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성매매 현장과 재개발, 정당화되는 강제퇴거에 저항하기
2019년 6월 21일, 인천 옐로하우스 4호 집 앞으로 커다란 포크레인이 돌진했다. 포크레인이 4호 집을 철거하려는 순간, 옐로하우스 성노동자 여러 명이 몸으로 막아 세웠다. 혼란한 틈 사이, 지역주택 조합장이 4호 집 유리창을 망치로 부쉈고, 4호 집 안에서 대치하던 성노동자의 다리에 유리 파편이 박혔다. 숭의1구역 지역주택조합에서 옐로하우스 성노동자를 쫓아내고 재개발 박차를 가하기 위한 일이었다.
(중략) 집결지 폐쇄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쟁점이 수면위로 떠올랐는데, 그 중 하나는 성노동자를 위한 이주 보상대책이다. 재개발 사업에는 이주 보상대책이 따른다. 그런데 성매매 집결지 재개발 사업의 주체인 지자체나 민간 재개발 조합은 성노동자의 이주 보상대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현행법상 성노동자의 이주 보상대책을 보장할 법적 근거와 보상기준이 없다는 게 이유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숙식하는 성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입주민이지만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민간 재개발을 진행한 청량리 588의 경우, 법적 이주보상금 대상자는 청량리 4구역 일대가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1996년 이전부터 거주하던 입주민이 대상이라 대부분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 조합이 지급한 성노동자 몫의 보상금을 가로채는 업주들도 있었다. 익명의 성노동자는 "10년 가까이 가족처럼 지내던 업주들이 (재개발) 추진위 소속이 돼 아가씨들 몫으로 나온 보상금을 모두 챙기고 무일푼으로 쫓아냈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청량리가 폐쇄된 후 성노동자들은 영등포, 동두천, 용주골 등으로 분산됐다. 한편 대다수의 옐로하우스 성노동자들도 마땅한 이주 보상대책 없이 쫓겨났다. 조합은 건물주에게 보상금을 모두 지급했고, 성노동자에겐 이주비를 줄 법적 의무가 없다며 철거를 강행했다.
(중략) 성노동자가 지자체에 조례지원과 별개로 이주 보상대책을 요구하면 “조례지원을 받으면 된다”고 답하고, 시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면 “범법자와 대화하지 않는다”는 말이 돌아온다. 지자체가 ‘성매매 피해자’라고만 성노동자를 규정하는 관점도 잘못됐지만, 사실 성노동자는 정말 지원이 필요한 ‘성매매 피해자’ 대우조차 받아본 적 없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자체의 집결지 폐쇄와 조례지원 정책에서 단 한 번도 성노동자들은 존중받지 못했다.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와 성노동자의 투쟁
2023년 1월, 김경일 파주시장은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를 선언하면서 파주경찰서, 파주소방서와 TF를 구성했다. 당시 파주시는 “일체의 타협 없이 연내 폐쇄 절차를 마무리할 것”, “필요하다면 행정대집행(강제 철거)도 불사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파주시는 성매매피해자 자활조례지원을 만들기 전부터 강력한 경찰 단속을 시작해 성노동자들을 미리 쫓아냈다.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고 단속에 못 이겨 강제로 이주당한 성노동자들이 있다. 2023년 5월 기자회견에서 용주골 여종사자 모임 자작나무회 별이는 울면서 호소했다.
“이곳의 존재만으로도 시민분들이 불편하실 거 압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 종사자들의 상황과 처지를 조금만 생각해 주시고. 무엇보다 강제 폐쇄가 아닌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을 주세요.”
2023년 8월, 자작나무회 3명은 파주시장을 만나 면담 자리를 가졌고, 3년의 유예기간과 이주 보상대책을 요구했다. 파주시장은 “3년 유예기간도 아예 생각이 없다. 3년 뒤에 선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면서 자작나무회가 준비해온 면담용 문서를 버리고 떠났다. 2023년 11월, 용주골에 행정대집행이 들어왔다. 용주골 성노동자의 집과 직장을 강제 철거하기 위해 용역, 시청 직원, 경찰을 비롯해 약 300여 명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용역을 동원한 폭력적인 강제 철거 과정에서 용주골 성노동자 1명이 쓰러져 구급차로 이송됐다. 2023년 12월, 용주골 내부에 성매매 단속용 CCTV 설치 시도가 있었고 영하 16도에 성노동자들이 잠옷 바람으로 막아냈다. 2024년 1월, 재차 성매매 단속용 CCTV 설치 시도가 있었고 용주골 성노동자가 영하 6도에 전봇대 전신주로 올라가 고공농성을 했다. 2024년 3월, 성매매 단속용 CCTV 설치 시도와 용주골 펜스 철거 용역이 들어왔다. 성노동자들은 다시 한번 전봇대 위에 오르고, 용역과 맞서 싸웠다. 이 과정에서 1명의 성노동자가 구급차에 실려 갔다. 2024년 4월, 성매매집결지폐쇄 TF팀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며 자작나무회 대표를 비롯한 차차와 연대자들이 무릎을 꿇었고, 2명이 공무집행방해죄로 고소당했다. 2024년 5월부터 6월, 파주시는 용역과 경찰 약 50명을 투입해 용주골 성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42호 집 강제 철거를 진행했고, 일주일에 한 번꼴로 경찰 단속을 시행하며 여성들을 괴롭혔다. 경찰은 손님으로 위장해서 함정수사를 진행했고, 성매매처벌법으로 처벌받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2024년 10월, 4개 집이 강제 철거당했고, 11월에는 더 많은 수의 강제 철거가 예정되어 있다.
성노동 비범죄화: 성노동자의 권리와 생존을 위한 절실한 요구
성매매 집결지 강제 폐쇄와 재개발은 20년 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의 조력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 성노동자를 범죄자로 규율하는 법이 성노동자들을 자기 집에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도록 강요한다. 오늘도, 내일도 수많은 성노동자들이 집결지가 철거당해 쫓겨나고, 단속당하고, 처벌받고 있다. 이주 보상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도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한다. 조합과 지자체는 성노동자의 사회적 낙인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범죄자들한테 무슨 보상이냐고, 범죄자들이니까 조례지원이라도 감사해하며 받고 나가라는 태도를 보인다. 한편, 일반 대중들은 자신의 혈세로 성노동자를 지원해선 안된다고 욕한다. 성노동자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업주들은 재개발 조합에 들어가 성노동자들 집 앞에 “성매매는 불법”이라고 락카칠 하고, 성매매 단속 촉구 집회를 열기도 한다. 세입자 권리를 요구하고자 해도 사회적 낙인 때문에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계약해도 성매매와 관련된 임대차계약이라서 법적으로 무효가 된다. 정책적 결정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성노동자를 존중할 필요 없다. 국가는 성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책임이 없다. 성노동자들이 주거지와 직장을 단숨에 잃고, 동료들과 헤어지고, 경찰에게 체포되고, 처벌을 받는 건 성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정말 그런가? 성매매 집결지의 숫자는 줄였지만, 성노동자의 삶은 지난 20년 동안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성노동자에게도 권리가 있는 세상, 성노동 비범죄화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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