라고 말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예를 들어 직장 내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 한 피해자에게 “그러니까 네가 그 회사에서 일한 게 잘못이다, 그런 곳에서 일하며 뭘 바란 거냐”라고 말하는 것은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의 행동에 귀인 한 성폭력 2차 가해다. 나의 피해 증언은 성매매가 아닌 일반적인 직장이었다면 사람들에게 연대와 지지를 받았을 법한 증언이었다. 그러나 어떤 피해 증언은 피해 경험 이전에 정치적인 진영논리로 환원되기도 한다. 성노동자의 피해 증언이 그런 예이다. 가해자는 이런 비판에 되려 나에게 트위터에서 성노동자 및 성노동 운동가로서 활동을 지속하면 자신이 네 불행 서사를 더 읊어주겠다며 협박조로 대응했다. 이렇게 시작된 2차 가해 사건은 6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 사이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언급되기보다 ‘성노동 운동가’라는 이유로 ‘포주’라고 언급됐다. “포주 짓 그만해라”, “몸 팔 거면 여자들 끌어들이지 말고 혼자 팔고 감방에 가라”, “성매매가 노동이라는 말은 포주를 옹호하는 말이다”, “이 사람을 신고해달라. 미성년자를 성매매로 유도하고 있다.”, “강간을 당했으면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앞선 말들은 성매매 현장에서 경험한 성폭력을 ‘성노동’이란 단어를 쓰며 증언했기 때문에 들었던 말이다. 우리는 성폭력 피해 경험을 토로하는 성매매 경험 당사자가 '성노동'이란 단어를 쓰든, '성판매/성매매'란 단어를 쓰든 상관이 없어야 한다. 당사자가 무슨 단어를 쓰든 단어보다 그가 말하려는 본질을 좇아야 하며, 어떤 언어로 자신을 구성하고 지켜내는가는 당사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존중해야 할 영역이다. 하지만 성매매 경험 당사자가 자신을 '성노동/자'란 단어로 표현했을 때 쏟아지는 비난과 공격은 성노동자를 향한 혐오이자, 검열이며, 억압 기제가 분명히 이 자리에 존재함을 알리는 지표이다.
“개인은 합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 관습에 따라, 말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지녔거나 정치적 상황에 있을 때 자신의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이들의 경우엔 어떠한가? 전쟁, 인권의 대대적인 침해, 이와 유사한 다른 상황들의 이미지에 의해 인간성이 억압되어버린 사람들은 말할 수 없다. 그들의 인간성은 구경꾼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희생된다. 당신은 존엄한 인간이 되거나 피해자가 되어야 하며, 동시에 둘 모두일 수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상처는 말할 수 있지만, 당신은 말할 수 없다.”2)
내가 ‘성노동’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절대적으로 대상화된 성매매 피해 여성의 이미지를 재현했다면, 사람들은 날 성매매/성폭력 피해자로 승인했을 것이다. 성매매는 너무나 끔찍하며 내 삶을 갉아먹는 것이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성매매하다 성폭력을 당해서 괴롭다고. 성매매 여성에게 기대하는 발화란 이런 흐름이다. 성매매 여성에게 있어 성매매는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피해이고, 응당 그 피해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이 피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보여야 한다. 여기서 사람들이 성매매 여성에게 기대하는 노력은 탈성매매를 하고 싶다 선언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렇게 끔찍한 피해를 당했으면서 피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피해자는 질타의 대상이 된다. 처음 성폭력을 경험한 건 가해자의 탓일지 몰라도, 계속 그 상황에 머무르는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는 식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나의 기대, 예상, 판단보다 훨씬 분열적인 모순이 뒤섞인 존재기에 피해자성에 맞지 않게 행동할 수도 있다. 당사자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납득할만한 이야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당사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던지기도 한다.