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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공유] 기지촌에서 투기촌으로 바뀐 이태원, 혐오와 망각의 여성착취사

특히 1953년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기지로 이전하면서 용산에서는 미8군의 역사가, 인근의 이태원에서는 기지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창녀들의 언덕(hooker hill)”이라 불리는, 이태원 소방서 인근에 소위 “양키 바” 밀집 지역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1950년대 후반이었다. 덧붙이자면, 루인의 논문 ‘캠프 트랜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의 역사 추적하기, 1960~1989’가 밝히듯 이태원 기지촌 여성들의 역사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태원의 전성기라고 알려진 1988년은 반미시위가 가장 많이 열린 해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 미국이 빼앗아간 것을 되찾으려는 열망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이때 기지촌 여성들의 몸이 매개한 “양키”와 ‘미국적인 것’에 가장 손쉽게 추방 명령이 떨어졌다...

[기사공유] 동두천 기지촌 마을 시리즈

📌 동두천 기지촌 마을 시리즈 #1 턱거리마을 주민 대부분은 미군을 상대로 일을 했다. 일거리는 많았지만 일자리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여성들은 미군 부대 안 빨래공장에 취직해 군복을 빨고 다렸고,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청소와 빨래, 육아를 대신하며 돈을 벌었다. 식당이나 가게를 운영하거나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마을의 모든 것이 미군부대로부터 형성됐고, 주민들은 미군부대로 인해 생존했다. 돈과 음악과 유흥이 넘쳐나고 마을은 번성했지만, 이곳 여성들의 삶은 언제나 아슬아슬했다. 매일 밤 사람들의 고성과 비명이 들려왔고, 살인, 강간, 폭력, 방화 같은 강력범죄가 끊이질 않았다. 1964년에는 기지촌 성노동자 김옥희(28) 씨가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얼굴에는 상처가 있고 목 졸린 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