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4

[소식] 용주골, 수도권 마지막 성매매 집결지 속 여자들

안녕하세요? 차차입니다. 차차가 함께한 씨리얼 ASKED 시리즈 이 공개되었습니다. 파주 용주골은 한국이 미국과 군사동맹, 경제지원을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이었습니다. 기지촌 성매매에 빚을 진 한국의 근대화, 용주골은 그 역사의 중심에 있던 공간입니다. 씨리얼 영상작업에 참여한 차차 활동가 여름은 “한국에서 성매매는 불법이다”, “모든 성노동자는 성매매 피해자다” 라는 프레임 뒤에 숨겨진 역사와 이야기를 묻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윤락행위 등 방지법”은 흔히 한국의 성노동을 불법화한 법이라고 알려졌지만, 그렇다면 왜 같은 시기에 기지촌 지역을 “성매매 단속 예외 지역”으로 지정했을까요? 한국에서 성매매는 언제나 불법이었을까요? 성매매 피해자 지원 조례는 누구를 위한 조례일까요? 모든 성노동자는 성..

[기사공유] 라면을 삶는다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옥바라지선교센터 이종건 활동가님이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코너에 용주골 강제폐쇄 투쟁 글을 써주셨습니다. ❤️‍🔥 "공권력을 동원한 행정대집행이 예고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동네 입구를 막아섰다. 용역과 경찰, 공무원들로 뒤섞인 무리 앞에 용주골 사람들이 서 있다. 서로를 언니, 이모, 막내라 부르는 사람들이 팔을 엮었다. 짓궂은 농담과 너스레로 용기 내보지만 이내 흐느끼는 이도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옆에 있는 이들이 감싸 안아 집으로 가라 한다. 울먹이며 “그럼 누가 지키느냐”는 말에 우리가 지킨다 말하고선 다시 너스레를 떤다. 새벽부터 정오까지 이어지는 긴 대치상황, 오토바이가 김밥을 싣고 오고 이모들은 물을 끓여왔다. “컵라면 먹자!” 한마디에 긴장이 해소됐다. 그 틈을..

[기사공유] 기지촌에서 투기촌으로 바뀐 이태원, 혐오와 망각의 여성착취사

특히 1953년 주한미군사령부가 용산기지로 이전하면서 용산에서는 미8군의 역사가, 인근의 이태원에서는 기지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창녀들의 언덕(hooker hill)”이라 불리는, 이태원 소방서 인근에 소위 “양키 바” 밀집 지역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1950년대 후반이었다. 덧붙이자면, 루인의 논문 ‘캠프 트랜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의 역사 추적하기, 1960~1989’가 밝히듯 이태원 기지촌 여성들의 역사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태원의 전성기라고 알려진 1988년은 반미시위가 가장 많이 열린 해이기도 하다. 민주화 이후 미국이 빼앗아간 것을 되찾으려는 열망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이때 기지촌 여성들의 몸이 매개한 “양키”와 ‘미국적인 것’에 가장 손쉽게 추방 명령이 떨어졌다...

[기사공유] 동두천 기지촌 마을 시리즈

📌 동두천 기지촌 마을 시리즈 #1 턱거리마을 주민 대부분은 미군을 상대로 일을 했다. 일거리는 많았지만 일자리의 종류는 많지 않았다. 여성들은 미군 부대 안 빨래공장에 취직해 군복을 빨고 다렸고,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의 청소와 빨래, 육아를 대신하며 돈을 벌었다. 식당이나 가게를 운영하거나 성매매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마을의 모든 것이 미군부대로부터 형성됐고, 주민들은 미군부대로 인해 생존했다. 돈과 음악과 유흥이 넘쳐나고 마을은 번성했지만, 이곳 여성들의 삶은 언제나 아슬아슬했다. 매일 밤 사람들의 고성과 비명이 들려왔고, 살인, 강간, 폭력, 방화 같은 강력범죄가 끊이질 않았다. 1964년에는 기지촌 성노동자 김옥희(28) 씨가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얼굴에는 상처가 있고 목 졸린 흔..