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때도 있으며 진술이 뒤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피해자성’에서 벗어난 피해자를 상상해본 적 없다. 그래서 자신이 기대하는 이미지와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피해자를 비난하고 의심한다. 당사자는 수백, 수천 가지 삶의 맥락을 가진 복잡하고 모순덩어리인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증언은 각기 다른 색깔일 수밖에 없고, ‘피해자성’과 불화하기도 한다. 당사자에게 '피해자성'을 요구할 게 아니라, '피해자성'이란 단어 뒤에 삭제당한 당사자의 삶을 존중하는 게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의 말이 성매매에 대한 진영 차이일 뿐 절대로 2차 가해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 사건은 성매매에 대한 진영 차이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진영논리를 떠나 반성매매든 성노동이든 성폭력 피해자에게 연대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페미니스트 집단 내에서 연대하고 지지하는 성폭력 피해자를 선별한다는 것이었고, ‘우리’에게 용인될 수 없는 ‘피해자성’을 가진 성폭력 피해자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우리’에 ‘성노동자’는 당연히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많은 사람이 내게 고소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사건을 고소하려 하면 내가 성노동자임을 경찰에 자백해야 했고, 그건 곧 스스로 범죄자로 처벌당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상황이었다. 인지수사3)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법적 대응은 확실히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도 누구 손에 들리냐에 따라 다르다. 사법 시스템에서 오랜 기간 무시당하고 소외당해오던 소수자가 법적 대응을 손에 쥐었을 때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법적 대응은 시간, 돈, 건강이 있어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 가능한 경제적 요건, 법적 대응에 대해 알아보고 고소 자료를 준비할 시간 등. 고소를 시작하면 체력싸움이 된다. 사이버 불링 피해자는 고소장 접수도 순탄치 않다. 악플 자료를 들고 가서 제출하면 경찰이 확인 작업으로 내가 받았던 악플을 하나부터 열까지 쭉 읽으며 이 내용이 맞냐고 묻는다. 그때부터는 트라우마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경찰을 만난다면 애초에 왜 그런 글을 올렸냐고 2차 가해를 당할 수도 있다. 고소 접수가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이미 사이버 불링을 겪으면서 돌아갈 일상이 무너진 지 오래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적절한 돌봄을 제공받을 수 없는 환경에 있다면 법적 대응을 하며 더욱 취약한 상태에 내몰릴 수 있다. 특히나 법적 대응이 끝난 이후에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거 같은 고립감이 드는데, 사이버 불링이 한참 진행 중일 때는 나를 중심으로 아군이든 적군이든 모여든다. 그러나 사건이 잠잠해진 후 아군도 적군도 모두 한 명도 곁에 남지 않았을 때 몰려오는 공허함과 쓸쓸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법적 대응이 끝난 후에도 피해자를 돌보는데 품을 들여야 한다.
2020년 5월 내가 겪었던 사이버 불링 사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노동자가 온라인 괴롭힘에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으며, 사이버 불링에 노출된 이후 구제 방안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한국에서 성노동자는 성매매특별법4)에 따라 범죄자의 지위를 갖는다. 경찰서에 피해자 지위로 고소를 진행하고자 하여도, 성매매 처벌을 하고자 피의자 지위로 수사 방향을 틀어버린다. 성노동자가 자신이 성노동을 했음을 자백했으니 단서가 하나 생겨 인지수사로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성노동자는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범죄 피해를 당했을 때도 신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또한, 운 좋게 피해자 지위에서 사건 접수가 진행되더라도,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수사기관에서는 성노동자에게 2차 가해를 일삼기도 한다.
