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의 남김없는 분쇄를 위하여: 군산 대명동 화재 참사 21주기에 부쳐
2000년 9월 19일, 전북 군산 대명동의 성매매 집결지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피해 여성들의 생전 기록을 통해 감금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건의 진상은 빠르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10대 때 가출했다가 인신매매되어 성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으나, 인근의 경찰들이 포주와 유착 관계를 맺고 그 사실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2년 뒤인 2002년 1월 19일, 군산 개복동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감금당한 채 강제로 성노동을 하던 14명의 여성이 화재로 질식사했다.
두 사건이 미친 충격은 2004년 성매매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성매매특별법은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은 처벌하되 "성매매피해자의 성매매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이 인정하는 성매매피해자는 위계 혹은 위력에 의해 강요당하거나 약취되어 성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자발적으로' 성매매에 참여한 사람은 그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발'과 '비자발'을 무슨 수로 구별할 것인가? 왜 우리는 그것을 구분할 권력을 남성중심주의적 법질서에 넘겨주고서 내버려 두고 있는가?
성노동자는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에 있어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없다. 합의 없이 임금이 삭감되거나 부당해고를 당해도, 성병 또는 임신중절과 같이 건강상의 위험을 홀로 감당할 것을 강요당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은 '자발적' 성노동자였음이 밝혀지는 순간 법에 의해 처벌되기 때문이다. 성산업의 자본가들은 이 같은 성노동자의 법적 취약성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착취를 일삼고 있다. 강제성의 여부를 가려내려는 습속은 성노동자를 사회적으로도 고립시킨다. 성노동자를 낙인찍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공권력은 고사하고 지인의 도움도 요청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성매매특별법은 집요하게 '자발'을 파고들면서 정숙한 피해자와 문란한 창녀를 나누어 통치하는 가부장제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다. 성노동자를 가두던 것과 같은 재질로 새 창을 만들어 세우고 기존의 창살을 무너뜨렸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착취를 뿌리 뽑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낙인은 여전하고 억압은 촘촘하다. 성노동자는 이제 겹으로 된 창살 안에 있다. 가부장제가 박아 넣은 창녀 멸시 위로 선별적 구원의 이데올로기가 가로 세워진 것이다.
성노동자의 권리를 속박하는 창살을 남김없이 분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을 관철해야 한다. 하나, 성노동자 처벌을 완전 철폐해야 한다. 성산업 내에서 일어나는 착취의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물어야 한다. 둘, 성노동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법제를 새로 마련해야 한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완전히 짓밟힌 성매매특별법의 비극이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셋, 성노동자가 경험하는 차별과 낙인을 해소하기 위해 전사회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훨훨 새가 되어 날고 싶다던 대명동 희생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창살뿐 아니라 덫도 새총도 사라진 진정 자유로운 세상이어야 할 것이다. 주홍빛연대 차차는 그런 세상의 도래를 위해 단호히 싸워나갈 것이다.
2021년 9월 19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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