두 번째는, 한국 사회에 성노동자가 성노동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욕을 당해선 안 된다는 공동체적 합의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사회는 성매매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성노동자에게 수치와 낙인을 묻힌다. 아직도 미투 운동에 성노동자 집단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과 연결된다. 자기 자신이 지금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조롱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 존재 자체도 알릴 수 없다. 성노동자를 향한 혐오 표현에 대한 개념 정의와 유형화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사자는 자신이 경험하는 피해를 언어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실질적으로 성노동자 당사자 집단이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어떤 혐오 표현에 노출되고, 이러한 행위가 어떤 식으로 성노동자의 존엄성과 평등권을 해치는지 현실의 차별실태 조사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혐오 표현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집단에 현재로서 성노동자가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현재 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이 부재한 상태다. 이러한 이유로 혐오 표현에 노출되는 소수자들은 명예훼손, 모욕죄로 사이버 불링 가해자들을 고소해야 하는 실정이지만, 이 두 법률의 까다로운 점은 바로 특정성이다. 피해자가 누구인지 특정되어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낙인이 강한 성노동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신상을 온라인에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특정성이 성립되기 어렵다. 실제로 나 또한 특정성이 성립되지 않아 모욕죄 고소를 모두 실패했다. ‘특정성’ 성립은 비단 성노동자뿐 아닌 아웃팅에 취약한 소수자 집단 모두에게 애먹는 부분이다. 앞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혐오 표현을 규제하는 입법화와 혐오 표현에 취약한 성노동자를 보호하는 플랫폼의 안전장치 고안, 성노동자의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필요하다.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저는 강간을 당한 후로 이제 약을 먹지 못하면 잠에들 수 없어, 성노동을 하다 강간을 당했지만 안녕하지 못해서 이 글을 씁니다. … 성노동자의 강간도 강간이고, 나도 강간 피해자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성노동을 해서 강간당한 게 아니라 가해자가 강간하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강간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모두들 이제는 안녕하길 바랍니다.”5)
1) 여기서 사용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을 통칭한다. 첫 번째로,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TERF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두 번째는 자신을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지만, 성노동자 배제주의적(혐오) 페미니즘(SWERF)을 지향한다. 혹은 성매매에 대해 근절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가장 흔하게는 노르딕 모델을 지지한다. 세 번째는 탈코르셋을 지향하며, 페미니스트 정의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지니고 있다(예를 들면, 계급의식이 없고 실천하지 않는 페미니스트를 페미니스트로 인정하지 않는다). 네 번째는,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들만의 순수한 페미니즘, 혹은 여성들만의 이상사회를 원한다. (출처 : 페미위키, K-래디컬 페미니스트 문서)
2) 출처 : 오큘로 007 풍경, 아보우나따라콜렉티브 : 모두를 위한 이미지를 지닐 권리 : 도래할 혁명을 위한 요약문 (2015)
3) 인지수사란 고소, 고발로 시작되지 않고 수사기관이 스스로 인지해서 죄를 입증하는 수사를 뜻한다. 수사기관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고소 사건과 달리, 인지 사건은 수사기관이 스스로 죄를 입증해야하기 때문에 피고인의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길 수밖에 없다. (출처 : 조국 법무부 장관, 검찰 개혁안 수용: 인지수사 대폭 축소 )
4)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말한다. 이중 성매매 처벌법(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누구든지 ① 성매매 ② 성매매 알선 등 행위 ③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④ 성을 파는 행위를 하게 할 목적으로 다른 사람을 고용·모집하거나 성매매가 행하여진다는 사실을 알고 직업을 소개·알선하는 행위 ⑤ 이러한 행위가 행해지는 업소에 대한 광고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성매매 알선 등 행위를 하거나 성을 파는 행위를 할 사람을 모집한 사람, 성을 파는 행위를 하도록 직업을 소개·알선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성매매특별법 -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5) 2020년 5월에 썼던 미투 글 일부분 발췌
'차차 활동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주년] 주홍빛연대 차차가 2주년이 됐습니다! (0) | 2021.07.28 |
---|---|
[마감] 성노동 프로젝트 5회 참가자 모집 ~7.18 (0) | 2021.06.30 |
[웨비나] 2021 세계 성노동자의 날 웨비나 (0) | 2021.05.23 |
[웨비나] 성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해 필요한 표현의 자유 (0) | 2021.05.14 |
[미팅] 한국X대만X미국 성노동자 단체 온라인 미팅 (0) | 2021.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